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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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온다 리쿠



  온다 리쿠의 리세 시리즈이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가 리세의 중학교 얘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고등학교 때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리세는 보통 평범한 아이로 생각하면 안 되는 인물이다. 전작에서도 나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이미 그 또래를 넘어섰다. 게다가 살짝 드러난 그녀의 앞으로의 길도 그리 평탄할 것 같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명확히 드러난 그녀의 미래는 보통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리세는 더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졌으며, 남에게 마음을 여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니, 남에게 관심도 주지 않는 듯 했다. 그냥 모든 것을 무심히, 서늘한 눈빛으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단편집 '도서실의 바다'에서 리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실렸었다. 거기에 그녀와 같이 사는 사촌 오빠, 미노루와 와타루가 나온다. 이 책에서 그 두 소년은 훌쩍 큰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노루는 날카로운 남자가 되어 있었고, 와타루는 유쾌한 청년으로 변해있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볍게 한숨이 나왔다. 역시나 리세는 평범하게 살기엔 그른 아이구나.


  그녀의 주위에는 빛 아니면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속한 어둠의 세계와 그녀가 존재하고 있는 '척' 해야 할 빛의 세계. 어린 나이에도 그녀는 균형을 맞추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끝이 없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린다. 그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녀의 그런 신비한 마력에 빠진 소년들은 왜 이리 많은지…….


  사람의 감정이란, 그 중에서 특히 자존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이건 자존감하고는 다르다. 사람이 언제 허물어지는지, 이 책에서는 그걸 확실히 보여주었다.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버려졌다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그리고 나에겐 전부인 그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 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예전과 같아질 수가 없다.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뭔가가 내면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스멀스멀 틈을 비집고 나온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빈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이 어떤 놈이냐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이 ‘살의’였다. 누군가를 향한 꺼지지 않는 살의를 가진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리세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고, 그녀의 할머니가 죽은 그곳. 그 집의 이름은 '백합장'.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부른다. '마녀의 집'이라고.


  이름에 걸맞은 살의가 비극과 눈을 뜰 때, 모든 것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건은 천천히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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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4 : 목소리 [dts]
최익환 감독, 김옥빈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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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목소리.


  감독과 배우 이름을 적지 않겠다. 왜? 화가 나서.


  이건 뭐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작들처럼 심리 묘사를 잘 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가 참으로…….


  특히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배우님. 이건 뭐 답이 안 나왔다. 1편에서도 담배 피는 장면이 나오긴 했는데, 그 배우는 연기를 잘 한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등장하는 신인 배우들의 대사 전달력은 많이 줘봤자 30점 정도. 표정 연기는 뭐, 50점? 놀라는 장면이나 분노한 장면이나 차갑게 노려보는 장면이나 거기에서 거기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요, 배우님들아. 그래도 명색이 주연인데.


  다루고자 하는 것은 좋았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보여주려고 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일본 만화 '원피스'에서 나오는 변신 애완동물 초파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명의라 일컬어졌던 의사가 남긴 대사가 떠오른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는가? 잊혔을 때이다.



  이 영화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누군가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에게서 잊힐 때, 내 모습이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난 사라지는 것이라고.


  발상은 좋다. 1편이 제도권에 대한 공포를 얘기하고 있다면, 2편은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3편은 우정과 경쟁이 낳은 무한 질투를 다루고 있으니까. 4편도 인간의 존재와 기억에 대해 애기하고. 괜찮다.


