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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 성장이 멈춘 세계, 나와 내 아이는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요르겐 랜더스 지음, 김태훈 옮김 / 생각연구소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경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환경 분야는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기업들은 친환경 제품을 마케팅 코드로 삼으며, 스마트해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이런 관심은 순식간에 뒤로 밀려나 버렸다. 무늬만 친환경을 세웠던 어떤 정치인의 거짓말에 경제만 살아나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들의 욕망에 모른 척 했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원자력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어느 순간인가 친환경적인 에너지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무감각적인 수용과 착각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서 깨졌다. 여전히 경제적이라는 가치를 붙여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우호적 태도를 견지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경각심은 그동안 무관심했던 사람들에게도 점점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은 경제 위기 발생 전과 비교하면 많이 후퇴한 상태다.

 

요즘 나타나고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또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근시안적 걱정의 발로다. 국민 연금에 대한 불신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령화와 기금고갈 문제다.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다 보니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이미 먼저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도 지금 그 문제가 부각되면서, 국민 연금에 대한 불신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 저 잘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면을 보면 이들도 지극히 미래를 보지 못하는 지극히 근시안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주의 생각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노후를 충분히 자신이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근시안적 존재다. 미래를 대비하기 보다는 현재를 살기 바쁘다. 그래서 개인이 노후를 준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국민 연금이 생기기 전, 지금 노년을 살고 있는 많은 분들이 현재 심각한 노후의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현실이 근시안적 시각을 가진 인간의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다.

 

인간의 시각은 대부분 근시안적이다. 지금 닥친 현실의 문제도 해결하기 급급한데, 앞으로 미래의 문제를 걱정하고 준비할 만큼의 여유가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음에도 미리 대비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런 근시안적 시각 때문이다. 꿈은 꾸지만,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 계획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보다는 자신의 현실에 급급하다. 그럼에도 인류는 진보 하지만, 그 진보가 더 나은 미래인지 아니면 더 나쁜 미래인지 아무도 쉽게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작은 현실들의 조합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가 결코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현실을 치열하게 살면서 지금 존재하지만, 지금 그 치열함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가는 현실이 결코 미래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사회적 관계를 망각한 그런 개인적인 시각은 사회적 변화가 개인에게 주는 영향의 힘을 과소평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의 미래를 낙관하는 몇몇 사람들은 다가올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기술로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나 기술이 발전에 인류의 역사에 기원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신에게 이르고자 바벨탑을 쌓았던 바빌론 사람들처럼, 신 만큼 거대한 자연의 힘에 대항하고자 하는 기술적 낙관주의의 결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지금부터라도 다가올 미래의 현실을 고민하고 다시 설계하려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가올 미래는 이 순간 순간이 쌓여서 결정하는 것인 만큼, 앞으로 미래를 위해서 조심스레 이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너무나 낙관주의 생각인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의 처음에 이런 낙관적인 이상주의를 믿지 않는 것 같다. "가능한 세계를 꿈꾸는 것보다 미래에 우리가 살게 될 세계를 아는 것이 마음을 더 차분하게 해준다. 마음의 평화로 가는 첫 걸음은 미래를 정확히 그리는 데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접어야 한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저자는 그 만큼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현실적 제안을 내놓는 것 같다.

 

