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어령 선생님을 한국의 지성이라 부르는지 단박에 알게 해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천자문, 학교, 한국말, 히노마루, 국토, 식민지, 놀이, 단추, 파랑새, 아버지, 장독대, 이야기라는 열두 꼭지에서 이렇게나 깊은 이야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지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 마음에 콕 박힌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와 공부에 관한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이 흠뻑 담긴 이야기입니다. '학교'(學校)란 말이 [맹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학교 '스쿨(SCHOOL)'은 희랍어 '스콜레(SCHOLE)에서 나왔고요. 스콜레의 뜻은 '여가' '논다'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부(工夫)'의 의미도 흥미를 뛰어넘어 충격적입니다. 한국에서 '공부'는' 배운다'라는 뜻입니다. 기술이나 학문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으로 정의해 두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의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중국에서 '공부'라고 하면 '쉬는 것', '여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희랍어 스콜레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온 셈입니다. 일본에서 '공부'는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낸다'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여가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의 공부, 배우고 익히는 한국의 공부, 골똘히 생각한다는 일본의 공부가 합쳐지면 훌륭한 교육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원래 공부의 의미가 '놀고 생각한다'라는 의미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면, 선생님들이 알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놀면서 생각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가지 않을까? 입시에 함몰된 채 암기하기에 바쁜 우리네 서글픈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공부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지 않을까? 혼자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과 앉아 독대하는 기분,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