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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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1918~2008)의 처녀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다. 고등학교 땐가 형의 책장에 꽂혀 있던 [암병동] 이후 20년이 훌쩍 넘어 '현대의 도스토예프스키'라고 까지 일컬어지는 이 러시아의 대문호의 작품을 읽은 것은 순전히 유시민씨 때문이다. 유시민씨가 그의 저서 [청춘의 독서]에서 이 작품에 대해 광고 카피처럼 붙인 '슬픔도 힘이 될까.'라는 화두는 강력한 끌림이 되어 책장을 펼치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새벽 기상부터 늦은 오후 취침까지 한 인물의 하루를 이토록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기술한 그 어떤 기록도 보지 못했다. 있다손 치더라도 문학 작품으로서 접하기 쉽지 않은 방식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 주인공이 일정 공간에 제한된 처지이고 일상이란 것이 그 곳에서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그 이야기를 장편 소설로 쓸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누군가가 단지 타고난 상상력으로만 그 작업에 손을 댔다고 한다면 감정 과잉으로 억지 감동을 끌어내거나 공감할 수 없는 에피소드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은 공상과학이 될 공산이 크리라.

 

그렇다. 작가 솔제니친의 강제 노동수용소 경험이 없었다면 독자들에게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도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1941년 독일 소련 전쟁 발발과 함께 자원 입대, 포병으로 복무하다가 1945년 2월 '스탈린에 대한 불온한 언사'를 한 죄를 뒤집어 쓰고 8년형을 받아 북극 및 중앙 아시아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징역살이를 했다고 한다. 그때의 처참한 기억이 수용소 문학의 토양이 되었으리라.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60여년전 공산주의 국가 구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 일상을 마치 기록 필름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놀랍게도 어떤 선동적인 주장도, 예리한 사상 논쟁도, 의도적으로 꾸며낸 신파적 갈등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영하 3~40도를 오르내리는 극한의 추위, 옷이든 음식이든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최소한만 허용된 정치범 수용소, 각자에게 주어진 형기가 종료되더라도 결코 바깥 세상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에서 희망은 허왕된 욕심이고 꿈은 갈 곳 잃은 나그네다. 중요한 것은 생존 그 자체, 현실 그 자체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토록 참혹한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보게, 여긴 법이라는 게 없단 말야. 있다면 이 밀림과 같은 거야. 그렇지만 이런 데서도 얼마든지 목숨을 부지해갈 수는 있어. 수용소에서 죽는 놈이 있다면, 그건 남의 죽그릇을 핥으려는 녀석들, 뻔질나게 의무실에 드나들며 편히 누워 있을 궁리만 하는 녀석들, 그리고 쓸데없이 간수장을 찾아다니는 녀석들, 바로 그런 친구들이지."

 

8년째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슈호프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정치범이란 딱지는 당국에서 덧씌운 것일뿐 그는 정치적 그 무엇과도 관련되지 않았고 그의 관심은 오로지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새벽 다섯시에 기상을 해서 점호를 마치고 거친 아침식사를 한 후 작업장으로 가서 주어진 작업을 한다. 먹을 때는 먹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작업할 땐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능력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슈호프가 쌓은 별돌은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진 데가 한군데도 없을 뿐더러 연결점의 처리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결국 흠잡을 것이라고는 모르타르가 얇다는 것밖엔 없었던 것이다.  ~~~ 사실 군데군데 모르타르가 얇게 깔린 곳도 없지는 않았다. 좀더 두껍게 까는 게 원칙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첫째, 날씨가 이렇게 춥지 않을 때, 그리고 모든 격식을 맞춰 제대로 쌓아올릴 때에나 할 말이다.

 

슈호프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강제 노동을 회피하기 위해 꾀병을 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리 허기지더라도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거나 구걸하지 않는다. 잠깐의 안락을 위해 동료를 팔아넘기는 일도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고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작은 것에서 최고치를 얻는 방법을 알고있다.

