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박사 (그는 숭실대학교 사학과에서 동북항일군 연구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한 정통 사학자이다)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한국 사학계의 소극적인 과거사 접근, 나아가서 노골적인 식민지사관 계승을 보면서 앓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진정으로 내가 한국인으로서의 피를 자각한다면 이런 연구는 꾸준히 서포트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미국의 한국사 강단에서도 친한국적인, 그리고 대륙시각적인 한국의 고대사 연구가를 키워내어야 한다.  A급 친일파이면서 조선사편수회의 개 노릇을 한 이병도가 해방 후 한국 사학계의 대부가 됨에 따라 식민지사관의 세력이 강단의 주요세력을 이루고 있는 만큼, 현재 한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하여 박사가 되는 외국인들 또한 그 사관이 자연스럽게 식민사관을 계승하게 되는 점이 심히 우려가 된다.

 

 

 

 

 

 

 

 

 

 

 

 

 

 

이 책들의 시작은 1999년이다.  이때에 제기된 이슈들은 다시 이덕일씨의 다른 책들에서 조금 더 깊이 연구되어 논증된다.  이 당시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고대-고려-조선-근대사의 재미있는 의문들을 최대한 사료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해보는데, 소모적인 환빠-환까의 키보드 베틀과는 달리 정통교육을 받는 사학자의 입장에서 논리적인 분석과 해석을 하는 것이 특히 빼어난 점이다.  이전까지 소위 강단사학에서 그들의 식민사관-실증주의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아마추어로 몰아 논쟁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이덕일 박사와 같은 정통사학자의 등장으로 인해, 최소한 이런 것은 핑계가 되지는 못할 것이나, 모 대학 모 교수로 이어지는 connection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새로운 핑계가 되는 것 같다.  이 책들에서 다룬 내용들중 특히 흥미를 끈 것은 (1) 환단고기의 진위에 대한 논리적인 방어, (2) 처용의 아랍인설, (3) 삼국시대에 신라에 전파된 경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초기 기독교로 보면 되겠다), (4) 한사군의 위치, 실재, (5) 한국 땅에 존재했던 '왜'라는 수수께기의 국가 (일본 열도로 몰리기 전의 한국사/한국민족의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다뤄진 많은 역사적인 이슈들은 십 수년후 다시 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사서의 대조판독과 비교를 통해 훨씬 더 강력한 사료적인 논리를 갖게 된다.  

 

여기서는 보다 더 심도있게 한중일의 고대사서를 비교해서 우리 민족의 대륙기원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고조선과 고구려의 활동무대가 만주였음은 상식이다 (물론 역사교육이 일주일 한 시간으로 줄어든 지금의 세대는 큰 걱정거리이다).  하지만, 대륙백제설을 유추할 수 있는 중국의 고대사서의 내용은 비록 그 내용이 와전되고 뒤틀린 상태로 항간에 퍼져 우스갯소리가 되고는 있지만, 그 에센스를 보면 훌륭한 논증이 가능하다.  

 

또한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80년대까지는 연구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로 이 책과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식민지의 주구가 되었던 자들이 해방 후, 그리고 5-16 군사반란을 거쳐 한국의 주류기득권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처사가 된다.  

 

분명하게 말하거니와, 이덕일 박사의 접근은 고도의 전문성에 기반한 학술적인 주장이지, 혹자가 비난하는 것처럼 '믿쑵니다~' 수준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덕일 박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자신은 기실 역사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지엽말단적인 부분을 침소붕대하는데, 자신의 주장이 '실증주의'에 기반했음을 주장하는 것에 비해, 전혀 실증적이지 못한 인신공격에 다름아니다.  환단고기를 비롯한 고대사서의 진위성은 학술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지 이렇게 난장을 처버려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류사학계나 강단사학에서는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 한국민족의 일원으로서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주류사학에서 극도로 축소되고 왜곡된 한국의 근대 독립운동역사를 심도있게 다룬 책이다.  

