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구매해 놓고, 이제서야,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책장에서 꺼내어 읽고 있는 책이다.  찾아보니 이렇게 한글로도 번역이 되어있다.

 

이 책은 예수회 수도사인 제임스 마틴이 쓴, 자기의 수도생활과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용기가 되었던 성인/성녀들의 일화를, 그때 그때의 본인의 삶, 경험의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내고 있다.  나도 이제 경우 성녀 소화 데레사의 챕터를 읽고 있는 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한 소개를 하고 싶어 이렇게 간략한 페이퍼를 쓰고 있다.  간결하고 쉬운 필체와 단어, 눈에 쏙쏙 들어오는 문장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는데, 역시 좋아보이는 책은 주머니가 허락한다면 일단은 사놓고 볼 일이다.  신중하게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여 읽어보고 정말 좋은 내용의 책만 골라 산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책은 빌려보는 것(!)이라고 배웠다는 사람도 있지만, 내 입장에보면 책은 역시 사서 보는 것이 맞다. 

 

내가 만약, 신중하게 골라서 보려고 도서관 대출로 이 책을 미루어 두었더라면, 단언하건데 난 이 책과 인연을 맺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의 한계도 있거니와 -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좋아보이는 책의 이름을 적고, 이를 다시 도서관에 가서 찾는 것은 시간도 그렇고, 너무 번거롭다 - 책이라는 것도 한번 눈에서 멀어지면, 다시 찾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생각된다.  

 

개신교에서는 역시 성경의 어느 구절을 인용하여 죽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없는데, 왜 죽은이들에게 기도하냐고 말하는데, 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입장과 배움, 그리고 믿음이 있을테니 그렇게 살면 되겠다. 아직 이론적으로 이를 반박할 성서구절이나 가르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그 이상 말하기는 조금 어렵다, 적어도 지금은.  다만, 좋은 사람들, 우리 삶에, 또는 신앙에 귀감이 되는 사람들을 기념하고 기리며, 그들의 업적을 배워 도움을 받고, 나아가 중재를 구하는 것 (신앙적으로)이 왜 나쁜 것인지는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들을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예언자 엘리사가 치료한 이교도 문둥병자 장군의 에피소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anyway...

 

막힌 글빨이 터졌는지, 아니면 마구잡이로 쓰니까, 일종의 brain storming이 되는 것인지, 신년 벽두부터 페이퍼와 리뷰가 마구 쏟아졌다.  뭐 2013년. 이런 시작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책읽기도, 글도, 일도 바쁘고 보람차게 돌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13년을 위대한 성인전과 함께 하는 것 역시 우연치고는 참 마음에 드는 우연이다.  다시 한번.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곳은 이제 1/1/201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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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인이다. 굳이 크게 분류하자면 Christian인셈인데, 일부 - 한국에서는 주류 - 복음주의/근본주의 교파/교회에서 보면 그냥 천주교인이고, 무엇인가 잘못 믿고 있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잘 듣는 말이, '천주교인 치고' 또는 '천주교인이지만' 성경을 참 알고 있다는 말, 내지는, 자신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말빨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물론, 결론은 언제나 같다, '역시 변호사답게 말을 잘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내가 자기들 이상 성경을 읽고, 아니, 오히려 더욱 말씀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다른 책들과 성현들의 말씀, 그리고 자기성찰 - 이라고 하면 좀 무리가 있지만 넘어가자 - 의 결과로 지금의 신앙관을 가진 것은 인정하기 싫고, 나아가서, 내 말 때문에 자기들의 신앙관 - 주입된, 세뇌의 결과, 자기 최면의 극치, 최음제 같은 - 이 흔들리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ergo, 나는 '변호사답게 말을 잘'할 뿐인게다. 

 

그런데, 나는 일반적인 litigator가 아닌 서류/서식 및 상담을 주로하게 되는 분야의 전문가이기에, 위의 말은 순 억지에 가깝지만, 어쩌랴,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을. 

 

많은, 배울만큼 배우고, 독실한 신앙을 가진, 그러나 자기만의 것이 아닌, 주입된 신앙관을 가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분들을 보면서, 많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높은 학력과 배움에도 불구하고 창조'과학'을 믿으며 지구의 나이는 약 6,000년에 불과하다고 굳게 믿고, 다른 헌금들과 함께, 십일조, 아니 십이조를 꼬박 바치는 것은 성경적인 신자의 의무라고 믿는 그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넘어, 그를 그렇게 만든, 그릇된 지도자들에게 분노를 느꼈다. 

