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은 헤브루어의 베엘제버브(희랍어 Beelzebub)를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곤충의 왕'이라는 뜻인데 흔히 '악마'를 암시적으로 가리킨다고 알려져 있다. 윌리엄 골딩은 스스로 [파리 대왕, 1954]의 주제를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 다섯 살에서 열 두살에 이르는 한 무리의 소년들(정확이 몇명인지 불분명하다)이 무인도에 불시착했다. 생존한 어른은 하나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미 서두에서 이 소설의 제목에 함축된 의미를 밝힌 것처럼 뭔가 불길하다. 브룩 쉴즈가 출연했던 두 소년소녀의 무인도 생존기 [푸른 산호초, 1980]와는 달라도 많이 다를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를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랠프, 잭, 피기(돼지), 사이먼, 쌍둥이 형제 에릭과 샘, 그리고 사냥부대로 변모해 버린 성가대 단원들과 어린 꼬마들이다.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랠프와 피기이다. 랠프는 균형잡힌 몸에 나름 선한 눈을 가진 소년임에 반해 피기는 호칭처럼 뚱뚱하고 지독한 근시로 안경을 꼈으며 천식때문에 조금만 움직여도 심한 기침을 해댄다. 그러나 지적 수준은 오히려 랠프보다 더 낳은 소년이다. 랠프와 피기는 자신들 이외 또다른 생존자를 불러모으기 위해 '소라'를 힘껏 불어 신호를 보내는데 소라를 분 것은 랠프지만 그것을 나팔로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한 것은 피기다. 피기는 또 일찌감치 두려워 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암시할 정도로 지적이다.

 

"~나도 짐승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발톱이나 그런 걸 가진 짐승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무섬 탈 만한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어" 돼지는 얘기를 멈췄다. "다만...." 랠프는 초조한 듯 몸을 움직였다. "다만, 무어란 말이야?" "다만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무섬을 탄다면 문제가 달라진단 말이야."  -123쪽

 

소라 소리를 듣고 소년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 중엔 랠프 또래의 잭의 이끄는 성가단원들도 포함되어 있다. 잭은 근육질에 호전적 성격이다. 처음부터 소년들의 '대장' 역할을 놓고 랠프와 대립하는 잭, 그는 이미 집단 내에 있는 또 다른 집단의 우두머리다. 결국 지도자(대장)를 뽑기 위한 선거에 돌입하는 소년들. 랠프나 잭이나 리더로서의 자질은 아직 아무것도 검증된 바 없지만 과반이 넘는 아이들은 '소라'로 상징되는 랠프를 지도자로 선출한다. 그렇지만 잭은 집단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요구한다. 성가단원들을 사냥부대로 활용하겠다면서 스스로 사냥부대를 이끌겠다는 것인데 랠프는 이를 승인한다. 일종의 무력부대가 탄생하는 순간이지만 지도자 랠프는 그 파장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 다음에 눈여겨 볼 소년은 사이먼이다. 사이먼은 과묵하고 다른 소년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사색을 좋아하는 이 소년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년 집단은 사이먼의 성찰의 메세지를 소화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어린 소년들일 뿐이다. 그가 파국을 예언하지만 귀담아 듣지 않는다.

 

랠프는 소리쳤다. "사이먼의 말을 들어! 그가 소라를 잡고 있으니까!"  "내 말은.... 짐승은 아마 우리들 자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에끼 바보!" 이렇게 말한 것은 돼지였다. 충격으로 점잔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사이먼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를테면...." 사이먼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질을 표현해보려고 애썼으나 말이 잘 되지 않았다. 곧 영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 조용해진 속에,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잭이 야하고도 힘 있는 하나의 실러블을 내뱉었다. 해방감은 오르가슴과 같다. ~사냥부대는 고함을 질렀다. 사이먼의 노력은 형편없게 실패하였다. 조소를 받고 참혹한 몰골이 된 그는 비실비실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130~131쪽

 

