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후미에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내와 크게 싸워 이혼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 책은 출판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의 말을 듣고 편집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럼 [나는 이렇게 살다가 이혼했다]라고 제목 붙여도 좋으니 출판될 거라고. 두 사람의 말을 읽으며 웃게 된 까닭은 책의 전반에 묻어나던 웃음의 조각이 마지막까지 붙어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39세의 이혼남 히다카 히로시는 프리랜서 작가다. 언제부턴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지인의 소개로 동갑내기 한국 여인을 만나면서 그 꿈이 현실이 되었다. 은주. 그녀의 이름은 은주다. 이상적인 아내로 한국 여성을 꿈꿔왔던 그는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결혼식의 시작과 동시에 문화적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겐 당연한 일인 폐백과 자동차 뒤에 달린 깡통들. 그때까진 재미있게 보였던 문화적 차이는 생활로 들어가 다름으로 다가왔을때 그들은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서른 아홉이라는 신부의 나이를 성숙되었을 좋은 나이로 받아들여준 시아버지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두려움이 있던 시어머니와 함께하며 시작된 일본생활. 서른 아홉 해를 한국 풍습을 익히며 살아온 아내는 이불 빨래에서부터 청소법에 이르기까지 이방인이 되었다. 설거지법까지 다르다니...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 맞긴 맞나보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아닌 자신의 시선에서 양국을 비교하고 합리적인 쪽을 칭찬하고 있다. 일본에서 산 시간과 한국에서 산 시간을 통틀어. 깜짝 놀랄만큼 맘에 들었다는 한국의 전세제도를 비롯해서 그에게 한국은 하대의 국가가 아니라 대등하면서도 다르기에 관심이 가는 국가인 듯 했다. 순하지만 고집센 일본 남편과 유별나지만 마음 여린 한국인 아내는 여전히 함께 살고 있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
이식된 심장이 다른 성격을 가져온다고 입증된 바는 아직까지는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종종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 심장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드러내며 결국 이식된 심장의 주인처럼 군다라는 소재로 사연이 엮어져 소개되는 것을 본 일은 많다. 정말 다른 느낌이 들까. 버려지는 것과 얻어지는 것은 다를 것이다. 매번 주기별로 탈락되는 각질이나 정기적으로 깎아야하는 손톱발톱은 버려지는 것들이라 이물감보다는 시원한 감이 있지만 장기이식처럼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접붙이는 것은 내 것과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다리가 부러져 철심을 박게 되거나 성형수술로 실리콘을 넣게 되거나 심장 이식을 하게 되면 내 몸과 다른 그 무언가가 느껴질 것만 같다.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이해되는 가운데 [안녕하세요 나는 당신입니다]를 읽게 되었지만 소설은 생각만큼 처절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극성맞은 엄마로 인해 피겨 스케이트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열 여덟의 반항적인 이건은 1.25센티미터가 만들어낸 불행으로 인해 죽었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피겨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던 이건. 스스로도 상식으로 알고 있는 위대한 피겨 스케이트 선수 뒤의 극성스러운 엄마에게 간혹 "심한 사람에게 심하게 말하는 건 당연해요"라고 응수하던 딸이긴 했지만 그녀는 삐뚤어졌거나 비행청소년은 아니었다. 그저 자유스러운 10대를 누리고 싶어한 평범한 여학생일 뿐이었다. 