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독서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존 S. 메이저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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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사람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책 제목 앞에 "서양인의"라는 말이 붙어야 맞을 것 같다.  약 130인의 작가들의 대표적인 저작들과 추가된 100인의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왜 또는 어떻게 하나씩 읽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개정 중보판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영어권에서는 꽤나 유명한 독서입문서같다. 

그러나 서양인의 관점에서 쓴 책이라서 그런지, 주로 서양언어권의 작가들을 다루고 있고, 특히 동양권의 작가들은 공자, 나관중, 또는 오승은 같은 고전이나 루쉰, 미시마 유키오, 혹은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정도만 다루고 있다.  또한 한국의 작가들은 하나도 소개되지 못했음이 못내 아쉽다.  우리에게도 박경리나 조정래같은 위대한 문학가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영문으로 번역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단권작품을 비교적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서양권의 독자들에게는 5권에서 길게는 20권 이상 이어지는 작품들의 구성이 매우 생소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하나 매우 고무적이었던 것은 130인의 작가들과 책이 많은 부분 그리 생소하지 않고 내가 보유한 책도 상당하다는 점인데, 나의 지적 허영이랄까, 뭐 그런 부분에서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또한 고전으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일부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나 경로를 알려준 부분도 있기 때문에 장서가/독서가라면 한번 정도는 읽어볼 만한, 아니 소장하여 reference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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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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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뭔가 있어 보여서 구입한 이 책은 저자가 매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출판사의 선전문구를 제외하고 보면 너무나도 미국 중심적으로만 미래를 예측했다고 생각되기에 객관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느낀 책이다.  시간 나는 틈틈이 읽다가 얼마전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약 1시간 정도에 모두 끝낼 수 있었다. 

저자의 기본적인 분석의 근간은 미국의 역사라는 것이 5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데, 미국은 전 지구에 여향을 미치는 가장 강대한 나라이며, 미국 또한 본국의 안정을 위하여 전 지역을 미국 안정화에 가장 최적한 상태로 묶어두기 위하여 활동하기 때문에 이 50년 주기는 또한 세계 곳곳의 정세와 맞물려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2010년부터 약 100년 후의 세계정세를 예측하고 있는데, 앞서 말했듯 다분히 억지를 부리는 듯 하다.  물론 그건 책을 읽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보이는 저자의 관점은 어느 부분 물론 나와도 일하는데 예를 들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새로운 super-power의 대두에 대한 경계라는 부분이다.  대중국무역이 한창 시작되던, 중국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또는 시장으로 온 동네가 시끄럽던 시절부터 내가 누누히 말해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관점의 풀이나 전개 및 예측은 나와는 많이 다르다고 하겠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앞으로 더 심하게 분열될 것이고, 이권을 위한 일본의 중국개입과 진출이 이에 맞춰 심화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태평양 및 동아시아에서의 의도와 충돌하여 종국에는 터키 - 다른 지정학적인 이유로 친미국가에서 반미로 변한다고 함 - 등과 손잡고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을 특히 매우 심함 사건분석의 굴절로 보았는데, 저자가 그의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 간과하는 사실 또는 현상들은: 

1. 일본은 매우 친미적이고, 대중국정책 및 그들의 아시아적 이권을 위해 미국이 원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어할 수도 있고, 늘어나는 군사비용경감을 위해서 특히 미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의 정치외교에서 더욱 긴밀하게 손잡을 수도 있다는 점. 

2. 중국이 이 상태로 분열되지 않고, 좀더 강한 결속을, 특히 최소한 한족이 장악하고 있는, 청나라 이전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중국의 결속을 꾀하여 경제위기에서 정치적인 위기로 이어지는 분열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다는 점. 

3. 전 세계의 자본이 통합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모든 전쟁, 정치, 외교, 및 관련 정책수립의 주축이 되는 대형의 전 지구적인 자본세력의 위기 억제노력 혹은 이익을 위하 단기간의 쟁의심화노력. 

