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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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녀의 신작이 출시되면 챙겨보고 싶어지는, 그리고 결국 읽어보게 되는 한 사람인데 이번에 읽은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은 상당히 독특하다.

 

분명 도서의 장르는 에세이인데... 내용을 보면 판타지한 느낌의 이야기들이 많아서인지 이거 혹시 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가 그동안 여러 곳들(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작품들 중에서도 '읽기와 쓰기'라는 관점에서 바라 본 이야기들을 주로 담아내고 있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그런 장르의 이야기도 있고 내가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소설도 분명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에세이와 소설이 혼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

 

'쓰기', '읽기', '그 주변'이라는 세 가지 챕터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가장 먼저 나오는 「무제」와 「비밀」이였다. 한 여성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의사가 상당히 심각하다. 그런데 하늘 말이 몸에 스노우보드가 있단다. 순간 이게 뭐지 싶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 스키장에서 타는 것과 이름이 같은 뭔가 이물질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다. 진짜 스노우보드다. 그런데 몸에 있는건 그뿐만이 아니다. 100페이지가 넘는 차트에는 온갖 것들이 걸려있다.

 

구체적인 물건도 있고 추상적인 단어나 감성을 자아내는 추억 같은 것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가만히 읽어보면 작가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온갖 것들이 다 글쓰기의 소재가 되는구나 싶은, 많고 다양한 경험들이 하나의 글쓰기 자산이 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면서 이걸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싶어 흥미로운 첫 포문이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나오는 「비밀」은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데 온갖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보관하는 이야기로 어느 날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진원지로 가보니 빨간 종이학을 붙이 상자가 마치 끓는 물이 담긴 냄미의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같은 분위기였고 결국 몇 번의 들썩거림 끝에 뚜껑이 열리는데 이곳에는 그동안 쓰다 남은 온갖 지우개가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연필을 쓸때도 몽당연필이라고 해서 아무리 다 쓰려고 해봐도 끝까지 쓰진 못했던것 같은데 이는 지우개도 마찬가지. 작가는 바로 이런 지우개의 특성이나 여러 지우개에 얽힌 추억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이 한밤 중이라고 해도 좋을 시각에 열어 준 방문과 현관을 넘어 총총이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실제로 있었을지도... 하는 재미난 상상을 하게 만들고 동시에 그 많은 지우개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싶어지는 흥미로운 글이였다.

 

이외에도 자신이 처음 잡지에 기고를 하게 된 사연이나 상을 받았던 이야기, 좋아하는 빵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발견하고 서점에서 기뻐하는 이야기, 기묘한 세 여자의 더욱 기묘한 연중 행사 같은 모임 이야기, 비오는 날 평소 자주 찾던 메밀국숫집에서의 기담도 들려준다.

 

픽션과 논픽션이 적절히 섞여 있어서 에세이라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단편소설모음집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였는데 한 권에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실려 있으나 각각이 다 재미있고 때로는 기묘하고 또 작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기회인것 같아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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