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현대로 불러낸 『미실』이란 작품으로 많은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 시대를 초월해 태어난 미실을 통해서 그녀의 역량을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런 김별아 작가가 이번에는 『조선왕조실록』에 주목했다. "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 라는 문장을 그녀가 어떻게 찾아냈을지 그것이 사뭇 궁금해진다.
유녹주라는 여인과 조서로라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단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안타까움만으로 치부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간통이라는 것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것은 자명한 일인데, 하물며 유교의 성리학이 국본으로 자리한 조선에서 양반가의 간통사건은 모르긴 해도 그 당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을 법한 사건 중의 사건일 것이다.
'죄가 있었다. 사랑했다는 죄.
더 큰 죄가 있었따. 사랑한다는 죄.
그것밖에 아무것도 원치 않고,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은 죄.'
그렇다. 전 관찰사의 아내 유씨라고 알려진 유녹주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녀가 왜 사랑이라는 죄를 저질러야 했는지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니 말이다.
고려가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 조선의 개국으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그 시기에 녹주는 부모님을 잃고 먼 친척이였던 서로의 집에 맡겨지게 된다. 이 부분은 전 관찰사의 아내 유녹주와 조선 개국공신의 장남이면서 지신사(조선 시대 왕명의 출납을 담당하였음)인 조서로가 과연 어떻게 만나서 사회를 경악시킬만한 간통 사건을 저질렀는지가 밝혀지는 대목이다.
유녹주와 조서로는 그렇게 이성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지만 그것을 알게 된 조서로의 어머니는 녹주를 집에서 쫓아 내고, 결국 유녹주는 깊은 산속의 절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렇게 잊은듯 살아가지만 조서로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유녹주가 자리잡고 있다.
그러던 중 전 관찰사 이귀산이 우연히 유녹주가 있던 절에 들렀다가 유녹주를 보고 반해서 그녀를 후처로 삼아 집으로 돌아 오고, 이에 더해 조서로가 이귀산의 집을 오가게 되면서 유녹주와 조서로는 만나게 된다. 결국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조선 양반가 간통 사건이라 불리며 남자인 조서로는 귀양살이를 여자인 유녹주는 참수형에 처해진다.
유녹주는 여자이기에 더 큰 형을 받았을 것이고, 조서로는 남자인데다가 그래도 고위관직에 있었기에 참수형을 면한게 아닐까 싶어지기도 한다. 사랑한 게 죄라는 그 말에서 두 사람의 결말이 아련하게 느껴질수도 있겠지만 조선시대 성리학의 근본이념을 떠나서 유부녀인 유녹주의 사랑은 두 사람에게는 사랑일지라도 딱 두 사람에게만 그럴지라도 생각한다.
조서로가 이귀산의 부인으로 나타난 유녹주와 사랑을 하기 이전에 유녹주가 자신의 집에 있었을때 무엇인가를 했어야 하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여자인 유녹주에게만 주어진 비난과 참수형에서만은 안타까울 뿐이다.
『채홍』『미실』에 이어서『불의 꽃』까지 실재로 존재했던 단 한줄의 역사에서 이렇게 대단한 글을 쓴다는 건 김별아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