그 만큼 저자와 다른 학자들이 보여주는 앞으로 미래는 희망적이지 않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비롯해서, 경제 발전에 대한 무조건적 낙관적 희망도 이 책은 꺾어 버린다. 현재의 기대와 낙관이 오히려 미래에 얼마나 해악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몇몇 예측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현실을 빗겨 난다. "잠재 노동인구에 속한 각 개인이 부양하는 사람의 수는 지난 40년 동안 줄어들었다. 이것은 갈수록 늘어나는 노년 인구를 부담해야 할 젊은 생산인구가 줄어든다는 우려 섞인 공적 논의와 대치된다. 진실은 많은 사람이 잘못 가정하듯 부담이 계속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는 저자의 추정과 데이터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기존 경제학적 관념에 대해서 저자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한다. "성장"이라는 목표에만 매진하는 경제의 한계를 지적한다. "성장이 언제나 우리를 더 잘 살게 만든다는 것은 표준 경제학의 기본 논리 중에서도 기초적인 오류다. 우리는 언제 성장이 비경제적으로 바뀌는지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시점부터 성장을 멈추고 '정상 상태 경제'를 운영해야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며, 오로지 '한계 없음'의 이데올로기에 종교처럼 헌신한다. 우리는 성장이 나눔 없이 또한 우주 만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생태적 지위를 제한하지 않고 빈곤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경제적 기득권을 획득한 이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이야기 같지만, 저자는 기존 경제체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향후 40년간 일인당 소비 증가율이 느려지고 성장이 정체하거나 하락하기 시작하면 늘어난 파이 조각을 나누는 방식으로 긴장을 완화할 수는 없다. 유일한 해결책은 기존의 파이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자들의 몫을 빈자들에게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개인들에게 이렇게 또 말한다. "소득보다 만족도에 초점을 맞춰라.". 그러면서 "만족은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두면서 신념을 위해 일할 때 느낄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면 즉시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조언한다. 부에 대한 열망보다 행복이나 만족에 대해 열망하는 개인이 늘어야 경제적 관점에 대한 패러다임이 변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복도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다가올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중국의 정치 체계를 높이 평가하는 점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민주사회에서 인간의 노력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지식 부족이 아니라 합의 능력 부족이다."라고 지적한다. 이는 미래를 위한 결정에 있어서 지금 직면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래서 오히려 중국의 정치체계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결정이 빠를 뿐만 아니라 정책의 집행능력도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 많은 이들의 피로 얻어낸 민주주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한 지적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전히 민주주의 가치는 어떤 정치체제 보다도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인류의 의식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민주주의 발전 단계를 해석하는 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1차 산업발전은 생존의 가치에 중점을 둔 인류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2차 산업발전을 거치면서 인류는 자기 표현의 욕구를 표출하기 시작하고, 다양성의 가치와 타인에 대한 배려 그리고 환경에 대한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인류의 의식 변화과정을 보면 개발에서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는 가치변화를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있다. 경제라는 가치를 최고로 치던 문화에서 다양한 가치 문화를 인정하고 중시하는 변화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지금 경제 위기로 사회가 다시 생존의 가치를 우선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더 나은 다양성에 대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미래가 제기하는 주요 과제는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는 '합의'에 있다. 진정한 과제는 사람들, 특히 자본가들이 단기적인 희생을 감수하고 힘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저자의 바램이 지금 당장은 어렵지라도 머지 않아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비관적인 말로 시작했지만, 책의 끝에서 저자는 인류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임박한 재난의 가능성으로 좌절하지 마라. 장기적인 미래의 부정적인 전망이 희망을 죽이게 하지마라. 가능성 작은 일에 희망을 가져라! 가능성 작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라! 또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전히 미래 세계가 있을 것임을 기억하라. 가능한 것보다 덜 아름답고 덜 조화로워도 여전히 미래 세계는 존재한다."라고. 이 책의 제목 처럼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우리를 더 나은 미래가 오도록 만들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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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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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털리티 -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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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대 여성들을 겨냥한 옷들에 주요 소비자층에 40대 이상의 여성들 비율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패션에 대한 나이의 파괴 현상은 비단 여성의류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남성들의 패션도 점점 더 나이 파괴 경향을 보인다. 중년의 남성들이 보다 젊어 보이기 위해서 캐주얼 같은 의상을 구입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 뷰티나 성형 산업에 쏟아 붙는 돈의 규모는 익히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최근에는 남성들도 성형이나 뷰티 산업에 큰 손이 되고 있는 경향은 주목할 만하다. 남성 화장품 시장의 경우 우리나라가 매출 기준으로 세계 1,2위를 다투는 규모라는 것을 보면, 보다 젊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은 여성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까지 널리 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외모만으로 상대방의 나이를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다 젊게 보이려는 욕망에 사람들의 외모는 점점 젊어지고 있다.

