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의 형태
홍정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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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없다. 생각과 행동은 다르고 후자에는 책임이 따른다. 범죄이니 말이다. 그런데 홍정기 작가의 신작 『살의의 형태』에서는 여섯 가지의 살의가 실제로 발현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연작소설이기도 한 작품은 여섯 편의 기묘한 살인을 수사하는 동남경찰서의 오영섭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확실히 베테랑 수사관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실제 형사분들이 출연해서 자신들이 해결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볼때가 있는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라면 정말 형사의 촉은 다르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수사를 하시는구나, 대단하다 싶었는데 주인공도 그렇다. 

「무구한 살의」는 우연히 들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주한 아이로부터 섬뜩한 말을 듣고 모습을 목격한 이후 동네에서 발생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선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순간 그 아이의 관계성을 깨닫는 순간을 그리고 있고 「합리적 살의」는 취준생시절 만난 결혼까지 한 아내의 달라지는 모습에 조금씩 살의를 느끼게 된 남편이 우연한 기회에 TV에서 합리적 의심으로 무죄를 받는 것을 발견한 이후 아내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살의」는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며 인플루언서가 된 은기라는 40대의 남자가 이제는 창작을 해보고픈 마음으로 글을 쓰기 위해 애쓰던 중발견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책 한 권을 읽은 후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졸지에 살인범으로 몰리게 되면서 오컬트 마니아이자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작가로도 데뷔한 친구에게 연락을 하게 되는데 현실적 소재와 절묘한 타이밍이 만들어낸 이야기라 흥미롭다. 게다가 은기나 친구 충호가 어떤 면에서는 이 글을 쓴 작가님의 분신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백색 살의」는 오영섭이 사는 아파트의 다른 동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그곳이 완벽한 밀실 상태였고 기묘한 자세로 죽은 한 여인이 발견되면서 화재 사건이 단순 사고인지 아니면 살인을 숨기기 위한 방화인지를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오영섭 형사의 이야기를 그리는데 정말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내 범인을 찾는 베테랑 형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영광의 살의」는 추리소설 작가 지망생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한 사람의 피해자를 둘러싼 2명의 살인자 사이에서 뜻밖의 범인과 진실이 드러나는 이야기인데 사실은 작가 지망생의 글을 표절해 먼저 발표해버리는 유명 작가 내지는 그런 사례를 고발하면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잘 이용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작품인 「시기의 살의」는 한 여성의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수사가 난항인 가운데 우연히 아내를 대신해 나간 중고거래를 통해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은 오영섭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개인적으로 반전으로 따지자면 「무구한 살의」과 함께 돋보이는 작품이며 과연 이 작품에서 진정한 살의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오영섭 형사가 찾는 그 범인이 아닌 생각지 못한 바로 그 인물이 아닐까 싶다. 

누구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울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사적 복수를 꿈꾸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약속이며 상식있는 사람의 기본 자세이다. 그런데도 그 살의가 얼마나 지나치면 사회의 약속, 법, 상식을 뛰어넘어 실행에 옮기게 될까? 

문득 그 살의를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행에 옮긴 사람들은 후회할까 아니면 자신의 행동으로 상대가 죽은 것(또는 줄을 뻔한 것)에 만족하는 마음이 더 클까 궁금증이 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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