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나니,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로맹 가리의 인생 내내, 어머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음을 알 수 있었다. 누가 보아도, 매우 성공한 그의 인생 - 참전용사, 국가영웅, 작가, 정치인 - 이 과연 그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아마도 자기 자신의 목숨을 버린 것이 거의 유일한 그 자신만의 인생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이나 대리만족적인 존재로서의 삶의 결과가 이런 성공한 인생이었음을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닐런지? 아니, 그제서야 자각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인생에 자기의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음을.
어머니의 강력한 자기암시의 예언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로맹 가리의 인생이었음은 비극과 희극적인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읽는 내내, 줄거리가 낯익어서 혼났다. 분명 읽은 기억은 없는데. 그만큼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세계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의 작품에 너무도 익숙해 진 것인지. 처음에는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던 많은 기술적 요소들이 진부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탓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유독 잘 팔리는 작가들 중 하나라는 '오명'아닌 오명을 달고 있는 그의 다음 작품은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유머를 소재로 하여 작가 특유의 입담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유머의 소재를 인터넷으로 제공받았기 때문인지, 예전에 최불암 시리즈에서 본 유머들까지 각색된 점은 pro인지 con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 유머의 시작이 최불암 시리즈였는지조차도 가물가물할 지경. 그래도 그의 애독자라면 소장할 가치가 있음은 충분.
우리 시대 최고의 글쟁이라고 - 작가보다는 - 생각되는 조용헌의 최근작. 조선일보에 쓴 칼럼을 모았는데, 한국신문을 보지 않는, 보더라도 조선일보를 볼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조용헌의 동양철학, 사주, 강호, 고수 등의 이야기는 일상을 탈출할 수 없는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언젠가는 나도 모든 것을 던지고 좀더 안빈낙도하는 삶으로 이사갈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보수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보수라고 하겠다. 그의 정치관은 알 수 없지만, 글로 먹고사는 사람으로서 글 앞에 솔직한 그의 모습이 좋다. 글고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은 보고 배울지어다.
로쟈의 강의를 모은 책. 이번에는 글자의 크기가 너무 큰, 즉 상대적으로 내용이 짧다는 점이 좀 별로이다. 하지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문학/책 강의에 참가할 수 없기에, 이런 것을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좋다.
일부 이야기들은 새롭게 느껴지지만, 솔직히 다루어진 책과 강의수준은 나에게는 좀 낮은듯. 주부강좌나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요즘의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강의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로쟈의 강의에 직접 나가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궁금한 점을 묻고 싶다.
Etc.
그 밖에 읽은 것들. 신의 물방울은 슬슬 지겨워 지는 듯. 한때 와인붐에 편승해, 와인더쿠를 양산하기까지 했었던 만화지만, 이제는 결말을 지을때가 된 것 같다. 도서관의 주인은 여전히 동심의 세계로 가는 길목. 동화를 구해서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만화. 우라사와 나오키의 초기 단편 모음은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습작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분간 만화에만 눈이 갈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