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발 이야기 좀 해야겠다. 역시 이 이야기의 시작은 고 이윤기 선생의 '신발론'을 빌려오는 편이 좋겠다. 선생은 동서를 막론하고 신화나 전설에는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고 하면서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 이야기, 잃어버린 신발을 되찾는 사람 이야기, 강가에 신발을 벗어 놓고 투신 자살하는 사람 이야기, 신발을 단서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내는 사람 이야기.' 등등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신발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리스 영웅들인 모노산달로스(외짝신 사나이) '이아손', 신발로 아버지와의 신표를 정한 '테세우스'이야기 부터 삼국지의 유비, 달마대사, 콩쥐팥쥐, 신데랄라, 구약의 모세 이야기까지 신발과 관련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결국 나와 대지(땅) 사이에 있는 신발은 나를 나타내는 징표이자 자아이면서 나의 과거이고 현재이자 나아가 미래가 아니냐는 암시를 준다.

 

고 이윤기 선생의 '신발론'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오늘 '신발 스타일(shoes style)'의 포스터를 살펴보기로 한다.

 

 

 

[사랑의 스파이, 1985]

 

 

 

톰 행크스가 출연하는 이 영화의 원제는 [외짝 빨간 신을 신은 사나이(The Man With One Red Shoe)]이다. 신발은 한짝인데 운동화 끈 끝이 마치 도화선처럼 불꽃을 일으키고 있는 재미난 포스터다. 보통 영화의 제목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이 상식인데, 이 포스터는 제목도 잘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Daum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 보자.

 

모로코에서 미 CIA 요원이 마약 밀매에 관련되어 체포된다. 그러자 국회 상원 특별위에서는 CIA 국장 로스(찰스 듀닝 분)에게 이에 관해 해명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CIA 국장 자리를 노리던 쿠퍼(다브니 콜만 분)는 기회를 놓칠세라 사방에 도청장치를 해놓고 로스를 감시한다. 그러나 맹한 쿠퍼보다 한발 앞선 로스는 이를 역 이용할 계략을 짠다. 이에 따라 로스의 부하 브라운은 공항에 나가 좀 모자라 보이는 리차드(톰 행크스 분)에게 다가가 그를 사건에 끌어들인다. 한편,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주 여행을 다녀오던 리차드는 짖꿎은 친구의 장난으로 구두 한짝을 잃어버리곤 한쪽에 구두, 한쪽에 빨간 운동화를 신고 트랙을 내려오던 중이었던 것이다. 리차드가 미끼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쿠퍼는 자신의 정보팀 요원들을 리차드에게 붙여놓고 끈질기에 괴롭히는데...

 Daum 영화

 

줄거리를 참조해도 영화의 정체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은데, 리차드도 외짝신, 아니 짝짝신 사나이다. 그의 잃어버린 구두 한짝은 어디로 갔을까? 또 구두 대신 빨간 운동화의 또다른 짝은 어디로 갔을까? 젊은 '톰 행크스'도 만나볼겸 이 영화 봐야겠다.

 

 

 

 

[신데렐라, 1950]

 

 

 

신발 이야기에서 꼭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신데렐라'이야기와 '콩쥐팥쥐' 이야기다. 두 이야기는 시공간을 달리할뿐 '평행이론' 처럼 꼭 들어맞는다. 소개된 포스터는1987년 재개봉시 제작된 포스터인데 신데렐라가 잃어버린 유리구두 한짝이 반짝거리며 주인을 찾아가고 있다. 이 영화의 여러 버전의 포스터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포스터라고 생각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패션잡지사 '런웨이'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촌티를 벗고 세련된 커리어 우먼으로 성공을 거둔다는 신데렐라 스토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티저 포스터는 하이힐의 끝을 악마의 삼지창으로 표현했다. 사실 패션의 문외한인 나는 이 영화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프라다'가 뭔지도 몰랐다. 그래서 친절한 인터넷 선생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패션 브랜드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대충 아래처럼 설명하고 있다.