 

인생의 모든 이유를 신과 성경에서 찾고 풀어내려는 시도는 자칫하면 독선과 독단, 자기최면, 자학, 가학, 그리고 자기 정당화로 이어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신앙관을 주입시킨 그자들은 공공의 적과도 같다.  아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교회 - 라고 쓰고 사업체라고 읽는다 - 들의 대표목사들이 그 분들 되시겠다.  비판하는 소장파 목사들을 '근본'도 없는 자들로 치부하겠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그 대단한 큰목사님들의 학위는 어디서 받으셨는지 말이다.  그런 무식하고 몰지각한 논리로 성경을 아전인수하니 Richard Dawkins같은 사람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우리 종교와 종교인들은. 

 

성경을 보면 없는 것을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또한, 신과 사람의 영역을 섞는 것 역시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짜집기 하여 자신에게 유불리한 부분을 떼어 인용하는 것 또한 신의 뜻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의 신앙은 굳이 표현하면 자기류 할 수 있는데, 이는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 사상적인 융화, 즉 신앙과 세상의 화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 더 넓어진 경험에 기대어, 그 만큼 너그러워진 나의 잣대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과도 같이 신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신과의 합일, 그리고 이를 통한 자유로움, 즉 구속됨이 없는 형태라고 보는데, '말씀'only의 신앙관은 여기서 한참 멀어 보인다.  '말씀'에 하느님이 계신 것은 분명하지만, '말씀'만이 하느님이라고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마음'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예수가 오기 전 율법학자/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고, 예수가 온 이후 '회칠한 무덤의 벽'같은, '독사의 족속'들로 불린 그들의 system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아전인수와 우민화 신앙교육은 목사들을 배를 불리고, 그들의 가족을 살찌우는데 적격일지는 모르겠으나,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길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다.  신의 자비와 사랑을 선포하는 대신,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죄의식을 주입하는 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매일매일을 무슨 전쟁주간처럼 포장하고 관리하여, 이런 '싸움'을 조장하는 것인데, 이로써, 세상은 완벽한 선악, 흑백의 이분법으로 갈리고, 나와 같은 편이 아니면 모두 사탄이 되고, 죄가 되며, 유혹의 세력이 되는 편리한 곳이 되어버린다. 

 

일반 신자들은 열심히 이를 믿으며 꼬박꼬박 십일조에 십 수가지나 되는 헌금에 허리가 휘는데, 정작 지도자들 자신은 everything and anything BUT GOD에 정열을 쏟으며 마치 똥이 있는 곳에 모이는 금파리, 음식물에 모여드는 쉬파리 같이 세속의 권력과 돈의 맛에 취해 사는 것이다.  truly, 그들은 '독사의 족속' 아니, 비엘지법의 충실한 제자들인 셈 (비엘지법 또는 페르제바브라고 하는 악마왕은 파리로 상징된다. 절묘하지 않은가?)이다. 

 

소경이 소경을 쫓아가면 어떻게 될까? 예수가 말했듯이, 함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만 남은 것이다.  또한 옛결에 이르기를 그릇되이 사람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의 죄는 매우 크지만, 그들을 따라가는 사람들 또한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영의 분별이고, 자신의 정신줄을 놓지 않는 것이다.  꼿꼿한 자세로 모든 것을 묻고, 탐구하고, 성찰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누가 말해주어 믿는 것이 아니라, 정말이지 선종에서 이른 것처럼, 스승이 나오면 스승을, 조사가 나오면 조사를, 나중에는 부처라도 베어버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궁극의 길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지금에서 수십 수백번도 더 의심하고 찾고, 구하고, 다시 의심하고 찾을 것이다.  도의 완성은 가는 길, 그 자체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겸손하고 또 겸손하며, 다른 이들의 종교와 신념 - 광기와 배타적인 신앙 말고 - 을 존중하여야 한다. 

 

예수도 그랬다.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하라고.  대형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이여! 그 사찰이 무너지기전에, 그대들의 성전이 무너질 것이다.  하느님의 원리란 그런 것임을 구약/신약 통털어 여러 번 이야기 하는 것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긴 이야기를 했는데. 적과의 싸움을 위해, 그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들,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는 책들을 골고루 읽어볼 예정임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언제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또는 그런 사람들 - 답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할지언정 - 을 만나면, 최소한 씨앗 한알을 그 마음에 뿌려줄 것이다.  그 씨앗이 열매를 맺을지 아닐지는 개개인에 달려 있지만, 최소한의 의문을 자아내어, 그들이 구도의 길에 들어서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다음번의 구매때 살 책을 그래서 미리 골라놓았다.

