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바쁜 일주일이었다.  게다가 예정에 없던 일을 하느라 계획한 큰 케이스의 진도를 거의 나가지 못한 덕분에 다음 일주일 안에 두 개의 케이스,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하루를 꼬박 써야하는 케이스를 두 개나 진행해야 한다.  부담이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터지는 일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같은 작가의 책을, 그리고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연달아 읽은 탓일까.  덕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것 같지 않은 괴상한 경험을 했다. 스토리가 기억속에서 다 찢겨 파편으로 조금씩 남은 것.  두 친구의 이야기나, 예전에 죽은 소녀가 쌍둥이 이모의 아들을 만나 과거를 한 바퀴 돌고 마치 49제를 마치고 떠나는 영혼처럼 그렇게 가버린 이야기라든가, 타히티 음식점과 섬, 사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까지, 그냥 다 버무려진 것 같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깊숙이 한땀씩 다가올 소중한 이야기들인데.  괜히 미안해진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서점을 경영하는 윤성근님의 책. 내가 읽은 그의 세 번째 책이고, 다른 두 권인가는 지금 배송을 기다리고 있다. 나름 소박한 꿈이지만, 나중에 좀 일찍 은퇴할 수 있게 된다면 작은 한국어책을 파는 서점을 꾸려보고 싶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고, 좀 늦게 돈을 벌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냥 head first로 rush-in하기엔 무리라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분은 high tech venture에서 꽤 좋은 직장을 갖고 있던 서른에 바로 서점을 열고 원하는 삶속으로 완전히 뛰어든 대단한 이력을 갖고 있다.  75년생이니까 대략 10년 이상을 동네서점판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요즘 시대엔 대단한 일이다.  물론 복합문화공간으로써의 서점으로 차별화를 꾀했고, 헌책방으로 꾸려진 덕을 본 점도 있을텐데, 이는 이분이 서점을 차리던 당시엔 상당히 독특한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그 발상의 originality도 상당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한 달에 두 번 정도 말 그대로 '심야책방'을 열어두고 밤새 책을 읽고 노는 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는데, 이게 또 대단한 아이디어다.  특히 더운 여름밤, 또는 긴 겨울밤 이렇게 시원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밤새 책에 둘러싸여 있는 건 참 멋진 일인데, 기껏해야 찜질방이나 술마시는 것 말고는 온밤을 아우르는 놀이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이런 멋진 곳이 생겼으니 이 또한 책쟁이들의 복이다.  듣기로는 헌책에 대한 사랑이상 내공이 상당하고 꽤 값이 많이 나가는 절판도서를 많이 갖고 있다고도 하는데, 폐쇄적인 나의 경향과는 달리 구경도 시켜주고 원하는 책도 구해준다고 하니 더더욱 가보고 싶고, 만나보고 싶은 분이다.  초기에는 책전문가라는 사람으로 행세하는 모씨에게 심한 말도 듣고 해서 속상해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사연이 나와있다), 어느새 이렇게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살아남아 당당히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작은서점의 밝은 미래를 보게 된다. 


그가 갖고 있는 멋진 판본의 절판도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는데, 예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느낌이다.  나도 갖고 싶은 책이 있어 혹시나 하고 알라딘을 찾아봤지만, 이 책에서 소개된 녀석들은 그 정도의 정성으로는 근처에도 갈 수 없을 만큼 귀한 몸이라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서점리스트를 뽑아서 하나씩 발품을 팔아야할 것이다.  하나씩 둘씩 사라져가는 고서점들이 너무 아쉽다.  내가 가볼 수 있는 곳은 몇 개나 될까?  살짝 한숨이 나온다. 


주문한 책이 한꺼번에 도착해서, 다음 주중으로 큰 케이스 몇 개를 정리하는 즉시 사무실을 엎고 부모님댁이나 아파트에 가져다 놓을 책을 추려야만 한다.  앞으로도 4-5번의 배송이 남아있고, D/C를 받기 위해 액수를 맞췄기 때문에 한 배송에 적게는 3-4권 (열하일기 같은)에서 많으면 10-15권이 되기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이렇게 소중하게 모아들인 책과 미디어를 잘 정리해서 장샤오위안 교수처럼 개인서고를 만들고 푹 파묻혀 책을 읽고 몸을 단련하면서 말년을 살아갈 것이다.  아직은 먼 미래이고, 게다가 늙는 것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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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5-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서고를 만들고 책을 읽고 몸을 단련하고... 좋네요. ^^ 아무리 늙어도 건강, 특히 시력이 쇠하지 않고 읽을 책이 있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6-05-31 05:59   좋아요 0 | URL
눈의 건강이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당근쥬스와 결명자차를 매일 마셔야할 것 같습니다.ㅎㅎ

cyrus 2016-05-29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상북에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군 제대하면서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군요. ^^

transient-guest 2016-05-31 06:00   좋아요 0 | URL
가을밤 정도에 먹을 것 조금 싸들고 가면 좋겠습니다. 가서 밤을 넘기면 책을 읽고 머물다 오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ㅎ

몬스터 2016-05-29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금요일엔 병원에 다녀올 일이 있었거든요. 몸과 마음 건강한 상태로 살다 갈수만 있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저는 요즘 아무도 상대 안해줘서 (ㅎㅎ) 혼자 열심히 놀고 있습니다. ㅎㅎ

transient-guest 2016-05-31 06:01   좋아요 0 | URL
몸과 마음 둘 다 건강해야 오래 일하고 즐길 수 있지요.ㅎ 이젠 저도 슬슬 이런 저런 검진을 받아봐야하는 나이가 된 것 같네요. 혼자 노는 건 어쩌면 놀이의 정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꽤 좋아해요, 혼자 노는거..ㅎ

yamoo 2016-06-0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말년 준비를 제대로 하고 계시네요~
몸과 마음 그리고 물질,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추어지지 않는 이상, 책에 파묻히고 몸을 단련하는 노년은 그림의 떡인 듯합니다..^^;;

transient-guest 2016-06-03 14:2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겠지만, 조금 일찍 준비를 시작하면 생계유지비가 비싼 곳을 떠나고, 다른 방법을 찾는 등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삼박자에서도 비중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