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번의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기행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검은 안개'와 '잠복', 그리고 '미스터리의 계보'를 연이어 읽어낼 형편이 된다.  아마 다음번에는 계속 나오고 있는 그의 추리소설들과 자서전까지 구해서 읽어보려고 한다.  물론, 이 와중에도 이번에 구한 로맹 가리와, 김영하, 정이현, 그리고 발자크를 읽어낼 것이다. 

 

그 전의 르포집에서 약간 시식을 한 그대로 '일본의 검은 안개'는 미군정하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을 작가 나름의 자료수집과 분석, 그리고 모티브추적을 통해 추리한 것을 모아 놓은 책이다.  사실, 한국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군정하에서의 일부 사건 - 공산당 소탕을 위한 기획사건 같은, 그리고 하권 마지막에서 다룬 한국전 이야기 등 - 을 제외하고는 크게 관심을 갖기는 어려운 이야기들이라서, 책의 내용 자체에 대한 흥미는 적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군정하에서 군정기관끼리의 주도권 다툼과 암투, 여기에 연결되어 때로는 부려지고, 때로는 이용되며, 때로는 이용하던 일본정부기관의 관계 등이 해방 후부터 미 주둔군과 밀접한 화학관계를 가지고 있어온 한국정부, 그리고 정치인들과 대비되어 한번 정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역시, 그런 일이 한두 가지였겠는가?  내국인을 마구잡이로 납치하던 미군정시절이 우리라고 없었겠는가?   그리고, 한국전의 발발에 대해 - 적어도 남한에서는 북한의 남침이 거의 정설인데 - 그런 다양한 의견들과, 북한남침설에 대비되는 확인된 보도/발언들이 있는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고, 한국전쟁 발발 전의 민중봉기나, 공산당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미군이 출동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행불되었던 것 역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역시 자료를 보려면, 남북구도에서 심하게 control되어온 한국보다 외국의, 제3국의 관점에서 만들어지고, 조합된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이 정확성이 훨씬 높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쓰모토 세이초같은 르포는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글쓰는 이들 중에 이런 사람도 한국에서 나와주었으면 좋겠다.  남발하는 민사소송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주진우기자를 뛰어넘는, 치밀하고 정확한 글빨로 미스테리어스 한 한국의 근현대사 이슈들을 파헤쳐줄 그런 사람 말이다.  이럴때에는 일본의 덕후근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가끔 글을 써보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현실도 그렇고, 재주도 없어서 그냥 그런 생각으로 그치곤 하는데, 그래도 하루키나 세이초같이 비교적 늦게 등단한 글쟁이들을 보면, 살짝 위안이 된다.  이런 저런 습작도 계획해보게 되고 말이다.  계속 읽고 생각하고, 이렇게 조악하게나마 리뷰를 쓰다보면 다른 무엇이 생각날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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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9-19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쓰모토 세이초의 한국전 해석은 I.F.Stone <한국전 비사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와 유사해요.이 책이 일본에서 일찍 번역되어 진보계열 쪽에 큰 영향을 줬거든요.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후반에 번역되었습니다.영어권에서는 아직도 원서를 구입할 수 있을 거에요.

transient-guest 2012-09-20 02:48   좋아요 0 | URL
오! 역시 노이에자이트님! 감사합니다.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 번역되지 못했을것 같네요, 내용상.

노이에자이트 2012-09-20 16:51   좋아요 0 | URL
음...왜 안 믿으실까요...번역되었다고 썼는데...저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에 관한 외국의 주요 좌익 저작물 상당수가 80년대에 번역되었습니다.국내 저자들의 관련저서도 많이 나왔고요.소련해체와 중국과의 수교 이후 이런 책들 낸 출판사들이 모두 문을 닫았죠.

transient-guest 2012-09-21 04:21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제 의도는 80년대 후반에서야 겨우 번역되었을 (즉 공안정국 = 6.25북한남침은 절대진리) 사정을 알겠다는 것이었는데, 가끔 한글이 이상하게 나오나봐요 제가. 혹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양해해주세요.
한국책은 절판/품절이 너무 많아요. 제가 한국나가면 책구매에 조바심까지 내면서 열을 올리는 이유들 중 하나에요.
아참. 말씀대로 The Hidden History of the Korean War은 amazon에 여럿 나오네요. 담에 한꺼번에 주문하려고 보관해두었지요.

