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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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습니다. 무려 마흔아홉 권째 시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입니다. 제목부터 나태주 시인다운 향과 멋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시집은 다른 시집에 비해 상당한 볼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지간한 책 분량의 볼륨입니다. 무려 285쪽에 달하는 상당한 분량의 시집인 만큼 읽고 감상하고 맛보고 음미할 수 있는 시들이 즐비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나의 시선에서 보기에 참 특별하고 고운 점이 부각된 시집으로 다가왔습니다. 첫 번째는 이 시집이 코로나 2년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시에서 코로나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풍경과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와 거리 두기까지.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시인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새로운 일상을 전혀 다른 시선에서 바라봅니다. 우리 사는 풍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정갈한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시를 읽고 감상하다 보면 덩달아 우리 사는 이 낯설고 당혹스러운 세상마저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콕 집어 대상을 정한,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시가 여러 편 있다는 점입니다. 간호장교 김혜주 대위, 피아니스트 손열음, 동명 스님, 정인이, 조정권 시인, 육근철 시인, 박용래 시인, 이어령 선생, 거기에 BTS까지... 코로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우리의 마음에 울림과 감동을 준 이름과 나태주 시인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 사람에게 헌정하는 시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하는지 다시금 깨우쳐 준 시였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특별한 점은 특정 장소에서 쓴 시와 특정 장소를 소개하는 시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 계룡산 도예촌 이소 도예, 경주의 카페 바흐, 메리 포핀스, 루치아의 뜰 등 시인에게 특별한 장소, 애정 하는 장소에 대한 시가 보입니다. 시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시를 탄생하게 만든 곳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특별함이 묻어납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까지 갖게 해주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나에게도 시인의 감수성이 돋아날 것 같은 일종의 착각까지 덤으로 안겨줍니다.




시를 읽고 감상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상상력이 자극될 뿐 아니라 한 뼘은 더 자란 기분마저 느낍니다. 시를 읽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풀꽃 하나마저도 소중하게 다가오며,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깁니다. 당연히 우리 사는 세상과 사람 사는 풍경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고, 나의 삶과 주변 사람의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인간미라는 것이 조금 더 깊어지는 기분이 들고, 정제된 언어로 말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조금 더 깊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를 즐겨 읽고 감상하고 암송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깊은 인간미와 남다른 시선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태주 시인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를 읽으며 우리 사는 세상을 더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며, 자신이 삶을 새롭게 해석하면 어떨까요? 메말라 가는 인간성을 조금 더 회복하고, 상실해 버린 상상력을 한 뼘 더 키워가면 어떨까요? 누군가를 향해 쓴 나태주 시인의 글을 나를 향한 글로 받아들이고 읽고 감상해 보면 어떨까요? 어제보단 분명 더 나은 오늘, 오늘 보다 조금은 더 깊어진 내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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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 - 숭민이의 일기(아니올시다!) 풀빛 동화의 아이들
이승민 지음, 박정섭 그림 / 풀빛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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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엿보고 말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정독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가볍고 밝아지는 걸까요?


일기, 참 어려운 일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일기 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수년 간 써온 일기장을 보물처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그들 앞에 설 때마다 저는 주눅이 듭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 특히 매일 꾸준하게 무언가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계획적이지도 않고, 꾸준하지도 못하고, 끈기가 부족한 나는 매일 쓰는 일기가 참 부담스럽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다른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일만큼 짜릿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일기도 쓰지 않는 사람이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니 비양심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은 양심이 있는지라 다른 사람의 일기를 발견하면 펼쳐 볼까 말까 고민합니다. 끝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펼쳐 든다는 것이 문제지만요. 이런 제가 대놓고 남의 일기를 정독했습니다. 제가 대놓고 정독한 다른 사람의 일기는 이승민 글, 박정섭 그림의 [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주인공은 초등학생 숭민이. 4월 11일부터 시작한 숭민이의 일기는 7월 3일에 끝납니다. 약 석 달가량 숭민이의 일상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숭민이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친구, 새롭게 사귀는 친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숭민 마음과 시선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숭민이가 겪는 소소한 일상과 크고 작은 일들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졸다가 자신이 만든 벌칙을 당하는 일, 순수한 우리말로만 말해보기, 텃밭을 가꾸는 일...

