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방안에 있는
옷장은 밤에 보면 두렵기도 한 존재일 것이다. 커다란 문 뒤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게다가 괴물이 숨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는 다른 사람들에겐 별거 아니라 할지라도 당사자에겐 그야말로 밤이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디즈니의 영화 <몬스터 주식회사>를 봐도 벽장 등에서 항상 자신이 무서워하는 상상 속
괴물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소설『소포』의 주인공인
엠마에게도 그런 공간, 그런 존재가 있다. 바로 자신의 방 옷장에서 숨어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존재, 아르투어.
그저 소녀의 상상 속 존재인지, 아니면 정말 괴한인지 알 수 없는 그 공포는 엠마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평생의 공포를 안긴다.
이후 정신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엠마는 그 분야의 의사가 되고 학회를 위해 베를린에 온다. 그리고
연구 발표 후 학회에서 제공한 호텔 룸으로 와서 샤워를 하려던 때에 수중기 때문에 거울에 나타난 글자를 보게
되는데...
도망쳐.
당장!
이 두 문장은 그녀로 하여금 어릴 적 아르투어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겨우 진정한 끝에
남편이자 프로파일러인 필리프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잠이 들었던 찰나 호텔 프런트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게 된다.
이미 자신은 호텔에 묵고 있는데 투숙을 하지 않을거라면 그 방을 다른 손님에게 내줘도 되냐고 묻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이 체크인해 자고 있던 1904호는 호텔에서 존재하지 않는 방이라고 말하고 그 순간 엠마는 전화기를
놓친다. 그리고 자신이 곁에 낯선 이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의식을 잃어가는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무려 6개월이 지난 즈음 엠마는 조금씩, 그러나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우편배달부로부터 옆집 소포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소포는 그녀를 다시 그 공포의 시간으로 몰아넣게
된다.
의식을 잃어가는 가운데 끔찍한 일을 겪은 엠마. 연쇄살인범은 그녀를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렸다. 그로
인해 붙은 '이발사'라는 별명. 그로부터 유일하게 살아남은 피해자이면서 생존자인 엠마는 현실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프로파일러인 남편조차. 그녀의 편집증 증상에 더 주목하니
이제는 그녀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자신이 겪은 일은 진짜일까?
이야기는 연쇄살인범으로부터 끔찍한 일을 겪었던 주인공이 다시금 되살아나는 공포 속에서 엠마는 마치
스스로도 허언증과 편집증 환자가 된게 아닐까 싶은 혼란을 겪고 있고 그와 동시에 그녀 자신이 하는 말들과 그녀가 겪었던 일들이 진짜라는 것을
믿어주지 않는 안타까움에 두 배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신이 겪은 일이 진짜인가, 아니면 그저 그녀의 어릴적 공포가 불러낸 허구이고 환상일까... 너무나
무서운 그 상황이 그 어떤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존재의 등장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는, 그러면서 점차 밝혀져가는 진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