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96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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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왜 책을 읽는 것일까? 오늘도 까뮈의 [페스트] 마지막 장을 넘기긴 했는데...  책을 읽은 것인지, 그 안에 인쇄된 활자를 감상한 것인지 애매하다. 잡념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는데 단지 손에 책이 들려 있을 뿐인가?

 

삶이 어긋난 지퍼처럼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기간이 있다. 작은 어긋남이 전체를 망친다.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닌데, 한편으론 그 별 것 아닌 것이 파상풍이 되어 육중한 체구를 무너뜨린다. 한 번 무너진 질서는 질병처럼 삶의 안팎을 갈가먹는다. 의욕을 없애고 늙게 만든다.

 

수많은 사상자를 만드는 전쟁이나 전염병만 재앙인가? 개인적인 누구에게는 작은 근심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화다, '페스트'다. 일단 재앙이 닥치면 방어막을 친다. 소설에서처럼 도시 전체를 격리시킬수도 있고 마음의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감옥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탈옥을 시도할 물리적 목표물이 없으므로 수감생활은 생각지도 않게 오래 갈 수 있다.

 

심리적 감금생활은 혼자서는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것은 관계의 끈과 관련되어 있어서다. 삶의 '부조리'는 결국 그 관계망에서 잉태된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나 잘못된 평가로 인해 수치심을 느꼈다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좀처럼 수긍하기는 어려운데 힘이 없는 당신은 대놓고 '반항'하기도 어렵다. 시시포스처럼 그냥 묵묵히 고난을 견뎌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 형벌이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와 관용은 얼마만큼일까? 사랑하는 만큼?

 

- 접어두기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참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15쪽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금 나는 인간이 위대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인간이 위대한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든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라고 타루가 말했다.
“천만에요.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계속 말했다.
“이봐요, 타루,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지금으로서는…….”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하나의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눈에 빤히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   179-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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