작은 실수가 가져온 오해와 갈등을 대면하기도 했습니다. 갈등 해소 비용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진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숭민이의 갈등과 오해에 함께 참여하고, 왜 그런 오해와 갈등이 생겼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말 그대로 사소한 실수로 인해 큰 갈등이 생길 뻔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숭민이는 자신의 실수라는 점을 깨닫고 나름 지혜로운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합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숭민이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진정한 용기를 가진 친구니까요. 우리 어른들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용기 내서 사과할 줄 알고, 사과받을 줄 아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처럼 지역, 진영, 세대, 소유, 외모, 성 등으로 사분오열 갈라진 대한민국을 싸매고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더 나은 세상,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테니까요.




성장소설, 성장동화를 읽으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밝아집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이 분명해집니다. 복잡한 생각이 단순해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장소설은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이 더 많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기도 하고, 삶의 방향을 새롭게 점검할 수 있으니까요.

[맙소사, 오해해서 미안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과 복잡한 세상을 만들어 놓은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겠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어 더 나은 세상, 더 살기 좋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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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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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우주는 어디까지 더 커질 수 있는 걸까?

그 안에 마치 먼지와 같은

지구의 의미는 무엇이며

지구 안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자리는 무엇일까?


하버드 천재 물리학자이자 MIT 인문학자 앨런 라이트먼이 우주와 인간에 관한 사색을 글로 담아냈습니다. 작가 소개를 하면서 스며드는 이 황당함은 그 농도가 몹시 짙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천재 물리학자라는 별명과 함께 인문학자라는 명함까지 들고 있는 걸까요? 한 사람이 물리학과 인문학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비롭습니다. 동시에 이런 탁월한 사람의 사색을 담은 글이라면 얼마든지 곁에 두고 읽으며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따라가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종의 확신도 생깁니다.




책의 구성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흥미를 확 잡아당기는 제목이 가득하거든요.

1. 무(無)에 관하여 :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에 관하여, 원자,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2. 마음의 과학적 구조: 천억 개, 미소, 주의력의 해부학적 구조, 불멸, 내 어린 날의 유령의 집, 무질서의 놀라운 힘, 기적, 자연 속의 외로운 우리 집, 생명체는 정말 특별한가?

