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시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선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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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로와 함께 애거사 크리스티의 대표 캐릭터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서재의 시체]를 읽었다. 마플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지긋한 중년 부인. 평범한 외모에 독신인 이 부인은 직업 탐정은 아니지만 뛰어난 관찰력으로 굵직한 사건을 곧잘 해결하곤 해서 수사기관에서도 그녀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녀의 방식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에서 출발한다. 즉 주변 인물에 대한 행동 방식, 표정이나 옷차림과 같은 외모, 관계형성 방식 등 축적된 데이타를 사건 관련자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식으로 일정한 패턴을 만들어 낸다.

 

"인간의 본성은 어디를 가도 대체로 거기서 거기예요. 헨리 경."

헨리 경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바틀 씨! 배저 씨! 그리고 불쌍한 콘웨이! 개인적인 의견을 강요하긴 싫지만, 당신 마을에 저와 비슷한 사람도 있나요?"

"네 물론이죠. 브릭스라는 사람이 있어요."   - 147쪽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마플양과  친분이 있는 벤트리 부부의 서재에서 18세 정도되는 생면부지의 젊은 여성이 시체로 발견된다. 누구나 벤트리 경의 부정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수사기관은 즉각 수사를 개시하고 벤트리 부인은 마플양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죽은 여자는 인근 지역에서 댄서로 일하던 '루비 킨'으로 밝혀지는데, 직업 댄서였던 그녀의 사촌이 다리를 다치자 임시로 와있었던 것이다. 루비 킨을 입양하고자 했던 부유한 장애 노인 콘웨이와 콘웨이의 사위, 며느리 그리고 몇몇 인물들이 더 추가로 얽히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지고,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생각보다 마플양의 등장 장면이 많치 않다는 것에 놀랐다. 마플 양은 관람객이나 쇼의 보조 진행자 처럼 힌트를 하나씩 던져주는 역할에 만족한다. 수사관과 범인이 벌이는 체스 게임에 훈수를 두는 정도랄까. 훈수를 둔다는 것은 판을 완전히 읽고 있다는 반증,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명민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녀가 던져주는 힌트로 사건은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데...

 

내 주변에도 마플 같은 '할머니'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꼭 할머니가 아니더라도 괜찮고. 어쨌든 만나서 반가웠어요, 미스 마플.

 

제인 마플(Jane Marple)은 크리스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로 총 14편의 작품에 등장한다. 그녀는 소설에서 뜨개질을 하는 늙은 노부인으로 묘사되며, 뛰어난 기억력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미스 마플이 처음 등장하는 사건은 목사관 살인사건이다.

소설에 의하면 그녀가 사는 곳은 세인트 메리 미드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다. 그녀는 사건을 맡으면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났던 사소한 사건들에 비추어 이를 해결하곤 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작품은 '잠자는 살인'인데, 이 작품에서 그녀가 죽지는 않는다.

 

미스 마플이 등장하는 작품목록

  • 목사관의 살인(1930)
  • 열 세 가지 수수께기(1932)
  • 서재의 시체(1942)
  • 움직이는 손가락(1943)
  • 살인을 예고합니다(1950)
  • They Do It with Mirrors(1952)/ '마술살인'
  • A Pocket Full of Rye(1953)/ '주머니 속의 죽음'
  • 패딩턴발 4시 50분(1957)
  • 깨어진 거울(1962)
  • 카리브 해의 미스터리(1964)
  • At Bertram's Hotel(1965), 해문출판사에서 '버트램 호텔에서'라는 제목으로 출판됨
  • Nemesis(1971), 해문출판사에서 '복수의 여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됨
  • Sleeping Murder(1976), 해문출판사에서 '잠자는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됨
  • Miss Marple's Final Cases and Two Other Stories(1979)
  • - 다음 카페, '미스터리 클럽'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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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서기 2017-06-1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 마을의 명사인 근엄한 대령 부부의 서재에서 금발 미녀의 시체가 발견된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 스캔들에 흥분하며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리고, 대령을 비롯한 저택의 모든 사람들은 희생자를 모른다고 하는 가운데, 마플 양만이 올바른 진실을 찾아나선다. 과연 이 낯선 여자는 왜 남의 집 서재에서 죽어야 했던 것일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중 하나!

