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마이 하트(Welcome to the Rileys), 제이크 스콧, 2010



(영화의 내용이 군데군데 들어있음)


이야기가 될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가, 이야기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먼 도시로 출장을 떠난 남자가 한 어린 스트립걸을 만나고 그녀와 동거를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그리 신기할 것이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남자 조금 이상하다. 이 동거는 성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그런 관계다. 운영하고 있던 회사까지 정리하고, 집에는 일방적으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통보한 이 남자는 여자를 돌보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주고, 화장실 변기를 뚫어주고, 깨끗한 매트리스를 깔아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찾아 아내가 먼 도시로 차를 몰고 찾아온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곧 펼쳐질 파국의 예감. 그러나 이 여자도 이상하다.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고, 남편과 스트립걸과 함께 동거를 시작하고, 스트립걸을 같이 돌보고 속옷과 잠옷을 챙겨준다. 이건 무슨 이상한 이야기일까. 이야기가 우리가 아는 보통의 세계와 다르게 전개될 경우 그것은 세 가지 경우 중의 하나가 아닐까. 먼저 첫 번째 케이스는 이들이 우리가 아는 그런 '인간'이 아닐 경우다. 그들은 단지 '보통의' 인간이 아닐 수도 있고, 기계장치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고, 인간 이상의 어떠한 다른 존재일 수 있다. 두 번째 케이스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세계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이른바 SF의 세계. 다른 시공간, 다른 세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규칙. 예를 들어 2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는 남녀가 섹스를 할 경우 둘 중의 하나가 죽게 되어 있는 뭐 그런 세계. 마지막 하나의 케이스는 가장 흥미로운 케이스로 그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이야기에 도통 관심이 없는 경우다. 이야기야 뭐 될대로 되라지. 이야기 말고 다른 것을 보세요. 나는 서사 따위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나는 이 간단한 줄거리를 쓰는데 몇 가지 사실을 고의적으로 숨겼고, 관객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 남편 더그(제임스 갠돌피니)와 아내 로이스(멜리사 레오)는 인간이 아닌 것. 인간은 인간이지만, 안은 비어있는 어떤 상태. 뭐 그러니까 기계장치이거나 옥수수이거나 한 그런 상태. 이들이 이렇게 된 이유를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신은 인간을 비워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그것은 그에게 자식을 안긴 후, 그 자식을 먼저 데리고 가는 것이다. 가끔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도 있기는 하지만, 신은 인간을 그런 존재로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신은 더욱 확실한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남편 더그는 딸이 죽은 후 애써 마음의 끈을 잡게 해준 애인마저 잃어버렸다. 아내 로이스는 딸의 죽음에 자신이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둘은 기계장치이거나 옥수수이지만 보통의 기계장치나 옥수수도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원유지장치만 겨우 기능을 하고 있는 기계장치이거나 닭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그야말로 안이 바싹 말라버린 옥수수인 것. 그러니 이들이 스트립걸 앨리슨(크리스틴 스튜어트)이든 다른 무엇이든 돌보지 않을 이유가 있을 것인가.

