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벨탑
박태엽 지음 / 북캐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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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간의 기업 합병이 더 이상의 낯설지 않은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소설은 그동안 다루어지지 않았던 은행인수, 합병, 기업부도 등에 이르기까지 금융기업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실제 20여년 간 금융계에서 종사한 저자가 심혈을 기울인 티가 난다. 물론 저자의 재직 시절과 지금의 금융계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 기본적인 생리는 있으리라 본다.

저자의 현장 경험이나 재직 시절 당시의 축적된 지식으로 이 소설은 상당히 탄탄한 구성과 스토리를 보여준다.

남북전쟁 직후의 할아버지 시대, 학생운동 시절의 아버지 시대, 그리고 현대의 경제 상황에서의 아들들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등장인물들간의 거미줄 같은 얽힘이 존재한다.

 

아버지가 빨갱이였다는 이유로 잡혀서 죽임을 당하고 연좌제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의도한 대로 풀려가지 않자, 학생운동시절 그 중심에 있던 고향 친구 성도훈을 경찰에 넘기는 조건으로 연좌제를 푼 강필수.

강필수의 농간으로 사랑하는 여인 정요숙과 헤어지고, 경찰에 잡혀 고문을 당한 뒤 강제로 군대에 가서 결국 성불구가 된 성도훈.

강필수가 짝사랑 했고, 성도훈과 사랑하는 사이였고 결혼하고 싶었던 정요숙.

그리고 연좌제를 계기로 강필수와 운명적 거래를 시작한 백성태.

백성태의 의도된 침묵은 거짓말보다 더한 파국의 결과를 낳고, 자가증식하는 의심으로 결국 모든 사람들의 경악과 충격, 아픔 속으로 몰아 넣는 강필수다.

 

자신의 아들임에도 최소한의 확인 조차 해보지 않고, 그저 백성태의 말만 믿은 결과는 처참했다.

강필수 그의 말처럼 그의 인생은 증오의 삶이였다.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주홍글씨로 그는 연좌제에 묶어 제대로된 삶을 살지 못했고, 아버지의 유언이 되어 버린 "아부지는 이렇게 살다 가지만 넌 절대 사람들한테 무시 받아서는 안 돼. 알것냐." 이 한마디는 어쩌면 강필수의 인생은 자신들의 삶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세상에 대한 증오를 싹 틔웠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증오에 진실이 감춰지고, 강필수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성도훈의 파멸은 결국 자신의 파멸이 되는 형국이다. 평생을 성도훈에 대한 증오로 살아온 강필수는 자신의 큰아들인 민철이 성도훈의 자식임을 믿으면서 그 증오의 싹을 견고히 지켜냈다.

"그 증오가 애비를 지탱해 왔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 애빈 민철이는 반드시 성도훈의 자식이어야 했다. 반드시...."

 

단 한번의 의심이 결국은 자신의 파멸로 이끈 것이다.

그가 큰아들 민철에게 밝힌 진실이라는 것이 결국엔 자신의 의심이라는, 증오의 결과라는 것을 그는 아마도 몰랐던 것이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문제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 주위에서 서로가 믿음을 상실할 때 새겨지는 배반의 상처는 얼마나 큰가. 인생에서 서로의 믿지 못함은 결국..."(p.14) 누군가의 파멸과 모두의 불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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