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벌거벗고, 가엽고, 연약한 삶이 친구를 얼싸안고 있다.
고통이 심할수록 사랑이 깊어진다.
살아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작은 미덕이지만,
보잘것 없는 우정일지언정 죽은 후에도 변치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우정이다.
(책 35쪽에서)
몽테뉴는 죽기 몇년 전, <에세>최종판에 주석을 달 때 동물을 더욱 생동감 있게 표현한, 동물에 대한 그의 자세를 대변하는 글을 덧붙였다.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놀때, 사실은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서로 익살스러운 장난을 치며 함께 논다. 내가 장난을 걸거나 그만두겠다고 할 때도 있지만, 고양이가 먼저 장난을 걸어오거나 그만두겠다고 할 때도 있다.
(책 107쪽에서)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라는 부제가 달린 '눈물 닦고 스피노자'
부산 인디고서원에 갔을때 추천해준 책을 구입했다.
"혁명은 거창한 단어가 아닙니다. 평생 노동만을 해왔던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세상과의 색다른 관계 맺기도 혁명입니다. 평생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한 남성이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음식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과 음식 가공의 색다른 화음이 있는 부엌일에 나서는 것도 혁명입니다. 기쁨의 관계는 민주적이고,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긍정과 생성의 관계입니다. 색다른 관계를 구상한다는 의미에서 혁명인셈이죠."
(책 63쪽에서)

겨울이 오고 있다. 살아 있는 것들에게 겨울은 매우 혹독한 계절이다. 풀은 말라야 하고 나무는 자라기를 그만두어야 하는 계절이다. 새들은 배를 곯아야 하고 산짐승은 먹을 것이 없어서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봄이 오거든 보라.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살아난다.
(책 89쪽에서)


2013년 마지막 시간은 온 힘을 쏟으며 가고 있다. 일요일 저녁 북카페 '느린나무'에서 친구 부부와 커피를 마셨다. 연말 시내는 분주하고 정신없었지만 '느린나무' 안은 고즈넉했다. 느린나무에 오기 전, 알라딘에서 마르케스의 '예고된 죽음의 일대기'와 계룡고에서 김연수의 '사월의미, 칠월의 솔'을 구입했다. 김연수의 소설은 표지와 제목이 너무 예뻐서 구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원목 선반 위에 작은 피규어 인형부터 찻잔과 손때 묻은 소품들을 보니, 이 카페의 주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정성을 들였는지 짐작이 갔다. 익숙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카페 입구 커다란 책꽂이에는 만화,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어 혼자 오더라도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싶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연들이 겹겹이 쌓인 카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다. 수 백편의 이야기가 따로 인 듯 싶지만 결국은 인간의 삶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주제로 엮인 연작 소설이다. 나 역시 그 의자에 앉아 삶의 이야기 하나를 더하고 있었다. 메밀차는 덤으로 주었는데 잔이 예뻐서 더 운치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매서운 바람이 불고, 겨울은 쉼없이 이어질 태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