노이에자이트 2012-09-21 19:10   좋아요 0 | URL
글로만 대화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나 봅니다.하하하...

그래요...절판은 어쩔 수 없다지만 80년대에 명저들을 번역한 출판사들이 거의 다 사라진 것은 큰 손실이죠.그 당시 명저들 구하려면 어쩔 수 없이 헌책방을 직접 방문해서 뒤지다시피 해야 합니다.

transient-guest 2012-09-22 00:2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죠?ㅎㅎ

그래서인지 헌책방에 가면 꼭 보물섬에 온 것 같을 때가 있어요. 특히 인천의 아벨서점 같이 오래된 그런 곳들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의 헌책방들을 이곳저곳 다니면서 책을 사고, 읽으면서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니고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9-22 21:07   좋아요 0 | URL
광주도 헌책방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대를 이어 하는 곳이 한군데 있죠.몇 년 전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들이 대를 잇고 있는데 그런 곳이 참 드물죠.

transient-guest 2012-09-24 14:27   좋아요 0 | URL
서점이 참 돈이 않되는 business가 되었죠. 예전에는 서점경영하다가 출판사도 내고, 작은 건물도 짓고 그런 분들도 있었는데. 자꾸 없어지니까, 일부러라도 자꾸 가서 책을 사오게 되네요.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하루키의 작품들을 꽤 많이 읽어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해에는 전작을 시도한다고 할만치 많은 수의 하루키 책을 읽어내려간 것이다.  7-8월 잠시 멈칫하고, 9월의 반이 지난 지금에는 또 한 권씩 읽어내고 있다.  일종의 친근감마저 느낄만큼 하루키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전작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같게 되는, 아니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니, 뭐 normal하다고 봐야겠다.  일컨데, 샐러드를 먹으면서, 하루키는 매일 샐러드를 많이 먹는데라거나, 파스타 요리를 생각하면서, 하루키는 혼자서 파스타를 만들어 맥주와 함께 먹곤하지라던가, 심지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를, 하루키를 떠올리면서, 한번 키워볼까 하는 생각까지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의 일에서 그의 행위를, 어떻게 보면 낯설은 한 유명작가의 일상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 작가를 계속 읽다보니, 간혹가다가, 그의 잡문이나 단편속에서 작가의 파편들, 작가의 일부분을 떼어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다고 보이는 케릭터들을 보면, 하루키의 한 부분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매일 수영을 하는 케릭터, 낮에 식사에 맥주를 곁들이는 사람, 남의 wife들과 아주 케주얼한 관계로 자는 사람 (이 경우 확신은 없다), 재즈, 위스키, 언론사, 광고대행업자, bar 주인, etc.에서 하루키가 거쳐온 인생, stage,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케릭터들이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가 관계했던 사람들이 케릭터로 전환되는 것도 하루키 쟝르에서는 흔하기에, 이 역시 유추하게 된다. 

 

유달리 그런 것들을 많이, 그리고 새삼스럽게 느낀 점이 이번의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면, 나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일까?  아니, 나도 다른 평론가들의 전문적인 '론'처럼 무엇인가 거대하고 심오한 하루키ism의 의미를 찾아야만 잘 읽은 것일까????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남은 하나.  허무하다는 느낌.  각 단편의 케릭터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저 허무하다는 것.  공허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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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9-19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증도 안내시고 한 작가의 작품 계속 잘 읽으시네요. 음식도 잘 안물리시고 계속 잘 드실 듯. 며칠째 (순전히 타의로, 억지로 )집에서 곰탕 먹고 있는 야클. -_-;

transient-guest 2012-09-19 11:58   좋아요 0 | URL
원래 끈기하나 빼고 별볼일이 없는 인간인지라..--_-::
제가 자취를 오래 했었는데, 카레같은거 한번 만들면 일주일은 먹었더랬죠. 곰탕으로 라면이라도 끓여드심이 어떠실런지요?ㅋㅋ