 

 

 

 

 

 

 

 

 

 

 

 

 

 

 

 

이들이 시작이다.  그리고 물론 반대의 관점에서 나온 책들도 보게 될 것이다 - 예전의 장군처럼 여자를 밝히고 앞머리가 빛나는 그 분의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만 - 그래서 깊이 이해하고 따져볼 것이다.  그나저나 창조'과학'을 설파하는 이들 중에 현직 교수들이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충격스러운 일이다.  정신병력도 아닌, 현재 정신병을 가진 사람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지 참으로 의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주류의 - 교파를 막론하고 - 성서학자들이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며 이를 오류로 보고 있는 현실에서 말이다.  이렇게 신학의 영역에서 바라볼 것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억지가 바로 내가 말하는 독단/독선과 세뇌, 그리고 자기최면과 정당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는데, 이런 것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니까, 역시 자기 자신의 정신줄을 꼭 붙들고 앉아, 영의 분별을 갖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정종교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으나, 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특정교회나 지도자를 내세우는 세상에 속한 - 하느님이 아닌 - 단체들과 지도자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만,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생산적이고 발전적일 수 있도록 꾸준히 학습할 것이다.  이는 소위 대형교회로 대표되는 개신교의 문제만이 아님을 거듭 밝힌다.  종교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끝으로 한 마디 덧붙이면, 우리는 우리가 아는만큼이 아닌, 모르는 만큼, 딱 그 만큼만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가 쓴 글 역시 내가 잘 모르는 만큼만 이야기 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저 읽는 분들이 참고하시고,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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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7key 2023-05-14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직 증거만을 쫓는 앤터니 플루가 생각이 나는군요.. 창조과학과 지적설계 이론을 접하고 이들이 비주류로 매도를 당한다는 결론이 들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주류들이 좋아라 하는 학위적 측면은 더 우수한 지성인이라 판명됩니다 여러 연구들을 교차검증 하시면 정신병자 보다는 창조주께서 주신 지적 기능을 올바로이 사용하는 지극히 치밀하고 성실해 보이기 까지 한 분들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시작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이 아니죠.. 성경입니다
부분적 받아드림과 인간 전통의 합체는 이교와 다를바가 없죠.. 자리세파의 커다란 실책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성경의 설명 그대로이죠

성경의 문자를 다 알레고리로 적용하면 각각의 인간 종교가 탄생할겁니다

두 신을 섬기지 말라는 메세지는 성경 네러티브 전체적 강조 내용이죠. 성경의 가르침은 신앙입니다 종교가 아닌…
 

아직 약 12시간이 조금 더 남은 2012년을 돌아보게 된다.  과연 무엇을 하였는가, 어떤 일이 있었는가.  개인적으로는 사무실을 오픈하여 운영하고 한 해를 살아남은 것이 career상으로는 가장 큰 일이고, 그 밖에는, 잘 모르겠다.  건강은, 일주일에 5-6일을 꾸준히 단련할 정도의 체력, 그리고 힘 - bench press 225 lbs, squat 185 lbs, 등등 최고치를 많이 경신한 해이기도 하고, 운동시간이나 내용도 2011년보다 훨씬 더 좋아진 해.  2013년은 회사가 더욱 성장하고, 검도를 다시 시작하며, 책은 좀 덜 사고,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을 먼저 보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술도 좀 적게...-__-:

 

12/31/2012. 금년의 마지막 하루를 역시 책과 운동으로 보내게 될 것 같다.  천명관 작가의 책과 함께 다른 영어책을 읽고 있는데, 일단 몇 개 정리해본다.  또한, 최근에 있었던 득템 - 여간해서는 올리지 않는 이야기지만 - 이야기도 쓰련다.  서친님들의 부러움을 자극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여러분! 저는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넘도 이번 해가 끝나면, 본격적인 재테크에 들어가겠구나 싶다.  그러나 바꾸네가 이넘을 잡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 두고볼 일이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흑임자' 김중현 작가의 책인데, 그의 작품에서 내가 읽은 첫 번째가 된다.  전파를 검색하며 돌아다니는 이통사 직원인 주인공, 그리고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연상시키지만, 적어도 내눈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지도상에도 없는 고리오 마을, 그리고 그곳 사람들.  군부대의 실험으로 만들어지는 좀비들.

