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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평점 :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 를 들어본 적은 없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표백]을 비롯해서 [한국이 싫어서],[댓글부대],[뤼미에르 피플],[5년 만에 신혼여행]등을 쓴 저자의 책도 읽은 적이 없다. 방송이나 책에 매료되어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던 건 아니라는 거다.
흥미로운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신작이 나온다는 말에 "읽어볼께요~" 했는데, 표지에 쓰인 읽고 쓰는 인간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 며칠 전부터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내려두고 <책, 이게 뭐라고>부터 읽기 시작했다. 전문용어로 어렵게 쓰여진 글이 아니라 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해 쉽게 쓰여져 가독성이 꽤 좋은 읽을거리였기 때문이다. 다만 줄지어진 제목들은 참 길다.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재직했던 그가 작가가 되고, 강연을 하고 진행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눈으로 따라가며 중간중간 메모를 했다. 특별히 화두로 던져진 문장은 아니지만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들이 있다.
●p6 언어를 기록하는 일에 매달리는 인간에게 비언어적인 소통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들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다가 흩어지고 만다
10년, 20년의 세월을 견디고 남는 것은 기록된 글자 뿐이다
●p6 시간을 견디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하고 물을 수 있겠다
나는 그 질문이 어쩌면 쓰는 인간과 말하는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p6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그래서 쓰는 인간은 말하는 인간보다 일관성을 중시하게 된다
말은 상황에 좌우된다
그래서 말하는 인간은 쓰는 인간보다 맥락과 교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p55 예의는 감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무례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이성의 영역이며, 우리는 비윤리적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비판 의식을 키워야 한다
책 한 권을 읽고나니 메모량이 꽤 된다. 묘연이 닿으면 고양이를 반려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에 있어 필요한 순간에 문장들이 나를 찾아온다고 생각하며 사는 내게 이번 책은 참 많은 생각들을 던져준 셈이다.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이런 생각들을 해 보는 건 어떤가의 순간이기 때문에 저자가 책을 통해 전하는 생각들은 매우 흥미롭게 와 닿는다.
가령 책의 내용 중 '1만명 과 교제한 사람과 1만 권을 읽은 사람'이라는 제목만 보고 이 둘은 각각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이라 '그 지혜의 색과 테두리가 다르겠구나' 짐작했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띄엄띄엄 읽는 방식 즉 발췌독이 언급되면서 다독과 정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개인적으로는 순서에 상관없이 필요순으로 읽은 책도 있고, 빠르게 초벌 읽기 한 후 재벌 읽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발췌독을 할 만큼의 책이라면 그냥 덮고 만다. 다행히 직업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은 없어서 강요되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일도 그만 두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책은 구매 후 읽고 있어 시간에 쫓기는 부분도 없다. 그래서 발췌독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 유용하게 잘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 이게 뭐라고>는 이처럼 생각을 뒤집는다든가, 무조건 작가의 생각이 옳다 내지는 그의 생각을 쫓아 살게 되기 보다는 '이 대목에서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게 만든다. 평소 쓰기를 통해(sns까지 포함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책임도 뒤따르기 마련이라 결코 가벼워서는 안된다고 여겼는데, 누군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편안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반복되는 말 같지만 '이 사람은 왜 이런 생각들을 한거야?'라는 의문은 생기지 않았다.
대신 마크 트웨인이 제인 오스틴을 싫어한 줄 몰랐는데, 그녀의 글이 너무 싫다며 무덤에서 파내서 뼈를 걷어차고 싶다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뭔가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투덜대는 대작가의 얼굴이 상상되어져서. 그런데 마크 트웨인은 '저질 글쟁이'라는 욕을 윌리엄 포크너에게 들어야했다니......작가의 삶도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예민함과 둔함을 오가며 중간이 없는 내게, 책은 내게 어린시절부터 줄곧 차분한 시간을 선물해준 좋은 친구였다. 독자의 성향과 상관없이 작가의 경우는 어떨까. 문장에 차분함이 스며있다고 해서 성격도 그러한가. 글이 유머러스하다고 해서 실제로 만나보면 재미있는 사람인가.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과 실제 성격이 매치되는 인물을 그닥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글만 보고 사람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품는 일은 그만둔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장강명은 글자로 풀어놓은 생각과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궁금해졌다. 아, 조만간 팟캐스트를 찾아 들어봐야할까.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