쌍둥이 형제인 샘과 에릭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언제나 둘이 함께하고 명랑한 이들은 랠프와 잭이 갈라섰을 때 피기와 함께 랠프 편에 남는다. 마지막 순간에는 잭의 편에 가담하지만 그것은 무력과 폭력에 굴복한 결과였고 속으로는 여전히 랠프의 편에 선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랠프의 위치를 발설하면서 위험에 빠뜨린다. 성가대원들 개개인은 뚜렷한 개성이 없다. 행동대장인 로져 이외의 그들은 무리로서만 묘사된다. 그 외 꼬마들은 보호의 대상일 뿐이다. 성가대원이라든지 꼬마들은 각기 다른 편에 서 있는 군중 또는 무리이다. 적극적으로 동조하느냐 여부가 차이라면 차이랄까.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 이 아이들이 무인도에 어른들 없이 남겨졌다. 이 곳에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하는 '서바이벌 게임'류의 전개는 잊어야 한다. 적은, 두려움의 대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이 소년들은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에 나오는 소년들(이들의 연령은 8살부터 14살에 이른다)과는 달리 좋은 결말을 향해 가지 않는다. '짐승'으로 대변되는 미확인의 공포와 언제 구조될지 알수없는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각자 생존을 위한 다른 전략을 세운다. 구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랠프의 무리는 봉화연기, 생존을 위한 오두막, '소라'로 상징되는 질서를 신봉한다. 반면 권력에의 집착에 사로잡힌 잭은 더 직접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의 덩어리다. 나무 열매로 연명하던 소년들에게 '고기' 맛을 선사한 그는 '연기'도 그것이 말하는 '구조'도 뒷전이다. '고기' 맛 뿐만 아니라 '피' 맛 까지 본 잭과 사냥부대는 점점 더 야만인에 가까와 진다. 집단 무의식 속에서, '살육'을 마치 '오락'처럼 즐긴다. 그들의 잔혹함은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먹이던 어미 멧돼지 사냥을 하는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여기서 더위에 녹초가 된 암퇘지는 쓰러졌다. 소년들은 마구 덤벼들었다. 이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무시무시한 습격에 암퇘지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비명을 지르고 뛰어오르고 했다. 온통 땀과 소음과 피와 공포의 난장판이었다. 로저는 쓰러진 암퇘지 주위를 달리면서 살이 드러나 보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창으로 찔러댔다. 잭은 암퇘지를 올라타고 창칼로 내리찔렀다. 로저는 마땅한 곳을 찾아서 제 몸무게를 가누지 못해 짜빠질 정도로 창을 밀어넣기 시작하였다. 창은 조금씩 속으로 밀려 들어가고 겁에 질린 암퇘지의 비명은 귀가 따가운 절규로 변하였다. 이어 잭은 목을 땄다. 뜨거운 피가 두 손에 함빡 튀어올랐다. 밑에 깔린 암퇘지는 축 늘어지고 소년들은 나른해지며 이제 원을 풀었다. 나비들은 여전히 공지 한복판에서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었다.   202쪽

 

결국 랠프의 무리와 잭의 무리는 적이 되어 갈라선다. 이제 숲의 '짐승'이 아니라 얼마전까지 동료였던 잭과 그 일당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야 한다. '소라'의 권위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더이상 '연기'로 상징되는 구조는 모두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구도자이자 예언가인 사이먼은 정신분열인 듯 아닌 듯 몽환적인 체험을 통해 위험을 감지한다. 

 

짐승을 위한 선물, 짐승이 선물을 받으로 오지 않을까? 그 머리도 자기 생각에 동조하는 듯이 그에게는 생각되었다. 도망쳐, 딴 소년들에게로 돌아가, 하고 머리는 조용히 말하였다. 그저 농담이었어. 정신을 쓸 게 뭐야? 넌 그저 잘못 생각했던 거야. 그뿐이야. 가벼운 두통이거나 무언가를 잘못 먹은 탓일거야. 돌아가, 착하지-머리는 소리 내지 않고 말하였다. ~창자더미 위에는 파리가 새까맣게 모여들어서 톱질을 하는 소리같이 윙윙거렸다. 얼마 후에 이 파리떼는 사이먼을 알아챘다. 잔뜩 배를 채웠기 때문에 파리떼는 사이먼이 흘리는 땀을 찾아와 마셨다. 파리떼는 사이먼의 콧구멍 아래를 간지럽히고 넓적다리 위에서 등넘기 장난을 하였다. 파리떼는 쌔까마니 다채로운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사이먼의 전면에는 <파리대왕>이 막대기에 매달려 씽끗거리고 있었다. 마침내 사이먼은 눈을 뜨고 다시 쳐다보았다. 흰 이빨과 몽롱한 눈과 피가 보였다. - 그리고 태고적부터 있어 온 피할 길 없는 인식이 그의 응시를 떠받치고 있었다. 사이먼의 오른편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205~206쪽