 

해방 이후 독부 이승만의 세력확대를 위한 맹목적의 반공정책과 친일세력 재등용, 5-16군사반란을 통해 사회의 주요기득권으로 급부상한 일군/만군 출신 군바리들, 12-12정변을 통해 이어진 이들의 기득권, 그리고 지난 부정선거를 통한 노추의 귀환을 보면서, 우리 손으로 이루지 못한 독립의 슬픔이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카키 마사오가 반신으로 추앙받고, 백선엽 같은 이가 훈장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생기고, 백두산과도 호랑이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던 친일파 칼잡이 군인 김종원 같은 이들이 쌓이고 쌓인 한국 사회에서 아마도 좌/우가 모두 어우러져 치뤄낸 독립운동의 역사는 부정되어야 할, 아니 감춰야 할 치부인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는 한국의 국가/민족적인 정체성이 훼손되고 흔들리는 시대이다.  미국에서 한 발 멀찌기 떨어져 살면서 이렇게 한국의 문제에 대해 지사연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이런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람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길게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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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씨가 있기 앞서 뜻있는 학자들이 독재정권 사슬에서도 씩씩하게 연구를 한 바탕이 있어, 이러한 책이 나올 수 있다고 느껴요. 그리고, 일본에는 제국주의자도 있지만, 슬기로운 사람도 있어, 지난날 일본 소장학자들이 한국 옛 역사를 잘 밝히고 건드려 주기도 했답니다. 다만, 이런 책을 한국에서는 이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뿐이에요.

transient-guest 2013-12-12 10:52   좋아요 0 | URL
네. 이덕일 박사가 언급한 사서를 직접 살펴보고 싶은 맘이 들더라구요. 공정한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사실 이덕일 박사의 논점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대사를 다룬 소설 중 이덕일 씨의 설에 가까운 것이 몇 권 생각나는군요.
김진명<천년의 금서><코리안닷컴>---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내용.
이문열<대륙의 한>윤영용<근초고대왕>---백제가 요서지방을 지배했다는 내용.둘 다 대하장편.

transient-guest 2013-12-15 15:56   좋아요 0 | URL
이문열씨와 윤영용씨의 소설은 못 봤지만, 김진명씨의 소설은 읽어봤습니다. 그 깊이가 조금 아쉽고, 뭐랄까, 조금 부족한 느낌이더군요. 하지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해서 대중이 자꾸 관심을 갖게 되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 씨 전공이 임나일본부라서 <거꾸로 보는 고대사>를 썼는데 여기에서 환단고기 같은 책들을 사정없이 비판했죠.그래서인지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박노자를 맹공격하죠.아무래도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은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박노자 씨가 거슬렸던 모양입니다.강만길 이이화 등도 한가람연구소의 연구가들에게 공격받고 있죠.

transient-guest 2013-12-16 02:35   좋아요 0 | URL
이런 비판이 생산적인 쪽으로 가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측면이 더 많다고 이덕일 박사는 주장하더군요. 주객이 전도된 논리로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화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듯 해요. 내부적인 다툼은 잘 모르던 부분이네요. 강만길/이이화 vs 한가람 연구소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양쪽의 의견을 모두 읽어보고 싶고, 나아가서 사실 고대사서를 제대로 보면서 이덕일 박사의 이론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6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만길 이이화 씨는 고조선의 영토를 넓게 잡는 사람들을 비판했기 때문에 환단고기 지지자들에게 공격당하고 있어요.강만길 이이화는 고대사 전공자도 아닌데 왜 아는 척하느냐 하는 공격이 대부분이죠.

고대사서를 직접 읽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박노자 위의 책은 분량이 많지 않고 문체가 쉬워서 읽는 데 편합니다.현재 논쟁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고요.그리고 박노자는 전공 자체가 한국고대사니까 비전공자라는 비난은 피할 수 있습니다.아무래도 트란 님 성향으로 볼 때 박노자가 잘 맞을 듯해서 권해봅니다.

transient-guest 2013-12-17 00:34   좋아요 0 | URL
다음번에 책을 구할때 강만길-이이화-박노자의 책을 봐야겠네요. 말씀처럼 환단고기나 대륙사관을 비판하는 많은 분들이 사실 역사를 정식으로 전공하지는 않았구요. 박노자선생의 경우라면 그의 논리가 궁금합니다. 이덕일씨도 최근의 책은 무작위로 주장하는것이 아닌 나름대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한 주장을 하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3-12-1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단고기나 백제요서경략설 비판자들은 역사를 정식으로 전공하는 대학교수들이 많습니다.그래서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대학의 한국사학과가 식민사관에 물들었다고 공격합니다.당연히 한국사 교수들은 환단고기 지지자들이 정식으로 한국사를 전공하지 않았다고 공격하고요.

