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 - 재활용 시스템의 모순과 불평등, 그리고 친환경이라는 거짓말
미카엘라 르 뫼르 지음, 구영옥 옮김 / 풀빛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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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Wall-E가 떠올랐습니다. 버려진 지구,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를 책임지고 있는 청소 로봇 Wall-E. 청소 로봇 Wall-E는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정리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으로 전락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 우주선 안에서 말 그대로 게을러터진 삶을 살면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청소 로봇 Wall-E는 우연히 식물 하나를 발견하고 가꿉니다. 그 쓰레기 더미 지구에서 또다시 생명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식물도 자랄 수 있다는 뜻이며, 생명이 살 수 있는 지구로 변화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역설적이게도 사람이 떠나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다시 생명이 피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얼마나 이기적인지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플라스틱 천국입니다. 우리나라 면적 15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태평양에 두 개나 있다고 합니다. 별생각 없이(오로지 돈에 미친 것처럼 보입니다) 만들고 사용하고, 사용하다가 쉽게 내다 버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환상적인 조합이 빚어낸 결과를 우리는 후폭풍처럼 얻어맞고 있습니다. 쓰레기 없는 세상은 아무리 상상하려고 해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에게 길은 있는 걸까요? 이 쓰레기 문제를 자세하고 면밀하게 조사한 후 고발하듯 펴낸 책을 만났습니다. [당신의 쓰레기는 재활용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작고 가볍지만 크고 무거운 책입니다.




저자 미카엘라 르 뫼르는 베트남 '민 카이'라는 쓰레기 마을을 답사합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마치기 위한 걸음이었지요. 이 걸음이 그의 생각을 바꾸어놓았고, 우리에게 쓰레기의 진실을 들려주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부지런히 분리수거에 힘썼습니다. 아주 작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일이지만 지구를 보호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분리수거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비를 줄이기도 하고, 전기도 아껴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고, 재활용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제품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 가장 대표적인 일이 '쓰레기 분리수거'입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습관처럼 분리수거해서 쓰레기를 내다 놓으면 그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 걸까? 종종 궁금했습니다. 제대로 재활용되긴 할까? 일종의 호기심과 궁금함도 같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로는 제대로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더 철저하게 분리수거해야 제대로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씻고, 재단해서 분리수거에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전한 궁금함을 끌어안은 채.

프랑스와 유럽에서 생산된 쓰레기가 분리수거라는 과정(제대로 된 분리수거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을 거쳐 베트남 민 카이라는 마을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쓰레기를 수출하고 수입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2020년 1월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필리핀에 단기선교 다녀왔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약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미용을 하기도 하고 음식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때 방문한 곳 중 한마을이 필리핀 쓰레기 마을이었습니다. 몇몇 곳에서 의료봉사를 했었습니다. 마을마다 질병 분포가 달랐습니다. 그때 방문한 곳 중 가장 열악한 곳이었던 쓰레기 마을에 사는 그들은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곳 공기와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쓰레기가 필리핀에서 생산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순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물론 필리핀에서 생산한 쓰레기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수입한 쓰레기일 수 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도 커졌습니다.

이 책이 대안을 알려주는 것은 아닙니다. 실상을 고발하는 르포에 가깝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때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다는 면에서 볼 때 이 작은 책은 충분한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소명에 충실하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합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환상적인 콜라보 아래 우리는 끝없는 성장을 부르짖습니다. 한도 끝도 없이 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텐데 어떻게든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합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고, 제3세계가 노예로 전락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텐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 나만 아니면 된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결과가 철퇴로 돌아오고 있어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쓰레기 문제가 해결될까요? 양질의 교육을 통해 지성을 일깨우고 이성과 양심을 일깨우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뼛속 깊이 인식하면 이 문제 해결에 관한 실마리가 보일까요?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기독인이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 땅을 돌보고 섬기면 어떨까요?