 

파블로는 곱빼기로 담은 국그릇 앞에, 슈호프는 두 개의 국그릇 앞에 각각 자리를 잡는다. 그 이상 두 사람 사이에는 한마디의 대화도 오가지 않는다. 엄숙한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슈호프는 모자를 벗어서 무릎 위에 얹는다. 한쪽 국그릇 속의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확인하고, 계속해서 또 하나의 국그릇도 확인한다. 웬만큼 들어 있다. 생선도 걸려든다. 대체로 저녁 국은 아침에 비해 훨씬 멀겋게 마련이다. 조반을 먹이지 않으면 죄수들을 부려먹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저녁을 먹이지 않았다고 해서 죄수들이 잠을 못 잘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는 먹기 시작했다. 우선 한쪽 국그릇의 국물만을 단숨에 들이켠다.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지나 전신에 퍼지자, 오장육부가 국물을 반기며 요동을 친다. 살 것 같다! 바로 이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은 살고 있는 것이다. ~~

두 개의 국그릇에서 뜨끈한 국물만을 마셔버리자, 그는 두 번째 국그릇의 건더기를 첫 번째 그릇으로 옮겼다. 옮겨 붓고나서, 그릇을 손으로 털고 다시 숟가락으로 긁어낸다. 이제야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 셈이다. 두 번째 그릇이 마음에 걸려서 시종 곁눈으로 흘끔흘끔 바라볼 필요도 없고 한 손으로 국그릇을 감싸 않을 필요도 없다.

 

경건한 의식과도 같이 자기 몫으로 배당된 음식을 먹으면서 슈호프가 느끼는 만족감,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다. 문득 생각한다. 슈호프가 그렇게 소중하게 받은 음식보다 양이나 질적으로 훨씬 풍성한 음식을 매일 먹고 있으면서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들. 먹는 것에 행복감을 찾기에는 이미 너무 풍족한 우리들은 대체 무엇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 지 말이다.

 

슈호프는 더없이 만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만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나게 벽돌을 쌓아올렸다 줄칼 토막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기다려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렇게 하루가, 우울하고 불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지나갔다. 이런 날들이 그의 형기가 시작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만 10년이나, 3653일이나 계속되었다. 사흘이 더해진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끼었기 때문이다.  238~239 p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치고 잠자리에 든 슈호프 더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며 잠을 청하고 있다. 역설의 예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주인공이 말하는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가 읽는 독자에게는 왜 이다지도 슬픈가 말이다. 그것도 만 10년, 3653일이나 되풀이되는 일상이라니. 생각의 자유는 물론 행동의 자유도 없고 가족과는 연락조차 어려우며 기본적인 의식주 조차 보장되지 않는 공간, 감시와 통제 억압만이 있는 곳, 인권을 운운하기에도 미안한 현실, 의미를 잃은 형기 앞에서 희망 마져도 없을 수형자가 느낀 '행복'은, 정말 혼란스럽다. 정말 행복한 것이었던 걸까? 기준 설정점이 어디인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겠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소련 체제의 비인간성이 솔제니친이라는 위대한 작가와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고결한 인물에 의해 서방세계에 무엇보다도 절절하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P.S. 작가는 결국 조국에서 추방당하기 까지 했다니 그의 펜이 무섭긴 무서웠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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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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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아직 백수생활을 벗어나지 못했을 무렵, 나는 모교 도서관을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법학도로서 그때까지만 해도 형법, 형사소송법, 민법, 행정학 따위의 수험서들이 익숙하지 않았었고 사실 공부하기 싫은 날이 많았다. 뜬금없이 다가온(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중도에 진로를 바꾸게 된 당시의 많은 청춘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에 신세지는 것이나 면해볼까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던 때였다. 그때 나름대로 찾은 활력소가 LA다저스의 박찬호가 등판하는 메이저리그 게임과 목요일 심야 유시민씨가 진행하던 100분토론이었다. 박찬호가 희망없는 세대에 희망을 던진 영웅이었다면 유시민의 100분 토론은 지적으로 미숙아였던 내게 자극제 역할을 해주었다. 세상엔 참 똑똑하고 말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매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중 제일 신기한 것은 진행자였다.