transient-guest 2013-12-18 01:23   좋아요 0 | URL
일반적으로는 그런 것이라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웹사이트에서 이덕일씨 같은 사람들을 비판하는데 앞장서는데 상당히 유명하신 모 블로거님을 비롯하여 사학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분들도 많이 있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18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하신 모 블로거가 누군지 알려주세요.한번 글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2013-12-19 0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19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20 0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12월은 연말연시의 특수에 따라 또는 연휴계획에 따라 바쁘기도 하지만, 사실 업무에 있어서는 특별한 것이 없는 절기가 아닌가 싶다.  어제까지 밀린 일을 다 처리해서 결제하고 오늘은 큰 맘을 먹고서 근 일년만에 이곳 Santa Cruz 다운타운에 있는 Cafe Perolasi에 나와있다.  책이나 좀 보면서 커피도 마시고, 그냥 유유자적하면서 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전화는 개인전화로 forward해놓고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다. 

 

어려운 고전문학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대부분의 교양서적이나 인문서적, 역사책 등은 비교적 빨리 읽는 편이다.  아무렴 내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나의 가장 오래된 모습부터도 책이 빠진 적이 없으니까, 그 동안 해온 독서가 어디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이런 것만 생각해도 난 부모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누구는 신앙교육, 누구는 경제교육, 등등, 자신의 가치관에 있어 최우선이라 생각하는 것을 자식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할텐데, 그것이 독서였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종교를, 그것도 특정종교, 특정지도자, 특정회당을 인생의 전부인 양 가르친 부모의 자식이 아니었음이, 맹신과 광신, 거의 병적인 수준으로 붕 떠있는 상태로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간 약 열 권 정도를 더 읽었는데, 읽기에 바빠서 정리하는 것이 많이 늦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당히 묶어서 추천해보아야겠다.

 

 

 

 

 

 

 

 

 

 

 

 

 

 

 

조정래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 있어 그 찬란하고도 깊은 상징성에 비해 매우 험난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그저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소설로 구현했을 뿐인데, 군사반란과 군사독재, 그리고 그의 사생아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지금까지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문민정부시절에 군복무를 마친 아드님이 단지 조정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목 디스크가 걸릴만큼 자주, 많이, 그리고 심하게 구타를 당하면서 군생활을 했다는 일화를 보면, 일반화는 나쁘지만, 이때만큼은 군발이는 또라이라는 생각을 하게한다.  

 

선생이 워낙 글을 쓸만큼 쓴지라, 사실 아리랑과 태백산맥 이후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 힘이 빠진 것을 느끼는데, 그래도 이번 정글만리에서는 약간이나마 필력이 회복된 것 같아서 반갑기 그지없다.   

 