등이라고 생각한다.  즉 세계정세의 전개는 매우 복잡하고 불특정하기 때문에 저자의 예측은 여러 가지의 대전재를 바탕으로 이루진 것이며 여기서 축이 되는 몇 가지의 가설을 누락시키기만 해도 저자의 예측은 매우 많이 빗나갈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견해로 볼때, 저자의 이러한 "오류" 내지는 "억측"은 많은 부분 21세기의 세계를 195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한 냉전, 즉 대립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자의 말대로면 세계 각국은 상생보다는 극하는 위치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반목과 화친을 반복할 것이고, 이에 따라 주기적으로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 또는 반대의 경우로써, 그리고 이를 미국의 이해에 따라 해석하여 세계 구조가 재편을 반복할 것인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세계사가 흘러갈 가능성은 훨씬 더 높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오류와 억측 및 상당히 잘못된 세계 각국의 분석은 책 곳곳에서 나오는데, 예를 들면 일본에 대하여 "일본은 유능한 지배 엘리트와 고도로 훈련돼 엘리트를 따를 준비를 갖춘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라는 부분이다.  이 분석은 매우 심하게 일반화된 일본에 대한 저자의 혹은 서구적인 관점에서의 분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정치체계는, 최소한 현대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underdevelop되어있다.  이 나라의 의원직은 막부시대와 비슷하게 반 세습제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를 다시 탄탄하지만 매우 경직된 섬나라 특유의 관료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모르겠다.  많은 선진국들처럼 일본에도 유능한 정치인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다수의 무능한 인물들이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일본국민은 "고도로 훈련돼 엘리트를 따를 준비를 갖춘 집단"이 아닌, 국민성에 의거하여 개인보다는 다수를 따르는 경향을 보일 뿐이다. 

물론 저자는 많은 자료의 검토와 분석 및 상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느낌으로는 어떠한 분석적인 결론을 이미 정해놓은 상태에서 저자의 관점과 입맛에 맞는 자료들을 그 의도에 맞게 분석하여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이론적인 증빙을 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같은 사건사실도 의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증빙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의 특정 의도에 따른 자료의 취사선택 및 분석에 따라 나온 결과물 같고, 이는 이 책의 순수성을 많이 떨어뜨린다.   

통계학적으로 2050년까지는 살아있을 확률이 높으니만큼, 저자의 말이 과연 맞는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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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레빗 2022-11-1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2022년에 이 책은 엄청난 적중률을 보여주고 있네요;;;
 
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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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다시 읽고 나름 몇 날간의 고민 끝에 시작한 후기 남기기의 첫 대상이 되었던 이 책은 이 습관이 잘 자리잡아서 (1) 글쓰기 연습이 되고, (2) 나중에 경영할 내 회사의 webstie에 올라가게 되고, (3) 언젠가는 책을 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거창한 바램과 함께 리뷰한 책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꼬박 매년 평균 200-240권을 읽어왔으니 요즘 "책 좀 읽는다"는 분들의 연평균은 너끈히 초과한 셈이다.  하지만 글로 후기를 남긴 적은 어릴 때 독후감을 쓴 이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초보자이기에 매우 어렵게 느낀다.  특히 유명한 리뷰어들의 글과 비교하면 매우 졸렬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어서 리뷰를 남기려는 시도 자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든다.   

이 책은 책 수집과 읽는 행위 모두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매우 반가운 책이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간간히 곁들여진 사진들이 참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인데, 구입한 당일에 모두 읽어버렸다.  내용이 매우 익숙하여 혹 일전에 이미 사서 읽은 책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드는데,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읽은 내용을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을 또 산 것이라면, 나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는 누나에게 넘기면 된다는...) 

책을 읽고 수집하는 행위는 이 시대 이 지역에 사는 나에게는 매우 외로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 주변에는 한 명도 이 취미를 나눌 사람이 없다.  상당히 제한된 것이 나의 인맥임을 고려한다해도 한국과 미국을 통털어 한 명을 꼽을 수 없다니 나의 친구사귐이 매우 특이하거나 아니면 나와는 다른 사람에 편중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했던 나는 외롭다. 