    “당연하게도 독창적이다.” _《옵저버》
     
    변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0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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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 책들 판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율법 앞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카프카는 아마 외계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세기 후반(정확히는 1883년) 체코 프라하의 어느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24년  41세의 나이에 병사했다는 그의 생몰 기록은 아마도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고...

     

    초장부터 외계인 운운하는 것은 그만큼 그의 작품들의 면면이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은 여타 문호들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화같기도 하고 장난같기도 한 설정들, 그러나 그 안에 깃든 비극성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변신>의 설정을 보자. 어느날 갑자기 갑충으로 변해버린 출장 외판원 그레고르, 그는 홀로 가족을 부양하느라 뼈빠지게 일만 해온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일벌레로 일하느라 정작 가정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다가, 결국 진짜 '벌레' 가 되고서야 적나라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레고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하여 너무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가족들, 그들에게 그레고르는 돈버는 기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충분한 권리가 있음에도 정당한 보살핌도 받지 못한 그레고르의 죽음은 어쩌면 자살에 가깝다.

     

    <유형지에서>는 또 어떤가. 수사권과 재판권, 그리고 집행권을 몽땅 가지고 있었던 독재자가 떠나고 새로운 리더를 맞이한 유형지. 구시대의 책임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옛날 방식이 최선이라고 믿고 있는 실무자는 아직 과거의 환상에 갖혀 있다. 결국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그가 최종 선택한 방식은 외지인 앞에서 자신이 직접 기계에 몸을 맏겨 사법제도의 과학성(?)과 효율성을 입증하는 것이었지만 낡은 기계의 오작동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율법 앞에서>는 [소송]에서 이미 경험한 내용이다. 소시민이 법에 다가가기 위해 벌이는 지난한 과정이, 국가와 제도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좌절된다는 결론을 아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시공간의 비약이 인상적인 <시골 의사>, 아버지와 아들의 수직적 관계에 대한 불가항력이 느껴지는 <선고> 등등, 어느 것하나 쉬 간과할 수 없는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카프카는 죽음에 이르기 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원고를 모두 폐기하라고 했다고 하는데, 인류에게 하마터면 큰 손실이 될 뻔 했다. 그가 외계인이건 아니건 간에 카프카가 던진 '생각 거리'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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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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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 114쪽

    '바로 지금'? 이거 낯설지 않다. 작중 탬킨 박사의 이 말, [미움받을 용기]와 자꾸 겹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토미 윌헬름의 아버지의 이름(애들러 박사)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그것과 비슷하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생 최대의 거짓말', 즉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하지 않았던가? 애들러 박사와 탬킨 박사는 분화된 알프레드 아들러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44세에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윌헬름의 한심한 하루를 보여준다. 직장에서 쫒겨났고 아내와는 별거중이며 아이들도 못본지 오래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불편하기만 하다. 얼마 있었던 돈 마저도 탬킨 박사의 꾐에 넘어가 선물 시장 투자금 조로 맡긴 바람에 수중에 한푼도 남아있지 않아 방값 내기도 막막하다. 그의 성격은 아래 글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 또 다시 한 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그는 탬킨 박사와 함께 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도 그에게 수표를 주었다. - 41~42쪽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잘될 턱이 있겠나. 외모는 뻔지르르한 미남형에 체구도 누구 못지 않게 당당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인간형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인간은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라는 꿈을 접고 직장을 잡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한다. 별거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부치고 의무를 다하고자 하지만 주변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도움을 바랬던 아버지는 징징대는 못난 자식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하면 이따위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의 준 사기꾼으로 묘사되는 탬킨 박사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나는 자네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 167쪽

    '고통과 결혼'한다는 이 표현, 다소 진부하고 재미없는(?) 이 소품에서 건진 거의 유일하게 괜찮은 표현이다. 이 부분을 음미하면서 지난 날을 돌아본다. 수없이 많은 잘못된 '과거'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결국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함정이었음에도 오랫동안 헤매곤 했던 근본 이유는 애증이 얽힌 오래된 연인처럼 '문제'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맞으면서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것처럼, '고통과 결혼'해서는 생산적이지 못한 밀당으로 지쳐간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버릴 것은 버리자. 단순하게...