 

외모 뿐만 아니라 기존 관념으로 나이 대에 맞는 취미나 행동들이 있는데, 흔히 말하는 나이 값도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나이 값이라는 것이 뭘 뜻하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사회적 기준으로 아무도 모르게 정해진 그 기준이 개인의 자유스러운 행위와 행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잣대를 강요하게 만든다. 다른 한 편에서는 "피터팬 증후근"이라는 것이 있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린이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심리로, 정신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단순히 사회적 변화나 인식의 변화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나이에 대한 다양한 편견들로 인한 대중들의 인식들이 바로 이런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특히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강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 이런 현상들이 강하게 퍼지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들을 이 책에서 말하는 "어모털족"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저자는 "나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나이에 어울리는 것인지에 대해서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나 꿈을 꾸고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가장 먼저 써보고 싶어한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아이를 낳고, 배우고, 일하는 등 인생의 모든 선택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행동한다. 이들이 바로 '어모털족'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 없는 패션을 소비하는 집단을 여기에 집어 넣고 어모털 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어모털족이라고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들은 단지 젊어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지 나이를 잊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반응을 뿐이다.

 

오히려, 나이 값 못하는 사람들이 어모털족에 가까운 것 같다. 저자가 정의하는 어모털족의 특성, "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이 소비하는 사람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이런 사람들이 늘어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의 개성을 내세우면서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그들의 개성을 이해하는 대중의 관용이 조금씩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배우는 나이별 이칭 "지천명, 이순, 불혹" 등과 같은 것들이 점점 의미가 없어진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정보와 지식에 대한 무한한 접근을 비롯해 늘어나는 수명은 나이별 이칭이 가지는 의미 퇴락은 어모털족이 등장하기 이전부터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어모털족에 대해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때론 비판적으로 때론 긍정적으로 다양한 시선을 동시에 쏟아낸다. 요즘에 유행하고 있는 힐링, 즉 치유 문화에 대한 접근은 대표적으로 비판적 시선이 보인다. "치유 문화는 어모털족이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어모털리티와 같은 뿌리, 곧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거부, 그리고 인생의 각 단계에 대한 기존의 관념들을 약화시키는 현상으로부터 튀어나온 것이다. 그리고 도착예정시간이 없는 여행과 같은 새로운 치유법들은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보다는 희망에 찬 여행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어모털족들에게 언제나 매력적인 제안이다. 치유 화법에서 '여행'이란 그 자체로서 야심찬 종착지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저자의 분석에 의문이 간다. 오히려 "혼자서 볼링하기"라는 책의 저자 로버트 퍼트넘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의 붕괴 또는 약화라는 문제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포관리이론"으로 어모털족을 분석하려는 경향 역시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일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더 많이 겪을수록, 일부러 위험을 떠안는 방법이든, 아니면 자존감과 성과를 끌어올니는 방법이든 죽음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방법을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어모털족의 행동이다." 이런 경향이 과연 어모털족에만 있는 것일까? 죽음과 공포를 피할 수 없으면 주의를 분산 시켜려는 행동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쉽게 발견되어 질 수 있는 행동이지 않을까? 인간은 쉽게 죽음과 공포에 굴복하지 않았고, 그래서 혹독한 자연환경과 싸웠고, 그것을 피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이루지 않았던가? 이런 식의 단편적인 접근은 어모털족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보인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는 부분 중 "젊은 노동자들이 IT를 이용해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하는 것에 비해 나이 든 피고용인들은 훨씬 더 헌신적으로 일을 했다. 랭커스터대학교 경영대학의 연구에서는 다양한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인 노동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연구 내용의 소개는 어모털족 뿐만 아니라 모두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잠재적 세대 갈등이 폭발하려는 현재에 사회적 다양성이 나이에 대한 다양성도 필요함을 보여준다. 그 만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나이에 대한 편견이 잘못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도 같이 다양한 나이 대의 사람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분석을 하면서 어모털족을 이야기하지만, "어모털리티는 특정한 자기애적 특성을 정상으로 간주하며,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주의를 좋아하고 절대자와 공적인 생활에 대한 믿음을 잃은 세상의 산물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이 가장 어모털족에 대해서 잘 접근한 것으로 보여준다. 결국 어모털족은 라이프 스타일이나 의지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과 강력한 믿음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향과 믿음은 자기 표현의 욕구가 충만하고, 그런 표현의 욕구를 관용할 수 있는 사회에서 더 강하게 확대 될 것 같다. 이 책은 몇몇 부분에서 아쉽지만, 어모털족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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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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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자기계발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자본주의의 핵심 발전 원동력으로 많은 학자들은 사유재산제도를 꼽는다. 사유재산은 개인에게 강력한 동기를 제공했고, 자본주의 발전에 강력한 힘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폐해를 인식하고 사유재산을 금지하며 탄생했던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 사유재산이 제공하는 동기와 그 역동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사유재산의 무한한 확장은 자본의 무한한 확장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양한 형태의 사유재산을 만들어냈으며, 개인의 욕망 또한 점점 커지게 만들었다. 시장을 감시해야 될 정부라는 존재조차 어느 새 자본의 힘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얼마되지 않은 자본으로 과거의 어느 귀족 못지 않은 권세를 누리는 사회적 현실은 바로 그 자본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형태에서 나온다. 그것은 주식회사의 이데올로기고, 그 이데올로기에 정부와 다른 사회적 조직까지 잠식하기 시작했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기업을 경영해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 받았던 잭 월치는 은퇴후 주주자본주의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 이 책은 그런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실체에 접근하는 길잡이가 되지 않을까?