프라다는 1913년 마리오 프라다에 의해 이탈이아 밀라노에 가죽제품 판매 상점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1978년 마리오 프라다의 외손녀인 디자이너 미우차 프라다가 이어받아 파산 직전의 매장을 오늘날의 명품 브랜드로 변화시켰다. 이후 최고경영자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경영을 맡아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특히 1990년대에 개발된 블랙 나일론 백팩은 값싼 소재인 나일론에 세련된 디자인을 가미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모두 구현한 역작으로 평가받았다. 현대 직장여성의 기호에 딱 맞는 아이템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프라다의 명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후 1993년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미우를, 1997년 프라다스포츠 등을 론칭하면서 비약적인 사업확장을 하였다. 또한 구찌, 질샌더, 펜디 등을 인수 및 매각해 사세를 더욱 넓혔다. 전세계에 있는 프라다 매장 건물들은 아름다운 건축물로 가치가 높은데, 유명한 건축가 렘 쿨하우스, 헤르조그와 드 뫼론, 마이클 엘름그린, 잉가 드래그셋 등이 건축에 참여했다. 본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다.

 Daum 백과사전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고 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신발이 그 주인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면 일응 타당한 견해다.

 

 

 

외짝신 포스터에 이어 두짝 다 있는 신발 유형 포스터도 있다.

 

 

 

 

[후지어스, 1986]

 

 

 

영화제목 '후지어'는 '시골뜨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인디애나 주의 별칭이기도 한데, 영화 [후지어스]는 후자의 의미로써 인디애나 주립 고등학교의 농구팀을 지칭한다. 포스터는 시골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낡은 농구화를 클로즈 업으로 잡고 있다. 진 해크만, 바바라 허쉬, 데니스 호퍼 같은 명배우들이 공연한 이 영화는 스포츠 영화가 줄 수 있는 감동을 고스란히 제공하는 수작이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 노상에서 구두를 닦은 적이 있다. 능숙하게 광을 내주던 아저씨가 뜬금없이 "00에서 근무하지 않으세요?" 하고 묻는 것이다. 깜짝 놀라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 보니까 아저씨는 30년 가까이 구두를 닦다 보니까 구두만 딱 봐도 직업이 무엇인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시던 것이 떠오른다. 가만히 생각하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게 우리가 신고 다니는 신은 어느때부터인가 나 자신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신발신고 걸어온 길이 '이력서(履歷書)'에 기재할 내 과거가 되는 것이고, 내 온몸을 떠않고 다녔던 신발은 나의 취향부터 걸음걸이 습관이나 질병 여부까지 말해주며 나의 일부가 되어 온 것이다.

 

그러니...신발, 소중히 다루어야겠다. 그리고 신고 걷는 그 걸음걸음 허투루 해서는 안되겠다. 서산대사의 한시가 마음을 다잡게 하는 하루다.

 

踏 雪 野 中 去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不 須 胡 亂 行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今 日 我 行 跡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 作 後 人 程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서산대사 ‘野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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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마음도 울적하던 차에 과 선배와 합이 맞아 즉흥적으로 결정한 출가였다. 90학번이었던 선배는 당시 내게는 다소 생소한 '재즈' 마니아였는데 음주가무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풍부해서 재미있는 기억이 많다. 문제는 그의 생활습관.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고 강의실이나 도서관보다는 '재즈빠'에서 그를 찾는 것이 빨랐을 정도로 괴짜였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나오기 전인 때였다. 당시 모토롤라 제품의 '삐삐'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정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메세지가 떴다. 대게는 무슨 무슨 빠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는데 걸어보면 선배가 술에 취한 듯 음악에 취한 듯 헷갈리는 말투로 응답한다. '00빠야, 형 심심하다.', '여기 바텐더 죽여준다. 로데오 거리 00빠로 와라', 'DJ랑 2:2 미팅 하기로 했다. 빨리와' 등등. 가보면 선배는 벌겋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미모의 바텐더와 수다를 떠는데 주로 '재즈'음악에 대한 토론 내지 잡담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호기심반 재미반으로 부르는 족족, 선배와 '빠'의 영업이 끝날때까지 낯선 밤의 문화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밤에 눈떠있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나에게는 그런 생활이 오래 갈 수 없었다. 제대하고 부족한 학점도 채워야 했던 나로서는 선배처럼 자체 휴강도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결국 선배의 부름에 거역하기 시작했고 자취 생활도 4개월로 마감하게 되었으며 '재즈'의 추억은 '발담금질'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 가족과 함께 대부도 유리섬미술관에서 열린 재즈보컬리스트 [윤희정과 함께하는 글래스 &재즈‘Glass &Jazz) 음악회]를 다녀 왔다안산시와 유리섬미술관이 민·관 합동으로 개최하는 음악회였는데 대부도를 국내외 재즈 음악 애호가와 관광객들에게 관광코스로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

