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김종옥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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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관계의 미묘한 음영과 미세한 기척을 잡아내는 솜씨는 좋으나, 딱 거기까지인 듯하다. 내가 보기에 김종옥의 글은 하루키의 자장 안에서 맴돈다. 회상을 밑절미로 삼아 너와 나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노력은 좋으나 그 노력이 우리로, 좀 더 복합적인 화두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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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7-0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보다는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을 좀 더 흥미롭게 읽었다. 그동안 글 쓰고, 책 내는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이 심했던 듯하다. 나로서는 소설의 화자가 기억을 통해 이성과의 사랑과, 관계의 이어짐과 맺어짐을 끈질기게 탐문하려는 노력보다도 글쓴이가 실제로 겪었던 심적인 고생이 (소박하더라도) 진실성 있게 읽혔다.
그다지 공감도, 호감도 가지 않는 단편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글쓴이가 건필하기를 바란다.
 

 

 

 

 

 

 

 

 

 

 

 

 

 

이쯤에서 나도 저자(신경숙)처럼 '기승전결의 형식'을 잠시 놓아버리고 우리 문학에서 이런 노력을 요구하며 그에 따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편소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자문해본다. 또 그러한 (많지 않은) 장편 가운데서 "외딴 방"의 상대적 지위는 어떤 것일까? 현란한 형식상의 실험이야 요즘들어 너나없이 선보이고 있지만 실험을 위한 실험은 논외로 치자. "외딴 방"의 '나'가 탐독했고 필사까지 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물론 그런 부류가 아니지만, 문학에 대한 물음의 집요성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의 깊이에서 "외딴 방"과 견줄 차원에 다다랐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한편, 일견 낯익은 사실주의에 안주한 듯도 싶은 "삼대"가 한국문학에서 당대현실을 처음으로 원숙하게 그려낸 장편답게 두고두고 신선함을 안겨주는 바 있는데, 그렇더라도 독자를 좀 너무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 또한 "임꺽정"은 결코 구수한 옛이야기식 서술만이 아니고 진지한 기법상의 성찰이 반영된 서사물이지만, 미완인데다가 창조적 모색의 긴장이 풀어지는 대목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도 "외딴 방"의 소중한 성취를 일단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신경숙은 흔히 그 서정적인 문체로 '시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실은 어느 특정 대목이나 묘사의 서정성보다 위와 같은 '상징'의 신축섬세한 구사를 포함하여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ㅡ마치 시인이 단순히 '산문적인 의미'뿐 아니라 연과 행의 구조, 운율, 비유, 상징 등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듯이ㅡ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뜻으로 '시의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신경숙의 작품 가운데서도 그러한 노력이 가장 확실한 성공을 거둔 것이 "외딴 방"이 아닐까 한다.

 

ㅡ백낙청 '외딴 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오래전에 대충 훑었던 책을 다시 꺼냈다.

경력 많은 평론가답게, 백낙청은 상찬을 하면서도 주례사라는 비난에서 빠져나갈 문장(빛나는 성공이라도 비판의 여지가 없을 수야 없다, 산업현장 아닌 영역에서 작가의 지나친 과묵함이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은 남녀관계 문제다 등)을 배치하고, 단정보다는 추측성이 강한 결구를 즐겨(~듯하다, ~아닐까 한다, ~것 같다 등)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냉철한 비판이나 개인적 신중과는 거리가 멀며, 주례사나 책 광고라는 혐의를 애초에 차단하려는 방어적인 태도에 가깝다.

극언을 하자면, 신경숙의 장편 한 권을 상찬하기 위해 조세희, 염상섭, 홍명희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를 당하고 있다. 신경숙 한 명을 높이려고 한국 문학의 대가들 세 명을 그야말로 초라하게 만든 셈이다.