 

여기까지가 내가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하면, 나의 책읽기는 여전히 shallow한 것일까?  솔직히 작가에 대한 흥미만큼의 재미가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직 김중혁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장군'의 정형화로 우리 시대에는 이미 굳어진 대머리의 이미지 - 전 세대에게는 쬐끄맣고 새까만 썬그라스를 낀 그자였다면 - 가 여기서도 사용되는 것에 어쩌면 약간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좋게 그려지지 않으니까. 조금만 더 포커스를 맞출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에서 보여준 그의 탁월함은 '고래'에서 이미 그 떡잎을 볼 수 있었겠지 싶다.  시대와 스토리를 교묘하게 엮어 서술하는 그의 책은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의 평처럼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백년동안의 고독'을 떠올렸다면 망상일까?  금복의 몸에서 남자의 생식기 - 는 아니지만 - 가 돋아나며, 그녀가 사실상의 남자로 바뀌는 부분은 특히 돼지꼬리가 생각나게 했으니.

 

아~ 살아있는것, 육신이 있는것은 모두 허망할 다름이니, 아무리 아름다운 처자라고 해도, 백년후에는 모두 땅속의 송장이되어 썩어가게 될 터.  잡념과 망집을 버리는 것에서 깊은 자기성찰과 내면의 발전이 시작될 것이다.  영락을 거듭하다가 종국에는 사라져간 금복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도스토옙스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이 장편을 어제 다 읽었다.  슬라보필과 웨스트필의 사상적인 논쟁, 러시아에 대한 상징성,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표징과 상징성이 골고루 다뤄진 것 같다는 말 외에는 아직도 나의 머리는 조금 덜 이해하고 있다.  이럴 때에는 다른 사람이 쓴 입문서를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되는데, 도스토옙스키를 볼 때 큰 도움을 받는 책은 위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책이다.  이 제목 자체가 사실 '백치'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 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물론, 위 책에서 다룬 '백치'에 대한 내용은 정확하게 떠오르지도 않거니와, 그 해설이 객관적으로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더 거론하기 힘들다.  아직은 문학초보에 불과한 나이기에, 여전히 classic 문학읽기는 더디게 한 걸음씩 진행되는 만행에 가깝다.  몰라도 그저 읽고 읽고, 또 읽으면 언젠가 깨달음이 오리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2013년에도 나의 문학읽기는 이어질 것이다.  과연 내년 이맘때 내가 조금이나마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을런지? 

 

엊그제, Logos에 갔다가 뜻밖의 횡재를 했는데, 로버트 섀클리의 문고판 - 모두 절판되어 있는 - 작품을 세 개나 찾은 것이다.  좋은 상태였는데, 합쳐서 지불한 가격은 약 7불 정도 (세 권)이니까 괜찮은 구매였지 싶다.  이로써, 한글판 불사판매 주식회사외에 그의 작품은 4개를 갖게 되었다.  모두 사회현상을 바탕으로 한 미래 SF라서 단순한 활극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섀클리인지라, 언제나 눈에 불을 켜고 찾게 된다.

 

'Philgrimate to Earth'는 이미지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둔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있는데, 이들 또한 천천히 하나씩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기득권, 신분계층간의 갈등, 이런 이유로 갈라진 사회는 셰클리가 특히 즐겨 활용하는 테마인데, 그는 단순한 SF작가가 아닌,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고발형 SF작가라고 할 만큼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 작가였던 것 같다.  알흠다웠던 가카치세를 넘어 이제 영애의 전성시대를 맞이한 한국인에게 한번쯤 읽기를 권하고 싶다.  51%의 그대들이 바란 세상이 무엇이었던 간데, 그대들 대다수의 이익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영애께서는 어떤 영도력으로 충실한 애비의 아바타 노릇을 할런지?  참으로 요상하게 기대되는 2013년 되시겠다.  

