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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없는 한밤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42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9월
평점 :
원제 - Full
Dark, No Stars, 2010
작가 - 스티븐 킹
오오, 이런 일이! 일 년 사이에 킹느님의 책이 두 권이나 나오다니! 몇 달 전에 읽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 Mr. Mercedes,
2014’의 감동이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그의 작품을 읽을 기회라니! 전에도 말했지만, 이 리뷰는 스티븐 킹, 그러니까 킹느님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적은 것이기에 객관적이거나 냉정한 판단 따위는 없다. 무조건 닥치고 킹느님 찬양으로 뒤덮였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겠다.
이 책은 스티븐 킹의 중단편을 모은 작품집이다. ‘별도 없는 한밤에’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제목과 내용이 무슨 상관일까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느낌이 왔다. 별이 없는 밤이라면 무척 깜깜할 것이다. 어쩌면 달도 없을 것이다.
물론 요즘이야 별이 안 보여도 위성이나 항공기 내지는 건물의 불빛들 때문에 어둡지는 않겠지만, 그런 것들이 하나도 없는 하늘이라면……. 얼마나
깜깜할지 상상도 못하겠다.
각각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딱 그런 어둠 속이었다. 모두들 앞을 밝혀줄 빛을 찾아 헤맸다. 그것이 그들을 어디로 인도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밖에 없는 빛이기에 따라갔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웠다. 그 길의 끝에서 어떤 사람은 나락의 길로 빠져들어 허우적댔고,
누군가는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 또 다른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열등감에서 해방되었다.
『1922』은 농장의 처분 문제로 아내와 이혼을 결심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내의 재산마저 차지하기 위해, 그녀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어린
아들까지 감언이설로 꾀어 살인극에 동참시킨 그는, 이후 엄청난 압박감과 불안증에 시달린다. 게다가 소심하고 여렸던 아들의 성격이 바뀌면서 두
부자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데…….
읽으면서 아들이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졌던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에 아빠와 함께 엄마를 죽이고 시체처리까지 해야 했으니, 그 충격은 엄청났을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 그리울 나이에 자기 손으로 엄마를 지운 소년은 대신 다른 것에서 그 부족한 사랑을 채우려고 했다. 그 집착은 너무
집요해서 결국 소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야만 했다. 아버지가 겪는 환각도 무시무시했지만, 아들이 더
불쌍했다.
『빅 드라이버』는 강연을 마친 작가가 안내받은 지름길로 가던 도중 끔찍한 사건을 당하는 내용이다. 여러 차례 강간당하고 목 졸려 배수로에 버려진
그녀. 그곳에서 여러 구의 시체를 발견한다. 범인은 상습적인 여성 강간 살인마였던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녀는 복수를 결심하는데…….
복수하는 과정의 통쾌함보다는 망가지고 피폐해진 그녀의 정신 상태에 더 눈이 가는 작품이었다. 다중 인격자거나 정신분열증환자라 환청이 들리는
사람처럼 행동하면서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그녀는 예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남았다.
『공정한 거래』에서는 악마와 거래를 한 남자가 등장한다. 암에 걸려 모든 의욕을 잃은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나타나 거래를 제안한다. 그의
암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키는 대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다 달라는 것이다. 대신 암을 전이시키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그가 제일 증오하는
대상이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자신의 절친이자 오랜 시간동안 마음속 깊이 증오를 품고 있던 친구의 이름을
대는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어릴 때부터 친구였는데, 그런 생각을 속에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당한 입장이니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같이 있기에 내색도 못하고 몇 십 년을 끙끙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억이란
불확실한 것이고, 기억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편집되기 쉬운 것이니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 물론 공정함이라든지 바른 기억 같은 걸 다
감안하면 악마가 아니겠지만……. 주인공의 불운을 몽땅 가져가야했던 친구가 많이 불쌍했다. 그러니까 남에게 원한 살 일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남편이 몇 십년동안 살인을 해온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25년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의 비밀을 아주 우연히 알게 된 부인은 고민한다.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려야 하는가, 만약 남편이 체포되면 딸과 아들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를 공범이라고 의심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녀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남편이 눈치 챈 것이다. 그는 거래를
제안하는데…….
얼마 전에 리뷰를 쓴 영화 ‘굿 메리지 A Good Marriage, 2014의 원작 소설로,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다. 영화에서 어딘지 모르게
모호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확실하게 드러나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깔끔했다.
범죄 드라마나 영화가 해일처럼 쏟아지는 요즘엔 적게는 한두 번쯤 접한, 흔한 소재들이다. 부인을 죽인 남편, 강간당한 여자, 악마와 거래한 남자
그리고 남편이 살인자라는 걸 알아버린 아내. 하지만 애인님에게도 말했지만, 킹느님이 쓰면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같은 감자로 만들었지만 찐
감자나 감자튀김 그리고 으깬 감자가 맛이 다른 것처럼, 소재는 흔했지만 느낌이 달랐다. 600쪽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지만,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아까울 정도였다. 이러니 킹느님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고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것이, 어쩐지
행복한 1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