그가 보는 중국은 우리의 과거이며, 현재의 투영이고, 미래의 예측인 동시에, 다시 세계를 2강구도로 몰아가는, 작가의 바램으로는 미국보다는 더 가까웠으면 하는 대국이다.  그들의 천민자본주의와 구조적인 부패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었고,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그 스케일만 수천배로 클 뿐이다.  하지만 그 사이즈 덕분에 구조적으로 편입된 부패라는 점이 우리의 단순히 구조적인 부패, 그러니까 사회의 역동성과 발전을 저해하는, 그런 부패와는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중국이 부정부패를 지탱할 수 있는 생산성과 국민의식, 그리고 아직은 낮은 소득분배를 토대로 현시대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구조가 무너지는 시점, 그러니까, 중국인민의 의식이 더 깨이는 시점에는 거대한 구조적인 파국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생각한다.  절대강자는 내가 사는 골목보다는 옆동네에 있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은 것처럼, 패권주의라는 점이 같지만 그 힘의 운용에 있어 그리고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어, 중국보다는 미국이 강국으로 남아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한때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21세기의 종횡가를 꿈꾼 적이 있는데, 이때 삼국정립론을 본따 중국이라는 거대한 솥을 미국이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한-일-동남아의 느슨한 동맹으로 안정화켜야 한다는 21세기 동양평화론을 구상해봤다.  이는 당연히 현재 나와 미국, 나와 한국의 관계를 십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의 무조건적인, 너무 자주는 무법적인 패권주의보다는 형식이나마 논리와 협상의 여지가 있는 미국이 파트너로는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한국이 통일이 되면 중국은 무역/지역 파트너인 동시에 국경을 맞댄 경쟁자가 된다.  거기에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고토회복이라는 염원을 두고 보면, 그리고 인접지역의 모든 역사와 영토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무제한팽창주의를 놓고 보면 장기적인 견지에서는 일본보다도 큰 한국의 가상적국이 될 수 있다.  논리를 떠나, 중국특수가 일어나면서 나라가 들썩거리던 그 시절부터 쭉 주장해온 내 대중국관인데, 이곳에 살면서 접하는 본토출신의 충성스러운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을 보면, 가까운 시일에 수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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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푹 쉬면서, 거의 매시간 책을 붙들고 앉아 읽어냈다.  원래 읽던 책은 꾸준히 읽어가면서, 새로운 책들은 아버지께서 읽으실 수 있도록 빨리 읽고 집에 두고왔다.  그렇게 읽어냈더니, 다시 독서근육이 조금 생긴 것 같다.  물론 단점이라면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후기를 남기게 되어 내용이 조금 가물가물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춰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소개에 의하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우선, 여기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등장하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 같은, 마치 데우스 마키나와도 같은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어지는 clue라고는 종횡으로 얽힌 인간관계와 거기서 추론될 수 있는 심리적인 묘사 뿐이다.  서술이 길고 평이한 전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간중간에 집중력이 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건을 통해 보여지는 무서운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이 잉태한 비극이 구성장치로 쓰여진 것을 보면, 역시 크리스티는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구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다음 순번이 기대되는 작가.  무리하게 한꺼번에 60 여권을 구매했는데,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빨리 나머지도 구하고, 다른 전집들도 구해놓아야 할텐데, 금년, 아니 당분간은 무리지 싶다.

 

 

교학사의 '교과서'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역사 쿠데타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책이다.  유영익 같은 사람은 그의 긴 학문의 여정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 쓰레기 어용학자의 글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상대적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다면, 이덕일 소장의 책은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우리의 근대를 말한다. 

 

특히 요즘 들어 번지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해괴한 사생아, 그러니까, 역사학계의 극우세력과 군사독재추종세력과의 교접을 통해 낳은 시대의 bastard의 이야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일깨워준다. 

 

점령시기의 한국이 근대화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은 것이지 그 목적도 과정도 한국의 근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아니었음은 일본이 양성한 한국의 산업이 농업과 광업 같이 오로지 수탈을 위한 일차산업이었음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다. 

 

이 밖에도 긴박한 당시의 정세, 그리고 이를 오판한 고종의 우왕좌왕이, 친일세력의 발호와 맞물리는 과정, 기득권 노론세력이 앞다투어 나라를 팔고, 은전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 삼한갑족 이회영 같은 일단의 선각자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서 벌이는 사투 등,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잘 연구되지 않는 구한말에서 점령시대 초기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덕일 소장의 다른 책들과 더불어 필히 구매하여 읽고 보관하고 사용할 책이다.

 

'동양학 강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조용헌 살롱'에서 이어지는, 조선일보 칼럼에 연재된 글을 모은게 아닌가 싶다. 

 

조용헌 선생의 글은 늘 흥미진진하면서도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는 것 같다.  내 추측으로는 보수성향이 강한 작가인데, 그렇다 하여도 그는 건강한 보수라고 본다.  그의 글에서 중간중간 묻어나는 촌철살인의 시대비판을 보면 그렇다.  다만, 시대에 자신을 던지기 보다는 강호에서 은거하면서 한 시절을 보내는 모습이 더 짙어 그런 면이 잘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세상을 사는데, 그처럼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명산대천을 주유하고 강호와 강단의 고수들을 고루 사귀는 그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불교학 박사이기도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동양의 고전이나 철학을 비롯한 정통학문에서 사주명리학, 풍수, 관상 같은 강호의 방계학술에도 제법 정통한, 흔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책도 늘 사서 곁에 두고 보게된다.