탄하 2012-09-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창 하루키에 빠졌을 땐, 아침에 수영 끝내고 맥주 한 잔 하고픈 마음, 음악을 들어도 재즈를 듣고픈 마음이 생기곤 했답니다. 얼마 전 책장정리를 하다보니 아직 읽지 못한 하루키의 <1Q84>가 저를 말끄러미 바라보더군요. 이전의 하루키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기에 1~3권까지 다 갖춰놓고 벼르고 있었건만 아.직.도.
열심히 하루키를 읽으시는 모습을 보고 꾹! 찔리며 돌아갑니다.
(이러다가 트란님께서 저보다 먼저 <1Q84>를 완주하시겠어요.)

transient-guest 2012-09-20 02: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만 그런게 아니죠?ㅋ 아! 그런데 저는, 1Q84는 처음에 나왔을때 다 읽었어용..ㅎㅎ 1984를 연상시키는 - 내용은 안 그랬지만 - 제목에 얼른 집어들고 읽었더랬죠.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 로쟈의 책읽기 2010-2012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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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로쟈님의 책들 중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 된다'만 겨우 구해서 읽었다.  다른 책들은 여러 가지 압박(?) 덕분에 보관함과 장바구니를 사이을 왔다갔다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보관함으로 모셔졌다.  그간 읽었던 그의 독서후기 모음집으로는 세 번째에 해당하는 책이된다.  뭐,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로쟈님의 책답게 나에게 또 숙제를 한가득 내주고 서가에 꽂혔다.  다음에 또 한번 더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번의 책에서는 문학이나 소설 계통보다는 철학이나 다른 'ism'을 다룬 인문서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그 전의 책들에 비해 '정치적'이라고 느껴지는 글이 많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는 가카치세 4년을 살아낸 사람, 그것도 책을 많이 읽고, 책을 사랑하는 지성인이라면, 다시 말해, 로쟈님같은 분이라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든 생각은, 역시 독서를, 양질의 독서를 많이 하고, 성찰하는 사람이라면 가카그네로 represent되는 부조리한 세력에 대해, 그리고 그런 trend에 대한 critical한 의견이 만들어지는구나.  역시 책읽기를 하는 사람들은...까지 하다가, '조갑제와 변드보르잡 같은 이들이 떠올라, 독서가 꼭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런것을 용두서미라 하겠다(??)

 

anyway.  사회적인, 정치적인, 그리고 시대의 고민을 다양한 철학-사회-정치등의 인문서적을 통해 고찰한 흔적이 보인다.  답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비판하고, 따져보는 것은, 그래도 제대로 된 intellectual이라면, 남들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읽는, 그리고 이를 통해 소위 밥벌이를 하는 경우도 있기에, 오롯이 그들의 몫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로쟈님 뿐만 아니라, 많은 선배고인들이 문학, 소설, 실용서적도 좋지만, 일생에서 한번 정도는 철학을 읽어보라는 말을 하는데, 이번의 책에서도 그런 마음을 갖게되었기에, 역시 외상장부, 아니 pre-외상장부에 담긴 책은 늘어만 가는 것이다.  이런 고민은, 사치라고도 생각되는데, 그럴수록 더 읽고, 더 고민하고, 노력하여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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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2-09-1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란님, 저는 '바꾸네' 이거 정말 너무 웃겨서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오늘은 가카그네로군요. ㅎㅎ