 

사실 유시민씨가 100분 토론을 진행하기 전부터, 진행자를 그만두고 나중에 정계에서 활약할 당시 그가 보여준 언변은 정치적 색을 떠나서 여러 논객 중에 최고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논리의 짜임새나 말할때 보여주는 표정, 억양, 몸짓 등이 '혹시 저 사람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였다.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면 정치인, 영화배우, 스포츠 스타 등 특출난 재능으로 유명인이 된 많은 사람들이 사실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었다는 설정처럼 말이다.

 

그가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그의 글솜씨를 처음 접했는데 내 기억으로는 유시민의 100분토론보다 훨씬 전 20세기 어느 때였을 것이다. 낡고 헤진 채로 방구석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던 것을 우연히 읽게 된 것이었는데 아마도 독서모임에 열심이던 형이 읽던 책이었으리라. 세계사의 여러 사건들을 간단하게 요약해 놓은 형태의 책으로 기억되는데 저자가 수배 중에 반지하 자취방에서 썼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 그의 나이 20대 후반이었다니 난 그와 비슷한 나이에 아직 역사와 현실,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드뢰퓌스 사건을 접했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원인을 보았으며, 검은 이카루스 말콤 X를 만났다. 그리고 아마도 1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청춘의 독서]를 읽는다. 저자가 젊은 시절 읽었던 많은 고전을 다시 읽고 그때의 느낌과 50대의 저자가 느낀 것을 정리한 책이다. 목록을 보면 소설로는 [죄와 벌], [대위의 딸], [광장],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있고, 이론서로는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 [역사란 무엇인가?]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맹자], [사기]까지 총 14편의 고전이다.

 

고백하거니와 부끄럽게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만이 내 좁은 독서목록에 포함되어 있을 뿐 익숙한 저서명에 비해 직접 읽은 책이 없다. 욕심에 우선 [광장],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역사란 무엇인가?]를 구매했다. 그렇다. 순전히 욕심이다. 의무감과도 같은 욕심이다. 그러나 욕심 한번 부릴만 한 것 아닌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늦은 보상이 필요했기도 했지만 마치 광고 카피와도 같이 [청춘의 독서]에 소개된 유시민씨가 각 고전에 붙힌 유혹이 생뚱맞은 욕망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저자가 고 최인훈 선생의 [광장]에 붙인 카피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이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소개하면서 가진 의문 '슬픔도 힘이 될까.', 또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두고 묻고 있는 '내 생각이 정말 내 생각일까.'라는 표현은 직접 그 명제와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기를 강요하고 있음을 느낀다.

 

저자의 말을 경유한 간접적 감동 말고 직접 체험을 통한 진짜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

내일 난 [광장]을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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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11-1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광장], [대위의 딸]을 읽다.

호서기 2015-12-0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기 본기] 구매하다.
 
[중고]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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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면 동화지 '환상동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 안쪽을 보니까 영어로는 'Fairy Tal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찾아보니 그 뜻은 형용사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또는 '동화같은'이고, 명사로는 그냥 '동화'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환상동화'는 'Fantasy Fairy Tale'일 텐데, 우리말 책 제목을 구지 '환상동화'라고 붙혔으니 필시 그 연유가 있으리라.

 

그림 형제의 동화도 우린 'Fairy Tale'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림 형제의 작품을 떠올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이 동화들을 보니 옮긴이의 의도를 알겠다. 어린 시절 동화의 대명사는 단연 '안데르센 동화집'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 엄지 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인어 공주, 백조 왕자 등등, 우리의 옛날을 지배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 말이다. 디즈니가 좋아했던 안데르센 동화는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림 동화집은 좀 달랐다. 기괴하고 공포스런 분위기를 주는 몇몇 이야기들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보아도 될까?'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 역시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한 왕자'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두 주인공 돌로된 행봉한 왕자와 제비 모두 파괴되거나 얼어죽는다. 비록 신이 그 둘을 거두어 들이지만 착한 일을 한 주인공의 결말이 죽음이라니 아무래도 개운치가 않다. 그나마 이 책에 실린 9편의 동화 중에 '행복한 왕자'가 제일 나은편이다.

