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 - 2003년 전미도서상 수상작 꿈꾸는돌 6
폴리 호배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돌베개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엄마라고 하기엔 너무나 쌀쌀한 헨리엇과 플로리다의 작고 우중충한 아파트 지하 2층에 사는 래칫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있는지조차 모르는 쌍둥이 이모 할머니 펜펜과 틸리가 살고 있는 메인으로 보내진다. 엄마 헨리엇에게는 '헌트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처럼 보인다. 게다가 래칫에게 있는 '그것'으로 인해서 래칫은 항상 주눅들어 있는 상태이다.

 

밤새 기차를 타고 도착한 메인에서 만난 91살의 쌍둥이 할머니는 홀쭉이와 통통이를 연상시킬만큼 생긴 모습이 너무도 다른 모습이고, 실제 성격도 180도 달라 보인다. 읍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쌍둥이 할머니의 집은 글렌 로사라고 하는 저택이다. 과거 부유했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곳으로 어머니가 자신의 삶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의 목을 단두대를 만들어서 자살한 곳이기도 하다.

 

과거 부유층에서 자녀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그랜드 투어를 했듯이 쌍둥이 할머니들 역시도 그런 생활을 하고, 많은 하인들이 집을 돌보는 가운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이후, 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두 사람은 여전히 글렌 로사를 지키면서 91살이 되도록 바깥세상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인을 모두 내보내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집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블루베리와 그만큼이나 돌아다니는 곰과 공존하고 있고, 곰을 피해서 블루베리를 따서 잼을 만들기도 했다. 마치 박제된 공간같은 글렌 로사에 래칫이 찾아오고, 래칫은 자신의 몸에 있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런 말이 없는 두 할머니와 글렌 로사에서의 일상에 점점 더 적응해 간다.

 

글렌 로사에 있는 전화기는 과거 쌍둥이 할머니의 어머니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지 못하게 하려고 아버지께서 오로지 받기만 하도록 전화선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전화임에도 엄마 헨리엇은 자주 전화를 하지 않는다.

 

주눅이 든 하지만 점차 쌍둥이 할머니 펜펜과 틸리를 도와서 집안일을 하던 어느날, 글렌 로사의 저택 앞에 임신한 여자와 래칫만한 여자 아이가 나타난다. 임신한 매디슨은 하퍼(여자 아이)를 맡기러 고아원에 가던 길을 잘못 들어서 글렌 로사까지 온 것이다.

 

친엄마에게 버림받고, 이제는 자신을 길러 준 엄마같은 이모에게서 버림받은 하퍼는 래칫과는 정반대로 거칠고 나쁜 모습을 보이게 되고, 이에 틸리는 불만스러워 하지만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몇 십년 간 사람이라곤 펜펜과 틸리 두 사람이였던 글렌 로사가 래칫의 등장이후 갑작스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고, 그 사이 펜펜은 과거 틸리가 그랬던 것처럼 심장마비를 일으키게 된다. 점차 죽음과 삶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은 틸리도 마찬가지로, 두 사람은 자신들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래칫과 하퍼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자 한다.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았던 하퍼는 직설적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악의가 없는 소녀다. 그렇게 래칫과 하퍼는 서로 친구가 되고, 래칫의 엄나 헨리엇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글렌 로사를 찾아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하퍼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다. 바로 벌레에 대해 연구할 것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오기 전 래칫은 '그것'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지만 헨리엇은 수술한 그 모습조차 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모두가 돌아 가고, 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 글렌 로사의 전통처럼 틸리는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뒤이어 펜펜까지 틸리의 옆에 묻히게 되고, 래칫과 하퍼는 펜펜과 틸리가 남겨 놓은 글렌 로사를 지키며 수십 년 전 펜펜과 틸리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특히 래칫은 대학 진학을 한 하퍼와는 달리 글렌 로사에 남아 그곳에서 펜펜과 틸리가 했던 모든 것을 이어간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하퍼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그 옛날 하퍼의 등장처럼 래칫 앞에 나타난 그 남자가 사실은 의사이며, 읍내의 리처드슨 선생님의 뒤를 있게 됨을 알게 된다. 그리고 리처드 필링과 래칫은 결혼해서 숲을 사랑했던 그 마음을 이어나간다.

 

91살의 모습도 성격도 너무 다른 쌍둥이 할머니가 가족이 있지만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두 여자아이의 실직적인 부모 역할을 하면서 차츰 서로에게 동화되어가고, 마지막의 순간까지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은 가족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한다.

 

블루베리가 만드는 계절이란 아마도 쌍둥이 할머니의 어머니와 틸리, 펜펜이 떠난 시기를 의미하고, 그 시기마다 남겨진 사람들은 슬프지만 한층 더 성숙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곰이 수시로 나타나는 그길을 무면허의 틸리가 운전을 하고, 아무도 없는 글렌 로사 저택에서 그렇기에 조용히 살아가던 펜펜과 틸리의 죽음이 외롭지 않아서, 남겨진 하퍼와 래칫 역시도 외롭지 않아서 두 쌍둥이 할머니의 오묘한 분위기 이상의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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