저도 그러고보니 로쟈님 팬이네요. 로쟈님 책을 거의 다 사서 읽은 걸 보면. 이 책 같은 경우엔 제가 인문 지식이 전무하다보니 일단 한 꼭지씩 주섬주섬 읽자 라는 생각으로 구입했는데, 아무튼 존경하고 싶은 분이에요.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책 읽어나가다보면 외상장부가 좀 줄어들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신념으로다가... ^^

transient-guest 2012-09-19 01:04   좋아요 0 | URL
가카그네는 일종의 합체형인거죠. 그 나물에 그 밥을 사자성어로 만들면 가카그네, 이것을 다시 일어로 읽으면 아키히또 그네꼬라도 발음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ㅎㅎ

로쟈님은 독서인, 나아가서 책중독자, 수집중독자들에게는 우상같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사들이고, 읽지 못해도, 꿋꿋하게 쟁여놓은 모습에서 진정한 초절정 고수의 풍모를 봅니다.ㅋㅋ 서림의 태산북두라고나 할까요?

저도 그냥 다 읽을때까지 읽고 사들이자라는 주의에요. 원래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들어갈때까지 미는것이겠죠...ㅎㅎ
 

 

 

 

 

 

 

 

 

 

 

 

 

한때 이 남자가 무술 - 적어도 낮의 세계의 -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유도와 가라테가 전부이던 서양인에게 작은 체구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몸매와 압도적인 스피드로 배우 이전에 무술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소룡은, 단지 6-70년대 뿐만 아니라, UFC로 상징되는 MMA의 탄생으로 인해 그 신비함이나 존재감이 퇴색했을지언정, 아직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나 또한 고등학생시절, 덩치가 산만한 미국 친구들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태권도를 연습하고, 이소룡의 무술세계에 심취하던 때가 있었고, 그 당시 거금을 주고 구매한 이소룡의 VHS 영화세트는, 나중에 DVD로 업그레이드 된 그의 영화들과 함께, 아직도 내 컬렉션의 일부로 고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나는 무술에만 전념할만큼 운동을 잘 하지도 못했고, 영화판으로 무작정 뛰어들만큼 무모하거나 순진하지도 않았기에, 이 정도에서 그저 이소룡에 얽힌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가끔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오마쥬를 보면서 웃는 것이, 그에 대한 것의 전부가 되었다.  즉,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룡 또는 Bruce Lee라는 이름은 아직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 심지어는 인터넷 짤방의 주 재료로 활용되기까지 하는걸 보면, 이소룡, 아니 나아가서 절대강자에 대한 관심과 환상은 아직도 많은 마쵸맨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소룡의 추억담이 아니다.  그런데 두서없이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사실 이야기하려던 것은 최근에야 겨우 읽어낸 이 책에 대한 감상이다.

 

(이건 그냥 칸이 남아서 넣었다.  한 편 가지고 있는데, 상태도 좋고 포장도 보관용으로 손색이 없다)

 

 

 

 

