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이 남자가 무술 - 적어도 낮의 세계의 - 세계를 지배한 적이 있었다.  유도와 가라테가 전부이던 서양인에게 작은 체구지만 탄탄하게 다져진 몸매와 압도적인 스피드로 배우 이전에 무술가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이소룡은, 단지 6-70년대 뿐만 아니라, UFC로 상징되는 MMA의 탄생으로 인해 그 신비함이나 존재감이 퇴색했을지언정, 아직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나 또한 고등학생시절, 덩치가 산만한 미국 친구들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태권도를 연습하고, 이소룡의 무술세계에 심취하던 때가 있었고, 그 당시 거금을 주고 구매한 이소룡의 VHS 영화세트는, 나중에 DVD로 업그레이드 된 그의 영화들과 함께, 아직도 내 컬렉션의 일부로 고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나는 무술에만 전념할만큼 운동을 잘 하지도 못했고, 영화판으로 무작정 뛰어들만큼 무모하거나 순진하지도 않았기에, 이 정도에서 그저 이소룡에 얽힌 과거를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면서, 가끔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오마쥬를 보면서 웃는 것이, 그에 대한 것의 전부가 되었다.  즉,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진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룡 또는 Bruce Lee라는 이름은 아직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 심지어는 인터넷 짤방의 주 재료로 활용되기까지 하는걸 보면, 이소룡, 아니 나아가서 절대강자에 대한 관심과 환상은 아직도 많은 마쵸맨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하려던 얘기는 이소룡의 추억담이 아니다.  그런데 두서없이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다.  사실 이야기하려던 것은 최근에야 겨우 읽어낸 이 책에 대한 감상이다.

 

(이건 그냥 칸이 남아서 넣었다.  한 편 가지고 있는데, 상태도 좋고 포장도 보관용으로 손색이 없다)

 

 

 

 

천명관 작가는 '고래'같이 특이하고 주옥같은 작품으로 벌써 필명을 떨치고 있는 한국의 글쟁이라고 하겠다.  요즘 고전문학과 외국의 책들, 또는 그간 읽어오던 역사, 역사소설에서 독서의 지평을 더욱 넓히기 위해 한국의 현대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 첫 시작으로 '김영하'와 '정이현'작가의 책들과 함께 '천명관'이라는 이름도 내 레이더망에 걸려들어, 장안의 화제작인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어내게 된 것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면서도, 신산스럽게 이소룡이라는 당대의 우상, 그리고 여기에 얽힌 한 남자의 꿈과 좌절, 인생이 한국의 현대사에서도 가장 비극적으로 손꼽히는 군사정변시절의 사건들과 함께 맞깔스럽게 버무려져있다.  한땀 한땀 재미있게 써내려간, 어리버리 삼촌이 무술고수로 등극하고, 다시 사고를 치고 서울로 뜨는 부분에서는 괜시리 웃음이 났고, 귀향해서 쉬고있다가 공명심에 눈깔이 뒤짚힌 시골형사의 조작으로 대머리의 회심작인 삼청교육대 - 공포정치와 적절한 홍보효과를 노린 - 에 끌려가서 개고생하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잘 처먹고 살고있는 대머리와 그 피붙이들, 그리고 가신단을 향해 살인충동이 느껴질 정도의 증오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깡패들의 모습 또한 흥미롭게 그려내기까지 하니, 7-80년대의 한국 현대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feature가 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담담하게 세월의 흐름을 그려내고, 변하는 시대상에 변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녹여낸다.  그리고 나이를 무척 많이 먹어버린, 우리의 어리버리 삼촌이 사랑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일단은 흥미를 위주로 하여 읽어냈지만, 다음에는 - 빌려준 책이 돌아오면 - 좀더 깊이 행간을 의식해서 읽어보아야겠다.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또, 대머리 일당에 대한 증오가 한줄기 무명업화와도 같이 피어오르겠지만, 일단은 범부에 불과한 나로써는 그저 통계학적으로 대머리와 그 일당, 심지어는 그 피붙이 일부까지도, 나보다는 먼저 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위로삼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관심이 점점 한국문학으로도 번지는 듯 하다.  나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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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2-09-1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삼촌 부르스 리>는 제 생애 최초로 완독한 연재소설이었답니다.^^
이 책은 천명관 작가가 70년대생이라 그런지 이전 작가들이 바라 본 7-80년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시대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청춘을 삼촌으로 놓았기에 정치적인 처절함은 덜한 반면, 영화판에 뛰어들어 꿈을 쫓던 자신의 과거를 대입시킨 것에서는 좀 더 생생함을 주기도 했구요. 작가님이 연재를 수정하신다고 그러시던데 실제 출판본은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합니다. 저도 시간나면 출판본으로 읽어보고 싶어요.

transient-guest 2012-09-17 05:32   좋아요 0 | URL
정말로 재미있게 보신듯 해요. 저도 정말이지 한숨에 다 읽어버렸거든요. 그런데 연재와 출판본이 조금 다른것이군요. 저는 반대로 연재본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