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Hercule
Poirot's Christmas, 1938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다이아몬드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번, 젊어서는 많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 부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식들에게도 그리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던, 원한은 꼭 몇 배로 갚아주는 집념을 가진 한 노인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 날, 자식들에게 유산을
빌미로 온갖 모욕을 주고 성질을 부리던 그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다. 마침 근처에 휴가를 왔던 포와로가 지인인 경찰 서장의 부탁으로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언젠가 엘러리 퀸이 등장하는 책에서 나온 말이 기억난다.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자, 아마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죄라곤 짓지 않을 것 같은 맹인 사이에서도 눈 부릅뜨고 다녀야 할 운명이라고.
포와로 역시 비슷한 운명이다. 모처럼 런던을 떠나 영국식 크리스마스를 보내려고 했건만,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사건이 그를 기다리니 말이다. 과연
사건이 그를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사건을 부르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살인이 시끄럽게 일어난다. 그러니까 모두 잠든 후이거나 각자 일을 할 때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에 온 집안에 소름끼치는 비명과 엄청난 소음이 울려 퍼진다. 식구들이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범인은 흔적도 없었다. 노인이 살해당한 방은 거의 밀실에 가까웠고 말이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포와로는 단호하게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한다.
범인의 트릭은 참으로 교묘하고 잔인했다. 대담하기도 하고 도전적이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를 정도의
증오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연한 색이었겠지만,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진하게 물들였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복수만 꿈꾼 사람은 과연 그 때까지의 삶이 행복했을까? 복수가 평생의 꿈이라면, 너무 슬픈 인생이 아닐까?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그
정도로 원한이 쌓였다면, 상대는 그런 사실조차 모른다면, 분노를 드러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꼭 가해자를 죽이는 일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도 풀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여간 이번 이야기의 범인은 어떤 면에서는 짠했고, 다른
면에서는 나쁜 놈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난 사람도 밉다.
이번 작품에서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견해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자네는 크리스마스만큼 유쾌한 때도 없다고 했었네, 그건 곧장 많이 먹고 많이 마신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나? 솔직히 말해 그건 과식이야! 게다가, 과식은 방종을 부른다네! 그래서, 마침내 그 방종이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일세!"
"전혀 정을 느끼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다정한 것처럼 위선된 행동을 해야 하니 이 얼마나
부담되는 일인가! 사실상 크리스마스는 위선이 판을 치는 계절이라 할 수 있어. 명예를 위한 위선. 말하자면 좋은 동기로 시작된 위선이지.
하지만, 그것도 결국 위선은 위선일세!" -p. 97
어쩌면 포와로는 엘러리 퀸과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와로에게 마음을 놓을 정도로 편안한
상황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은퇴하고 시골에서 호박을 기르고 있어도 살인이 일어나니 말이다. 포와로의 삶에서 살인을 빼면 아무것도 안
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는 죽기 전까지 살인사건과 함께였다. 그러니 선물을 주고받는 훈훈한 크리스마스
따위는…….
책에서 아쉬운 점은 인물이 생각하는 부분까지 큰따옴표로 처리한 부분이었다. 생각은 작은따옴표라고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다 큰따옴표 하나로 통일했다. 그래서 처음 읽으면서 상당히 헷갈렸다. 나중에 혹시라도 다시 나오게 된다면, 그 때는
그런 부분을 수정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