 한 때 웹 2.0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처럼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인터넷 공간에 전반적으로 웹2.0이 자리잡고 있다. 웹  2.0의 기본 정신은 웹을 넘어서 실생활까지 파급을 줬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 "위키노믹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가 가지는 힘을 보여준다. 폐쇄적인 조직보다는 얼마나 개방된 네트워크과 생각이 앞으로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소비자까지 연결하는 초연결 기업들을 사례를 통해서 어떻게 이런 변화를 따라 잡아야 할 것인지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소통하며 공감받지 못하는 기업은 쉽게 도태되는 기업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일본 전자회사의 몰락, 노키아의 몰락, 지금 대두되고 있는 애플의 위기는 바로 새로운 경영환경과 경제의 흐름이 얼마나 급변한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그런 환경에서 생존의 길을 제시해 주지 않을까?


 새정권이 들어섰다. 자뻑과 자화자찬으로만 치장했던 지난 5년을 이제는 제대로 평가하고 앞으로 5년을 준비해야하는 시기다. 그런데 여전히 지난 5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보이지 않는다. 비판적인 언론이 점점 도태되고, 비판적인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던 지난 5년과 새로 시작할 5년이 별로 다르지 않다고 평가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된 평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기, 결국 새정부가 보여주는 것은 지난 5년보다 더 후퇴하는 정책과 자신의 공약마저 스스로 철회하는 기이한 형태를 보인다. 과거의 추억에 기대어 사는 중년들과 그들의 추억을 먹고사는 정치꾼들은 시효가 지난 새마을 운동이라니 한강의 기적 같은 구호를 내세운다. 그런 레토릭에 넘어가는 것은 앞으로의 5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10년이고 했던 일본의 경제가 지금 잃어버린 30년으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현실에 직면하게 만들수도 있다. 지난 5년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앞으로 5년의 경제계획은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 책은 그 길의 첫걸음이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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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3-03-0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추천페이퍼 체크 완료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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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기적의 비밀 - 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 왕국이 됐을까?
이영선 지음 / 경향BP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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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어떻게 벤처왕국이 됐을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서적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회문화에 대한 서적으로 보는게 가까울 것 같다. 이 책의 전반은 이스라엘의 문화와 민족적 특징들을 나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벤처기업문화를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의 몇 몇 문화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나 문화가 좌우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후에 따라서 각 지역의 삶의 행태나 철학들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사회 문화가 가지고 있는 힘이 가장 강력한 경제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상적인 "탈무드"와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다양한 문화 상품들은 이스라엘에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 사회의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정보는, 결코 그 나라를 좋은 시선으로 보게 만들지 않는다.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도를 넘는 듯한 무자비함은 그들이 증오를 내뿜는 테러리스트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그들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정당화되는 국제사회의 또 다른 모순은, 국제사회에 힘의 논리가 얼마나 작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야만성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사건을 비롯해, 과연 정상국가의 군인으로써 할 수 있는 행위인가 의문이들 만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의 분리를 위해 장벽 설치를 가로 막던 미국의 여대생을 중장비로 깔아 뭉게 죽인 사건이다. 그들의 적대국 사람이 아니라 평화운동가인 평범한 여대생을 충분히 힘으로 끌어낼 수 있었음에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건이다. 외교적 문제로까지 비하 될 수 있는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시간이라는 지우개 여대생의 죽음을 점점 잊게 만들어 버린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이런 폭력성은 어떤 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수 많은 적대국으로 둘러 싸여 언제든 전쟁에 노출된 국제적 현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논리로 충분히 설명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방어적 폭력성이라는 것은 때론 그 한계를 쉽게 넘어 버린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스스로에 대한 방어를 넘어서 공격적 폭력성으로 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무자비 하게 총을 쏘기도 했던 그들의 모습은 두려움과 공포가 만들어 낸 잔혹한 폭력성의 형태이다. 이런 표면적인 것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이해한 다는 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 일수도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이 책이 어떤 점에서는 반갑게 다가온다.