 

"너는 참 바보야" 하고 <파리대왕>은 말하였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녀석이야" ~ "넌 여길 벗어나서 딴 아이들과 함께 노는 게 좋아. 그들은 너의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있어. 랠프가 네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길 바라지는 않겠지? 너는 랠프를 퍽 좋아하지? 그리고 돼지와 잭도?" 사이먼은 고개를 약간 뒤로 쳐들었다. 눈은 아무리 해도 딴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눈앞에는 <파리대왕>이 매달려 이 쪽을 보고 있었다.  "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냐? 넌 내가 무섭지 않으냐?" 사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오직 내가 있을 뿐이야. 그런데 나는 <짐승>이야." 사이먼의 입이 한참 애를 쓰더니 똑똑한 말소리가 새어나갔다. "막대 위에 꽂힌 암퇘지머리야" "나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을 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 ~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 사이먼은 자기가 거대한 아가리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속은 새까맸다. 점점 퍼져가는 암흑이었다. ~ <파리대왕>이 말하였다. "우리는 너희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을 거야. 알겠어? 잭도 조지도 모리스도 로버트도 빌도 돼지도 랠프도. 너희들 모두. 알겠어?" 사이먼은 그 아가리 속으로 삼켜져 들어갔다. 그는 쓰러져서 의식을 잃었다.  213~215쪽

 

무리로 돌아온 사이먼은 결국 잭 일당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들은 '짐승'으로 여겼다고 하지만 그건 '구차한 변명'이란 걸 모두가 안다. 이미 잭이라는 말 주위에는 '터부'가 퍼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잭 일당은 익은고기를 위해 피기의 안경을 약탈하고 그 안경을 돌려받으려고 찾아온 피기마져 죽인다. 이제 살인은 특별하지도 않게 되었다. 마지막 사냥감이 된 랠프, 그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순수하고 순진해야 할 12살(우리나이로 해도 많아봐야 14살) 이하의 소년들은 어쩌다가 이런 끔찍한 상황에 직면한 것일까?  

 

서두에 말한 것 처럼 작가는 "인간 본성의 결함에서 사회의 결함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아무래도 골딩은 순자의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 같다. 극한의 조건에서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타심을 발휘하기 보다는 그보다 더 쉬운(?) 야만으로의 퇴행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이 무서운 우화는 독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으키게 한다. 소년들만 나오는 이 소설이 성장소설의 범주가 아니라 묵시록적 계시로 느껴지는 이유다.

 

그렇지만 아직 인류가 파국으로 끝나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있을터. 우리 안에는 야만성이나 악마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선이 악보다 우위에 있다는 믿음, 그것이 옳다는 확신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비록 날마다 그런 사실을 의심케 하는 끔찍한 뉴스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황폐하게 만들지만 말이다.(7살 원영이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수사로 밝혀진 계모의 아동학대는 눈과 귀를 의심케할 정도로 끔찍하다.) 공동체 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귀퉁이 무너진다고 지켜만 볼 수 없지 않은가. 심연의 악이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더 큰 목소리로 공동선으로 이겨내야 한다.

 

p.s. 비교해서 읽으면 좋은 소설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 등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0일간의 세계 일주 열린책들 세계문학 147
쥘 베른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 배낭 여행을 곧잘 했다.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지만 국내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았으므로 주로 우리 국토 구석구석을 둘러 보는 여행이었다. 항상 동행을 하던 친구는 야전 경험이 풍부해서 먹는 거며 자는 문제는 거의 전담해서 해결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이 맞는 친구라도 다 맞을 수는 없는 법, 그 친구와 나의 여행 스타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가장 큰 의견 차이는 속도였는데 나는 가급적 여유있게 충분히 보고 즐기자는 주의였다면 내 친구는 짐풀자 마자 싸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암튼 이 문제 때문에 한번은 크게 다투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 자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던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읽으면서 내 친구 생각이 많이 났다. 런던을 출발하여 파리, 수에즈 운하(1869년 개통), 아덴, 뭄바이와 콜카타를 거쳐 싱가폴, 홍콩, 요코하마,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리버풀을 지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마치 마라톤 코스처럼 정해진 노선대로 특정 지역을 다녀 왔다는 것에 큰 의의를 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와 파스파르투에게는 80일(1872.10.2.~12.21.까지)이라는 시간 제약이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 게다가 그 여행이 재산의 반을 두고 하는 내기였으니 오죽하랴!

