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푹 쉬면서, 거의 매시간 책을 붙들고 앉아 읽어냈다. 원래 읽던 책은 꾸준히 읽어가면서, 새로운 책들은 아버지께서 읽으실 수 있도록 빨리 읽고 집에 두고왔다. 그렇게 읽어냈더니, 다시 독서근육이 조금 생긴 것 같다. 물론 단점이라면 이렇게 한꺼번에 몰아서 후기를 남기게 되어 내용이 조금 가물가물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춰볼 수 없다는 것이다.
소개에 의하면 애거서 크리스티의 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우선, 여기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하게 등장하는 포와로나 미스 마플 같은, 마치 데우스 마키나와도 같은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주어지는 clue라고는 종횡으로 얽힌 인간관계와 거기서 추론될 수 있는 심리적인 묘사 뿐이다. 서술이 길고 평이한 전개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간중간에 집중력이 떨어진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사건을 통해 보여지는 무서운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이 잉태한 비극이 구성장치로 쓰여진 것을 보면, 역시 크리스티는 요즘에는 보기 어려운 구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다음 순번이 기대되는 작가. 무리하게 한꺼번에 60 여권을 구매했는데,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빨리 나머지도 구하고, 다른 전집들도 구해놓아야 할텐데, 금년, 아니 당분간은 무리지 싶다.
교학사의 '교과서'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역사 쿠데타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책이다. 유영익 같은 사람은 그의 긴 학문의 여정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 쓰레기 어용학자의 글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상대적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다면, 이덕일 소장의 책은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우리의 근대를 말한다.
특히 요즘 들어 번지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해괴한 사생아, 그러니까, 역사학계의 극우세력과 군사독재추종세력과의 교접을 통해 낳은 시대의 bastard의 이야기에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을 일깨워준다.
점령시기의 한국이 근대화 된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은 것이지 그 목적도 과정도 한국의 근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일본의 식민지정책이 아니었음은 일본이 양성한 한국의 산업이 농업과 광업 같이 오로지 수탈을 위한 일차산업이었음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다.
이 밖에도 긴박한 당시의 정세, 그리고 이를 오판한 고종의 우왕좌왕이, 친일세력의 발호와 맞물리는 과정, 기득권 노론세력이 앞다투어 나라를 팔고, 은전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 삼한갑족 이회영 같은 일단의 선각자들이 나라를 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서 벌이는 사투 등, 의견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잘 연구되지 않는 구한말에서 점령시대 초기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덕일 소장의 다른 책들과 더불어 필히 구매하여 읽고 보관하고 사용할 책이다.
'동양학 강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마도 '조용헌 살롱'에서 이어지는, 조선일보 칼럼에 연재된 글을 모은게 아닌가 싶다.
조용헌 선생의 글은 늘 흥미진진하면서도 생각할 화두를 던져주는 것 같다. 내 추측으로는 보수성향이 강한 작가인데, 그렇다 하여도 그는 건강한 보수라고 본다. 그의 글에서 중간중간 묻어나는 촌철살인의 시대비판을 보면 그렇다. 다만, 시대에 자신을 던지기 보다는 강호에서 은거하면서 한 시절을 보내는 모습이 더 짙어 그런 면이 잘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세상을 사는데, 그처럼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명산대천을 주유하고 강호와 강단의 고수들을 고루 사귀는 그를 보면 부럽기 그지없다.
불교학 박사이기도 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동양의 고전이나 철학을 비롯한 정통학문에서 사주명리학, 풍수, 관상 같은 강호의 방계학술에도 제법 정통한, 흔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책도 늘 사서 곁에 두고 보게된다.
'글쓰기'라는 제목에 끌려 구한 비교적 신간서적이다. 저자는 11년간 재직하던 삼성을 떠나 3년간 면벽수양과도 같은 독서를 통해 약 만 권의 책을 읽고 난후 느낀게 있어 글을 쓰고, 책이 팔리면서 강의도 하게 되는 등, 성공적으로 또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너무 그 결과에 기대하거나, 과정에서의 완성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쓰고, 쓰고, 또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게되고, 문장력도 좋아지고 내용이 깊어진다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국 어떤 방법론이나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 거시적인 측면에서의 글쓰기 이론이라고 하겠다. 그런 면에서 글을 쓰고는 싶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는 사람에게 큰 용기를 주는 책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editorial한 이슈. 중간중간에 틀린 문장, 끊어진 단어, 그리고 중복이 너무 많다. 같은 내용을 다른 제목으로 이야기하거나, 다른 꼭지에서 언급된 것을 또 다른 꼭지에서 이를 강조하면서 거의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쓴 부분이 너무 많아서 책의 후반부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저자의 정성이나 감수가 부족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부분이 두 번째 이슈인데, 간결명료한 문장을 강조하는 저자가, 정작 자신의 글은 별로 다듬지 않았다는 점, 그러니까, 중복을 피했으면 300여 페이지가 아닌 150-200여 페이지면 썼을 책의 내용이 필요없이 길어지고 장황해졌다는 것은 분명이 문제가 있다. 어떻게 보면, 독서경영이나 이슈화 된 책을 주로 쓰고 강의한 작가의 모습이, 그가 주창하는 올바른 '작가'의 모습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같은 글과 작가가 자주 중복인용되어 저자의 콘텐츠, 아니 저자의 지식과 통찰이 조금은 얕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정도는 읽고 용기를 받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결론.
이렇게 하여 지난 주간에 읽은 책을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기적의 글쓰기' 같은 경우에는 따로 리뷰를 쓰면서 깊이 해부할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