 

'별아이', '헌신적인 친구', '나이팅게일과 장미', '어부와 그의 영혼', '유별난 로켓 불꽃', '왕녀의 생일', '이기적인 거인', '젊은 왕' 등 어느 것 하나 동화로서 익숙한 것이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 더 익숙하다. 특히 '헌신적인 친구'는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정원을 가꾸는 순박한 청년 한스와 밀러의 이상한 우정을 통해 일종의 '甲의 횡포'를 보게된다. 배운자와 못배운자, 달변가와 눌변가, 가진자와 못가진자, 우정을 나누어야 할 친구 사이가 현저히 균형을 잃었을 때 우정이란 탈은 폭력이란 이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밀러'처럼 상대방의 일방적인 헌신만을 강요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한 번 주고 평생 우려먹는 철면피들 말이다. 이들은 다가올때 흡사 천사처럼 친절하다. 배려하는 척,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는 듯 입속의 혀처럼 행동하지만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방의 '헌신'만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당하는지도 모른채 당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악당'들은 대개 더 잘산다. 동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부조리극의 냄새가 난다. 잘나가는 극작가에서 이국에서 쓸쓸히 죽어간 실패자로의 그의 인생이 그의 작품들과 자꾸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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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 - 하
김성한 지음 / 달궁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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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 최초 통일 제국을 건설한 영웅. 아방궁, 만리장성, 여산릉, 불노불사를 쫓아 동남동녀 6000명을 뱃길로 내몬 폭군... 단편적이고 지극히 말초적인 정보 이외 내가 알고 있는 시황제는 어떤 모습인지 오랜 기간 동안 잊혀져 있었다. 

 

최근, 춘추전국시대를 다룬 고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 공자의 삶을 다룬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것인가], 그리고 항우와 유방의 쟁패전인 [이문열의 초한지]를 읽었다. [시황제]는 시기적으로 전국시대와 한제국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진시황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초한지] 1권에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으나 이야기로서 좀 더 드라마틱한 시황제의 일대기가 궁금한 나머지 눈에 들어온 소설이 김성한 작가의 [시황제]였다.

 

전국시대 말기, 한나라 출신의 거상 여불위는 여러 나라 사이에서 무역업을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는 더 큰 한 건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정세는 전국 7웅 중에서 단연 秦나라가 앞서고 있었다. 죽고 죽이는 혼란한 전국시대를 마감할 수 있는 유력한 세력은 진나라 밖에 없다고 판단한 여불위는 일생 일대의 배팅을 한다. 투자 대상은 세상의 관심 밖에서 조나라에 볼모로 가있는 진나라 왕손 영이인.

 

이 얼뜨기를 때빼고 광을 내어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진나라 왕위를 물려받게 하는 것, 성공만 한다면 이것은 어떤 장사보다도 더 많은 이윤을 남길터. 여불위는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여자, '주희'마저 영이인에게 바친다. 주희가 여불위에게서 영이인에게로 옮겨 간 후, 12개월만에 아이가 태어나니 이 아이가 바로 영정, 훗날 천하를 통일하게 되는 시황제이다. 누구는 영정의 아비가 여불위라고 하고 또다른 누구는 영이인이라고 한다. 전자는 시황제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그의 공을 깎아내리려는 무리이고 후자는 '사실은 사실일 뿐' 악의적인 왜곡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일 테다. 심지어 [사기]의 저자 사마천 마저도 본기에서는 영이인의 아들로, 열전에서는 여불위의 아들로 묘사하고 있다.