인도주의 차원에서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쓰레기 더미를 선물로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방법과 길을 함께 모색할 수는 없을까요? 우리나라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구촌을 이웃으로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바로 보면 어떨까요? 쓰레기가 우리를 이런 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으로도 얼마든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보와 타협의 정신을 붙들길, 우리 각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자리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뿐 아니라 바른 삶의 태도를 지향하길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더불어 잘 살아가는 지구,

지속 가능한 지구,

다음 세대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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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1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마침 저도 읽고 있는 책이라서 내용을 좀 아니까^^
참 산뜻하게 좋은 리뷰 써주셨네요

이달의 당선작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Hisway 2022-06-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도 이달의 당선작이 있군요. 몰랐습니다. 알라알라님의 댓글보고 처음 안 소식이었습니다. 괜스레 기분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얄라알라
 
진정한 나의 일을 찾아서 - 자신에게 거짓되지 않은 삶의 방식·일하는 방식
에노모토 히데타케 지음, 정영희 옮김, 이태성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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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신앙 여부를 떠나서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너무나 간결하고 멋진 성경 첫 문장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테고, 어떤 사람은 이 한 문장에서 인생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한 문장에서 세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어떤 사람은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의 뒤안길로 집어던져 버리기도 합니다.



짧은 이 한 문장이 담고 있는 크고 많은 의미 가운데 너무나 멋진 의미 한 가지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라는 진리입니다. 이 시선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은 온통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꾼 하나님" 누군가가 이 단어를 먼저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일꾼 하나님"이라는 짧은 두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을 사랑합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폴 스티븐스" 교수에게서 "일과 신앙"에 관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일의 신학"은 나의 지대한 관심사 중 하나였습니다. 늘 희미하게만 알고 있었던 부분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딘지 늘 가려웠던 부분이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일과 신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일과 관련한 책을 탐독하고, 성경이 말하는 일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에 지금도 관심과 마음, 시간과 재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이 우리 삶에 중요하며, 하나님께도 여전히 중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나에게 미그리스도인의 시선에서 본 "일"의 의미를 보여준 책이 나왔습니다. 옆 나라 일본의 에노모토 히데타케라는 작가가 쓴 "진정한 나의 일을 찾아서"입니다.









저자 에노모토 히데타케는 "일" 때문에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인생을 쏟은 사람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릴 때 "일" 하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일"에 지쳐 곤죽으로 변해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일"에 대해 질문할 때면 불같이 화를 내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경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고 일하기 시작하면서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조금씩 동시에 매우 분명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에 대해 더 깊은 사유가 필요함을 직감한 저자는 미국 유학 길에 오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일에 대한 그만의 생각을 새롭게 정립하고, 그의 생각을 주변 사람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의 숙성 과정을 지나 탄생한 책이 [진정한 나의 일을 찾아서]입니다.




저자는 "천지창조"라는 단어에서 아이디어를 착안 "천직 창조"라는 단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멋진 카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천직이란 말도 그렇고 그 천직을 창조한다는 개념까지 담아냈으니 꽤 근사한 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크게 네 가지 틀에서 천직 창조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 안에는 일에 대한 많은 사람의 뿌리 깊은 오해를 반복해서 다루기도 합니다. 그만큼 일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으며, 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장은 삶의 목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라는 생각을 집중적으로 파헤칩니다. 물질의 시대에서는 돈이 일하는 이유가 될 수 있었지만 정신의 세계에 들어온 후로 더 이상 돈이 일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일이 곧 돈이라는 안경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일과 삶의 목적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이 곧 삶의 목적이며, 삶의 목적이 곧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이 흥미로운 것은 삶의 목적을 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주부가 가정에서 살림을 살고 아이를 돌보는 일과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일과 누군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손을 내미는 모든 것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과 그 모든 행위가 삶의 목적으로 귀결되고 결국 멋진 일이 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2장에서 저자는 순수 의욕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왜 직업으로 삼지 않는지 질문합니다.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좀 더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걱정과 이유가 발목을 잡는 세상입니다. 순수 의욕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들러붙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순수 의욕이기 때문이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만큼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순수 의욕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수 의욕을 좇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쉽다는 뜻은 아니란 점도 놓치지 않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붓는지 이해한다면, 순수 의욕을 좇는 일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 인내를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어려운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그 일 자체가 주는 기쁨,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3장에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점점 힘들어집니다. 무시할 수 있다고 해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저자는 천직을 창조하는 자기만의 지혜를 아낌없이 공유합니다. 생계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수입이 얼마인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것도 요구합니다. 천직을 위해 복수의 일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미 하나의 직업만으로 살아가지 않는 세상입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 천직을 찾기 위해 '택시 잡'(스쳐 지나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그의 주장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열거하고, 잘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기록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 일을 통해 조금씩이라도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면 천직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으니, 참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4장은 공명을 위한 행동입니다. 천직을 창조하려면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다룬 장입니다. 그는 먼저 어른이 척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정리합니다. 악마의 속사임(온갖 종류의 변명과 핑계, 발목을 잡는 생각)을 조심해자고 말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심리적인 방법까지 제시합니다(의외로 간단하지만 무척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순수 의욕을 말하며 그 부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야기합니다(이 부분을 그는 신의 역할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넘치는 공명을 주목하고, 공명을 지침 삼아 우선 행동으로 실천해 보자고 말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요. 모든 것이 어렵고 막힐 경우 "Give Up" 하자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Give Up"은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하늘로 올려드리자는 뜻입니다. 통제권을 움켜쥐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올려드리자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에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줍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궁금할 경우 이 부분만 펼쳐 읽어도 전체 흐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책을 다 읽어야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시면 안 됩니다. 읽지 않으면 핵심을 짚어낼 수 없으니까요)