 

그러나 단조로울 것 같은 여행은 필리어스 포그를 절도범으로 오인한 영국 형사 픽스의 추적, '사티*'라는 인도 풍습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인도 여인 아우다의 합류로 점점 '엑셀런트'한 '어드벤쳐'로 변모한다. 또한 성격이 극명하게 다른 두 주인공, 영국신사 포그와 그의 신참 하인 파스파르투('사방을 헤치고 다닌다'는 뜻, 별명 만능열쇠)의 미묘한 케미가 읽는 재미, 상상하는 재미를 더해 준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선박이나 열차 정도가 최신 교통수단이었던 140여년 전 당시에는 긴 여행시간 만큼 여행중에 발생할 수 있는 변수도 더 다양했던 것 같다. 예기치 않은 폭풍우, 인디언들의 열차 습격, 소떼들의 이동, 제때에 통보받지 못한 바뀐 운행시간 등등.

 

*사티 ; 인도에서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아있는 아내를 불태우던 풍습

 

오랜 만에 다시 읽은 오래된 이 모험소설은 아동, 청소년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읽을 거리임에 분명한 것 같다. 쥘 베른의 다른 작품 역시 전 세계의 많은 젊은 독자에게 꿈과 모험심을 자극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을 단순히 아동 문학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꿈과 모험은 젊은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여행은 나이를 가리지 않으므로 고전을 통해, 다른 또 무엇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극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인생이 어차피 여행이고 모험이니까.

 

p. s.

"희망차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좋다"고 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말처럼 어디를 갔다 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여정 자체를 어떻게 즐겼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떠나고 볼 일이다.

 

접어둔 페이지

 

그는 합리적으로 세계를 돌며 자신의 궤도를 완성할 뿐, 자기 둘레를 도는 소행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14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살 클럽 열린책들 세계문학 224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임종기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유명한 스티븐슨의 중, 단편 선집이다. <자살클럽>, <시체도둑>, <말트루어 경의 대문>등이 수록되어 있다. 처음과 맨 나중 것은 1882년에 출간한 [신 아라비안 나이트]에 수록된 작품이라고 한다. 왜 각 장 끝에 (아라비아 작가가 말하길)이 들어갔는지 알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송 을유세계문학전집 1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뮈, 사르트르 이전의 선구적인 실존주의 작가 카프카의 난해한 작품, [소송]. 을유문화사(이재황 옮김) 판으로 읽었다. 장장 석달이나 걸렸다. 첫장을 넘긴 후로 아주 빈번히 다른 책 들에 손이 갔다. 그 사이에 읽은 소설로는 H.G. 웰즈의 [모로박사의 섬]과 [투명인간],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백주의 악마],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톨스토이의 [부활]과 [이반 일리치의 죽음], S.S. 밴다인의 [비숍 살인사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앤소니 버제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등에 이른다.

 

그만큼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다. 깃털만큼 이라도 잡념이 끼어들면 어김 없이 작품의 흐름이 샛길로 빠져들어 다시 몇 쪽 앞으로 책장을 되돌리곤 했다. 어찌되었든 진심으로, 20세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문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 님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포기하지 않고 완독한 것으로 일정부분 만회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K는 30세의 잘 나가는 은행원이다. 그는 어느날(그의 생일이었다) 갑자기 침실에서 의문의 두 남자에게 체포를 당한다. 누군지도, 까닭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가 무슨무슨 이유로 K를 고발한 것이다. 엉겁결에 소송 절차에 들어선 K는 이제부터 '법원'이라는 국가기관과 그 주변에 기생하는(예컨데 변호사, 판사, 브로커 따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운 투쟁을 벌인다. 1년에 걸친 지리한 공방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낯선 두 사람의 방문, 그리고 이어지는 K의 사형집행으로 막을 내린다.

