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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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 범죄의 모든 것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정점의 남자 모리아티 교수.  셜록 홈즈의 천적인 이 사람의 엄청난 조직력의 묘사를 보고 잠시 떠오른 생각.  우리 나라에도 혹은 이 세계에도 이런 사람과 조직이 있고 그들을 쫓는 명탐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잊을만하면 출판되는 음모론, 세계정부, 유태인 집단의 이야기의 배경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어떤 범죄를 저질러야 할때...그 얘기는 교수한테 들어가고, 사건은 조직되고 실행된다네.  행동 대원은 잡힐 수도 있어.  그런 경우에 보석금이나 변호사 비용이 조달되지.  하지만 배후에서 조종하는 핵심 세력은 절대로 잡히지 않아.  의심받는 일도 없지.  왓슨, 내가 추리해 낸 조직은 이와 같았네.  그리고 나는 그것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서 괴멸시키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있네." 

위의 글은 전집을 다 완독하기 전에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부분을 읽다가 문득 떠올라서 써놓고 밑줄 그은 글이다.  참고로 코난 도일은 원래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약 7-8년간 홈즈를 "죽은" 상태로 내버려 두었었다.  자기가 창조한 인물을 작가가 감당하는 것이 버거워 적당한 기회를 보아 "죽여"버리는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지는 모르겠지만, 에거서 크리스티도 그녀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르가 "죽는" 에피소드를 써서 "보내"버리는 것을 보면 아주 없는 일은 아닌 듯 하다. 

내가 처음으로 셜록 홈즈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 때 세트로 구입했던 "계림사 소년소녀 세계명작전집"이라고 기억되는, 당시에 책 좀 사던 집에서 흔히 하단 "몽땅" 월부구매를 통해서 가져온 300여권의 전집 중 4권으로 구성된 장편 명탐정 셜록 홈즈와 50여권으로 기억되는 단편 모음집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제대로 다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생각하니 우습다.  그리고 이 전집을 구입하게 된 동기가 - 책을 읽히려는 부모님의 마음 외에도 - 당시 신문광고에 나왔던 부록으로 준다는 책장 사진이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아쉽게도 사진의 고풍스럽고 멋진 책장이 아닌 4단짜리 조립직, 그것도 뼈대와 선반으로 이루어진 조악한 제품이 부록읜 현실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같으면 허위광고로 제보라도 했을 일이지만, 80년대는 법과 경찰은 멀수록 좋던 시절이었기에 아마 찍소리 못하고 받은 것 같다.   

부끄럽게도 당시의 내 독서는 역사와 공상과학에 편중되어 있던 탓에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소설 자체는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참을성이 없고 성질이 급했던 나는 사건이 천천히 전개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꾸 뒷 페이지로 책장을 넘기곤 하면서 대충 스토리의 결말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읽는 지금 대부분의 스토리가 기억나는 것을 보면 어울런 더울렁 다 읽긴 읽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 후에도 가끔 홈즈를 접할 기회가 있었으니, 기억나는 스토리는 어릴 때 읽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모 사이트의 글이나 역자의 말처럼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엉성할 수 밖에 없는 추리단서들과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참 재미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내 눈앞세 펼쳐지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음울한 안개도시 런던과 Bruce Thompson교수가 대영제국의 몰락의 큰 원인들 중 하나로 꼽는 이 시대 영국 gentlemen의 지적인 - 하지만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 활동과 생활이 나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렇지 때문에 이 시대의 런던은 나에게는 언제나 하나의 이상향으로 남아 있다.  상상해 보라!  뿌연 연기와 안개가 365일 지배하는 런던.  이 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  안개 속으로 사라지며 뒷모습만 남기는 듯한 잔인하고, 때로는 매우 지능적인 범죄자들, 이들을 쫓는 명탐정,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매우 무능한 경찰들 (at least they had some sense of honor unlike now).  베이커가에 은신하며 친절한 허드슨 부인의 하숙집에서 절친이 되어 버린 왓슨 박사와 함께 악을 쫓는 명탐정.  멋지지 않은가? 

추리의 단서가 되는 fact의 대부분은 reader에게 알려주지 않기에 책을 읽으면서 홈즈와 함께 사건을 추리하는 재미는 요즘의 발전된 형태의 추리소설에 비하면 덜하다.  하지만, 그리도 홈즈 본인의 평과 같이 에드가 엘런 포우의 명탐정 오귀스트 뒤팽의 초현실주의적인 추리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다.  또한 매우 음울한 동 시대 일본의 추리소설과 비교하면 훨씬 유쾌하기까지 하다. 

밤을 사랑하는 탐미주의자인 뒤팽처럼 홈즈에게도 많은 괴벽이 있는데, 상습적인 코카인 흡입과 지저분함이지만, 이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큰 하자가 되지 않은 듯 하다.  홈즈의 하숙방처럼 너저분한 것은 싫지만, 그래도 널찍한 방에 서재를 꾸며놓고, 따뜻한 벽난로에 장작을 태우면서 위스키와 시거를 벗삼아 추운 겨울 밤 독서삼매에 빠져보고 싶다. 

황금가지에서 출판된 이 책은 총 9권으로 이루어진 반 양장본으로 original삽화가 곁들여져 있어 특히 소장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추리소설에 약간의 흥미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꼭 사서 소장할 만 하다. 

가끔씩 눈에 띄는 번역오류는 조금 아쉽지만 매우 감사하게 읽은 책이다.  괴도루팡과 에거서 크리스티도 전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곧 구해서 읽어봐야 하겠다 (미국에서 구입하는 한국 책 값은 거의 2배 가까이 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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