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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황현 선생님의 <매천야록>에 실린 김홍륙의 일화가 중요 모티브가 되었다. 1898년, 러시아어에 능통한 재주 하나만으로 아관파천 시절 엄청난 부와 권력을 움켜쥐고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세도를 부리던 역관 김홍륙金鴻陸이 권력을 잃고 몰락한 그가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자 견디지 못해 이에 앙심을 품고 보현당 창고지기인 김종화 등과 모의해 고종과 세자가 즐겨마시던 커피(노서아 가비)에 독약을 타 넣었던 사건을 말한다.
노서아 가비, 즉 러시아 커피를 말한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말은 익히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실제로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조금씩 독극물을 탓을 것이라는 말도 많았다. 이처럼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묘사한 책이 바로 노서아 가비이다.
역관인 아버지를 통해서 러시아어, 청나라어를 배웠던 여주인공 따냐는 아버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게 되자 관노로 몰락할 것이란 생각에 조선을 떠나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솜씨로 가짜 그림을 그려 팔고, 사기단에 들어가 유럽의 어리숙한 귀족들에게 숲을 팔며 살아간다.
그러다 만난 조선인 이반이라는 남자와 함께 각자의 사기단에서 나와 무리를 만들게 되고, 마침 러시아 황제의 즉위식에 온 조선인들을 알게 되어 결국엔 대한제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먼저 와 있던 이반은 러시아 러시아 베베르 공사와 은밀하게 결탁하여 온갖 세력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베베르는 고종을 감시할 목적으로 따냐에게 고종 황제의 바리스타가 될 것을 제의한다.
노서아 가비는 가는 정도, 날씨, 온도, 물의 양, 설탕의 양 등 다양한 조건들이 미묘한 차이에 따라 그 맛도 상당히 달라지는 것을 그동안 감각적으로 익힌 따냐는 그동안 고종 황제에게 노서아 가비를 대령하던 러시아 베베르 공사의 처형인 독일계 러시아인 손탁과는 차원이 다른 노서아 가비를 맛보게 한다.
당시 일본인들의 만행으로 명성황후가 살해된 이후이기에 고종은 불안한 마음과 황후를 잃은 상실감을 쓰디쓴 노서아 가비로 달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설탕하나 넣지 않는 노서아 가비를 마심으로써 나라를 호시탐탐 엿보는 온갖 세력들로부터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 고종에게 진정한 노서아 가비의 맛을 전하는 따냐는 고종에게서 연민과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신분을 넘어 둘만의 우정을 쌓게 되고, 그 사이 고종이 환궁할 것을 두려워한 이반과 러시아 공사, 이완용은 그것을 막기 위한 계략을 짜게 된다.
그 중심에 이반이 있었는데 따냐는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을 만날수록 아버지의 죽음에 이반이 깊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사기꾼으로 살아 온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옳지 못한 계략을 세우고 있음을 알게 되고, 이반이 기대하던 마지막 한판을 그녀가 과감히 무산시켜 버린다.
평소 커피를 즐겨 마시던 고종 음독 사건을 이토록 흥미롭게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이 재밌다. 비록 가상의 인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 시작은 역사적 사실에서 나왔기에 더욱 흥미로운 것이 사실이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던 조선 최초 바리스타가 등장하는 소설이면서도 추리와 반전, 로맨스가 나오는 재밌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