3. 무한에 관하여: 우주적 생물 중심주의, 무한을 아는 사람

그러게요.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 무(無)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철학적인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오묘한 글 솜씨에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우주가 무한히 큰,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죠. 그 광활함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경탄을 쏟아내기도 하죠. 반대급부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것의 세상은 어떨까요? 예전 어느 한 과학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주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것은 그 빈 공간이 모이고 모이면 지금 나의 몸을 구성합니다. 빈 공간이 합쳐서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며 감각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니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말 그대로 과학 사실에 비추어 설명합니다. 과학이 발견하고 찾아낸 근거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후 인문학적인 깊이와 소양으로 담백하게 기록했습니다. 제가 워낙 과학에 맹한 사람이다 보니 단어와 개념을 따라잡기 위해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과학의 깊이와 발전과 발견에 감탄하기도 했고,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목받는 천재 물리학자이면서 인문학자답게 저자는 자신이 무의미한 어떤 존재이거나, 텅 빈 무엇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우주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고비 사막에서 모래 알갱이 한두 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말하면서 생명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인지 경탄합니다. 과학이 발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가르쳐 주면서도 인문학적 감각과 시선을 놓치지 않는 저자의 탁월한 균형감각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워낙 삶이 바쁘고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철학적인 질문 자체가 사치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우주에서부터 지구가 탄생하고, 그 지구 안에서 인류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탄소는 우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에 아무 관심 없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쉽게 흘려보내버리고, 이런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조금은 무거운 조금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삶의 방향과 내용을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과 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 번쯤은 대면해 보아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그 질문과 대답을 향한 여정을 안내할 좋은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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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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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쥐 vs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면? 다소 황당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무엇보다 지금 지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긴 어려워 보입니다. 지구에서 최후까지 생존할 생명체를 꼽으라면 바퀴와 쥐를 꼽을 수 있다는 점도 얼마든지 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는 천재 작가이자 기막힌 관찰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이란 소설의 테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라고 하니 "상상이 현실이 된다"라는 문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가 신뢰받는 작가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뉴욕으로 주 무대가 바뀝니다. 프랑스와 유럽 전역이 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과 고양이 개와 돼지는 배를 타고 뉴욕으로 도망치듯 출항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쥐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위성이 없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정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소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고 미국으로 출항한 것입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희망은 산산이 조각나고 맙니다. 그곳은 더 강력한 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미국 쥐는 더 큰 덩치와 강력한 근육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용맹했고 헤엄을 칠 줄도 알았으며, 게다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말입니다.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고 전쟁하는 동안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쥐들은 급격히 번식했을 뿐 아니라 각종 쥐약에 내성을 가졌습니다. 지성을 갖춘 지도자의 지휘와 근육질에 강력한 이빨을 가진 쥐 떼는 고양이나 개, 돼지와 사람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쥐가 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를 적으로 삼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아무런 두려움 없이 끝없이 몰려드는 쥐 떼를 감당할 수 있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탱크에 잠깐 밀려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단 하루 만에 탱크의 약점을 발견하고 탱크를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제3의 눈(사람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인공 장치)을 가진 티무르(프랑스 쥐의 수장)과 조직폭력배 두목을 연상케 하는 알 카포네(미국 쥐 수장)이 있습니다. 이 두 수장은 용맹할 뿐 아니라 침착한데다 상당한 지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탁월한 지도력까지 갖추어서 쥐를 군대처럼 조직하고 운영합니다. 무엇보다 티무르는 인류의 정보를 다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인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사람과 고양이는 쥐들이 올라올 수 없는 고층 빌딩에 거주하며 어떻게 이 난관을 풀어갈지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은 고층 건물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쥐들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몰려 있는 마지막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고양이와 사람은 쥐들을 제거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시도합니다. 안타깝게도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지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나운 쥐 한 마리를 생포한 것.

주인공(주인공은 고양이입니다) 바스테트는 이 쥐에게 제3의 눈을 달아주자고 제안합니다. 그가 제3의 눈을 갖고 지구와 자연과 인류의 문화유산을 목격하면 일종의 배반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바스테트의 말대로 과학자들은 그 쥐에게 제 3의 눈을 달아주고 그에게 폴(Paul, 기독교에서 바울, 또는 바울로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예수를 박해하다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된 인물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은 그야말로 배신자입니다)이란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가 쥐를 배신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누가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이 될까요? 쥐일까요? 아니면 고양이? 아니면 또다시 인류? 행성 두 번째 책을 빨리 펼쳐야겠습니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소설을 쥐는 바이러스 고양이와 인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는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인 다른 생명체로 대입해 보았습니다. 쥐가 창궐하고 번식하고 진화하면서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멸종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이제 남은 생명체라곤 쥐와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전부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고 지배자로 행세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이고, 지금 지구의 풍경을 보아도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좋은 지도자가 있을 때 모든 백성이 평화롭게 살았던 반면 탐욕스러운 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와 목소리로 증언합니다. 이 상황을 지구에 대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일까요? 아니면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지도자일까요?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지도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내성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고, 지독하고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부산행]과 같이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아니면 끔찍한 치명률을 가진 감기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도 있겠지요. 제2 제3의 코로나가 덮치지 말라는 법도 업습니다. 악랄하고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 아래 신음하던 민중이 견디다 못해 일어나 세상을 뒤집은 사건의 판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소설을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인류가 보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 후 풍자적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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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나의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황진희 옮김 / 책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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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야기해 주세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과 딸이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야기에는 몇 가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 이야기, 두 번째는 아빠 군인시절 이야기, 세 번째는 아빠의 옛날이야기. 몇 달 동안 거의 일주일에 4-5회 이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한 바퀴 더 돌기 시작했고, 군 생활 이야기는 쥐어짜내기 시작했으며, 옛날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이야기로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날에 살았던 마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 도로가 없었고, 선착장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바다엔 모래가 더 많았던 때였습니다. 산에는 들짐승이 있었고, 소를 몰고 산으로 올랐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바다에서 놀다가 거의 죽을 뻔한 경험과 배고플 때 남의 밭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서리해 구워 먹었던 일과 무와 양파까지 뽑아먹었던 기억이 돋았습니다.