이 외로움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나은 서점에서 인문학/서지학으로 분류되는, 책에 관한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를 시작하게 한 어느 한 권의 책과 한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책쟁이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의 느낌은 "아! 더 이상 외롭지 않구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때나 지금이나 온라인에는 고수들이 즐비하고 많은 분들이 등단까지 한 상태이지만,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멀리 있으니 꾸준히 업데이트되는 이 분들의 블로그를 보는데서 그쳐왔기 때문에 이 전까지는 정말 많은 외로움을 느껴왔었다. 

이 책에는 사회적인 명사들과 문학계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독서에 대한 경험담과 자세, 또는 철학이 잔잔하고 쉬운 말투로 서술되어 있어 막힘없이 읽히게 된다.  하지만 한 글자씩 가슴에 담아서 읽으려 하면 생각보다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모두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quote한 글들 중 읽을 당시 한국의 2MB짜리 정치와 요즘의 5살짜리 훈이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매우 공감한 글을 밑줄 그어놓았다.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낼 수 있다" from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시민들이 자유롭게 말하고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민주주의도 불가능할 것이며, 사회와 문화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 수 년간 한국에는 민주주의도, 사회와 문화도 퇴행하고 있는 것 같다.  "특정 사회인사"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미성년자 강간보다 무거운 형량으로 구형되는 시대이니만큼 재미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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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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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 범죄의 모든 것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정점의 남자 모리아티 교수.  셜록 홈즈의 천적인 이 사람의 엄청난 조직력의 묘사를 보고 잠시 떠오른 생각.  우리 나라에도 혹은 이 세계에도 이런 사람과 조직이 있고 그들을 쫓는 명탐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잊을만하면 출판되는 음모론, 세계정부, 유태인 집단의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어떤 범죄를 저질러야 할때...그 얘기는 교수한테 들어가고, 사건은 조직되고 실행된다네.  행동 대원은 잡힐 수도 있어.  그런 경우에 보석금이나 변호사 비용이 조달되지.  하지만 배후에서 조종하는 핵심 세력은 절대로 잡히지 않아.  의심받는 일도 없지.  왓슨, 내가 추리해 낸 조직은 이와 같았네.  그리고 나는 그것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서 괴멸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네." 

위의 글은 전집을 다 완독하기 전에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부분을 읽다가 문득 떠올라서 써놓고 밑줄 그은 글이다.  참고로 코난 도일은 원래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약 7-8년간 홈즈를 "죽은" 상태로 내버려 두었었다.  자기가 창조한 인물을 작가가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적당한 기회를 보아 "죽여"버리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에거서 크리스티도 그녀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르가 "죽는" 에피소드를 써서 "보내"버리는 것을 보면 아주 없는 일은 아닌 듯 하다. 

내가 처음으로 셜록 홈즈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세트로 구입했던 "계림사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이라고 기억되는, 당시에 책 좀 사던 집에서 흔히 하단 "몽땅" 월부구매를 통해서 가져온 300여권의 전집 중 4권으로 구성된 장편 명탐정 셜록 홈즈와 50여권으로 기억되는 단편 모음집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제대로 다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니 우습다.  그리고 이 전집을 구입하게 된 동기가 - 책을 읽히려는 부모님의 마음 외에도 - 당시 신문광고에 나왔던 부록으로 준다는 책장 사진이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사진의 고풍스럽고 멋진 책장이 아닌 4단짜리 조립직, 그것도 뼈대와 선반으로 이루어진 조악한 제품이 부록읜 현실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같으면 허위광고로 제보라도 했을 일이지만, 80년대는 법과 경찰은 멀수록 좋던 시절이었기에 아마 찍소리 못하고 받은 것 같다.   