노환의 할아버지를 병문안 다니던 이건이 우연히 사인하게된 장기기증서로 인해 그녀의 심장은 죽은 뒤 열 여섯의 아멜리아에게 주어지고 오랫동안 심장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던 아멜리아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석달 안에 생을 마감해야했던 그녀에게 새 삶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단 심장은 어딘지 모르게 자꾸만 이물감이 들고, 성격도 예전과 달리 엄마를 향해 반항적이고 욱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 때문에 스스로도 많이 당황스럽다. 그래서 비밀이긴 하지만 자신에게 심장을 기증한 사람과 그 가족에 대해 알고 싶어진 아멜리아.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이건의 집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이건의 가족들과 만나면서 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새 삶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멜리아의 가족도, 이건의 가족도. 이건 역시 하늘에서 할머니와 만나게 되고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된 삶을 받아들이고 행복해진다. 소설은 고통이 아닌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찢어지는 고통이나 슬픔의 시간을 축소시키고 받아들임으로써 행복해지는 시간에만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완성된다. 세포 기억 이론을 이식 수혜자 전원이 경험하는 일은 아니기에 맞다 아니다를 논할 순 없겠지만 소설은 울혈성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아멜리아가 경험한 짧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 만날 순 없지만 마주친 두 소녀의 특별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들을 읽다보면 언제 어느 신문에선가 보았던 사건을 담아놓은 듯한 사회고발적 내용들이 눈에 띄여 섬찟할때가 있다. [지구인]을 처음 읽게 된 날도 그랬다. "완전범죄야 말로 내가 꿈꿔오던 이상이며 환상이다"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을때처럼 섬찟하면서도 오싹해지는 무언가가 전달되어 왔다. 작가가 특별히 마음에 부담을 안고 있다고 고백한 소설인 [지구인]은 1974년 "이종대","문도석"이 벌인 갱사건을 신문에서 접하고 구상하게 되었다는 작가 최인호의 작품이다. 이종대는 도주,문도석은 자살한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중인 이종대의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니 사실은 이종대의 배다른 동생 이종세의 현재로부터 이야기는 출발하고 있다. 이종세는 월남전후 이만길로 살고 있는 인물로서 형 때문에 자신의 본명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형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더 우선인 남자다. 아버지와 형을 살리기 위해 인민군에게 담임선생님이 숨어 있는 장소를 제 손으로 알려 밀고자가 된 어린 소년 종세는 정읍이 지긋지긋해져 서커스에 합류하며 가족곁을 떠났다. 반면 형 종대는 구로동 갱사건, 국민은행 아현지점 갱사건, 이정수 살해, 아내 황은경과 자녀들 살해 등등으로 현재 경찰과 대치중이지만 스스로도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종대의 회상점은 그가 미군부대를 탈영하게 된 사연을 보여주면서 시작되는데, 자신이 처음 범한 여인 영국이 결국 몸파는 여인이 되어 미군에게 매맞으며 사는 것을 보고 그녀를 찾아가기 시작하지만 성병에 걸리고 매맞다가 버려질 운명을 구제하고자 맘먹은 순간 영숙의 남편 마이클을 때리고 도주하게 된다. 함께 탈영한 근식이 금광에서 죽자 초인으로 살기로 결심한 종대는 떠나온 세계속 자신의 삶을 버리고 다른 삶을 꿈꾼다. 그랬던 그가 어째서 세월이 지난 후 살인범이 되고만 것일까. 1권에서는 전혀 살인범이 될 여지가 없어보이는 남자와 그의 형제의 과거가 언급되고 그들을 미워하기 이전에 그들을 이해할 시간이 주어진다. 자기 파괴를 넘어선 세상 파괴자로 낙인찍혀버렸지만 그들이 과거에는 인간이었음을, 인간의 삶을 살았음을 이해하게 만드는 부분이라 꼼꼼히 유심히 읽게 되었다. 앞으로 2권,3권이 남아있지만 소설을 읽으며 나는 꽤 많이 슬퍼질 것같다. 인간이 제 방향대로 살지 못하고 인간의 삶을 벗어나는 것을 바라봐야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임으로 -.