 

'글쓰기'라는 제목에 끌려 구한 비교적 신간서적이다.  저자는 11년간 재직하던 삼성을 떠나 3년간 면벽수양과도 같은 독서를 통해 약 만 권의 책을 읽고 난후 느낀게 있어 글을 쓰고, 책이 팔리면서 강의도 하게 되는 등, 성공적으로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너무 그 결과에 기대하거나, 과정에서의 완성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쓰고, 쓰고, 또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되고, 문장력도 좋아지고 내용이 깊어진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어떤 방법론이나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글쓰기 이론이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쓰고는 싶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에게 큰 용기를 주는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editorial한 이슈.  중간중간에 틀린 문장, 끊어진 단어, 그리고 중복이 너무 많다.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으로 이야기하거나, 다른 꼭지에서 언급된 것을 또 다른 꼭지에서 이를 강조하면서 거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쓴 부분이 너무 많아서 책의 후반부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정성이나 감수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부분이 두 번째 이슈인데, 간결명료한 문장을 강조하는 저자가, 정작 자신의 글은 별로 다듬지 않았다는 점, 그러니까, 중복을 피했으면 300여 페이지가 아닌 150-200여 페이지면 썼을 책의 내용이 필요없이 길어지고 장황해졌다는 것은 분명이 문제가 있다.  어떻게 보면, 독서경영이나 이슈화 된 책을 주로 쓰고 강의한 작가의 모습이, 그가 주창하는 올바른 '작가'의 모습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같은 글과 작가가 자주 중복인용되어 저자의 콘텐츠, 아니 저자의 지식과 통찰이 조금은 얕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정도는 읽고 용기를 받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결론.

 

이렇게 하여 지난 주간에 읽은 책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기적의 글쓰기' 같은 경우에는 따로 리뷰를 쓰면서 깊이 해부할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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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12-05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첨에는 이걸 60권이나 어떻게 읽어..했는데 네 권(!) 정도 읽으니 재밌어요. 원래 몰입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하던 참이었거든요. tran님 크리스티를 영어로 읽어요?(60권 세트 구입하셨다기에 한번 던져봄..) 어제 책장에서 해리포터를 다시 읽으려고 꺼내왔어요. 헝거게임이랑 호빗 읽는데 아주 신나서.. 안읽은 책도 많은데 약간 개운하지가 않지만요.

transient-guest 2013-12-05 13:18   좋아요 0 | URL
연초에 엄청 세일했잖아요, 그때 샀지요. 물론 그 덕분에 앞으로는 책을 살때에도 항상 충동구매나 세일구매를 조심해야지 하고 느꼈지만요. 영문으로는 헌책방에서 눈에 띄는걸 구해서 읽어요. 확실히 영어로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영문으로 읽으면 그 느낌이 다릅니다. 특히 에르큘 포와로는 벨기에 사람인데, 영어를 쓰면서도 간혹 프랑스어를 섞어쓰는 묘사가 한글로는 잘 전달되지 않더군요. 책은 그저 읽고 또 읽고 하는것이니까, 기분에 따라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다가 신간을 읽다가 해도 될 것 같아요.
 

집에 간김에 뒹굴고 있는 몇 권을 찾아서 내리 읽었다.  문학이나 전문서적은 좀 다르지만, 내 눈에 익숙한 일반소설이나 수필, 또는 현대문학은 조금 쉽기 읽어지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이 줄줄 읽어냈다.

 

성석제의 글은 늘 맛깔스럽다.  이런 저런 칼럼이나 어쩌다 손에 걸리는 잡문집 위주의 글을 주로 읽었는데, 항상 주변의 소박한 주제를 사용해서 재미있고도 깊은 글을 써내는 솜씨가 부럽기 그지없다.

 

음식에 얽힌 촘촘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한 이 책은 아마도 누나가 사놓고 정리를 게을리 한 덕분에 방 한쪽 귀퉁이에서 발견했다.  주말까지 이런 책이 집에 있는줄도 모를 정도로 친누나의 정리솜씨는 '완벽'하다.  물론 완전히 반대의 의미로 말이다.  예전에 오죽하면 내가 '청소력'을 사주었을까...

