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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을 '바로 지금'으로 데려와야 해. 현실 세계로. 현재 이 순간으로 말이야.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 114쪽
'바로 지금'? 이거 낯설지 않다. 작중 탬킨 박사의 이 말, [미움받을 용기]와 자꾸 겹친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토미 윌헬름의 아버지의 이름(애들러 박사)도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그것과 비슷하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인생 최대의 거짓말', 즉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하지 않았던가? 애들러 박사와 탬킨 박사는 분화된 알프레드 아들러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44세에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된 윌헬름의 한심한 하루를 보여준다. 직장에서 쫒겨났고 아내와는 별거중이며 아이들도 못본지 오래다. 같은 호텔에 묵고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불편하기만 하다. 얼마 있었던 돈 마저도 탬킨 박사의 꾐에 넘어가 선물 시장 투자금 조로 맡긴 바람에 수중에 한푼도 남아있지 않아 방값 내기도 막막하다. 그의 성격은 아래 글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행동을 취하기 전까지 많이 생각하고 망설이고 또 다시 한 번 숙고하지만, 결국 어떤 식으로든 행동해야 할 시기가 닥치면 하지 않기로 수없이 마음먹었던 바로 그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생애에서 열 번이나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할리우드행이 큰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그곳으로 갔다. 그는 자기 부인과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하고도 도망까지 가서 결혼했다. 그는 탬킨 박사와 함께 돈을 투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도 그에게 수표를 주었다. - 41~42쪽
참으로 한심한 인간이다. 이런 식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잘될 턱이 있겠나. 외모는 뻔지르르한 미남형에 체구도 누구 못지 않게 당당하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인간형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인간은 아니다. 할리우드 배우라는 꿈을 접고 직장을 잡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한다. 별거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부치고 의무를 다하고자 하지만 주변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도움을 바랬던 아버지는 징징대는 못난 자식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하면 이따위 무기력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의 준 사기꾼으로 묘사되는 탬킨 박사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나는 자네에게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거야.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 167쪽
'고통과 결혼'한다는 이 표현, 다소 진부하고 재미없는(?) 이 소품에서 건진 거의 유일하게 괜찮은 표현이다. 이 부분을 음미하면서 지난 날을 돌아본다. 수없이 많은 잘못된 '과거'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결국 가볍게 벗어날 수 있는 함정이었음에도 오랫동안 헤매곤 했던 근본 이유는 애증이 얽힌 오래된 연인처럼 '문제'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맞으면서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것처럼, '고통과 결혼'해서는 생산적이지 못한 밀당으로 지쳐간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았다. 버릴 것은 버리자. 단순하게...
p.s. 로빈 윌리엄스를 추억할 수 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1989]에서 존 키팅 선생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웅변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하게 만들어라"라고. 카르페 디엠은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다. 번역하면 '오늘을 잡아라(Sieze the Day)", 솔 벨로의 중편 제목과 같다.
- 접어두기
"사람의 가치는 그가 사랑하는 것에 의해 정해진다" - 2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