 

특히 이 책의 내용 중에 인상적인 것은 문화의 다양성이 넘치는 이스라엘의 인구구조다. 2천년의 떠돌이 생활로 인해서 같은 정서나 문화를 완전히 공유하지 못하는 다양한 지역과 국가 출신의 유대인들이 유대교라는 하나의 가치로 뭉쳐있다는 점이다. 이런 출신지역에 따른 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갈등을 이 책은 보여준다. 출신지역에 따른 갈등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출신 유대인의 힘으로 기술적 비약과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는 경제와 생존이라는 가치가 더해지면서 필요성에 의한 것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생존이라는 가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이스라엘이 문화적 다양성을 어떻게 보면 많이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이 잠재력이 폭발할 때는 아마도 이스라엘은 더 무시무시한 국가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변국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이 과연 얼마나 통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미국과 전세계의 유대인 네트워크의 힘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서 강력한 힘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상대방의 분노를 자극하는 그들의 행위는 언젠가 그대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책을 통해서, "관용"이라는 힘을 설파하고 있다.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들의 힘은 단순한 힘이 아니라 "관용"이라는 가치라고. 계속해서 적을 만들고 상대방의 분노를 쌓아가게 만드는 이스라엘의 정책은 자신들의 우군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힘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2차 대전 때 학살 당한 유대인에 대한 미안함 만으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감싸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보여지는 이스라엘이라는 사회와 문화는 분명 지금까지는 성과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지는 또 다른 내용은 분명 그 한계도 같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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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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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 지음, 이진원 옮김, 이호욱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자기계발서들은 읽을 때는 희망과 용기를 준다. 때론 그것이 위로가 되어서 나도 할 수 있는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열정을 잠시 불사르게 만든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를 소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읽으면서 느꼈던 희망과 용기로 지금 보다 나은 자신의 삶을 원했지만, 아직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보고는 다시금 그들은 다른 자기계발서를 통해서 위안과 자신도 뭔가 노력이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자기 변명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무용성을 깨닫기 전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명언사전에서 봤을 법한 말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는다. 읽는 그 순간에는 독자를 매혹시키버리는 화려한 수사와 성공담은 그 찰나의 순간만 남을 뿐이다. 결국에 저자가 아니라 ''라는 인간에 그것이 바로 적용될 가능성은 지극히 없다. 저자와 ''가 그 당시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가치는 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자기계발로 유명한 한 강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의 가치는 언제나 '성공'이다. 그가 설파하는 자기계발의 가치에는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적자생존의 가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서 경쟁의 최고에 올라야 한다는 냉혹한 적자생존의 정신을 그대로 설파하고 다닌다. 이러한 자기계발의 방향성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한데, 그 강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다. 철저하게 성공이라는 가치만 추구하게 만들어 경쟁이라는 가치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때때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로 보이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원하든 사람이든 원하지 않든 사람이든 성공을 위한 경쟁에 몰아넣는다. 그 경쟁에 점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경쟁의 경로를 벗어나기 위해서 때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높은 자살율과 함께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의 증가는 '성공'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적자생존 사회에 나타나는 위험신호가 아닐까?