이야기란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나의 옛날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아들딸과 낄낄대며 웃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며, 우리도 뭔가를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니 말입니다. 이야기 하나로 세월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연결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 속 나의 마을]이란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이 들려주신 옛날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나의 어린 시절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저수지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 볏짚단에 불을 질러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동네가 발칵 뒤집어진 일, 서리하다 주인에게 잡혀 된통 혼난 일, 바다에서 잡은 고동과 해산물을 구워 먹었던 일까지... 그리고 그 안에 얽히고설킨 형들과 친구들과 동생들의 얼굴까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다시마 세이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가 자란 시대 배경과 마을 풍경이 눈과 마음에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시마 세이조가 1940년 생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옛날이야기는 꽤나 옛날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발전하지 않은 촌스러움과 정겨움이 가득하고, 조금은 과격하고 세련되지 못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습니다. 발가벗고 수영한 일이나, 너무나 억울했던 학교 선생님, 그것도 교장 선생님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달리기 하나 때문에 자존심을 몽땅 걸었던 이야기,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산에 올라가 새를 잡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 역시 어릴 때 새총과 활과 화살을 들고 산으로 들도 다니며 토끼와 꿩을 잡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비둘기를 잡았을 때도 있었고, 집으로 가져가다가 윗동네 아저씨에게 강탈당한 기억마저 떠올랐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폭력에 가까운 린치를 당한 기억이 돋아 오르기도 했고, 수영하다 물풀에 감겨 식겁했던 저 아래 숨어 있었던 기억까지 솟아올랐습니다.




나와 다시마 세이조는 시대적으로도 상당한 시간차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인이며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무작정 사이가 좋을 수는 없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그 역시 어릴 때 자기 동네에 살았던 한국 부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조센징이라 불렀던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그 시간과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회상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가 그저 막되 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에게서 인간미를 한껏 느낄 수 있고, 그의 이야기에서 일종의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접촉점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다시마 세이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과거를 떠올렸으며, 나의 고향의 옛 풍경까지 마음과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독특하고 특별한 독서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끝자락에서 다시마 세이조가 그가 자란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마을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도로가 생기고, 길이 달라졌습니다. 산과 들은 깎여나가 흉물스럽게 변했습니다. 그의 추억, 그의 삶이 잘려나간 기분을 느낍니다. 오지 말 것을... 하는 안타까움마저 느낍니다. 그의 삶이 녹아 있고, 그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마을은 말 그대로 그림 속에만 존재할 따름입니다.

포클레인은 사람이 만든 가장 흉물스러운 기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합니다. 산을 파헤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을 하곤 합니다. 포클레인으로 먹고 사시는 분에겐 죄송하지만 생각마저 안 할 수는 없으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4대강 이야기나, 깎여나간 임야, 산과 밭을 뒤덮은 태양열 집열판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의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과 환경 문제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뾰족한 대안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이웃과의 평화와 공존, 환경 문제까지 두루두루 생각하게 만들어 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 속 나의 마을]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오늘 밤 아들과 딸에게 나의 옛날이야기 하나 더 꺼내들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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