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극장전>의 마지막 대사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이제 생각을 해야겠다. 생각을 더 해야 해.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살 수 있도록...." 마지막, '죽지 않게 오래살 수 있도록...'이라는 말이 웃기기는 한다. 물론 이 말의 방점은 '오래산다'가 아니라, '죽지 않게'에 찍혀있다. 죽지 않은 상태에서, 산다는 것. 매일매일 죽어있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만끽하면서 산다는 것. 그것은 생각으로 가능할까.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대우 명제, 즉 '죽어 있는 자들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참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 말들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다. "이제 책을 읽어야겠다. 책을 더 읽어야만 해. 책읽기만이 나를 살릴 수 있어. 죽지 않게 오래살 수 있도록..." 이미 쌓아놓은 책이 너무 많아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결의를 다지는 의미로 집에 오는 길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움베르트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 백가흠의 소설집 <조대리의 트렁크>를 샀다. 요즘 그나마 남는 시간들을 <한겨레21>과 <씨네21> 및 인터넷 기사들을 정독한다고 거의 써버리고 있는데(이 넘의 정부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하게끔 한다. 평화로운 강정은 애초 우리모두 알 이유도, 알 필요도 없는 그저 가만히 두면 되는 곳이었다), 책 읽기에 그 시간들을 돌려서 써야겠다.
덧.
요 며칠 사이에 옆에 즐겨찾기 등록의 숫자가 3명이나 줄었다. 옛 여인은 새로운 여인과의 만남으로 잊으면 되고, 꿀꿀한 영화에 대한 기억은 이어서 본 다른 영화에 대한 기억으로 덮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한 명이 줄은 기억은, 또 다른 한 명이 줄은 기억으로 덮으면...된다. 다만, 단지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인데, 누군지 몰라도(몰라야) 좋으니, 즐겨찾기 목록에서 제거할 때, 익명으로 그 이유를 반드시 남겨야만 가능하도록 만들어지면 좋지 않을까, 진지한 뻘생각을 해본다. 글들을 더 이상 보지 않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글쓴이도 알게 되면 좋지 않을까. 그래야 뭔가 더 나아질 여지가 있을텐데. 레알 잡담에 어울리는 허접한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