 

왜 우리사회의 분위기는 성공과 경쟁을 강조하는 것일까? 인류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연구한 것을 보면, 초기 인간들에게는 생존의 가치가 가장 높았다고 한다. 인간이 무리 생활을 하게 된 이유도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 농업 사회로의 전환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였다. 산업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게 되었고, 그 때부터 인류에게 생존의 가치는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된 자기계발의 탄생과 열풍은 대공황으로 인해 생존의 가치가 다시금 주목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경제위기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생존 가치는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했으니까. IMF이후에 우리나라의 자기계발서 열풍은 경제위기로 인해 생존가치가 절실하게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이후의 트라우마랑 변한 사회구조가 가지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생존의 가치를 높게 취급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경제와 주변 환경이 생존을 최고의 가치가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생존이라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로 여길만한 환경일까? 우리는 이미 IMF를 극복했고, 지금의 경제 발전 상황은 눈부시기만 하다. 그럼에도 생존이 삶의 최고 가치가 되는 것은 경제 지표가 보여주지 못하는 이면, 즉 눈부신 경제의 성과가 사회 전반에 골고루 퍼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생존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경제는 발전하나 문화나 사회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화는 경제 외에도 다른 문화적 가치를 변화 시킨다. 권위와 과거 폭압에 대한 향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퇴보 시켰다. 파시즘의 등장이 우려되는 "일베"라는 집단이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고,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민주주의의 후퇴는 바로 현실이 되고 있다. 과거의 향수에만 목메는 기성세대와 증오의 파시즘으로 무장하고 있는 젊은 극우집단의 성장은 80년대 거품이 무너지면서 몰락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생존의 가치를 최고로 치는 사회 분위기의 급격한 확산을 바탕으로 경쟁과 성공 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삭막한 사회 분위기는 더 강화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자신에 대한 것을 잊어버린다. 산업화 이후에 후기 산업사회는 "자기 표현의 가치를 확대시킨다"고 한다. 이는 "권위로 부터 해방"을 가져오면서 민주주의 가치가 더 확대된다고 한다. 이로 인해 "개인적인 안전과 자율성은 자아중심주의를 감소시키고 인류 중심주의를 증가시킨다."고 한다. 일반 적인 예로 과거 산업화 시대에나 용인될 수 있던 4대강 사업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이, 많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에 직면했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산업화 시대였다면 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로 치장되어서 환영 받았을 정책이지만, 지금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환경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해지면서 4대강 사업은 환경재앙이라는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는 유교적 관습과 공동체 의식이 강해서 "자기 표현의 가치"로 전환에 실패한 측면이 보인다. 지금 유행해야 될 자기 계발서들은 "성공"이라는 가치가 아니라, "자기"라는 가치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사회적으로 쉽게 표출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전환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골 의사 박경철은 "모든 방황에는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계속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않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실존이고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반항이라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반항이란 바로 자기 표현의 한 형태임에도.

 

이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힘을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다. 부모가 정해 놓은 꿈을 자신의 꿈인냥 살아가고, 남들의 시선에 맞춰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간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고, 몽테뉴는 이 말에 "자기 일을 하려는 자는 먼저 자기가 무엇인가, 그리고 자기에게 적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자기를 아는 자는 남의 일을 자기 일로 혼동하지 않는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생존의 가치로 무장한 "성공"이라는 놈을 향한 치열한 경쟁과 질주로 우리는 얼마나 "자기"라는 존재에 대해서 무심했고 무관심 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놓치고 있는 가치를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알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것. 이것이 자기계발의 시작이고 꿈의 시작이다. 결국에 수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강조하는 목표나 꿈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인데, "자신"이라는 존재의 가치보다는 "성공"이라는 결과의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그저 소비할 뿐이다.

 

 자기계발서가 유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자기표현의 가치"아래서 "자기"라는 존재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책도 초반부에는 바로 그런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저자는 추상적인 담론에 불과할 수도 있는 자기계발이라는 분야에 그는 경영학적 담론을 붙여서 설명한다. 인센티브 이론과 동기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은 바로 "자기 표현의 가치"가 왜 물질적 댓가나 성공보다 더 유용한지를 보여준다. 결국 우리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명확히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중요한 건, 자신의 재능, 관심, 우선순위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때까지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이는 "타협"과 안주가 만들어내는 습관과 타성에 젖어서 때론 목적을 상실하는 이들을 위한 아낌 없는 조언이다. "자기 표현의 가치"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포기 않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조언이 담긴 책이다. 경영학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한 설명들은 추상적이기보다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래서 이 책은 "생존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자기표현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실용적으로 다가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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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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