 

서친님들 모두 2013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좋은 일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교류 계속 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역시 무공이나, 서공이나 모두 절차탁마가 답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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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1-0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에도 현대물 고전물 골고루 읽고 좋은 글 남겨 주십시오.도스토예프스키의 진짜 애호가는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보다 <백치>나 <악령>을 관심있게 읽는다는 말도 있더군요.

transient-guest 2013-01-01 16:13   좋아요 0 | URL
노자님! 좋은 격려에 감사해요. <죄와 벌>의 스토리는 <백치>보다는 이해하기 쉬웠고, <악령>은 예전 대학 강의교재로 좀 본 기억이 나네요, 실제로 있었던 일종의 러시아판 프락치 사건의 재구성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곧 읽게 될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도 러시아의 대문호지만, 왠지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던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 더 마음이 갑니다. 아! 전 체호프도 좋아합니다만.

탄하 2013-01-01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정말 득템하셨네요. 저는 유일한 한글표지인 <불사판매 주식회사>에 마구 관심이 갑니다. 근데 왜 좋은 작품들을 절판상태로 놔둘까요? 이 책은 저의 부활소망도서 보관함에 넣어야 겠습니다. 절판이라니 더 궁금해요.^^

김중혁의 <좀비들> 표지를 보니까 김언수의 <설계자들>이 생각났어요. 두 권 다 회색표지에 '~~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고, 제가 읽어보려고 찜해뒀던 책들이거든요. 그렇게 찜해뒀다 읽은 작가가 천명관이었는데 역시 절 실망시키지 않더랍니다. 올해는 저도 김중혁과 김언수를 모두 만나보고 싶네요. 트란님 서재에서 자극을 팍팍 받고 있습니다.

이제 그곳도 2013년이 몇 시간 남지 않았네요. 지금 막 새해를 향한 다짐을 마음속에 새기고 계실 듯. 새해를 향해 계획하신 일들 순조롭게 잘 이뤄지고, 특히 회사에 좋은 일 많이 생기시고, 서공이 깊이 쌓여가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참! 그리고 2012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검은 바탕에 금색 엠블럼이 무척 위엄있어 보이는걸요?^^

transient-guest 2013-01-01 16:17   좋아요 0 | URL
헌책방을 드나들면서 가끔 저렇게 득템을 하기도 한답니다. '불사판매 주식회사'를 처음 보았을때만해도 그냥 SF로 알았는데요, 나중에 작가를 리서치해보니 저런 background가 나오고, 더 흥미가 가더라구요. 'Status Cilization'도 참 특이했는데, 책 상태가 안 좋아서, 크리스탈 접시를 손에 든 기분으로 조심조심 읽었지요.

김중혁 작가의 '좀비들'은 좀 이해를 못했지만, 다른 작품들을 함께 읽으면서 배워갈 듯 합니다. 한국의 현대작가들을 읽는 재미는 외국의 작품 혹은 고전문학과는 또다른 맛이 있네요.

2013년은 무엇인가 좀더 이루고 도전할 수 있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2년 서재의 달인'...저에겐 좀 과분하지만, 그 덕에 플래티넘 회원자격을 일년간 유지할 수 있겠네요. 더 열심히 읽고 써보렵니다. 금년보다는 더 좋은 리뷰와 페이퍼를 써서 더욱 많은 분들께서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ㅎㅎ 감사합니다.
 

john grisham의 신작을 읽었다. 특별한 느낌은 없고,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간간한 plot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예전의 몇 작품들처럼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것은 아니었지만 - 오히려 The Partner니나 Bretheren같은 느낌 - 억울하게 연방법에 제소를 받아 10년형을 살게 된 한 흑인 변호사가 감옥에서 알게 된 사건을 토대로 치밀한 계획끝에 합법적으로 형기를 줄이고 평생 쓰고도 남을 돈까지 차지하려 하는 것을 잘 그려냈다.  간단한 트릭 하나 때문에, 스토리가 거의 끝날 때 정도가 되어서야, 전개를 다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도 나름 자기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겠다.

 

 

 

 

다른 분의 서재에서 보고서, 구한 작품이다. 클래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의 시간대가 PC로 작업을 하는 시대인것으로 봐서, 현대에 가깝다.  우연히 어릴 때 할아버지 집에서 읽게된 2차대전 후 소련의 포로가 되어 유형생활을 하는 독일 병사들의 탈출기 - 귀향 - 를 읽으면서, 불연듯, 아버지가 없는 자신의 스토리에 결부시키며, 다시 이를 오딧세이아 적인 남자의 유적으로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삶 역시 이 궤적에 올려놓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simple한 정리가 될 것이지만. 대략 이 정도의 느낌.