 

<소설의 시작 부분>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했음이 틀림없다. 무슨 나쁜 짓을 한 일이 없는데도 어느 날 아침 그는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그루바흐 부인을 좀 만나 봐야겠소...." K는 그렇게 말하면서 두 남자로부터 몸을 홱 빼내려는 듯한 동작을 했는데, 그러나 두 남자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서 있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안 됩니다." 창가의 남자가 말했다. 이말과 함께 그는 작은 탁자 위에 책을 던지며 일어섰다. "여길 떠날 수 없소. 당신은 체포되었소." "그런 것 같긴 한데...." K는 그 말에 이어 물었다.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우리는 당신에게 그런 걸 말해 줄 처지가 못 되오. 당신 방에 돌아가 기다려요. 소송은 일단 시작되었고, 당신은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요.~"    9~12쪽

 

<마지막 부분>

~ K의 목에 한쪽 남자의 두 손이 놓이는 동시에 다른 쪽 남자가 그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고 두 번 돌렸다. 흐려져 가는 눈으로 K는 아직 자기 코앞에서 두 남자가 뺨을 서로 맞댄 채 결말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개 같은 결말이로군!" 그가 말했다. 그는 죽어도 치욕은 살아남을 것 같았다.   309쪽

 

시작 부분의 체포 장면이나 마지막 부분의 사형 집행 장면이나 지금 생각하면 대륙법계 법체계의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방식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 이건 오히려 상상에 가깝다. 법학도였던 카프카의 국가의 폭력성에 대한 극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1914년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었음을 상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가가 휘두를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폭력인 전쟁 앞에서 평범한 개인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다. 전체주의, 관료주의의 폭력에 대한 개인의 거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면 당시의 현실은 소설속 상상보다 더 허무맹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작품 중 K는 소송이 자신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하며 피해 보려고도 하고, 연기해 보려고도 하고, 연줄을 만들어 보려고도 하지만, 진척이 없다. 주변엔 온통 부조리한 상황들과 사람들 뿐이다. 자신을 뺀 모두가 법원과 관계되어 자신을 감시하거나 압박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K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불평하면서도 여자에게 한 눈을 판다든지 은행에서의 위치를 두고 부지점장과의 라이벌 관계를 의식한다든지 변호사를 해임한다든지 갈팡질팡한다. 존재 자체에 대한 모호성도 이 작품의 가독성을 저해시키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법정이 가정집과 연결되어 있다든지, 건물 다락층이 법원사무처 라는 설정은 어린이 고객을 위한 '동화' 속 상황처럼도 보인다.

 

지루한 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자 비교적 정신을 집중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대성당에서' 장에 나오는 K가 어떤 신부님과 나누는 '법 앞의 문지기'에 관한 대화이다. 이 우화가 소설 [소송]의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여겨져서 옮겨 본다.

 