타인들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백낙청 본인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야 그의 주장에 반박을 할 수는 있어도, 손쉽게 비난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만, 그가 그토록 보람이라 여겼던 작가가 이처럼 표절의 덫에 빠졌다면, 그녀를 상찬한 평자이자 책을 내준 발행인으로서 이제는 자기 반성적인 발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치 권력자의 침묵이나, 사계 권위자의 침묵은 그 자체로 해롭기 그지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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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3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상품화를 격정적으로 비판했던 이들이 오히려 문학의 상품화에 노골적인 욕망을 보였으니 참 뭣 같습니다. 지랄이 풍년인 곳은 청와대나 문단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그너자나 가뭄이 지속되니 이거 농부들만 흉년인 세상....

수다맨 2015-06-30 22:54   좋아요 1 | URL
백낙청도 소싯적에는 명민했던 사람이었지요. 그가 쓴 시민문학론은ㅡ비록 오늘날 다시 읽으면 험잡을 부분이 많지만ㅡ요즘 젊은 평론가들보다 훨씬 더 투지와 기개가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개인의 지성을 엄정한 평가와 균형에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권위를, 출판사의 이익을 다지는 데만 사용하는 듯해 유감스럽습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자기 반성 없는 권위자의 한없는 추락을 보는 것만 같네요.
땅은 갈수록 마르는데, 우리 근혜 여사님은 소방 호스로 물이나 뿌리시더군요;;; 이분만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창고지기 2015-08-08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가 자사출신 윤지관 평론가를 통해 신경숙의 표절을 다시 옹호합니다. 제 추측이지만 아마도 윤지관의 입장이 아니라 백낙청의 입장일 겁니다. 그리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시영씨도 은근슬쩍 물타기를 하네요. 이분 창비출신이죠. 문학판 돌아가는 꼴로 보아 충분히 이럴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젊은 작가들이 침묵하고 있다는 겁니다. 창비나 문동이 뭐가 무서운지(작가들을 잡아다 고문하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수다맨 2015-08-09 10:03   좋아요 0 | URL
윤지관의 글은 대충 읽어보았습니다. 논지는 (엘리엇의 어떤 말을 인용했던 듯한데)표절이 아니라 문학적인 창조적 활용이고, 대중들이 작가를 마녀사냥하듯 몰아세우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더군요. 그런 게 다른 매체도 아니라 작가회의 게시판이라는 곳에 실리고 있으니. 다들 창비의 수호자이자 2중대 노릇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발언이 없다는 사실도 조금 슬프구요.
 
침묵의 뿌리
조세희 지음 / 열화당 / 198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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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말미에는 이런 문장이 씌어 있다. '가난한 자의 벗이 되고 슬퍼하는 자의 소망이 되어라'. 나는 문인이란 부류를 신뢰하지 않지만 진정으로 혼을 실어, 가라 없는 문장을 쓰는 이들은 높이 평가한다. 권정생 손창섭이 죽고 없는 이땅에, 조세희의 무거운 침묵과, 기자정신은 그자체로 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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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6-27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당대비평˝이란 잡지가 생각난다. 내 기억에 조세희는 그 잡지의 주간이었는데, 노동과 문학이 그나마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후의 인지도 있는 잡지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미안한 얘기지만 오늘날 창비가 사실상 캐비어 좌파의 섹시한 담론만 오가는 장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면, 비록 거칠더라도 조세희 문부식 등이 사자후를 토하던 이때의 당대비평이 제법 그립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7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당대비평.... 생각나네요. 맞습니다. 꽤 흥므로웠던 문예지였죠. 문동이이번에 맞짱 한번 뜹시다며 5명의 비평가에게 제안했을 때 무지 웃기더군요... 문동 뭐가 뭔지 잘 모르는 모양..
그동안 최고 권좌에 올랐으니 모두 다 문동이 제안하면 옳다구나,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 것처럼 보여.. 역시 문동이란 생각이...