부끄럽게도 당시의 내 독서는 역사와 공상과학에 편중되어 있던 탓에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소설 자체는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급했던 나는 사건이 천천히 전개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뒷 페이지로 책장을 넘기곤 하면서 대충 스토리의 결말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는 지금 대부분의 스토리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어울런 더울렁 다 읽긴 읽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후에도 가끔 홈즈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니, 기억나는 스토리는 어릴 때 읽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 사이트의 글이나 역자의 말처럼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엉성할 수 밖에 없는 추리단서들과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내 눈앞세 펼쳐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음울한 안개도시 런던과 Bruce Thompson교수가 대영제국의 몰락의 큰 원인들 중 하나로 꼽는 이 시대 영국 gentlemen의 지적인 - 하지만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 활동과 생활이 나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렇지 때문에 이 시대의 런던은 나에게는 언제나 하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상상해 보라!  뿌연 연기와 안개가 365일 지배하는 런던.  이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  안개 속으로 사라지며 뒷모습만 남기는 듯한 잔인하고, 때로는 매우 지능적인 범죄자들, 이들을 쫓는 명탐정,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매우 무능한 경찰들 (at least they had some sense of honor unlike now).  베이커가에 은신하며 친절한 허드슨 부인의 하숙집에서 절친이 되어 버린 왓슨 박사와 함께 악을 쫓는 명탐정.  멋지지 않은가? 

추리의 단서가 되는 fact의 대부분은 reader에게 알려주지 않기에 책을 읽으면서 홈즈와 함께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는 요즘의 발전된 형태의 추리소설에 비하면 덜하다.  하지만, 그리도 홈즈 본인의 평과 같이 에드가 엘런 포우의 명탐정 오귀스트 뒤팽의 초현실주의적인 추리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다.  또한 매우 음울한 동 시대 일본의 추리소설과 비교하면 훨씬 유쾌하기까지 하다. 

밤을 사랑하는 탐미주의자인 뒤팽처럼 홈즈에게도 많은 괴벽이 있는데, 상습적인 코카인 흡입과 지저분함이지만, 이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큰 하자가 되지 않은 듯 하다.  홈즈의 하숙방처럼 너저분한 것은 싫지만, 그래도 널찍한 방에 서재를 꾸며놓고, 따뜻한 벽난로에 장작을 태우면서 위스키와 시거를 벗삼아 추운 겨울 밤 독서삼매에 빠져보고 싶다.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이 책은 총 9권으로 이루어진 반 양장본으로 original삽화가 곁들여져 있어 특히 소장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추리소설에 약간의 흥미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꼭 사서 소장할 만 하다. 

가끔씩 눈에 띄는 번역오류는 조금 아쉽지만 매우 감사하게 읽은 책이다.  괴도루팡과 에거서 크리스티도 전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곧 구해서 읽어봐야 하겠다 (미국에서 구입하는 한국 책 값은 거의 2배 가까이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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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탄 박종화 삼국지 세트 - 전10권
나관중 지음, 박종화 옮김 / 달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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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번역 또는 평역된 수많은 삼국지들 중 고전으로 꼽히는 월탄 박종화 선생의 삼국지 읽기를 마쳤다 (06/23/2010당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예전에 나온 6권짜리 한질로 구성된 것으로 서유기, 금병매, 수호지와 함께 중국고전문학전집으로 엮어져 나온 판이었던 듯 하다.  2009년 겨울의 한국 방문 때 청계천 헌책방가에서 구입한 것으로 배편으로 보내서 가져온 것을 6/23/2010에 읽은 것으니, 구입 당시의 마음과 비교할 때 좀 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  이런 것을 보면 역시 나의 독서구매욕구는 상당 부분 "소유욕"이라고 생각되는데 뭐 어쩌라고. 

 현재 나와 있는 신간 (그나마도 절판인듯)하고 비교하면 확실히 글자체가 작다.  내 기억으로는 1992-93년 사이의 IMF전의 호경기 시절에 책의 활자가 전반적으로 커진 것으로 기억한다.  혹자는 활자가 커져서 책을 보기가 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출판사가 권수를 뻥튀기 하여 돈을 더 벌기 위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 전에 나온 단권 책이 지금은 최소한 상/하로 나워서 나오고 있으니 책값은 그간의 종이값/인쇄비 인상과 물가인상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벌써 두 배가 되는 셈이다.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인데다가 중소 출판사들이 대기업에 맞서는 고충을 모르지는 않지만, 역시 이런 것은 정이 좀 떨어지는 일이다. 