 

불현듯 그리스 로마 신화의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의 출생에 관한 웃지 못할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알크메네와 결혼할 기대를 품고 전장에서 서둘러 돌아온 암피트리온은 알크메네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를 원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지 않은(?) 알크메네가 한다는 말, 간밤에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도 아직도 원하느냐? 암피트리온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냐 했다. 사실인즉 암피트리온이 알크메네의 침실을 찾기 전 가짜 암피트리온으로 몸바꾸기를 한 제우스가 몇날 몇일을 알크메네와 거친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자 알크메네는 쌍둥이를 출산했는데 그 형이 헤라클레스, 동생이 이피클레스 였다. 말만 쌍둥이지 누가 최고의 신 제우스의 아들이고 누가 호구가 된 암피트리온의 아들인지 이후 두 아이의 행적을 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영정(시황제)과 헤라클레스, 두 불세출의 영웅 모두 출생에 있어서 누구를 아버지로 불러야 할 지 헷갈리는 공통점이 있다. 영정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왕위에 오르고 한참 나중의 일이다. 그 어미(주희)는 한때 기녀였고 항간에서는 그 아비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던 터였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비록 남의 나라에 볼모로 와있는 신세이나 강대국의 왕손이 분명한 영이인의 자식이었다.

 

시황제, 그는 출생부터 영웅의 조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헤라클레스의 예에서 뿐만 아니라 한다하는 영웅치고, 한 나라의 역사를 연 시조 치고 평범한 출생이 몇이나 되는가. 진실이건 아니건, 불세출의 위인이거나 그 반대이거나, 권력을 쥔 자들의 체계적 조작을 통해 말초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대중들의 집단적이고 집요한 편집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것과는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그런 사후 조작을 모두 제거하고 주관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과학적인 사실만을 두고 보더라도, 영정의 출생은 기구하다. 유별난 부모를 두었고, 이국에서 태어나 핍박을 받으면서 생사의 고비도 여러번 넘겼다. 어려서 부터 말수가 없고 표정의 변화가 드물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겪은 세상의 풍파가 가르쳐준 처세술이 아니었을까?

 

어린 나이(13세)에 즉위한 후, 어머니 주태후의 섭정과 어머니를 둘러싼 여불위와 노애의 추악한 밀약, 그리고 노애의 반란과 진압 과정에서 영정의 개입은 아주 미미하다. 어른들의 놀음에 아이를 끼워주지 않았던 것일까? 다 알면서도 최후의 역전을 위해 자존심을 죽이고 스스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일까? 주태후의 섭정이 끝나고 시황제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면서부터 군주로서 그가 처음으로 바로잡은 것은 자신의 출생을 둘러싼 헝클어진 실타래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증조할아버지 소양왕부터 꿈꿔왔던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한 첫걸음도 내딛기 힘들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전국 통일 과정에서 첫번째 제물이 여불위의 고국 한나라 였음은 주목할 만하다. 자신의 아비를 진왕으로 만들어 결국 자신이 왕이 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도 여불위, 통일의 기틀을 잡아 준 것도 여불위였지만, 어미의 전남편 이자 노애라는 요물을 들여 왕실을 웃음거리로 만든 장본인도 여불위였다. 실로 애증의 결정체였지만 아무래도 사랑보다는 증오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 것은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여불위를 제거하고 그가 난 나라까지 없애버려야만 자신과 왕실을 둘러싼 정통성 논란이 잠들 것이 아니겠는가.

 

두번째 목표물은 어머니의 고국, 자신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조나라였다. 자신의 외가와도 같은 나라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고단했고, 왕실을 유린했던 노애의 출신지이기도 한 조나라를 오래 남겨둘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진왕이 된 영정의 통일 과정은 자신을 둘러싼 갖은 오욕들을 씻어내는 데서 출발했다.