수다맨 2015-06-27 11:08   좋아요 0 | URL
듣자 하니 저 5명에게 사전 양해와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문학동네 홈피에 공지부터 올렸다고 하는군요. 신문을 읽으니 지금 권성우, 오길영은 연구 목적으로 해외 체류 중이라 당분간 한국에 오기도 어렵다 하네요. 게다가 공개 토론도 아니고, 문동은 비공개 토론을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토론을 한다는 거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그 전에 문동이 신경숙 신화화, 권력화에 크게 일조한 자기들 반성부터 하고, 그 다음에 비판적 평자와 독자가 자유로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장을 만들어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들 멋대로 우격다짐 공지에 비공개 토론이라니, 이건 너무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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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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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것들이 두 개(폐허가 된 세상, 부자간의 애정)나 겹쳐 있는데도 글에서 광휘가 넘친다. 언뜻 차가운 듯하면서 고도의 열기를 지닌 문장력과, 간결섬세한 묘사력이 작품의 바탕을 이룬 덕택이다. 한움큼의 감상도 허용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는 솜씨는 만년의 대가가 도달한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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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6-2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문장만 가지고 압도당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다 떠나서 그냥 문장 자체만 가지고 압도당하는 소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율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수다맨 2015-06-26 20:21   좋아요 0 | URL
한국 소설은 감상 과잉의 신파(신경숙)로 가던가, 아니면 냉혹한 하드보일드(과거 편혜영)로 치닫을 때가 많은데, 이 소설은 그런 단점과 거리가 무척이나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겉보기에 굉장히 차가운 문장인데 그 안에 온기를 담을 줄 아는 내공을 작가가 지녔다고 해야 할까요. 확실히 거장이 이래서 거장인가 봅니다.

5DOKU 2015-06-2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사람은 담담한데 읽는 사람은 정념 과잉에 휩싸이게 되는 이상한 책이었습니다.

수다맨 2015-06-26 20:23   좋아요 0 | URL
바로 이런 게 고수의 솜씨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괜히 폼을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징징거리지도 않는데 독자를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대단했습니다. 아주 훌륭한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7 05:52   좋아요 0 | URL
제가 뭔만하면 소설 2번 연속으로 읽는 경우는 드문데 이 작품은 진짜 다 읽고 나서 다시 읽었네요... 말씀하신대로 기름기를 쏙 빠진, 물에 끓인 닭가슴살인데 맛은 치킨처럼 풍부하다고나 할까요.

수다맨 2015-06-28 13:42   좋아요 0 | URL
외양은 담백한데 속은 풍성하다는 비유가 적격입니다 ㅎㅎ 이만한 문장력을 가지기까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수련과 경험을 했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반면에 이만한 묵시록이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들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돌궐 2015-06-27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서 봤는데 매카시가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먹을 것을 찾아다닐 정도로 힘들었었다고 하더군요. 이 소설에서 보이는 생존투쟁의 리얼리티가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처절할 정도로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다맨 2015-06-28 13:45   좋아요 0 | URL
아버지셨군요^^
옮긴이의 후기를 보고 있노라니 매카시가 궁핍과 은둔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네요. 그러면서 대학 강연도 마다하고, 다른 작가들과 친분을 쌓지도 않고 오로지 쓰기에만 열중한 삶을 살았으니 참으로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고목탄
나카가미 겐지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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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의 약동이 느껴지는 남성적인 글이다. 한 남자가 세 명의 여자를 임신시키고, 주인공이 이복동생을 죽이는 광경은 보통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드나 원시적 야성과 생활의 비극을 핍진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주체적 의지보다 뒤틀린 숙명을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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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6-23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말미에 실린 고진의 해설은 충분히 흥미로운 대목(나카가미 겐지와 오에 겐자부로가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 80년대 백낙청이 제창한 제3세계 문학론 등)이 많지만 이 소설의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컨대 하마무라 류조가 골목(부락)을 해체하고 코뮌을 만들려다 실패했다고 언급하는 대목은, 그다지 설득력이 충분치 않다. 가라타니와 나카가미는 실제로 굉장히 친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들의 도타운 친분이 해설을 약간은 주례사로 만든 감도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