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내가 어릴 적에 본 동화책의 표지, 오른쪽은 원서 표지. '왕자의 비밀'이라고 나온 책의 표지는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았다.
원제 - The Eyes of the Dragon
작가 - 스티븐 킹
언제였더라, 대학교 때였던가? 동네 도서관에서 어린이용 스티븐 킹 소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앞을 들춰보니 꽤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빌릴 책을 골라놓았기에 다음을 기약하고 책을 내려놓았다. 다음번에는 저 책을 빌리자!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아니면 때가 아닌지 그 책은 다시는 볼 수 없었고, 도서관은 문을 닫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끝까지 보는 건데…….
이후 그 책은 존재하지만 볼 수가 없는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되어, 내 기억에만 남았다.
그런데 얼마 전, 지방에 사시는 지인이 자신이 일하는 동네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으셨다는 염장을 지르셨다. 이럴 수가! 서울에는 없었는데! 그래서 그 책을 읽기 위해, 토요일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노란 표지의 완전 어린이용 두 권짜리 책을 손에 받아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너무 좋아서.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두 시간도 채 안 걸려서 다 읽었다. 물론 어린이 용이라 글자가 좀 크긴 했다.
내용은 그냥 간단하다. 들랭이라는 왕국에 두 왕자가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왕위를 위해 태어난 큰아들과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언제나 실패만 하는 작은 아들. 그리고 모든 동화가 그렇듯이 나라를 말아먹겠다는 야심을 가진 궁정 마법사가 있다. 그는 자기가 맘대로 하기 쉬운 작은 아들을 위해 마법의 독약으로 왕을 죽이고, 그것을 큰아들에게 뒤집어씌운다. 뾰족한 탑에 감금된 큰 왕자. 그는 이제 목숨을 건 탈주 계획을 세우는데…….
예전에 아주 잠깐 읽었을 때는 두근두근하고 왕자가 어떻게 탈출을 하는지, 마법사를 어떻게 물리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이번에 완독을 하고 나니, 그 때의 감정과는 아주아주 많이 달랐다. 물론 내가 그 동안 나이를 먹은 것도 있지만.
그 동안 범죄 수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일까? 엄청난 끈기가 필요한 큰 왕자의 탈주 계획을 보고는 '얘는 편집증 환자가 틀림없어! 아니면 집착이 강하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했지만 마법사가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한 작은 왕자를 보고는 '아버지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애새끼가 저 모양이지. 역시 가정교육이 문제야.' 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왕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비슷한 꿈을 꾸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큰 왕자는 사실 능력자였던 걸까? 이런 의문까지 들었다.
도서관 문이 닫기를 기다려 지인과 심야 영화를 보고,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비록 무박 2일로 지방을 후다닥 갔다 왔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불필요한 사족을 붙이자면, 저 지인분이 지금 현재 내 애인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