* 천직 창조의 4가지 안경


물질의 시대

정신의 시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자기 삶의 목적을 탐색하고 표현하는 것

일은 해야 하니까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자신을 맞춘다

자신에게 맞춘다

동시에 하나밖에 가질 수 없다

동시에 여러 개 가질 수 있다.



* 천직 창조의 4가지 스텝


스텝 1. 자신의 순수 의욕에 귀 기울이기

스텝 2. 발견한 순수 의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스텝 3. 그때 발생하는 공명을 알아차리기

스텝 4. 그 공명을 기반으로 실행하기







요즘 우리 사는 세상을 보면 일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뿌리 깊고 넓게 퍼진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든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서 좀 더 여가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 일은 가급적 적게 해야 한다는 생각.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만연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천지 창조라는 엄청난 일을 하셨고, 그것도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주를 운행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사람과 함께 선을 이루는 일(진짜 이 말도 안 되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사람은 일을 통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과 최선을 다해 일하고 난 후 그 결과를 음미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일의 즐거움, 성취감, 보람, 의미, 재미를 동시에 맛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강조하고 또 강조하듯 일을 통해 사람은 자신만의 삶의 목적을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일해야 합니다. 천직을 발견하거나, 창조하면서 일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사건이 아닐 수 없겠지요.



매일 일터로 나가는 발걸음이 가볍다면, 일을 통해 삶의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면, 일을 통해 삶을 완성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고, 우리 살아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진심 아름다운 삶이며, 살아가야 할 삶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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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 봐요 - 판사 김동현 에세이
김동현 지음 / 콘택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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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력을 잃는다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일입니다.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상상하기 싫다고 해서 상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경험을 수없이 하게 되니까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 서로를 죽이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을 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2019년만 해도 일상을 빼앗기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사람이 사람을 피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상상하지 않았지만 상상하기 싫은 일이 불쑥 우리를 찾아오는 세상입니다.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는 일도 다르지 않겠지요.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리는 기분을 느낍니다. 판사 김동현 씨가 바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단 십 분 만에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이 증발해버렸습니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그의 세상을 덮어버렸습니다. [뭐든 해 봐요]는 판사 김동현이 시력을 잃고 난 후의 삶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시력이나 청력을 잃거나, 불의의 사고로 평생 휠체어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세상이 무너지고, 이전의 모든 것이 뿌리째 뽑혀 나가는 기분을 느낍니다. 살아갈 수조차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아갈 의지나 소망이 전혀 없다고 느끼는 분이 있다는 반증이겠지요.

그럼에도 많은 사람은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상실의 아픔과 장애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갑니다. 밥도 못 먹을 줄 알았는데, 밥을 먹습니다. 맛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맛을 느낍니다. 다시는 웃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어떤 사람은 아픔과 고통을 끌어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아픔을 뛰어넘고 이겨내기도 합니다(정작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매일 상실, 장애, 아픔을 직면해야 하니까요. 주변 사람의 시선에서 볼 땐 아픔을 뛰어넘고 이겨내고 뚫어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기도 합니다). 나의 눈에는 김동현 판사가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정말 놀라운 집중력과 타협으로 어느 날 찾아온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 문제를 뛰어넘는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판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담담하게 기록했을 뿐이지 그 과정이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업습니다. 책 한 권 때문에 노심초사해야 했던 이야기를 풀어낼 때는 그의 안타깝고 간절한 마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사회인지 그의 경험을 읽고 들으면서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밀려들기도 했습니다. 김동현은 '쇼다운'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고요. 그것도 시력을 상실한 채. 초기에는 한 달 9만 배 절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해내고도 김동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 냥 덤덤하게 말합니다. 독자이자 한 사람으로 나는 그의 이런 모습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쇼다운 경기 모습