그리고 끝내 찾은 아버지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까지가 진정한 결말 같다.  나중에 붙은 심리실험은 조금 사족같은 부분 - skinner박사를 연상시키는 role playing 실험 - 의 느낌이 있다만, 내가 잘못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역시 다른 분의 서재에서 본 하우석의 '능력보다 큰 힘, 평판'을 보고서 구매한 책.  사들인지는 두어 달이 됐는데, 생각보다 늦게 읽게 되었다.  이런 책은 원래 사자마자 읽는 편인데.

 

글을 쓰는 사람의 재주들 중 하나가, 보편적이고 쉬운 이야기를 잘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심이 중요한 것.  누구나 알고 있지만,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기승전결을 갖춰 분석하고 예제와 함께 책으로 엮어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좀 평이한 내용이지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진심은 남이 알 수 없다는 것, 즉 진심이 아니라는 것, 알려져야 진심이라는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왜 진심을 몰라주나, 그걸 꼭 말을 해야만 아는건가 라는 말, 특히 자기 속 이야기를 하지 않는, 행동으로 타인을 상처주는 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진심이란 꼭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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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들쑥날쑥한 독서가 이어지고 있기에, 별로 리뷰라고 쓸만한 것도 없고, 글발도 영 아니어서, 간단하게 정리만 하였다.  아직도 본인의 멘붕상태가 이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말이지, 책읽기를 권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치계몽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언제가 되면, 인물보다는, 정당보다는, 계파보다는, 정책에, 그리고 그 사람의 살아온 삶과 기록에 비중을 둔 선택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제대로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다.  줄거리야 익히 알려진 만큼, 특별한 언급은 하지 않으련다.  단, 이번에 보니, 선악의 구도가 캐릭터로 분명하게 보였다는 것이 좀 다른 점?  타락으로 이끄는 사람과 선으로 이끄는 화가, 그리고 도리언 그레이의 행동, 각 분기점마다의 행동에서 그가 어떻게 점점 탐미주의를 가장한 악의 행각으로 빠져드는지를 볼 수 있다.  악행의 끝은 결국 자기의 파멸인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악한 영향을 주는, 악 그자체인 장군의 최후는 언급되지 않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장군은 악마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읽어보면 어떤 느낌일지 벌써 궁금하다.  적당한 때에 재독할 것이다.

 

연초에 제법 서점가를 달구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정작 나는 유행이 지난 최근에야 일독할 기회가 있었다.  내용은 볼만하다고 생각되는데, 제목이 그리 잘 지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현상과 부조리를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설명하면서 풀어내는 것은 좋으나, 과연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는지를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글쎄~ 라는 대답을 할 것 같다.  

 

보통 제목은 작가와 출판사가 협의하여 결정하는데, 특히 출판사에서 마케팅 차원의 강한 결정권이 있는 것으로 안다.  원제가 혹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읽은 발자크의 네 번째 작품이 되겠다.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젊은이와 귀족 부인의 사랑.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사교계에 입문하고,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나부다.  즉 젊은이가 상대적으로 나이가 더 든 귀족부인에게 사랑을 약속하며 일종의 patron-client관계를 맺고, 이 부인의 추천과 도움으로 사교계에 소개되며, 신분과 배움이 있다면, 이후 다시 정계나 재계에 입문하게 되는 과정이다.  

 

물론, 너무도 당연하게, 젊은이의 욕구적인 사랑은 다른 상대 - 그것도 또다른 귀족부인 - 에게 채워지고, 주인공 귀족부인과의 사랑은 플라토닉과 에로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발자크는 평생 돈 많은 과부를 좋아했고, 실제로 몇 번인가 관계가 이루어져 큰 도움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가?  작품마다 상당부분 그런 그의 경험이 엿보인다.

 

다른 책들도 슬슬 읽고는 있는데, 진도가 영 별로다.  '마의 산'은 끝내 이번해를 넘길 것 같고.  금년에는 좀 slow down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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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12-25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일드나 발자크는 사람들이 언급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 안 읽어본 사람이 많죠.와일드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도 그렇고 단편에서도 추리기법을 꽤 잘 다루는 것 같아요.<도리안 그레이...>는 미스테리물로 봐도 걸작이라고 합니다.

transient-guest 2012-12-26 02:20   좋아요 0 | URL
특히 영화로 잘 만들면 그렇겠네요. 발자크의 경우는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우연히 고리오 영감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