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로 가니 - 식민지 교실에 울려퍼지던 풍금 소리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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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해야 할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우리의 것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우리 정신에 물든 일제 강점기의 트라우마가 이렇게나 짙을 줄이야.

이 책을 읽기 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란 별명을 가진 고 이어령 선생님의 한국인 이야기 완결편 [너 어디로 가니]를 읽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처음 읽을 땐 문체가 특이하다 생각했습니다. 너 어디로 가니를 읽으면서 이어령 선생님만의 문체와 개성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마치 지문처럼 자기만의 색깔과 온도와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이전에 읽었던 책까지도 갈무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김 훈 작가의 글처럼 개성이 뚜렷한 글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펼치고 읽으면 가장 먼저 느낀 점이었습니다.








왜 이어령 선생님을 한국의 지성이라 부르는지 단박에 알게 해주는 책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천자문, 학교, 한국말, 히노마루, 국토, 식민지, 놀이, 단추, 파랑새, 아버지, 장독대, 이야기라는 열두 꼭지에서 이렇게나 깊은 이야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지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 마음에 콕 박힌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학교와 공부에 관한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이 흠뻑 담긴 이야기입니다. '학교'(學校)란 말이 [맹자]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영어의 학교 '스쿨(SCHOOL)'은 희랍어 '스콜레(SCHOLE)에서 나왔고요. 스콜레의 뜻은 '여가' '논다'와 같은 뜻이라고 합니다. 이건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공부(工夫)'의 의미도 흥미를 뛰어넘어 충격적입니다. 한국에서 '공부'는' 배운다'라는 뜻입니다. 기술이나 학문을 익히는 과정입니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으로 정의해 두었습니다. 중국에서 '공부'의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중국에서 '공부'라고 하면 '쉬는 것', '여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희랍어 스콜레의 의미를 그대로 가져온 셈입니다. 일본에서 '공부'는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낸다'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여가라는 의미를 가진 중국의 공부, 배우고 익히는 한국의 공부, 골똘히 생각한다는 일본의 공부가 합쳐지면 훌륭한 교육론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원래 공부의 의미가 '놀고 생각한다'라는 의미라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면, 선생님들이 알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놀면서 생각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가지 않을까? 입시에 함몰된 채 암기하기에 바쁜 우리네 서글픈 문화에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공부를 통해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터득하지 않을까? 혼자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과 앉아 독대하는 기분,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렸거나 놓쳐버린 우리의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작고 소소한 물건과 이야기 그 안에 담긴 한국인의 지혜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익숙한 것, 그래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깊은 시선으로 주위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관찰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지도 다시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어령 선생님처럼 될 수 없고 또 될 필요도 없지만 이어령 선생님처럼 사물과 자연과 주변과 이웃과 자신의 내면을 주목해서 보고 관찰하는 힘을 길러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과 가족과 주변 사람을 위해서 말이지요.








한국인 이야기가 총 네 권이라고 하는데 저는 아쉽게도 두 번째와 마지막 완결 편을 읽었습니다. 나머지 두 권을 따로 구매해서 제대로 음미하며 읽고 보물처럼 책장에 꽂아두어야겠습니다. 한국의 지성이라 불리는 고 이어령 선생님이 사유와 연구, 담백한 글을 통해 우리의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고, 보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종종 꺼내보면서ㅕ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한국인 다움이 무엇인지 뼈에 새겨야겠습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와 가치를 톺아보고,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찾아보려는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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