 

 

 

처음엔 '윤희정'이 누군가 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이 가수 인지도가 대단하다. 아내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므로 대부도 칼국수도 먹을겸 이 낯선 '재즈'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재즈에 미쳐 있던 대학시절 00선배가 계속해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양반, 지금 뭐하고 있을까?'

 

차려진 야외무대는 소박했지만 공연은 화려하고 묵직했다. 유리조형 작가들의 유리공예 시연으로 시작한 공연은 자연스럽게 재즈 무대와 어우러졌다. CEOJ 밴드의 오프닝 연주가 흐르는 사이 육중한 체격의 윤희정씨가 무대에 등장하자 하늘엔 어둠이 내리고 조명기구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박수가 있었고 첫곡 'It don't mean a thing'의 반주와 함께 윤희정씨의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다섯살 아들놈은 적응하기 힘든가 보다. 하긴 머릿속에 '터닝 메카드'만 있는 아이에게 강요하기에는 '재즈'가 그리 쉬움 음악은 아니니까. 이어서 흐르는 'Over the rainbow', '세노야', 'It's only papermoon'을 비롯한 여러 곡들은 아들과의 작은 전투로 인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다. 공연장에서 잠시 벗어나 아들 요구대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아들의 체력을 방전시킨 다음 다시 좌석에 앉았을 때는 특별손님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재치있는 입담과 함께 두 곡이나 직접 부르기도 했다. 윤희정씨로부터 사사받은 노래 솜씨는 관객들의 호응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I'm a fool to want you', 'Tennessee Walts', 'I live the lord'까지.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밤하늘을 혼자 지키고 있던 초승달이 더욱 밝고 선명한 자태를 뽐낼 쯤 마지막 앵콜곡으로 공연은 끝났다. 마지막 곡의 제목은 모르겠다. 들썩거렸던 객석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만큼 나지막하면서도 슬픈 느낌의 곡, 긴 여운을 주는 곡이었다. 

 

여전히 난 '재즈'를 잘 모른다. 즐겨 듣지도 않을 뿐더러 공연장에 와보는 것도 내생애에 처음이었다. 대학 때 잠시 맛본거 이외에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상,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재즈 선율이 가끔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전부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윤희정과 친구들'의 공연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이번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음악,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만든 시간이어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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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1 : 공포의 계곡 (양장) 시간과공간사 셜록 홈즈 전집 1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정태원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아서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4편의 장편과 56편의 단편을 남겼다. 그의 4편의 장편 중 [주홍색 연구], [배스커빌의 사냥개]에 이어 세번째로 [공포의 계곡]을 읽었다. 어렸을 때 읽었던 기억이 완전히 백지가 된 상태여서 그런지 읽을 때마다 신선함을 느낀다. 사실 모리어티 교수가 [공포의 계곡]편에서 언급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그가 등장한다. 이름으로만 등장하지만 존재감이 있다. 최근 다른 작가들에 의해 씌여진 홈즈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해서 궁금한 인물이기도 하다. 홈즈가 모리아티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은 꽤 흥미를 끈다.

"...하지만 모리아티를 범죄자라고 한다면 자네는 명예 훼손으로 고소당할 걸세. 그 자는 정말로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존재라네. 희대의 위대한 음모가, 온갖 권모술수의 배후자, 암흑계의 지배자, 한 나라의 운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정도의 두뇌를 가진 사람, 그가 바로 모리아티라네!

...

언제고 내가 시시한 자들과의 일을 완전히 끝낸다면 그놈과 상대할 날이 꼭 올 거야."