 

언젠가 성석제의 책도 모두 읽어내리라 생각한 것이 몇 년전인데, 쏟어져나오는 신간과, 꼭 읽어두어야 할 고전문학, 그리고 간간히 삶에 떠밀려 유혹처럼 읽게되는 이런 저런 정보서적에 그의 글이 설 자리는 없었나보다.  늘 그렇듯이 목록은 늘어갈 뿐이다.

 

정유정하면 '7년의 밤'이나 '28'을 떠올리는 나에게 이 책은 역시 이런 책도 있었던가 싶은 작품이다.  정유정의 책을 처음 읽는다면 아마도 그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누나의 '청소력'에 따라 주말까지 그 존재를 도무지 드러내지 않았던 책이다. 

 

솔직히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함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현대문단의 고민 혹은 방만이 아닐까 싶다.  김중혁 작가도 말했거니와, 작가가 꼭 어떤 의미를 담고 글을 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권의 책을 읽고나면, 그것도 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읽고나면 최소한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작가의 경험이 많이 녹아들어갔을 이야기는 읽는 내내 '뻐꾸기 둥지로 날아간 사나이' 그리고 '형제 복지원'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간간히 나는 분노했었다.  구성은 나름 탄탄하지만, 그 결말이 나로써는 도무지 공감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곧 크리스마스와 함께 이곳의 2대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추수감사절이다.  늘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국가인구의 반은 족히 넘는 듯한 한국에서는 특히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연인의 날, 아니면 단체로 여행가는 날같지만, 이곳에서의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모이는 날이다.  워낙에 멀리들 떨어져 사는 탓에 이렇게 한 해를 마감하는 연휴에 휴가를 붙여 가족과 모이는 것이다.  

 

다행히 가족은 근처에 있으니 연말에는 앞서 계획한대로 러시아 문학을 중점으로 이런 저런 책을 맘껏 읽어야지 싶다.  내년에는 내년의 몫이 있을테니까, 2013년은 2013년의 몫에 따라 잘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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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운영하면서 고객층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얼추 사람들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것을 종종 느낀다.  다소 한가할 때에는 다들 규모에 맞춰 비슷한 비율의 한가함을 느끼고, 바빠지는 시기에는 의아할 정도로 갑자기 엄청난 숫자의 문의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는 자연적인 주기, 특정분야의 경기, 정치, 경제, 절기를 비롯하여 수 많은 요소들로 인해 인지하지 못하면서도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독서에도 그런 대중적인 패턴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내 서재의 방문객 숫자, 내 독서빈도, 다른 서재의 독서빈도나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것을 살피면 확실히 11월은 전반적으로 책을 덜 읽게 되는 것 같다.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 아니 그 전의 Veteran's Day를 시작으로 겹치는 연휴로 이곳에서 11월은 연말을 시작하는 의미가 크다.  한국은 내가 알기로는 특별한 휴일이 없는 것이 11월이지만, 어떻게 보면 역시 한 해의 마감을 준비하는, 조금은 사이에 끼인 듯한, 가을과 겨울 사이의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라도, 어디 한 군데 마음을 붙이고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더구나 한국/미국 할 것 없이 이때는 본격적으로 해가 짧아지는 시기이다.  서머타임이 해제되고 난 자연시간이 돌아오는 이 시기에는 퇴근시간도 조금 앞당겨지고, 흐린 날에는 오후 4시만 조금 넘어도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6시에 퇴근하는 스케줄이라면 대략 5시부터는 시계와 상사의 눈치를 살피게 마련이다. 

 

집에 와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흥미가 가는 것은 없고, 어둡고 추워진 절기상의 feature는 나 자신마저도 움츠러들게 만들어서, 공연히 히터를 켜고, 이불을 둘러쓴 다음 TV앞에서 2-3시간 정도를 보내기 일쑤인데, 이러고나면 가뜩이나 자연광이 없어 책을 읽기가 불편한 시기에, 피곤을 핑계로 한 두 페이지 정도를 읽어내려가다가 역시나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특별히 깊은 읽기를 시도한 것도 아닌데, 참으로 더딘 독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른 책을 조금 읽다가 지겨우면 자투리로 조금씩 Berlin Diary를 읽으면서 역사속에서 흥미를 찾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명문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가죽으로 제본된 양장본 외에도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헌책방에서 구한 hardcover에 책 case까지 갖춰진 본이 한 권이 더 있다. 