그러니 더그가 공구들을 사다가 집안을 수리하고, 변기를 뚫고, 집안의 빨래들을 통에 담을 때, 그리고 로이스가 벌벌 떨며 차 안 시트에 앉아 시트 위치를 조절하다가 차 안에 끼일 때, 그리고 쓰레기통을 들이받아 에어백이 터질 때 뭔가 울컥할 수 밖에. 그 몸짓들이 비어있는 자신 속에 뭔가를 필사적으로 채우려는 듯한 움직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더그의 끊임없는 흡연 같은 것. 하다못해 담배 연기같은 것이라도 가득 채워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즉 필사적으로 채워넣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비어 있는 자신에 대한 부정이며, 삶에 대한 강한 욕구이며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이 영화는 이 중년의 두 인물을 가장 밑바닥에 떨어뜨려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것은 체념과 절망이 가득 담긴 그러한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삶의 욕구로 가득차 있는 그런 이야기라는 사실이며, 도리어 이 부부에게서 역설적으로 (비정상적인) 삶의 활력 같은 것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마도 더그를 가장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딸의 무덤이나 애인의 무덤이 아니라, 아내가 미리 만들어놓은 자신들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무덤을 만든다는 것은 죽음을 예비한다는 것이고, 자신의 늙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늙음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그가 스트립바를 찾아간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더그가 스트립바에 갔으면서도 어떠한 성적인 관계도 맺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 (더그는 누군가의 강권에 의해 그 곳에 간 것이 아니며, 아는 이를 만났을 때 놀라 피하는 것으로 볼 때 그 곳이 어떠한 곳인지 물론 잘 알고 있다. 그가 굳이 이곳에서 성적인 서비스를 피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당연한 해석은 미성년자인 앨리슨을 만났을 때 자신의 딸이 생각나서, 혹은 어린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윤리적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자꾸 오독을 하고 싶어진다. 더그는 그 자신의 삶의 활력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보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오직 자신의 육체의 쇠락을 처절하게 인식한 남자들만이 어린 여자의 육체 앞에서 벌벌 떨고 감탄하며,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 대한 혐오를 맛보며 섹스를 한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젊은 여자의 나신 앞에서 자신의 육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자는 정신적으로 젊은이 뿐이다. 더그의 성적인 관계에 대한 회피는 어떤 정신적인 젊음에 대한 자신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즉 이 영화에서 더그와 앨리슨에게는 성적인 관계는 거세되어 있지만, 여전히 어떤 성적인 긴장감은 남아있다. 이것은 부녀관계인가, 아닌가.)

그러한 정신적인 젊음은 앨리슨에게도 남아 있다. 앨리슨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희망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도 있고, 가장 밑바닥의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언뜻 보면 툭하면 상소리를 내뱉고, 아무 거리낌 없이 성적인 말들을 던지는 그녀는 젊음이라는 것은 닳고닳아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가장 보기 싫은 것은 사회에 대한 반감과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 같은 것에서 만들어진 공격적인 위악이 아니라 체념(과 체념에서 만들어진 방어적 위악과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자기파괴)이다. 그녀의 거친 말들이 단지 위악일 뿐이라는 것은 더그에게 스트립바에서 일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여실히 드러난다. 그 이유란 고작 견인된 차를 찾기 위해서일 뿐이라는 것. 적어도 차에 대한 혹은 돈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무런 욕망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더그도 아마 어느 정도는 안심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거기에서 일하고 몸을 파는 이유가 그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라고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어린 여자가 나이든 아저씨들과 돌아가며 자는 것이 단지 그들을 이로써 경멸하는 것만이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한다면 우리는 그녀를 어떻게 건져낼 것인가.  

거의 텅빈 극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어느 커플과 영화를 보았다. 그들은 더그가 집안을 수리하고 변기를 뚫고, 침대에 누워 정신없이 잠을 잘 때 까르르 웃어댔다. 로이스가 시트를 이리저리 조절하고, 벌벌 떨며 운전하다가 에어백이 터지고, 멀미를 하며 종이봉지를 입에 급히 갖다댈 때도 까르르 웃어댔다. 나는 짜증이 났다. 도대체 이 장면들이 뭐가 웃긴거야. 도대체 뭘 안다고 저렇게 웃어대는 거야. 그러나 그들은 나의 관심 따위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했다. 지금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보니 오로지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그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나이가 더 어린 사람들은 그보다 나이많은 사람들의 반응 따위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그들의 굳어버린 생각에 대해 (비)웃을 뿐이다. 오로지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젊은이들의 반응을 살필 뿐이다. 자신은 예전에 그러지 않았다고, 더 나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므로 더그와 앨리슨의 정신적 젊음을 충분히 맛본 지금에는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나도 웃는다. 하하. 저거 정말 웃기잖아.



덧. 