"당신은 법원에 관해 자기를 기만하고 있습니다." 신부가 말했다. "법 서문에는 그런 기만에 대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법 앞에 문지기가 한 사람 서 있다. 이 문지기에게 한 시골 남자가 찾아와 법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들여보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러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 있지>라고 문지기가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법으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비켜섰기 때문에 남자는 문 너머로 그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 어디 들어가 보게. 그러나 내가 힘이 세다는 걸 알아 둬. 그리고 나는 제일 말단 문지기에 지나지 않아. 홀마다 문지기가 하나씩 서 있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힘이 센 문지기가 지키고 서 있지. 세 뻔째 문지기만 돼도 나는 그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다구.> 시골 남자는 그런 어려움이 있으리라곤 미처 예기치 못했다. 법이란 누구나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모피 외투를 걸치고 있는 문지기, 그의 커다란 뾰족코, 길고 숱이 적은 타타르풍의 새까만 수염을 찬찬히 뜯어보고는 들어가도 좋다는 허가를 얻을 때까지 차라리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문지기는 그에게 걸상을 하나 주며 문 옆쪽에 있게 한다. 그 자리에 그는 몇 날 몇 해를 그렇게 앚아 있었다. 그는 입장 허가를 얻으려고 갖은 시도를 다 해 보고 자꾸 부탁을 함으로써 문지기를 지치게 한다. 문지기는 심심치 않게 그를 상대로 간단한 심문을 하며, 그의 고향에 대한 것이라든가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 캐묻는다. 그러나 그건 모두 높은 양반들이 별 관심도 없으면서 공연히 던지곤 하는 그런 질문들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엔 번번이 아직은 그를 들여보내 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것이다. 여행을 위해 많은 것을 장만해 온 남자는 문지기를 매수하기 위한 일이라면 아무리 값나가는 것이라도 무엇이든 아낌없이 써 버린다. 문지기는 주는 대로 다 받기는 하지만 그때마다 꼭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이걸 받는 것은 자네가 뭔가를 소흘히 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일 뿐이네.> 여러 해가 지나고 또 지나도 남자는 거의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문지기를 지켜본다. 그는 이제 다른 문지기들은 잊어버리고 이 첫 번째 문제만 남게 된다. 처음 몇 년간은 우연치곤 너무도 기막힌 이 불행한 신세를 큰 소리로 저주하다가 나중에 늙어 가면서는 그저 혼잣말로 궁시렁거릴 뿐이다. ~죽기 전에 그의 머리속에는 일생 동안의 모든 경험이 겹겹이 쌓이며 그가 여태껏 문지기에게 한 번도 던져 보지 못한 하나의 질문으로 뭉쳐진다. 이제는 점점 굳어 가는 자신의 몸을 더 이상 일으킬 수도 없어서 문지기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낸다. 문지기는 그에게 몸을 깊이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 쪽 체구가 현저히 줄어들어 키 차이가 크게 벌여졌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무얼 더 알고 싶은 거지?> 문지기가 묻는다. <끝질긴 사람이로군.> < 누구나 다 법에 도달하고자 애를 쓰고 있눈데....> 남자가 말한다. <그 긴 세월동안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안으로 들여보내 주기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요.> 문지기는 남자가 이미 임종에 이르렀음을 깨닫고 꺼져 가는 그의 청력으로도 알아들을 수 있게 그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여기는 자네 말고는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어. 왜냐하면 이 문은 자네한테만 지정된 문이기 때문이지. 이제 나는 가서 그만 문을 닫아야겠네.>'"

 

* 작품에서는 이 대목 다음에 신부와 K사이의 이 우화에 대한 논쟁이 이어진다. 카프카의 해설판이나 다름 없다.

 

읽기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작가에 대한 더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 카프카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해졌다. [변신] 등 여러 단편들과 그의 또다른 미완성 대표작 [성] 이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p. s. 그러나 K는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체포되었던 것일까? 어떤 일로 소송이라는 수렁에 빠져 사형까지 당한 것일까? 하긴 세상일에 반드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 것도 같다.

 

오손 웰스가 감독하고 안소니 퍼킨스가 출연한 영화 [소송(카프카의 심판), 19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주의 악마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소설, 환상문학의 명가 '황금가지'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에서 '푸아로 셀렉션'을 내놓았다. 딱 10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에디터스 초이스' 10권 세트와 함께 세련된 디자인의 젊은 옷을 갈아입어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첫 작품으로 1941년작 [백주의 악마]를 선택했다. 그리스의 휴양지, 레더콤 만의 스머글러 섬에서 벌어지는 미모의 여배우 살인사건과 이를 해결하는 '회색 뇌세포', 푸아로 활약상이 '마른 수건을 짜내는 듯한' 긴장감 속에 전개된다. 크리스티 작품의 특징인 한정된 공간, 제한된 등장인물, 미궁에 빠진 사건이 그대로 재현된다. 모두가 혐의가 있지만  딱 집어낼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를 퍼즐 게임하듯 한올 한올 풀어 나간다.

 

한 여배우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은 그밖의 다른 여성들에겐 시기와 질투의 대상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웬만한 남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기 때문이다. 가정을 깨뜨리기도 하고 재산을 탕진하게도 하는 그녀는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가해자로 낙인찍혔다. 그런데 그녀가 살해당했다. 아내의 바람기에 진절머리가 난 그녀의 남편일까? 새엄마에게 아빠를 빼앗겼다고 느끼는 열다섯 살 먹은 딸은 어떤가? 같이 온 휴양지에서 조차 딴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남편을 보고 복수심을 마음에 품은 아내는? 과거에 여배우에게 버림받았던 수두룩한 남자들도 있다.

 

그들의 알리바이는 믿을 수 있을까? 그들의 입은 모두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여배우는 과연 죽어 마땅한 '악마'와도 같은 존재였을까? 진짜 악마는 누구일까? 이 작품은 1982년 가이 해밀턴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소설이든 영화든 푸아로는 어떻게 휴가를 즐길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통해 그의 매력 속으로 풍덩 들어갔다 나오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