 

그리고 결국 어지럽던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그는 왕에서 황제가 되었고 스스로 짐이라고 일컬었다. 모든 왕들이 그의 앞에서 굴복했으며 법치주의을 앞세와 천하의 민초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귀속시켰다. 각기 다른 도량형을 통일하고, 봉건제를 혁파하여 군현제를 도입했으며, 치도를 건설하여 주요도시의 교통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였다. 이런 가운데 책을 불사르고 유가들을 구덩이에 묻어버리는 지울수 없는 역사의 오점을 남기기도 하고, 만리장성이다 아방궁이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일으켜 민초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기도 했으나 당대 시황제는 요임금이나 순임금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 큰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영광이 고작 15년도 지속되지 않았으니 진시황제의 삶과 더불어 통일 진제국은 순간 화려하게 타올랐다 스러져 버린 불꽃 같았다. 잔인한 것이 역사라고 했다. 진제국 패망이후 새로운 강자들은 시황제의 위엄이 컸던 만큼 그 그림자를 말끔히 없애기 위해 영씨의 씨를 말렸으니 시황제는 한세상 원없이 살았으되 그의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했다. 권력의 속성, 인간의 속성이 그러하다.

 

약 2200년전의 중국이란 나라에서 있었던 진제국의 흥망에서 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영웅과 간신, 그리고 민초들의 삶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온나라가 메르스와 국회법 개정문제로 떠들썩한 오늘, 깊이 생각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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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손자병법 1
정비석 지음 / 은행나무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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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생을 경영하는데 참고할 만한 것이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오래전부터 여러 인생 선배들이 한결같이 추천하는 지침서 중에 하나가 손무의 손자병법이다. 아이들이 보기 쉽게 학습만화로 된 것부터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디디려는 사회초년생에게 현장에서 다양하게 발생하는 돌발상황을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고 새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원만하게 유지할까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까지 손자병법의 활용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느즈막히 소설로서의 손자병법을 접했다.

 

[소설 손자병법]은 [자유부인]으로 유명한 소설가 고 정비석(1991년 작고) 선생이 1981년에 발표한 중국역사소설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손무, 오자서, 범려, 문종, 합려, 부차, 구천, 서시 등 영웅들의 흥망성쇄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자 병서 손자병법의 저자인 제나라 출신 손무와 초나라 출신으로 본국에서 역적으로 몰려 아비와 할아비를 비명횡사로 잃은 오자서가 중국 남부 지역의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무너뜨리고 전국의 패권을 차지하는 과정이 전반부라면 오나라왕 부차와 월나라 왕 구천 사이의 물고 물리는 복수전이 후반부 이야기의 골자이다.

 

1. 전반부 이야기

 

전반부는 오자서의 처절한 복수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젊은 시절 초강대국 진나라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게 된 여러 제후들을 명석한 논리와 대담한 용기로 구해내어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전쟁에서는 임전무퇴의 일당백 용장이자 지장이었으나 시절을 잊은 그의 복수심은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이 발발하는 당시 형편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면이 있었다.

 

초나라 평왕은 간신 비무기의 모함을 받아들여 충신으로서 대를 이어 봉사해 온 오자서 일가를 잔인하게 죽였다. 아버지의 당부로 단신으로 초나라를 빠져나온 오자서는 망명길에 올라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오나라 희공공자에게 몸을 의탁한다. 억울하게 왕위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희공공자를 도와 그가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오자서. 바로 이 희공공자가 오나라 24대 왕 합려가 된다. 모든 것이 원수를 갚기 위한 잘못된 동기에 의한 것이었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오자서는 병법의 대가인 손무까지 영입하여 초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초석을 다진다. 오랜 준비기간 동안 자신의 일족을 모함한 간신 비무기뿐만 아니라 평왕도 죽었건만 결국 오초전쟁을 일으켜 초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오자서의 복수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자서가 두려워 무덤까지 숨겼던 평왕의 무덤을 찾아낸 후 오자서는 복수의 화신과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평왕의 얼굴을 보는 순간 오자서는 원한의 분노가 새삼스러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하여 시체를 바위 위에 꺼내 놓기가 무섭게, 왼발로 시체를 짓누르며 오른쪽 손가락으로 평왕의  두 눈알을 후벼 내었다. 그러고도 성이 가시지 않아 손에 들고 있던 아홉 마디의 구리 채찍으로 시체를 3백 대나 때려 갈겼다. 그러잖아도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조각조각으로 분산되자 오자서는 시체 조각을 모래밭에 산산조각으로 던져 버렸다.