  그러나 그런 좋은 설정이 무색하리만큼 영화는 처참하다. 화면은 갈색과 붉은색으로 주로 보이는데, 음 뭐라고 해야 할까? 몽환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다면 마이너스. 몽환적이라기보다는, 너무 칙칙했다. 유리와 철로 이루어진 학교 건물과 대비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문득 2편에서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그리 붉은 색도 아니었는데, 배경 색과 어우러져 강렬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이번 편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인지라, 모든 상황이 연기와 대사로 이루어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사 전달이 참으로 열악했다. 거의 모든 배우들이 감정이 평면적으로 감정 없이 그냥 나레이션하는 듯이 대사를 읊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인간 극장의 이금희씨가 읽어줬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ps - 이번 편의 감독. 1편의 조감독이었다는데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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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 히토미 14세, 방과 후 때때로 탐정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 2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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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우타노 쇼고


  역시 표지는 중학생용 성장 소설 느낌을 주고 있는 책이다.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경찰의 노란색 접근 금지 테이프 안에 서 있는, 조금만 더 크면 남자들이 줄줄 따라다닐 것 같은 미소녀. 폴리스 라인만 아니었으면, 소녀의 톡톡 튀는 사춘기 일상생활을 적은, 감성 넘치는 소설이 연상된다. 하지만 작가 이름이 우타노 쇼고니, 그런 상상은 던져버려야겠지.


  삼촌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아무 생각 없이 던져주던, 상상력 풍부하고 통찰력 있던 초등학생이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이번 이야기의 화자 역시 전편처럼 히토미가 아니다. 그녀의 초등학교 동창인, 다른 중학교에 다니는 에미리가 극을 서술한다. 중학교 친구들과 모금 사기를 벌이는 여인을 뒤쫓던 중 우연히 만난 히토미. 그 때부터 다른 학교에 다니지만, 호기심 왕성한 네 소녀들이 똘똘 뭉쳐서 사건을 찾아다닌다. 물론 해결은 히토미의 몫이다.


  그 전까지는 삼촌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말해주하거나 주변의 이상한 현상을 알려주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행동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 전편에서는 힌트만 주던 꼬마가 나서서 사건을 해결하는 어엿한 소녀 탐정의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전편과 달리, 그녀는 사춘기의 성장 통을 겪고 있었다. 공부는 등한시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던가, 아버지를 ‘그 인간’으로 부르면서 거리감을 갖는다던가. 거기다가 가끔 염세적인 발언도 툭툭 내뱉기까지 한다.


  융통성 없는 아빠를 얘기하면서


  “자기 기준으로밖에 판단하지 않아. 그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불쌍해.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편향된 인간이 또 만들어진다는 거야. 일본은 이제 끝장이야.”


 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사건을 척척 풀어가면서, 탐정이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면모를 보여준다.


  “남의 비밀을 캔다는 건 정말 두근두근한 일이지만, 막상 비밀을 알고 나면 나까지 성가신 문제를 떠맡게 돼. 형사나 탐정은 보통 정신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야.”


  이 대목에서 문득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의 탐정이 떠올랐다. 염세적이고 철저한 현실주의자이지만, 추리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 없는.


  이 소녀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변해있을 지 상상하니, 은근히 두근거리고 기대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두렵기까지 했다. 그래서 히토미의 눈이 아닌, 주위 사람의 시선으로 사건이 서술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읽으면서 내가 상상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는 총 여섯 개다. 그 중에 첫 번째 이야기인 ‘백+적 = 결백’은 소녀들의 만남이 주를 이루느라, 사건 해결은 단순하다. 하지만 아주 논리적이다. 물론 반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럴듯하기에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거기까지 신경 써서 죽일 범인은 없을 테니까.


  2편인 ‘경비원은 봤다!’ 와 3편인 ‘유령은 선생님’은 에미리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다른 학교를 다니기에, 히토미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추리를 해나간다. 소녀들의 속옷이나 소지품을 훔쳐가는 변태적인 범인과 외국인 취업 문제를 다루고 있다.


  4편인 ‘전산남’ 과 5편인 ‘유괴 폴리리듬’은 에미리의 남동생이 얽힌 사건이다. 4편은 동생이 친구와 보내는 문자 암호를 풀어가는 것이고, 5편은 유괴된 그를 찾아내는 내용이다. 4편은 내가 일본어를 모르기에, 암호 해독 장면이 설명이 나와도 이해를 못했다. 일본 핸드폰 배열을 내가 어찌 안담? 문득 사건이 벌어진 밀실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던 엘러리 퀸이 떠올랐다. 그런 그림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직접 암호 해독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했다.