이 영화에 대한 카피문구에 "슬픔과 희망에 대한 따뜻한 대화! 상처입은 당신에게 전하는 위로와 용기!"라고 되어 있는데, 그런 건가...그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원래 이런 사람인 것처럼도 보이니까. 상처라는 것은 원래 깨끗한 피부에 생기는 것이니까. 원래 망가져 있는 피부 따위에 상처같은 것이 생겨도 눈에 보일리 없으니까. 신은 인간을 비워낼 수는 있어도, 다른 인간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라고 영화는 겨우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럴듯한 악인도 나오지 않으니까. 오로지 착한 당신에게만 이 영화를 권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네오 2012-02-17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의 내용이 군데군데 들어있음말에 읽지는 않았어요~ 괜히 스포일러보면 아~ 영화가 보고 싫어지더군요 ㅋㅋㅋㅋ 그런데 이 감독이 스콧형제중 둘중하나의 아들이 아닌가요????

맥거핀 2012-02-18 21: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무려 리들리 스콧 감독 아들이라고 합니다. 뭐 아직은 특징적인 면이 보인다고 하기는 그렇고, 아버지 같은 대가가 되려면 수련을 더 쌓아야겠지요.

꽃도둑 2012-02-1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맥거핀님,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에요..^^
아 좋아요~ 포스터도 좋고 내용도 좋아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언제 봤는지...가물가물 하네요.
추천 꾹꾹 누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맥거핀 2012-02-18 22:00   좋아요 0 | URL
오늘 꽤나 추운 날씨였는데, 아랫동네는 어떤가 모르겠습니다.
날씨 따듯해지면 영화관 나들이도 좀 하고 그러셔요.^^
기회되신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구요. 특별히 그렇게 흠잡을 만한 데는 없는 영화니까요.

꽃도둑님의 영화리뷰를 보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지요.^^

반딧불이 2012-02-1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그와 앨리슨, 아니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자신을 치유해나가는 듯하군요. 내용을 차치 하고라도 누군가 제가 저 제목처럼 말해준다면 뒤도 안돌아 보고 뛰어 들 것 같습니다.

맥거핀 2012-02-18 22:03   좋아요 0 | URL
상처가 생기면 또 아물 때가 있을 것이고, 처음에는 아문 자리가 도드라져 보여도, 어느 순간보면 또 상처난 자리마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올 겁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렇게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말들을 해주면서 버티는거죠.^^

아이리시스 2012-02-18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웃어요. 하하. ^_____________^ (젊은 아니, 어린 애들 짜증나..-_-;;)
저는 웃는 것도 싫고 뽀스락 거리는 것도 싫고 휴대폰 조용히 받을 거라고 속삭이는 것도 싫고 그렇게 바쁘면 스케줄이나 소화하든가ㅋㅋㅋ

영화는 둘이 보는 게 아니라 혼자 보는 행위니까 같이 못 오게 했으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기가 이상한데로.. 미안요!!!) 히히히.

크리스틴 스튜어트 예뻐요!!!

맥거핀 2012-02-18 22:06   좋아요 0 | URL
응..? 댓글을 읽다보니 시끄러운 애들이 싫은건지, 단지 '커플'이 싫은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ㅋㅋ 하기는 영화관에서 좀 심한 애들(?)이 있기는 있어요. DVD방도 아닌데..킁킁. 위의 글에 쓴 것처럼 그 커플과 저, 영화관에 달랑 3명이었는데, 그 커플이 제가 들어오는 걸 보고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지막 장면 보고, 아니 저렇게 이쁜 얼굴을 왜 저따위 화장으로 영화 내내 망쳐놓은 것이냐..! 이 생각을..총총.

2012-03-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드는 오독입니다. 영화는 종종 '오독'하며 놀기 좋은 매체라 좋아요.^^
그리고 그냥 인간애, 휴머니즘의 주제라 해도 좋아요. 이런 줄거리, 좋구요. 결론은, 봐야겠다~~입니다~!ㅎㅎ

맥거핀 2012-03-02 23:42   좋아요 0 | URL
많은 오독들이 쌓여서 결국 영화의 큰 힘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영화에는 당연히 정답은 없습니다만, 오독들이 때로 일으키는 공감이 만들어내는 큰 힘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의 평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공격을 받는지를 생각해보면요.) 저는 왠만하면 다 좋아해요. 다만, 보고 난 후에 머리를 비우게 만드는 영화는 결코 좋아지지 않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