 

하멜표류기를 남긴 덕분에 효종이 다스리던 시기에 조선 땅에 함께 표류했던 36의 네덜란드 선원들 중 유일하게 그 이름이 남았다.  외국인을 국외로 보내지 않았던 조선의 법도상 이들은 대부분 병들어 죽거나 탈출을 꾀하다 죽었는데, 남은 15명에서 7명이 극적으로 탈출하여 당시 서방의 상관이 있었던 일본을 통해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이 쓰인 취지가 조선의 문물을 알리거나 여행기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기실 세밀한 조선의 묘사나 극적인 내용은 별로 기대할 수 없는데, 이는 어릴 때 읽었던 '하멜'에 대한 책이나 교과서의 가르침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말하자면 하멜이 조선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제로는 하멜에게 있어 조선은 목숨을 걸로 탈출해야 했던 일종의 유형지에 다름 아니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전제군주정의 조선에서도 '왕' 또한 '법'을 따라야 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핑계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내용에 왕은 이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법'에 의해 그럴 수 없다는 말을 하는 부분이 나온다.  즉 이때에 벌써 조선에서는 '법'의 위중함을 전제군주로서 권력의 절정에 위치한 왕까지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지젝식으로 실재와 실제하는 현실은 엄연히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패당을 지어 국가를 농단하는 요즘의 금력과 권력을 보면 확실히 2008년 부터 한국의 정치와 사회의식은 상당히 퇴보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없지만, '하멜표류기'는 엄밀히 말해, 흔하지 않은, 외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 후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일차 텍스트로써의 가치가 높다 하겠다. 

 

단적으로 말해 이 책은 '재미가 없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시기에 다른 마음으로 읽어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이 쓰인 시기의 사서를 보면 느끼는 지겨움이 여기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로써 어쩔 수가 없다. 

 

시대별로 변해가는 로마인의 정신을 당시의 문장가나 유명인사의 일차 텍스트에서 추론해 나가는 저자의 연구방법과 열정은 높이 살만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스토리'로써의 히스토리 보다는 학술적인 분석을 시도하는 서술은 확실히 재미가 덜하기는 하다.

 

리뷰가 좋은 것을 보고 산 기억이 나는데, 물론 명문도 많고, 좋은 contrast도 많이 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저자가 규정짓는 feature를 묘사하는 문장을 제외하고, 이 책의 포인트 그 자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전적으로 나의 생각이니까, 내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취지의 댓글은 사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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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23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책 <히스토리에>를 한 번 읽어 보시면, 생각을 새롭게 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기생수>를 그린 분이 천천히 그리는 <히스토리에>도 앞으로 만화 명작 가운데 하나로 남을 작품이 되리라 생각해요.

곧 섣달이 되겠군요~

transient-guest 2013-11-23 13:42   좋아요 0 | URL
호오.. 그 시절에 기생수를 처음 보고나서 충격을 받은게 떠오르네요. 기회가 되면 구해서 봐야겠네요..ㅎ

노이에자이트 2013-11-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에 먼저 온 네럴란드 남자인 벨테브레는 박연이라는 이름도 받고 귀화해서 살았는데 하멜과는 대조적이죠.벨테브레가 더 교양있고 점잖았다고 합니다.

transient-guest 2013-11-23 13:43   좋아요 0 | URL
그런 벨테브레도 하멜표류기에서 나름 고생을 좀 한 것처럼 묘사가 되더라구요. 하멜보다는 벨테브레가 좀더 높은 신분이었나봐요.ㅎ

saint236 2013-11-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권 프로젝트 아직도 못마쳤네요. 자꾸 다른 책으로 외도를 하게 되니...

transient-guest 2013-11-24 14:28   좋아요 0 | URL
저도 마지막은 한 권을 남기고 못마쳤지요. 외도도 그렇고, 책 고르기도 그렇고, 더구나 읽고싶은 책은 넘치고, 어쩔수가 없지요. 어쩌면 우리는 덜 절박하던가, 아니면, '독서성공경영학'교파와는 좀 다른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