  6편인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해 히토미가 입원한 병원에서 벌어진 환자의 실종 추락사에 관한 이야기다. 알고 보니 무척이나 마음 아픈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5편에서 어머니와 서먹해진 에미리가 뭔가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어쩌면 이 책은 히토미는 이미 어른으로 진입한 단계이고, 에미리가 성장하는 소설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나도 같이 성장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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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다 히토미 11세, 댄스 때때로 탐정 마이다 히토미 시리즈 1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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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가 - 우타노 쇼고



  최근 나에게 불어 닥친 우타노 쇼고 열풍 때문에 집어든 책이다. 역시 이번에도 나를 낚으려고 표지엔 귀여운 어린 소녀가 활짝 웃고 있었다. 추리, 즉 범죄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너무도 귀여운 여자아이와 밝은 배경이다. 작가 이름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초등학생용 성장 동화정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이게 추리 코너에 있지? 그리고 표지에 적힌 작가 이름을 보는 순간, 속으로 외쳤다.


  ‘어머나! 이건 꼭 읽어야 해!’



  첫 장을 열기 전에, 속으로 온갖 상상을 했다. 11살 어린 소녀가 탐정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끔찍한 살인이나 그런 것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하지만 기발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걸까?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표지와 제목의 귀여운 소녀인 히토미는 내가 상상한 탐정이 아니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은 그녀의 삼촌인 형사 토시미.


  히토미는 삼촌과 게임을 한다거나 밥을 먹는다거나 하면서, 어른을 생각하기 힘든 어린이다운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건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게 사건에 대한 힌트라고는 생각하지 못한다.


  책은 총 여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사건이 교묘하게 연결이 된다는 점이다.


  1편인 ‘검게 탄 할머니, 죽인 사람은 누구?’는 2편인 ‘금, 은, 다이아몬드, 푹팍푹팍’과 이어진다. 할머니의 불이나서 타버린 집에서 뭔가가 발견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2편이다. 1편은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지 찾는 내용이고.


  3편 ‘착한 아저씨, 나쁜 아저씨’와 4편 ‘착한 아저씨? 나쁜 아저씨?’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교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2편에서 나왔던 사건 관련자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5편 ‘도마뱀은 보았다, 알고 있었다.’ 와 6편 ‘그 눈동자에 비친 것’은 애석하게도 별로 연관이 없었다. 다만 6편에서는 두 가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그 둘의 연관성이 참으로 기발하게 연결되었다. 거기에 막판에 드러나는 히토미의 비밀까지!


  거기에 대부분의 사건 힌트는 히토미가 다니는 학교나 방과 후 댄스 클럽에서 얻어오니, 초등학생의 사교 클럽은 무시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뒷담과 시기, 질투로 어른들의 네트워크와는 또 다른, 아이들만의 상상력과 기발함으로 똘똘 뭉친 세계.


  그래서 어른들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건도 단순화하고, 자기들만의 시선으로 간단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글을 읽으면서, 히토미가 11살 소녀치곤 어른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키워주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 조교수라 바쁜 아빠와 둘이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삼촌이 놀이 상대가 되어주긴 하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고 판단해야했기 때문일까. 중간 중간에 말하는 것이나 행동을 보면, 또래보다 좀 더 성숙한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다음편인 ‘마이다 히토미 14세’가 더 기대가 된다. 이 어른스러우면서 귀여웠던 소녀가 어떻게 성장했을 지. 중학생의 세계는 초등학생이나 어른과 또 다르기에, 작가가 어떻게 보여줄지 궁금증과 기대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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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2disc)
윤재연 감독, 송지효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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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윤재영

  출연 - 박한별, 송지효, 조안

  부제 - 여우 계단.