11~12.p

 

이야기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홈즈와 왓슨의 활약이 그려지고, 2부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또 하나의 이야기로 펼쳐낸다. 이점은 [주홍색 연구]와 비슷하다. 2부의 무대는 '공포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탄광촌. '스코러즈'라고 불리워지는 범죄집단을 분쇄하기 위해 맥머도라는 도망자로 위장한 미국 최고의 탐정, 버디 에드워즈가 이곳에 잠입한다. 우여곡절 끝에 범죄집단을 일망타진하지만 도처에 뿌리내린 '스코러즈' 잔당에 목숨을 위협받게 되자 에드워즈는 더글라스로 이름을 바꾸고 영국으로 까지 도피했다가 결국 살해당한 것이다.

 

홈즈는 사건을 해결했지만 더글라스(에드워즈)가 결국 살해당하자 배후에 모리아티가 있음을 직감한다.

 "이 일에는 그 방면(살인)의 대가가 손대고 있습니다. ... 붓터치를 보면 대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듯이, 하는 행동을 보면 모리아티의 짓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321.p

그리고 모리아티와의 대결을 준비하듯 '운명에 맞서는 홈즈의 두 눈은 암흑의 장막을 꿰뚫으려는 듯 앞을 응시'한다는 문장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해당 인물을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 이토록 신비감과 긴장감을 주다니... 최근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 : 모리아티의 죽음]이 인기던데 그 둘의 전면전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우선 '라이헨바흐 폭포 사건'의 내막부터 살펴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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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오전 11시, 영화관 전체를 대관한 것처럼 훵한 곳에서 [PK : 별에서 온 얼간이]를 보았다. 인도영화는 몇년 전에 본 [블랙] 이후 두번째다. 재밌다. 종교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렇게 도발적인 영화를 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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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전집 2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얼굴도 모르는 동료가 메일을 보내온다. 대게 "좋은 아침! 즐거운 월요일입니다.^^*"라는 활기찬 인사로 시작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통 날아 들었다. 벌써 제125호 째라니 그의 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오늘 보내온 내용중에 일부를 인용한다.

 

살아가면서 삶의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혼해서 한참 업무에 매진할 시점과 아이를 양육할 시점이 중첩되고,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어 학업을 챙겨야 할 시점이면 업무의 양과 책임감 또한 가중되고, 또한 그 시점이면 아내의 고통은 두 배가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노부모의 애환이 함께 밀물처럼 몰려올 때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하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갈길은 아직 멀다. 직장은 직장대로, 가정은 가정대로 나와 관계를 맺은 많은 것들이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째각째각 돌아가고 있다. 많은 일들은 이미 예정되었거나 예측한 대로 돌아가지만 어떤 일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즉흥적인 결정을 요구할 때도 있다. 이렇든 저렇든 그런데로 잘 돌아간다. 다행이다.

 

그런데, 왜 그런데로 잘 돌아가는 것일까?  

...

왜?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왜 이방인일까? 직장도 있고 비록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결혼할 여자도 있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까뮈는 1955년 미국판 서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고 역설적으로 요약한 바 있다고 고백했다.

 

뫼르소는 우연하게, 정말로 어처구니 없게도 칼날에 반사된 태양빛 때문에 아랍인을 살해하게 된다. 그리고 체포되고 이어진 재판에서 그는 아랍인 살인죄 자체보다는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으로 인해 냉혈한이 되고 배덕자가 되고 결국 사형을 언도받는다.

 

뫼르소는 마음이 따르는 대로 행동했다. 마음은 슬프지도 않은데 억지로 슬픔을 가장하지 않았다. 반대로, 감정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데 그것을 억눌러 슬픔을 참은 것이 아니었다. 슬프지 않은 원인은 모르겠지만 그는 눈물을 보일만큼 애잔하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는 비정상인가?

 

그일부터 뫼르소의 삶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살인사건에 휘말렸으며, 자연스런 그의 행동은 비난의 화살이 되어 돌아왔고, 천하의 패륜아가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는, 아니 나는 뫼르소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상사의 말이라면 과장해서 공감을 표시하기도 하고, 가기 싫은데 뒤따를 평판때문에 이곳 저곳 애경사를 찾아 다니기도 한다. 마음으로는 욕할지언정 겉으로는 호의를 표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당장 부딪히기 싫어 남들처럼 행동할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런데로 세상은 잘 돌아간다. 누가 내게 시비걸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 까뮈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 나는 나에게 얼마나 솔직한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

그 어떤 영웅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읽는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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