     

    p.s. 로빈 윌리엄스를 추억할 수 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1989]에서 존 키팅 선생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웅변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라고. 카르페 디엠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다. 번역하면 '오늘을 잡아라(Sieze the Day)", 솔 벨로의 중편 제목과 같다. 

        

    - 접어두기 

    "사람의 가치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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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스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6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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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오늘도 까뮈의 [페스트] 마지막 장을 넘기긴 했는데...  책을 읽은 것인지, 그 안에 인쇄된 활자를 감상한 것인지 애매하다. 잡념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는데 단지 손에 책이 들려 있을 뿐인가?

     

    삶이 어긋난 지퍼처럼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기간이 있다. 작은 어긋남이 전체를 망친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데, 한편으론 그 별 것 아닌 것이 파상풍이 되어 육중한 체구를 무너뜨린다. 한 번 무너진 질서는 질병처럼 삶의 안팎을 갈가먹는다. 의욕을 없애고 늙게 만든다.

     

    수많은 사상자를 만드는 전쟁이나 전염병만 재앙인가? 개인적인 누구에게는 작은 근심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화다, '페스트'다. 일단 재앙이 닥치면 방어막을 친다. 소설에서처럼 도시 전체를 격리시킬수도 있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감옥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탈옥을 시도할 물리적 목표물이 없으므로 수감생활은 생각지도 않게 오래 갈 수 있다.

     

    심리적 감금생활은 혼자서는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것은 관계의 끈과 관련되어 있어서다. 삶의 '부조리'는 결국 그 관계망에서 잉태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나 잘못된 평가로 인해 수치심을 느꼈다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좀처럼 수긍하기는 어려운데 힘이 없는 당신은 대놓고 '반항'하기도 어렵다. 시시포스처럼 그냥 묵묵히 고난을 견뎌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 형벌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와 관용은 얼마만큼일까? 사랑하는 만큼?

     

    - 접어두기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참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15쪽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금 나는 인간이 위대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인간이 위대한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든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라고 타루가 말했다.
    “천만에요.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계속 말했다.
    “이봐요, 타루,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지금으로서는…….”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하나의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눈에 빤히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179-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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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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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지 밀러]로 유명한 헨리 제임스의 유령 이야기이다. 그러나 느낌은 '슬리피 할로우'류의 고딕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밤 그림자처럼 은밀하면서도 새벽 안개처럼 끈적끈적'하다. 이야기는 큰 사건 사고 없이, 낯선 고장에서 부모 잃은 두 아이를 맡아 새 삶을 시작한 20대 초반의 가정교사의 관찰일기처럼 진행된다.

     

    천사같은 남매, 마일스와 플로라. 두 꼬마의 가장 가까운 혈육은 젊고 잘생겼지만 베일에 쌓인 백부 뿐이다. 백부는 아이들을 잘 훈련된 하인들에게 맡기고 교육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한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여인은 까다로운 조건을 감수하고 가정교사로 부임하는데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구김살 없고 시골생활도 그럭 저럭 훌륭하다. 그러나 전임 가정교사가 요절했음을 알게되고 잘생긴 백부의 하인 역시 의문에 쌓인 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여기까지는 '팩트'다. 그리고 젊은 가정교사의 눈에 어느 순간 등장하게 된 죽은 자들의 모습들, 마일스와 플로라의 비현실적인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진다. 그런데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서술답게 화자의 심리는 구체적이고 적나라 한 반면, 그외 인물들의 심리나 상황은 온전히 가정교사의 시야에 국한되어 있다. 그녀의 '의식의 흐름'대로 쫓아가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유령이 실재하는지, 가정교사가 미친 것인지, 아이들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19세기 말 억압된 여성의 사회적 고립감을 심령소설의 형태로 풀어낸 것이라는 일부 평론가들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나사의 조임'처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솜씨가 가히 '심리적 사실주의'의 거장답다. 구체적인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는 [드라큐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지킬박사와 하이드]류의 공포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품격있는 공포소설을 경험했다. 

     

    p.s. [드라큐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품격이 없다는 말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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