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나도 저자(신경숙)처럼 '기승전결의 형식'을 잠시 놓아버리고 우리 문학에서 이런 노력을 요구하며 그에 따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장편소설이 과연 몇이나 될지 자문해본다. 또 그러한 (많지 않은) 장편 가운데서 "외딴 방"의 상대적 지위는 어떤 것일까? 현란한 형식상의 실험이야 요즘들어 너나없이 선보이고 있지만 실험을 위한 실험은 논외로 치자. "외딴 방"의 '나'가 탐독했고 필사까지 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물론 그런 부류가 아니지만, 문학에 대한 물음의 집요성이나 현실에 대한 탐구의 깊이에서 "외딴 방"과 견줄 차원에 다다랐다고 보기 어렵다. 다른 한편, 일견 낯익은 사실주의에 안주한 듯도 싶은 "삼대"가 한국문학에서 당대현실을 처음으로 원숙하게 그려낸 장편답게 두고두고 신선함을 안겨주는 바 있는데, 그렇더라도 독자를 좀 너무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닌지? 또한 "임꺽정"은 결코 구수한 옛이야기식 서술만이 아니고 진지한 기법상의 성찰이 반영된 서사물이지만, 미완인데다가 창조적 모색의 긴장이 풀어지는 대목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런 관점에서도 "외딴 방"의 소중한 성취를 일단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신경숙은 흔히 그 서정적인 문체로 '시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실은 어느 특정 대목이나 묘사의 서정성보다 위와 같은 '상징'의 신축섬세한 구사를 포함하여 언어가 가진 잠재력을ㅡ마치 시인이 단순히 '산문적인 의미'뿐 아니라 연과 행의 구조, 운율, 비유, 상징 등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듯이ㅡ최대한으로 활용한다는 뜻으로 '시의 경지'를 추구하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신경숙의 작품 가운데서도 그러한 노력이 가장 확실한 성공을 거둔 것이 "외딴 방"이 아닐까 한다.
ㅡ백낙청 '외딴 방이 묻는 것과 이룬 것'
오래전에 대충 훑었던 책을 다시 꺼냈다.
경력 많은 평론가답게, 백낙청은 상찬을 하면서도 주례사라는 비난에서 빠져나갈 문장(빛나는 성공이라도 비판의 여지가 없을 수야 없다, 산업현장 아닌 영역에서 작가의 지나친 과묵함이 불만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은 남녀관계 문제다 등)을 배치하고, 단정보다는 추측성이 강한 결구를 즐겨(~듯하다, ~아닐까 한다, ~것 같다 등)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은 냉철한 비판이나 개인적 신중과는 거리가 멀며, 주례사나 책 광고라는 혐의를 애초에 차단하려는 방어적인 태도에 가깝다.
극언을 하자면, 신경숙의 장편 한 권을 상찬하기 위해 조세희, 염상섭, 홍명희가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를 당하고 있다. 신경숙 한 명을 높이려고 한국 문학의 대가들 세 명을 그야말로 초라하게 만든 셈이다.
타인들의 동의 여부를 떠나서, 백낙청 본인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야 그의 주장에 반박을 할 수는 있어도, 손쉽게 비난을 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다만, 그가 그토록 보람이라 여겼던 작가가 이처럼 표절의 덫에 빠졌다면, 그녀를 상찬한 평자이자 책을 내준 발행인으로서 이제는 자기 반성적인 발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치 권력자의 침묵이나, 사계 권위자의 침묵은 그 자체로 해롭기 그지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