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에서는 매년 가을 즈음에 영화를 이야기하는 책에 대한 기획 기사를 낸다. 이번에는 최근 1~2년 안에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 중에 읽을만한 몇 권의 책들을 여러 평론가가 각각 1권씩 추천하는 형식이다. 기사의 앞머리에 붙은 정성일 평론가의 글대로,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책)을 읽는 것'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영화(책)들을 읽지 않으며, 영화(책)을 읽는 사람들은 (최근의) 영화들을 잘 보지 않는 것 같다. 몇 가지의 가정들이 맞는 것일까. 최근의 (대중)영화들은 영화에 대한 사유의 지점이 존재할 수 없도록 밀어내고 있으며, 반면 영화에 대한 고루한 이론들은 최근의 영화들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점점 무딘 칼이 되고 있으며, 도리어 그 이해를 방해하는 것일까. (여기에 소개된 상당수의 책들이 이미 자국에서 오래전에 출판된 책들이거나, 고전 영화들을 다루는 책들이라는 점은 하나의 묘한 시사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상이 되는 대다수의 영화들이 최소 20년도 더 된 영화들이라는 점.) 정성일 평론가는 약간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그것은 영화와 책을 억지로 묶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가 다른 꿈이자 다른 욕망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그 둘을 오가는 발길을 인정하는 것. ("만일 영화가 꿈이라면 그것을 선택한 행위가 당신의 욕망인 것이 아니라 그 꿈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욕망인 것이다. 그때 책은 당신의 욕망에 대한 해석의 판본이 아니다. 그건 다른 꿈 안으로 당신을 끌어당기는 다른 욕망이다. (중략) 그래서 영화를 본 내가 더 잘 돌아오기 위해 더 멀어지는 행위이다.")
말이 필요 없는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책은 크리스티앙 메츠의 <영화의 의미작용에 관한 에세이>이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구조주의 기호학을 바탕으로 영화에 대해 기호학적으로 접근한 논문이다. (제목인 '에세이'에 속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상당히 난해한 책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자신이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여러 (절망적인)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이 난해한 독서에 대해 겁을 주는 것으로 도전의식을 자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영화 이론사를 공부하는 대학원생이거나, 기호학을 공부하는 전문적인 아카데미의 학자이거나, 1960년대 구조주의의 한 경향을 연구하는 사상사의 연구자가 아니라면 나는 당신에게 이 책의 독서를 말리고 싶다.") 나는 이들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지만, 이 책의 조각난 일부분을 일본어 번역본으로 접해야만 했던 정성일이 처한 상황보다는 조금 좋은 상황에 놓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부산시네마테크의 원장으로 있는 허문영 평론가가 추천한 책은 토마스 엘새서와 말테 하게너가 공저한 <영화이론: 영화는 육체와 어떤 관계인가?>라는 책이다. 허문영 평론가는 좋은 영화개론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 책과 로버트 스탬의 <영화이론> 두 권의 책을 말하고 있는데, 이 책이 스탬의 그 책보다 확실히 나은 점은 이 책이 제시하는 분류의 방법, 관류하는 질문의 태도라고 말한다. 즉 이 책은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창과 틀', '문과 스크린', '거울과 얼굴', '눈과 시선', '피부와 접촉', '귀와 공간', '뇌와 정신'이라는 창의적인 새로운 분류틀을 제안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분류틀이 우리의 머리속에서 기존의 영화들을 새롭게 재배열할 수 있게 해준다(그럼으로써 새로운 사유가 출현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늘 드러내는 한창호 평론가가 추천한 책은 프란체스코 카세티의 <현대 영화 이론: 1945~1995년의 영화이론>이다. 이탈리아에 유학했었던 한창호 평론가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탈리아 영화학자가 쓴 이 책에 대한 애정과 공포심을 동시에 보여주는데, 이 책은 영화이론의 발달을 연대기순에 의해 세 가지의 패러다임 - 즉, 존재론적 이론, 방법론적 이론, 특수성의 패러다임 - 으로 나눈다. 위의 책과 비교해서 보다 고전적인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라는 시간의 연대기를 차분히 살펴보는 데에는 이런 접근방식이 보다 나을 수도 있다. 다만 번역에 있어서의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므로 그 부분은 주의할 것.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김영진 평론가가 추천한 책은 하시모토 시노부의 <복안複眼의 영상: 나와 구로사와 아키라>이다. 이 책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제작자였던 하시모토 시노부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의 작업 과정과 그의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인데, 특이한 점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그의 영화들에 대해 냉정하게 비평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진 평론가가 인용한 다음의 부분은 매우 인상적이다. "(구로사와는) 좋든 싫든 간에 새로운 작품을 모색하기 위하여 밟지 않으면 안되는 발걸음이라고 생각되어 예술가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장인의 작업에는 큰 성공은 없어도 실패는 극히 드물고, 성공과 실패가 항상 종이 한장 차이인 예술가에게는 성패의 운명이 숙명적으로 따라다닌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예술가가 되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까 구로사와 아키라는 장인의 길에서 예술가의 길로 나아갔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는 것이나, 그가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가끔 남들이 '예'할 때 '아니오'를 보여주는 신선한 평론가 남다은이 추천한 책은 하워드 휴스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의 심장을 겨누고 인생을 말하다>이다. 남다은 평론가는 글 내내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한 '길티 플레저'를 고백하고 있는데, 그의 영화 출연작이나 그가 연출한 영화들과 그가 평소에 하는 언행의 사이에 있는 있는듯 없는듯한 간극을 생각해보면 그의 이런 '의심스러운 애정'이 이해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아무튼 나 역시 그가 공화당 어쩌구 할 때마다 그게 뭔소리인가 싶고, '좋은 보수주의자',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할 때마다 그게 뭐예요, 그거 먹는 거예요?,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그가 앞으로도 오래살아 더 많은 영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 밖에 <씨네21> 자체적으로 추천한 다른 책들은 위에서도 나온 로버트 스탬의 <영화이론>과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자서전 <로저 에버트: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학에서 '이야기'를 건져내려는 노력 <영화 우화>(여기에서의 '우화'란 아리스토텔레스의 뮈토스muthos, 즉 이야기를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 필름 영화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의 <디지털 영화 미학>, '느와르'라는 장르인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은 것의 정체성 찾기 프로젝트, 알랜 실버, 제임스 어시니 공저의 <필름 느와르 리더: 느와르에 관한 모든 것>까지 다섯 권이다.




이상 도합 열 권(사실은 11권)의 책. 올해 안에 모두 읽자(는 것은 당연히 꿈, 그러니까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