 

17년만에 이루어진 오자서의 복수는 그의 수많은 위업에 부끄러운 일면이다. 그런 뼈에 사무치는 한이 그의 평생을 지탱해 준 힘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로 인해 오자서는 고국 초나라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으니 어찌 인과응보가 아니랴!

 

복수하면 떠오르는 여인이 있다. 초한 쟁패전에서 승리한 유방의 조강지처 여태후에 비하면 사실 오자서는 할말이 많을 수도 있겠다. 한고조 유방이 죽자 여태후는 유방이 아끼던 척부인에게 악귀에 들린듯 잔인한 복수를 한다.

 

여태후는 영항에 갇혀 있던 척 부인을 끌어내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고막을 연기로 그을어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던져 넣었다. 야사로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음부를 짓이겨 버렸다는 말도 있고, 남자 죄수들이 우글거리는 감방에 벌거벗은 채로 던져 넣어 척부인을 마음껏 능욕하게 했다는 말도 있다. 또 어떤 기록에는 죽은 조왕(척부인의 아들)의 시체를 끌어다 보여 주며 척부인의 발악을 끌어내어 욕하는 그 혀를 자르고, 노려보는 그 눈을 뽑고, 종당에는 귀머거리를 만들고 사지까지 잘라 버렸다고도 한다.

 

이른바 '사람돼지'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이토록 잔인할 수 있다니.

 

그리스 로마 신화 아트레우스 이야기도 복수하면 빼놓을 수 없다. 탄탈로스 손자들이자 펠롭스의 아들들이며 니오베의 조카들인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형제간의 끝없는 증오와 파멸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형 아트레우스가 동생 티에스테스를 맹목적으로 증오한 나머지 결국 조카들을 죽이고 그 시신을 토막낸 뒤 동생에게 머리와 팔다리를 조각상이라고 보여준다. 동생 티에스테스는 조각상이 죽은 자신의 아들들임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그러나 이어지는 형의 말은 그 이상이었다.

 

"방금 네가 먹은 그 맛있는 음식은 사라진 몸통으로 만들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은 사람다와야 한다. 근데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자서를 변명하는 사람들은 꼭 여태후, 아트레우스와 티에스테스 따위가 아니더라도 홀로코스트, 마루타, 십자군 전쟁 등 역사에서 수없이 목격되어지는 인간의 잔인성을 들 수도 있겠다. 다시 궁금해진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손무는 오자서가 저지른 복수극의 전말을 전해듣고서 오랫동안 비통한 침묵에 잠겨있다가 문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고 한다.

 

"승자라고 해서 무슨 일이나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일 것이오. 패자는 패했으니까 어떤 망동을 저질러도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지만 승자의 망동은 반드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오."

 

오자서는 손무의 말에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태산을 쌓아 올리다가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일이든지 마지막까지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작은일이라도 잘 살피지 않는다면 결코 일을 마무리 할 수 없다는 의미일 게다. 오자서의 명성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한 죄로 악명만 남게 되었다.

 

2. 후반부 이야기

 

후반부는 단연 오월동주, 와신상담, 경국지색으로 요약되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쟁패전이 압권이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대륙 남쪽에 위치하면서 서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국가였다. 그러나 이웃사촌 같은 정감어린 표현과 거리가 있다. '오월동주'란 오나라와 월나라가 한배를 탔다는 뜻으로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주 왕조를 섬기지 않는 남방의 오랑캐 소리는 함께 들으면서 내륙의 다른 제후국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오히려 서로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당시는 초나라와 제나라를 제압한 합려의 오나라가 패권국으로 부각되고 있는 시기였다. 합려로서는 눈엣 가시 같은 월나라를 굴복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손무도 떠나고 오자서도 예전같지는 않았지만 월나라 왕 윤상이 죽자 '상중에는 공격하지 않는다' 당시의 관례도 무시한 채 군사를 일으키는 오나라.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손가락에 구천(월나라 왕, 윤상의 아들)의 독화살을 맞은 합려가 전장에서 사경을 헤매게 되자 오나라는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아들 부차에게 복수를 부탁하며 합려가 죽자 아들 부차는 절치부심, 3년 동안이나 섶나무 더미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와신).

