『지서地書』의 저자인 중국에서는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로 불리는 쉬빙은 설치미술가이자
서예가인데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예술 작업을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와 영어의 알파벳, 한자의 상형문자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영문자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현재는 중앙미술학원 부원장으로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해온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새로운 도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책 속에 글자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문자를 이용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냈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아이콘과
픽토그램, 이모티콘 등으로만 그려낸 새로운 문자 아닌 문자를 창조해낸 것이다.
실제로 책의 내용이 위와 같은 식이다. 이 책에 대한 정보 마저도 이러한 아이콘과 픽토그램,
이모티콘 등으로만 표현해 놓았을 정도이다. 목차는 시계가 나오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엇인가가 표현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도,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도 이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글자가 단
한자도 없으니 말이다. 아울러 이 책은 저자가 전 세계를 돌면서 무려 7년간 수집한 각국의 심볼과 기호 2500여 개만으로 지어진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글자가 없는 책은 여러 권 읽어 보았다. 그 책들은 적어도 모두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내용을 유추해내기가 어렵지 않았고 읽는 사람들마다 그 유후한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나름대로는 명확한 그림이였다.
그런데 『지서地書』는 이 책을 누가 읽는지에 따라서, 언제 읽는지(기분의 상태나 요일, 시간
등)에 따라서 그때마다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선사할 책이기도 하다. 그러니 남녀노소 모두가 읽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것 같다.
목차 하나 당 페이지 수가 정해져 있지 않을 정도로 표현이 자유롭고 이것이 과연 무슨 내용일까
싶은 궁금증은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기대감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가 도대체 이게 뭔가 싶은
마음에 당황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가이드 북이 부록으로 있는데 이 책에 대한 해석과 독자의 추천사, 그리고 실제로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독자들의 해석이 그것이다.
해석이 곤란하거나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다른 독자분들이 해석한 내용을 참고로 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면 충분히 재미있을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