한 여자를 위해 살인을 계획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면 많다. 가장 먼저 떠올려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만 봐도 그러니까. 하지만 후지와라 이오리가 창조해낸 남자는 좀 특별했다. 분명 한 여자를 위해 살인을 계획했지만 그는 살인하지 않았고 여자 주변을 맴돌며 성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세월은 그를 그녀 앞에 데려다 놓았다. 한참 후에야. 곁에 가지도 못할 거면서 잊혀지지도 않는 여자가 있었다. 재능이 뛰어나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다가 재벌의 아내가 되어 있는 여자. 화려하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 여자의 과거는 찢어진 걸레처럼 너덜너덜했고 이 비밀이 결혼과 함께 묻혀진 줄 알았는데 어느날 남편 앞으로 도착한 한 통의 협박편지는 그녀를 십대의 힘없는 소녀로 다시 되돌려 놓은 듯 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운명이 달콤한 것인지 잔인한 것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판단하기 힘들어졌다. 그리워했지만 오늘이 행복하며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시 만나지는 것이 과연 행운인 일일까. 세상엔 그저 묻혀진 채로 지나갔으면 하는 일들이 있는데 아키코의 과거가 그랬다. 엄마의 재혼으로 곧 이사갈 예정인 다쓰야는 절친 가쓰야와 함께 식칼을 사서 품에 안았다. 두 소년이 소중히 여기는 소녀인 아키코를 위한 일이었다. 술주정뱅이 친 아빠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키코는 급기야 손목을 그어버리고 두 소년은 친딸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아비를 단죄하기 위해 살인을 계획한다. 실제 사건이라면 뉴스에서 접해질때 참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겠지만 소설은 보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쪽으로 독자를 설득시켜 나가고 있었다. 어른들의 손으로 지켜지지 않는 힘없는 아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주고자 하는 어린 소년들의 마음이 급기야는 바르지 못한 일을 하도록 결정지어졌지만 운명은 소년들의 편이었는지 아키코의 아비는 그냥 실족사 해 버렸다. 전학간 다쓰무라가 광고회사 사원이 될만큼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TV를 통해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던 아키코는 재벌2세인 도시유키와 결혼한 상태였다. 신데렐라로 알려진 아키코의 과거에 대한 협박장이 도착하기 전까지 다쓰무라는 그저 먼발치에서 그녀를 보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아키코를 위해 과거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결국 오랜만에 만난 가쓰야를 통해 당시 불량학생이었단 야마무라가 협박장을 보낸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과 거의 동시에 가쓰야가 그를 칼로 찔러 단죄하는 사건이 일어나버렸다. 복수코드도, 기업소설이라 하기에도 100%는 만족스럽지 않은 가운데 [시리우스의 별]이 TV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다는 소식에 반가워져 드라마를 찾아보고 있다. 원작과 비교하며 시청하다보면 또 다른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을까.
모두의 사랑은 닮아 있지만 또한 들여다보면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정의를 내리거나 잣대를 대는 일은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우부메의 여름]의 작가 교고코 나쓰히코의 [웃는 이에몬]은 상당히 독특하게 기억될 소설이다. 오랜 연구와 조사를 바탕으로 혈실감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소설은 작가의 요괴 지식과 현학적인 추리로 뼈대를 이루고 있고 묘하게 매혹적인 자태로 읽지 않고선 배길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와 한 사무실을 내 세 작가 사무실인 다이쿄쿠구 중 한 사람인 나쓰히코는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유명작가의 북커버 디자인을 맡아 작업하는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하늘이 불공평하다 싶을만큼 여러 재능을 지닌 그녀의 소설은 실은 각색작이다. 요쓰야 괴담이라는 작품이 각색되었다는데 이전에 읽은 적이 없어 비교하긴 어렵지만 후문에 따르면 소설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작품인 듯 했다. [웃는 이에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두 남녀의 거리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반면 요쓰야 괴담은 배신과 근친, 악인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다. 원작인 요쓰야 이야기는 요스야 사몬의 딸 이와와 혼인한 이에몬이 공금횡령범이며 살인자로 등장하고 다른 여자 우메를 차지하기 위해 조강지처를 버리는 파렴치한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 속 이에몬은 유흥과는 연이 없으며 모아 둔 재산도 빚도 없는 무사로 목수일을 좋아하는 소박한 남자였다. 게다가 외적 아름다움에는 무관심하면서 내적 아름다움을 바라볼 줄 아는 심미안을 가진 다정한 남자로 묘사되었다. 그런 반면 대조되는 남자인 기헤이는 키워준 부모를 죽이고 강간한 악인으로 늘 다른 이의 것을 탐하는 욕심쟁이로 이에몬과 모든 면에서 비교된다. 결국 제목처럼 아내의 옷과 함께 관에 넣어진 이에몬의 말로는 웃는 얼굴로 마감되어 지고 제목과 이어진 이 마지막 대목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잔잔히 배어나와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 버린다. 웃는 이에몬은 가부키 극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을만큼 쉽고 재미난 작품이며 그 독특함으로 인해 기억에 오래남을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