 

때가 무르익자 부차는 전쟁 준비에 힘을 쏟지만, 오나라 움짐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구천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나 구천은 오나라 내의 전장에서 상대국에게 대패를 당하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오나라 부차에게 항복과 동시에 신하로서의 충성을 맹세한다. 심지어 재상 범려와 함께 오나라의 볼모로 잡히게 된 구천, 그러나 이 모든 수모는 또 다른 반전의 기회를 얻기 위한 2보 후퇴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부차의 의심을 푼 구천은 수년동안 짐승의 쓸개를 심으며 복수를 다짐한다(상담).  범려는 착실하게 안으로 힘을 기르는 한편 오나라를 내부로부터 완전히 패망시킬 무서운 계책을 세운다. 후세에 경국지색으로까지 일컬어 지는 서시를 활용한 미인계가 바로 그것이다. 서시는 중국역사에 있어 여포와 동탁의 여인 초선, 모든 꽃들이 수줍어할 만큼 아름다웠다고 전해지는 양귀비 등과 함께 4대 미인 중에 하나일 만큼 그 미색이 뛰어났다고 한다.

 

각설하고 이런 절세의 미녀가 모든 권력을 한손에 움켜 쥔 패권국가의 왕실에 던져졌으니 이제 그 나라는 서시의 치마폭에 놀아나게 된거나 다름 없었다. 첫번째 목표는 오나라의 명장 오자서의 제거, 어려움 없이 성공했다. 그리고 향락과 황음으로 오나라 권력의 핵심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니, 월나라 대군을 맞이하는 오나라 병사들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가랑잎 꼴이 되었다. 허망해라! 천하를 호령하던 오나라는 부차를 끝으로 패망했다. 전국의 격전지를 발품을 팔아가며 연구하여 최고의 병법서의 기초를 마련하고 실전에서 자신의 이론을 증명해 보였던 손무, 천하제일의 명장 오자서, 그리고 수많은 영웅 호걸들의 영혼들은 갈데없이 흩어지고 전쟁의 상흔만 남게 되었다.

 

승자는 어떠한가. 토끼 사냥을 마치면 사냥개가 삶겨지는 것처럼 월나라 사정이라고 나은 것은 없으리라. 역사는 늘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을 경계하라고 이야기해오고 있는 바, 논공행상을 둘러싼 얼마간의 피바람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현명한 월나라 재상 범려는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범려는 군왕 구천의 상이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는 없는 상'임을 읽어내고 발병을 핑계로 조정에서 물러날 뜻을 표한다. 왜 바라는 것이 없었으랴마는 무엇인가 그 이상을 탐해서는 본전도 안되는게 인생인 것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간신의 모함으로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3족의 멸화를 당한 1등 공신 문종의 최후가 모든 것을 웅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에필로그   

 

소설 손자병법은 병서 손자병법의 해설서가 아니다. 소설이다. 이야기다.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런 점에서 고 정비석 선생의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 손무의 저작 [손자병법]의 깊이는 다른 척도로 재기로 양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서 춘추시대 말기 춘추오패들의 상승과 몰락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작가 신영복은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한 적이 있다. 역사는 서고에 쌓아둔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이해한다.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있지만 우리는 역사에서 경계한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이해하는 비루함이 역사속에서 피로 아로 새겨준 교훈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망각시켜 버린다. 역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또 '미래는 오래된 미래'라고도 했다. '현재의 모순과 갈등을 지양한 새로운 현재가 미래'라는 것이다. 결국 역사라는 것은 누군가 연필을 쥐고 백지 위에 쉼 없이 선을 긋고 있는 현재진행형이 아닌가. 과거에서 시작해서 미래로 이어지는, 끝이 없는 그 무엇이다. 예전의 과오를 반성하고 현재 우리 삶의 모순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오늘을 살아가야지 다짐한다. 지혜를 얻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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