내가 가진 삼국지들은 이문열, 이병주, 석천, 그리고 황모작가의 판인데, 이문열이 가장 신간이고, 석천 삼국지가 가장 오래된 판 (세로쓰기)이다.  그런데 석천을 제외한 판들은 모두 묘사에 쓰인 언어가 대동소이한, 말하자면, 나의 세대에 그리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월탄 삼국지의 묘사는 월탄선생이 글을 쓰시던 그 시절의 언어체가 많이 녹아들어 있어 그런지 나에게는 상당히 이채롭다.  (사실 이때의 판본들 중에는 일어판을 그대로 번역하다시피하여 나온 삼국지들도 꽤 있는 듯, 문장이나 문체가 상당히 일본스럽다.  월탄은 이 점에서도 당시의 이런 류와는 매우 차별화될 수 있다.) 

월탄의 묘사는 요즘에 쓰이는 언어체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면 "어흥" (말이 달려들거나 달려가는 장명), "어매 뜨거라" (장수나 군졸들이 기습당할 때 놀라는 장면), "얘" (주연급 장군들이 수하에 명령 내리면서 상대방을 호칭할 때) 등인데, 다른 판들이 무겁고 고어체 같은 말을 쓰는 것에 비교하면 참으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비슷한 느낌의 묘사를 정비석 선생의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 시대에는 이런 유형의 표현이 유행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물론 정비석 선생의 경우는 훨씬 심하지만).  같은 시기에 구입해서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월탄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의 경우도 요즘의 "고풍스럽고 구어체스러운" 역사소설과 많이 다르다. 

삼국지의 내용은 책을 조금 읽었다는 사람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비, 손권, 조조, 관우, 장비, 제갈공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라고 쓰고나니 얼마전 본 강심장에서 연예민 모씨가 "하후돈"을 "하우돈"이라고 쓴 기억이 난다).  그만큼 이 이야기는 조선시대부터 꾸준히 회자되고 사랑받아온 작품인 것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 20대에는 삼국지, 30대에는 정관정요라고 할 만큼, 삼국지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의리와 모계와, 용기, 배신 등 인간사에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이 소설에 나와 있는, 그야말로 역사소설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하겠다. 

 한참 십대 때에는 이문열 삼국지를 여러 번 읽어가면서 관운장을 나의 role model로 삼은 적이 있었다.  어리고 순수했던 때라서 그랬는지, 뜻을 굽히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 그 모습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이문열 판에서 보이는 "평역"을 가장한 약간의, 그러나 반복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 때에는 참 신선하게 보였던 "평역"도 지금에 와서는, 특히 이문열작가의 정치적인 발언과 행보, 그리고 거듭 실망을 안겨주는 후기 창작물들 (변경, 호모엑세쿠탄스)를 겪고 난 지금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정신세뇌적인 부분들만 부각되어 보인다.  나도 사람이니, 나이에 따라 조금씩 변해온 탓이려니 싶다. 

그리고, 한 십여년 삼국지를 다시 읽지 않다가 최근 3-4년간 상기 판본들을 구해서 읽었는데, 솔직히 대부분 이문열판도 못하다고 생각했고, 특히 일어번역을 그대로 들여온 판들에는 매우 실망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월탄 삼국지는 상당히 original하다고 느껴진다.  어떤 표현이나 묘사를 보아도 삼국지연의라는 큰 줄기를 바탕으로 월탄만의 고유한 해석과 story-telling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즉 줄거리를 제외한 모든 표현은 감히 월탄만의 그것이라고 생각될 만큼, 내가 보아온 삼국지들 중 최고의 originality를 보여주고 있다.  소장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월탄의 다른 모든 책들도 구해서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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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5-04-13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엔 죄다 품절이었는데 오늘 다시 확인하니 낱권으로는 구매가 가능하게 되었네요. 근데 1권만 품절. ㅠㅠ

transient-guest 2015-04-13 11:35   좋아요 0 | URL
국내 출판시장의 문제에요. 절판/품절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군요. 자주 저를 불안하게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