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네거트의 작품은 곰곰이 생각해봐도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익숙한 작가도 아니거니와 단편집 치고도 상당히 많은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롯이 작품 그 자체에 관심이 커서 이 책을
읽게 된 경우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무려 25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으로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본다면 얼핏 표제작만을 다룬 장편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책은 두껍다. 그러나 작품 하나하나의 길이 비교적 짧고 무엇보다도 스토리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워서 술술 읽히는 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게다가 미국의 가장 위대한 풍자 작가라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니였나 보다. 25편의 모든 작품이 다
풍자하고 있다고는 할 순 없지만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고 작가인 커트 보니것 스스로가 독일계 미국이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단편 여러 곳에서도
간접적으로나 담아내기도 한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징집되어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서 갇히게 되는데 이때 폭격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을 자신의 장편소설인 『제5도살장』에 담아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인생이 소설 같은 작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생업을 위해 학위를 포기하고 여러 직업을 가지는데 이것 또한 그의 작품에 녹아들어 있을거란
생각도 해본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단편 중「영원으로의 긴 산책」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커트 보니것이 자신의 부인과의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기도 한데 마치 영화 같은 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오랜 시간 이웃으로 살았던 뉴트는 군대에서 친구 캐서린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찾아 온다. 그가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딱 일주일 남았던 시기다. 뉴트는 캐서린에게 낯책을 제안하고 캐서린은 반신반의하며 그를
따라나선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뉴트로부터 사랑을 고백받게 되는데...
어찌보면 그녀와의 결혼을 일주일 앞둔 남자에겐 비극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배우자가 자신과
사랑없는 결혼을 한 것 보다는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둘의 마지막 장면은 진짜 영화처럼 감동스럽긴 하다.
이외에도 가장 먼저 나오는 「내가 사는 곳」은 백과사전 영업사원이 메사추세츠주의 케이프코드에 위치한
반스터블 마을에 있는 스터지스 도서관에 영업을 하러 갔다가 경험하는 일로 그곳이 명성과는 달리 정말 어찌보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풍경을 지녔음을 묘사하는 이야기이고 「해리슨 버저론」은 2081년을 배경으로 모든 사람이 평등해졌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 평등이라는 것이 뛰어난 능력도 하향평준화, 뛰어난 외모도 하향평준화시키고 있음을 말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핸디캡 부여 사령부'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뛰어나면, 그러니깐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나면 그게 외모든, 지적 능력이든 핸디캡을 부여해 아름다운 외모는 못나게 변장시키고 뛰어난 지적능력은 몸에 마치 족쇄를 채우듯 핸디캡을
부여해서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또 머릿속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이 형별을 받고 감옥으로 잡혀가게 된 조지와 헤이즐 부부의 아들 해리슨 버저론을 통해서
또다른 의미의 평등이 가져온 인류 통제를 풍자하고 있다.
「아담」이라는 작품은 한밤 중 시카고 병원의 배경으로 아내의 출산을 앞둔 대기실을 무대로 한다.
딸만 낳은 남자,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아이의 출산이나 그 첫 아이를 잃고 난 뒤 이 아이만큼은 건강하게 키워내고픈 남자를 등장시킨다.
특히 두 번째 남자 하인츠의 경우에는 독일에서 나치에게 모든 가족이 끌려 간뒤 유일하게 혼자 살아
남고 그의 아내 애브천 역시도 그렇게 만난 사람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독일의 난민 캠프에서 첫 아이를 낳지만 그 아이를 결국 죽게 되고
지금 두 번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사히 아들을 낳은 하인츠의 감격스러운 모습, 그리고 아내 애브천 역시 그러한 마음임을 보여주는 대목은
안타까우면서도 그들 가족에게 행복을 빌어주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표제작이기도 한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은 지구의 인구가 무려 170억 명이 된
시기에 세계 정부가 인구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도입한 두 가지 방법 중 윤리적 자살의 장려와 윤리적 산아제한의 강제적 실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살 선테의 도우미를 통해 스스로의 목숨을 마무리하도록 도와주는 정책과 약물을 투입해 남녀의 성욕을
제어함으로써 산아제한을 하는 정책을 동시에 실시한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결국 이런 두 정책에 반기를 든 소위 저항자인 시인 빌리의 등장과 그가
보여주는 행동은 사실 이야기 속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도 큰 반역이나 다름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윤리로 따져도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인지 빌리가 지속으로 저항자를 만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작은 약병에 적힌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책을 통해서 직접 만나보면 좋을것 같다.
한편으로 각 이야기의 끝에는 작품이 쓰여진 연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런 상상력의 산물들이 그토록 오래
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