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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동화면 동화지 '환상동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책 안쪽을 보니까 영어로는 'Fairy Tale'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찾아보니 그 뜻은 형용사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또는 '동화같은'이고, 명사로는 그냥 '동화'라고 되어 있다. 그러면 '환상동화'는 'Fantasy Fairy Tale'일 텐데, 우리말 책 제목을 구지 '환상동화'라고 붙혔으니 필시 그 연유가 있으리라.
그림 형제의 동화도 우린 'Fairy Tale'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림 형제의 작품을 떠올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이 동화들을 보니 옮긴이의 의도를 알겠다. 어린 시절 동화의 대명사는 단연 '안데르센 동화집'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 엄지 공주, 벌거숭이 임금님, 성냥팔이 소녀, 인어 공주, 백조 왕자 등등, 우리의 옛날을 지배했던 아름다운 이야기들 말이다. 디즈니가 좋아했던 안데르센 동화는 권선징악, 해피엔딩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림 동화집은 좀 달랐다. 기괴하고 공포스런 분위기를 주는 몇몇 이야기들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보아도 될까?'하고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들 역시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한 왕자'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두 주인공 돌로된 행봉한 왕자와 제비 모두 파괴되거나 얼어죽는다. 비록 신이 그 둘을 거두어 들이지만 착한 일을 한 주인공의 결말이 죽음이라니 아무래도 개운치가 않다. 그나마 이 책에 실린 9편의 동화 중에 '행복한 왕자'가 제일 나은편이다.
'별아이', '헌신적인 친구', '나이팅게일과 장미', '어부와 그의 영혼', '유별난 로켓 불꽃', '왕녀의 생일', '이기적인 거인', '젊은 왕' 등 어느 것 하나 동화로서 익숙한 것이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 더 익숙하다. 특히 '헌신적인 친구'는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정원을 가꾸는 순박한 청년 한스와 밀러의 이상한 우정을 통해 일종의 '甲의 횡포'를 보게된다. 배운자와 못배운자, 달변가와 눌변가, 가진자와 못가진자, 우정을 나누어야 할 친구 사이가 현저히 균형을 잃었을 때 우정이란 탈은 폭력이란 이름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밀러'처럼 상대방의 일방적인 헌신만을 강요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한 번 주고 평생 우려먹는 철면피들 말이다. 이들은 다가올때 흡사 천사처럼 친절하다. 배려하는 척,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는 듯 입속의 혀처럼 행동하지만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교묘하게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방의 '헌신'만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당하는지도 모른채 당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런 '악당'들은 대개 더 잘산다. 동화에서나, 현실에서나.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는 부조리극의 냄새가 난다. 잘나가는 극작가에서 이국에서 쓸쓸히 죽어간 실패자로의 그의 인생이 그의 작품들과 자꾸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