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잔혹극

활자 잔혹극 ㅣ 복간할 결심 1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6월

'유니스 파치먼이 커버데일 일가를 살해한 까닭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이다.(p.7)'

루스 렌들의 『활자잔혹극』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마션』만큼이나 임팩트가 있는 소설의 첫 문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문장은 모호하다. 유니스 파치먼의 살해 동기인 문맹이 자신인지, 아니면 커버데일 일가인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문맹은 유니스 파치먼이라는 것을.

자신이 문맹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싶으면서 그렇다면 유니스 파치먼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문맹이란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것일까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의 향상으로 그 어느 나라보다 대학진학율이 높은 나라이다. 그만큼 문맹인 경우도 흔치 않을텐데 그럼에도 여전히 배움의 시기를 놓친 분들이 있고 그런 분들을 위한 학교가 있는 걸 알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면 상당히 답답한 마음이 있을테고 그 이상으로 누군가가 알까봐 부끄럽지 않을까...

작품 속 유니스 역시 문맹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의 사정은 몇몇만 알 뿐 대부분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간다. 그런 그녀가 왜 굳이 커버데일 가족의 입주 가정부로 들어갔을까? 자신의 문맹을 감추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입주 가정부를 택한다. 혼자 살면 문맹인으로서 쉽지 않은 일들-우리가 보통 고지서를 받거나 관광서에 가서 서류를 발급받거나 아니면 각종 신청서 작성과 같은 정말 일상적인 생활 속 글을 읽고 써야 하는 상황-을 입주 가정부가 되면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일견 맞는 말인것도 같다. 

하지만 세상은 늘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다. 유니스는 입주 가정부로 들어갈 집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그녀가 일하게 된 커버데일 가족들은 독서를 유독 많이 하고 나아가 학력에 대한 특권 의식까지 있는 사람들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유니스가 가정부로서 일을 상당히 잘하는 모습에서 감탄하며 그들은 유니스에 대해 호감을 보냈을 것인데 점차 그녀가 문맹이기 때문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모습에서 커버데일 가족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고 그들의 평화롭던 관계는 곧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과거 살인과 공갈 등의 범죄행위와도 관련있고 게다가 성향적으로도 사이코패스로 짐작되는 그녀의 문맹인으로서의 수치심을 커버데일 일가는 건드려 버린 것이다. 

이 작품에선 문맹으로 대표된다. 이 경우 보통은 당사자가 글을 배우는게 가장 좋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미숙한 사람, 문외한인 사람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주거나 아니면 굴욕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더욱이 요즘 문제가 되는 혐오적인 표현이나 차별이 내포된 언행을 보인다면, 특히나 그것이 커다란 컴플렉스이면서 다소 문제적 성향을 가진 인물에게 가해진다면 그 여파는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파격적인 첫 문장 이후 펼쳐지는, 살인을 하기까지의 여정이나 이후 그녀의 범죄가 어떤 식으로 밝혀지는가에 대한 부분이 오히려 이 작품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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