천명관 작가는 '고래'같이 특이하고 주옥같은 작품으로 벌써 필명을 떨치고 있는 한국의 글쟁이라고 하겠다.  요즘 고전문학과 외국의 책들, 또는 그간 읽어오던 역사, 역사소설에서 독서의 지평을 더욱 넓히기 위해 한국의 현대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첫 시작으로 '김영하'와 '정이현'작가의 책들과 함께 '천명관'이라는 이름도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어, 장안의 화제작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어내게 된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면서도, 신산스럽게 이소룡이라는 당대의 우상, 그리고 여기에 얽힌 한 남자의 꿈과 좌절, 인생이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가장 비극적으로 손꼽히는 군사정변시절의 사건들과 함께 맞깔스럽게 버무려져있다.  한땀 한땀 재미있게 써내려간, 어리버리 삼촌이 무술고수로 등극하고, 다시 사고를 치고 서울로 뜨는 부분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났고, 귀향해서 쉬고있다가 공명심에 눈깔이 뒤짚힌 시골형사의 조작으로 대머리의 회심작인 삼청교육대 - 공포정치와 적절한 홍보효과를 노린 - 에 끌려가서 개고생하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잘 처먹고 살고있는 대머리와 그 피붙이들, 그리고 가신단을 향해 살인충동이 느껴질 정도의 증오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깡패들의 모습 또한 흥미롭게 그려내기까지 하니, 7-8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feature가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담담하게 세월의 흐름을 그려내고, 변하는 시대상에 변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녹여낸다.  그리고 나이를 무척 많이 먹어버린, 우리의 어리버리 삼촌이 사랑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일단은 흥미를 위주로 하여 읽어냈지만, 다음에는 - 빌려준 책이 돌아오면 - 좀더 깊이 행간을 의식해서 읽어보아야겠다.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또, 대머리 일당에 대한 증오가 한줄기 무명업화와도 같이 피어오르겠지만, 일단은 범부에 불과한 나로써는 그저 통계학적으로 대머리와 그 일당, 심지어는 그 피붙이 일부까지도, 나보다는 먼저 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위로삼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관심이 점점 한국문학으로도 번지는 듯 하다.  나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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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9-1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삼촌 부르스 리>는 제 생애 최초로 완독한 연재소설이었답니다.^^
이 책은 천명관 작가가 70년대생이라 그런지 이전 작가들이 바라 본 7-80년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시대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청춘을 삼촌으로 놓았기에 정치적인 처절함은 덜한 반면, 영화판에 뛰어들어 꿈을 쫓던 자신의 과거를 대입시킨 것에서는 좀 더 생생함을 주기도 했구요. 작가님이 연재를 수정하신다고 그러시던데 실제 출판본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합니다. 저도 시간나면 출판본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transient-guest 2012-09-17 05:32   좋아요 0 | URL
정말로 재미있게 보신듯 해요. 저도 정말이지 한숨에 다 읽어버렸거든요. 그런데 연재와 출판본이 조금 다른것이군요. 저는 반대로 연재본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ㅋ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용의자 X의 헌신'이나 '백야행'을 읽어본 것이 전부인데, 이번의 이 책으로써, 내가 읽는 그의 세 번째 작품이 되었다. 

 

이 책을 정통 추리소설로 볼 수 있을지 약간 의문이다.  위의 두 책에서도 느꼈지만, 긴박한 추리나, 독자 대 작가 또는 범인, 혹은 주인공 대 범인의 구도보다는, 왠지 독자는 그냥 제 3자로써의 방과자, observer같이 두고, 담담하게 사건을 펼쳐 내려가는 것 같아서, 어떤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다만, 의도 또는 부제가 흥미로운데, 생각이 없이 빚어지는 악의에 대한 생각이라고 한다.  미리 말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니 긴말은 생략하겠지만, 쉽게 말하면 motive가 무엇에 있는지 아리송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이번 작품의 구성요소가 된다.  그렇기에 범인의 트릭을 간파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다고 할 수 없고, 거의 담당 형사에게 주어지지만, 왜 그랬느냐는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책 결말에도 이 부분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지듯, 확연하게 이해가 되는 설명이 주저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이 이번 작품의 매력이 될런지?

 

추리소설의 양도, 종류도, 작가도 너무 많다고 느끼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씩 읽어 나가는 것도 독서의 지평을 늘리고, 머리를 식히는 한 가지 방편임은 틀림이 없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는 무엇인가 배울 점, 내지는 생각해 볼만한 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역시 순수한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나로서는 느끼기 어려웠다는 말이 계속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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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9-1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창기엔 열광했는데 책이 나와도 너~~~~무 자주 나오니까 요즘 들어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잘 안읽게되네요. ^^

transient-guest 2012-09-15 00:37   좋아요 0 | URL
좀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한참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을 많이 들던때가 있었죠. 저는 아직도 못 읽어본게 더 많지만, 구성이 비슷하면 차라리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같은 살짝 고전 또는 컬트적인게 낫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