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로 보면 40대 초반으로 보이나 실상은 4백여 년 전인 1581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톰 해저드. 톰 해저드라는 이름 역시 현재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위장하는 가짜 이름이다.
한 의사가 이름 붙인 '애너제리아'. 톰의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이다. 수백 년을 살아왔다고
하면 뱀파이어인가 싶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는 죽었다 살아난 것도 아니고 태어난 이후로 계속 살아있는 존재이며 아주 느리게나마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비록 그 늙음의 속도가 보통 사람들의 15배쯤 느리다는 것이 다를 뿐.
정확히는 439살인 그는 지금 다시 그녀의 유일한 사랑이기도 한 로즈와 함께 살았던 런던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가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의 순간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는 현재의 그가 겪는 이야기만큼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의 이야기를 읽는 묘미를 함께 선사한다.
무려 엘리자베스 시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는 그는 사랑하는 로즈를
역병으로 잃고도 죽을 수가 없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이 존재했고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그 딸 역시도 자신처럼 애너제리아였기
때문이다.
열 세살 즈음 늙지 않는 그를 이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죽기 전에도,
로즈가 죽기 직전 그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조로증에 대해 연구하는 한 의사를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믿지 않던 의사가
시간이 흘러 다시 톰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찾아가자 그때서야 믿어주고 드디어 자신의 신체에 얽힌 비밀을 풀어 줄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할 시간도 없이 그 의사가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톰은 알게 된다. 세상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게다가 그들은
마치 비밀 조직처럼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지금 아무리 과학과 의술이 발달해도 사람의 노화를 늦추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신체 비밀이 밝혀진다면 인간에겐 미지의 영역에 대한 비밀도 풀 수 있는 셈이니 조직으로서는 어떻해서든 자신들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사실 처음 이 글을 봤을 땐 블레이크 라이블리 주연의 <아델라인 : 멈춰진 시간 (The
Age of Adaline, 2015)>이 생각나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주변을 떠나가도 자신은 늙지 않고 영원힌
살다시피 해야 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게다가 잠깐은 괜찮아도 톰의 고백처럼 1년의 시간이 지나는 생일과도 같은 특별한 날들이 반복될
때 자신이 늙지 않음을 자신보다 주변이 먼저 알아차리고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과연 행복할까 싶었다.
아델라인 역시도 영화에서 늙지 않는 자신을 연구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나마 늙기는 하나 그래도 마치 뱀파이어처럼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는 톰의 삶을 생각해보게 되면서 그의 사라진 딸은 과연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독자들의 관심을 잡아놓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은 현재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영화로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소설 못지 않게
상당한 볼거리와 재미를 선사할것 같아 이 또한 많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