  1,2편의 명성에 힘입어 4년만에 만들어진 3편. 전작들이 사건이 벌어진 다음 원인을 찾아가는 형식을 가졌다면, 이번 편은 원인이 서술 되고 나서 사건이 벌어진다. (이런 종류의 기술이 초반에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번의 배경은 예고. 그 중에서 발레리나를 목표로 하는 여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그래서인지 여고생들이지만 몸매와 외모가 전작들보다 우월하긴 했다. 


  박한별은 학교의 퀸 같은 존재이다. 본관에 있는 교복 사진의 주인공일 정도로 예쁘고,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도 실력이 월등히 뛰어나다. 게다가 집안도 괜찮은 것 같고, 성격도 좋은 것 같이 보인다. 그야말로 엄친딸! 


  송지효는 그녀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라이벌이면서 2인자. 우정과 질투라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조안은 박한별을 우상시하는,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미술반 학생.


  이번 영화에서 다루는 것은 질투와 우정이 공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러시아 국립 발레단으로 갈 수 있는 티켓이 걸린 대회. 학교에서는 단 한 명만 나갈 수 있다. 박한별이나 송지효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우승할 수 있고. 하지만 학교에서는 오디션을 본다고 하지만, 이미 대회에 내보낼 선수를 박한별로 내정한 상태이다. 


  언제나 2인자였던 송지효. 단 한번이라도 친구를 이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의 전설인 여우 계단에 올라 소원을 빌어본다. 


  날 콩쿠르에 나갈 수 있게 해 줘…….



  영화를 보면서 박한별이 맡은 역할에 심히 짜증을 느꼈다. 성격이 좋고, 착한 것 같기는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정했으며 미소를 보여주니까.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자신이 한 말이나 베푼 친절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예로, 조안이 체육복을 빌리러 오는 장면이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친절하게 내거라도 입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용과 학생의 체육복이 일반 학생, 그것도 조금 뚱뚱한 학생에게 맞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진심으로? 결국 조안은 꽉 끼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체육복을 입고 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물론 놀린 년들이 나쁜 것들이다.


  그리고 송지효에게 하는 말. 너랑 나랑 같이 공연했으면 좋겠다. 내가 지젤하고, 넌 알브레히트. 즉, 자신이 여주인공이고 친구는 남자 역을 하라는 소리이다. 그리고 그녀가 나가자, 자는 척하던 송지효가 눈을 뜨고 중얼거린다. 


  왜 네가 지젤이야? 


  지젤은 2막짜리 로맨틱 발레극으로 특히 의상이나 춤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아무나 그 주역을 맡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춤 동작뿐 아니라 기교와 표정 연기까지 두루 갖추어야만 할 수 있다고 한다. 발레리나를 꿈꾼다면 누구나 다 해보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송지효도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박한별은 졸업을 하고나서도 제일 친한 친구인 너와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송지효가 받아들이기엔 주연은 내가 할 테니, 넌 내 옆에서 들러리나 하라는 의미였다. 


  송지효가 비뚤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2인자 들러리 역할만 한 꿈 많은 소녀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박한별이 부추겨서 같이 땡땡이를 쳐도, 혼나는 것은 언제나 그녀였으니까. 


  그러니까 박한별에게 세상은 당연히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절하고 상냥한,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하지만 남들의 입장은 별로 생각하지 않은 공주님. 

  그리고 더 이상 시녀가 되기를 싫어한, 또 다른 공주를 꿈꾼 소녀.


  그것이 여우계단에 얽힌 괴담을 현실로 만드는 원인이었다.


  우정과 질투를 잘 이용해서 둘 다 발전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들은 여고생에 불과했다. 감수성 풍부하고 눈물 많고 정에 약한, 흔히 말하는 질풍노도의 불안정한 심리를 가진 그런 사춘기 아이들.


  그래서 괴담은 끊임없이 계속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반복되기 마련이니까.


  ps - 전작들보다 괴담은 강화가 되었지만, 스토리 진행은 조금 질질 끄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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