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일년에 다섯 군데는 돌아다니자는 계획을 세웠다. 일단은 여행이든 일이든 구분없이 다섯 군데를 채워넣기로 했다. 그 결과, 작년에는 이런 저런 일로 (1) 뉴욕 두번, (2) DC 한번, (3) Oahu 한번, (4) 나파밸리 두번, (5) 샌프란시스코 두번 - 그간 가보지 못했던 곳들로 일정을 잡았으니 여행으로 계산했다. 써놓고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것, 이를 통한 시간화와 구체화가 꽤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년에도 다섯 군데 이상을 돌아다니자는 여전히 막연한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 외에도 세부적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목록에 올려 놓았다. 일단 시작은 좋다.
한번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나니, 가끔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아니, 남은 삶을 reset해서 책에서만 읽는 노마드가 되고 싶기도 하고 (5년씩 세계를 돌면서 일하다 여행하다를 반복하는 등),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물론 현실은 남은 생을 위해서 열심히 벌어 축적해야 하는 아.저.씨. 꿈이라도 꾸는 것이 그나마 아직은 내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겠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개개인의 이유로 일본에서 유학생이나 관광객이 머무는 것 이상의 시간을 그들 속에서 살아본 매우 생생한 이야기들. 그런데, 이것을 책으로 엮어낼만큼의 가치는 솔직히 모르겠다. 블로그에 올리는 수준의 글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지만, 책으로 모을 만큼의 수준인지는 모르겠다.
'한 번쯤 일본에서 살아본다면'이라는 담담하면서도 감성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에서는 기획의 냄새도 나고. 책이나 책의 내용이 특별히 나쁘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일고 나서의 허탈감은 좀 그렇다. 뭐랄까, 마치 성공학 독서모임이나 세미나의 마지막 강의시간에 쓴 수강생들의 글짓기를 모아서 책으로 냈다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에서 다뤄진 삶에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꽤 흥미롭게 다가왔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어느 정도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간다는 것, 이런 것들이 모이면 나도 언젠가는 꼰대가 될 수도 있음이다. 그래도 이 책은 그저 그랬다는 점이 온전히 내 탓은 아닌 것 같다.

일단은 대단한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다음, 관광이 아니었을, 말 그대로 '여행'이었을 이 아이의 첫 세계여행에서 큰 공감을 얻지는 못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어린 시절에 많은 곳을 떠돌아보지 못한 것이 큰 미련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런 여행에 대한 모호한 동경이 없지는 않지만,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돈을 적게 들이고 어떻게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떠돎은 일견 멋지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보다 더 편견을 갖고 이 아이의 여행을 들여다보게 했다. 그래도 좋은 팟캐스트에서 추천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기에 더더욱 조금이지만 꾸준히 느껴진 실망감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젊은 사람의 시간을 질투하는 노인네의 심정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왜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이 와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 '이건 좀 아닌데'하는 생각을 하게 했을까? 의문이다.
일단 고생하면서 다니기엔 나이도 시간도 부족하다는 점도 있고, 없으면 그냥 안 다니는 체질이라는 점도 있고, 카우치서핑이든, 우연이든, 남의 신세를 지는 것도 그다지 맘에 내키지 않는 성격도 있고, 외국에 대한 동경이랄까, 꼭 유색인종이 아닌 백인종에게만 느껴지는 듯한 동경이나 연애감정도 그렇고, 예전에 손미나의 책을 보면서 잠깐 느낀 그런 것들을 어김없이 이 여인네의 책에서도 느꼈는데, 내가 한국을 떠난지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보수적인 부분과 리버럴한 부분이 묘하게 섞여있는 사고를 갖고 있지만, 유독 아시안 여인네의 눈에서 보는 훤칠한 백인 남정네에 대한 묘사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할 때가 있는데, 왜 여인네들의 여행기에서는 이런 것들이 빠지지 않을까. (이 아이가 연애질을 했다는 소리가 아니다. 했으면 또 뭐가 문제인가 사실?)
살아오면서, 자신의 내면을 감추던 가식의 껍데기가 힘든 여행을 통해서 벗겨졌다는 것만으로도 이 여인네의 여행은, 성공이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보다 큰 시각 또한 부수적인 이득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돌아다닐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의 내가 공감을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나도 이 여인네의 또래였다면 이 책에 혹해서 험지로 일부러 달려갔을 수도 있음이다.
그래. 내 감정은 질투일게다. 이제 그렇게 못한다는 아쉬움과 그렇게 하지 못했음에 후회하는 질투.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도 철이 제대로 드는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인도는 갈 생각이 없다. 평생 돌아다녀도 다 못 돌아다닐 터. 좋은 곳들만 골라서 다녀도 죽을 때까지 다 못볼 것이니까. 고생을 해야만 집나간 영혼이 돌아오는 것도 아닐 것이니까. 내 고생스러운 여행은 산티아고 순례나, 존 뮤어 트레일 정도, 좀 무리하면 애팔라치아 트레일 정도가 상한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