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는 한국영화나 미국영화와는 또다른 맛이 있다.  중국영화랑 비교해도 다른데, 일단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되는 영화는 내 경험과 입맛에 근거하면 대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잔잔한 일상으 그려내는건 다른 어느 나라의 영화보다도 괜찮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전에 여러 번 보았고, DVD로도 소장하고 있는 '4월 이야기'와 최근에 보고나서 동명의 원작까지 읽게된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떠올린 두 편의 일본영화이다.  


'4월 이야기'하면 장나라가 아이유 대접을 받던 시절의 노래를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마츠 다카코의 리즈시절이 가장 아름답게 나온 영화로 나는 추억한다.  지금 보니 HD remaster로 다시 나왔다고 하는데 다시 구매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OST는 예전부터 갖고 싶었지만 절판되지 오래라서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다.  나름 청춘의 시절에 여기서 나오는 대사와 장면 하나하나가 어쩌면 그렇게 예쁘게 보이던지.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도쿄대학교에 짝사랑하던 선배를 좇아가는 사연과 줄거리가 지금와서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그게 가능하기나 해?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비오는 일본의 여름도 그렇고 - 한국의 장마철이 그리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지금 보아도 잔잔한 감동에 빠져들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우선 부러움이다.  개화기에서 근대를 넘어 현대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일제의 식민지로 치뤄낸 덕분에 친일/부역/반공/뻔뻔함 같은 것들을 떠올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한국의 근대작가들에 비해 훨씬 많은, 그리고 존경할만한 근대소설의 아버지들을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부러움 말이다. 


한국에서의 헌책방운영이 쉽지 않은 까닭은 워낙 낮아진 독서인구, 비싼 임대료를 비롯하여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근대저작물 원본의 부재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모리사키 서점이 취급하는 '근대소설'이라는 특화가 한국에서는 쉽지 않을 것인데, 물론 우리도 6-70년대의 작품을 모아놓은 서점을 만들수는 있겠지만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요컨대, 경성시절에 출판된 이광수, 심훈을 비롯한 작가들의 책을 모아서 서점을 만들 수 없을 것이란 점, 게다가 상당히 많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결국에는 변절했거나 반공/독재에 편승했기 때문에 이들의 책을 모아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이다.  심각한 오류와 굴절된 시각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내 머릿속을 스쳐가던 생각이었다.


왜 어떤 사람은 즉문즉답이 술술 나오는 언어와 사고의 순발력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나도 주인공처럼 바로 당시에 맞받아치는 사고보다는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면 할 말이 많아지는 스타일이라서 주인공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나마 비오는 날, 달려가서 하고싶은 말을 다 뱉어낸 것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그냥 그렇다고.


아참. 4월이야기의 선배가 일하는 무사시노의 책방이나 모리사키 서점이나 둘 다 책과 서점이 나온다는 점도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이래저래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고 난 다음부터 여러 가지로 좋아지고 있다.  아직은 목표점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살면서 그곳까지 갈 수 있을지도 심지어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걸음씩 걷고 있다는 것에서 가끔이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의미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4월이 다음주면 벌써 중반이다. 이제 2015년도 벌써 1/3이 지나가는 셈이다.  이번 해를 살은만큼 더 가면 8월이고, 9월이면 다시 NFL시즌이 돌아온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4-09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리사키는 영화를 먼저보고 책을 구입했는데 잔잔하고 좋더라구요 그리구 일본 특유의 느릿하게 전개되는 영상미에 대한 묘한 끌림도 있었구요 ㅋㅡㅋ,,

transient-guest 2015-04-10 01:46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필름색깔도 좀 뭐랄까, 이런 영화들 특유의 파스텔톤이라서 더더욱 잔잔하게 다가옵니다.ㅎ

세상틈에 2015-04-0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영화에 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도 `모두` 잔잔한 일상을 담은 영화였거든요.

transient-guest 2015-04-10 01:47   좋아요 0 | URL
저도 일본판 블록버스터는 재미있게 본 기억이 없고, 이런 일상의 영화만 기억에 남았네요.

cyrus 2015-04-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성근씨의 책에서 본건데 일본은 고서의 기준이 명확해서 시대별 고서를 취급하는 고서점이 많다고 해요.

transient-guest 2015-04-10 01:47   좋아요 0 | URL
그런 정리도 어렵고, 우리는 한국전쟁,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념전쟁 동안 없어진 책도 많아서 더더욱 어렵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