나의 작은 형은 중증 장애인입니다. 휠체어와 자동차, 전화가 형님의 발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일을 겪으면서도 본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형님을 보고 있으면 존경의 마음이 생깁니다. 몇 해 전부터 통영 환경 연합회 회장으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나의 고향 선촌 마을 바닷가를 깨끗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통영 환경 연합회의 수고로 바닷물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져 버린 잘피가 다시 생겼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여기저기 누비며 하나님 지으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머물다 떠난 자리가 더 아름다워지기를, 우리 자녀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기 바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습니다.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판사 김동현 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소탈한 그의 성격에서,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뚫어낸 그의 인품에서 깊은 향기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 (97p.)

"인간의 기억은 휘발성이 강하다." (158p.)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기대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 인(人)이다." (174p.)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포용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212p.)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263p.)

(Leave No One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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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주일학교 - 한 사람이 바꾸는 현장 매뉴얼
박양규 지음 / 샘솟는기쁨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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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는 한국 교회의 미래입니다."



몇 해 전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절반 가까이 주일학교가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처음엔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생각했습니다. 통계조사(통계조사는 늘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다) 결과는 이 사실이 조작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부목사로 사역하는 곳은 광주 은광교회입니다. 광주 은광교회는 고신 교단 전라노회 소속이고요. 전라 노회에서 사역하면서 이 통계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축소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해보았습니다. 전라지역에 고신 교단 교회가 많지 않고 교세가 작다는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주일학교가 아예 없거나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는 지금의 모습은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니까요.


대안이 있을까요? 주일학교가 한국 교회의 미래라고 한다면 한국 교회엔 미래가 있는 걸까요? 무겁고 심각한 이 질문에 대해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박양규 목사의 [리셋, 주일학교]입니다.







박양규 목사는 주일학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역자입니다. 그의 경험과 통찰, 노하우와 진지한 고민을 담아 이 책을 저술한 것처럼 보입니다. 현장 사역자 박양규 목사의 제안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원래 강력한 한방은 단순한 법이지요). 그는 먼저 한 사람의 힘을 주장합니다. 한 사람이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한 사람이 주일학교의 흐름과 문화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 교육에 확신을 가지고, 개 교회만의 고유한 가치와 인재상을 확립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헌신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주일학교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박양규 목사는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이 부분이 두 번째 챕터에 해당합니다). 교사들과 분명한 포지션을 나누고 협업시스템을 세워가자고 말합니다. 주일학교 예배를 전통적으로만 드릴 것이 아니라 예배를 디자인하자고 제안합니다. 예배의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면 얼마든지 예배를 디자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설교와 공과공부의 연계성을 만들고 효과를 극대화하자고 제안합니다. 한 명의 교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교사들과의 연합도 빼놓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늘 인문학을 강조한 박양규 목사는 교회 교육의 위한 콘텐츠로 인문학을 제안합니다. 교회 교육의 블루오션을 인문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인문학을 가르치지만 단순히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라 인문학을 도구로 복음을 정확하게 가르치자고 말합니다. 복음을 정확하고 힘 있게 가르치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교회의 직격탄으로 작용했습니다. 여러 가지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학교도 위기를 겪고, 청년대학부와 젊은 층이 교회를 대거 이탈하는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2년 넘게 지속하면서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커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형식적으로 예배하는 현상도 도드라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위기는 변장한 기회라는 말이 있죠. 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늘 위기의 순간을 대면했습니다. 평안한 시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회는 늘 세상의 미움을 받았고, 위기를 직면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교회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냈을 뿐 아니라 위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주일학교의 위기, 교회의 위기는 분명합니다.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낼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예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며, 세상을 경영하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역사가 증명한 또 다른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실 것입니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실 것입니다. 박양규 목사의 말처럼 한 사람의 힘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한 사람의 헌신과 수고와 열정 그 뒤에,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힘과 열정과 지혜와 능력 때문입니다. 그 일에 바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영광스럽고 멋진 일이 아닐까요?



박양규 목사의 [리셋, 주일학교]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초대장이며, 시대적 사명을 끌어안게 만드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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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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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젓가락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겠지?"

고(故) 이어령 선생님의 책 [너 누구니]를 받아들고 처음 했던 생각이었습니다. 300페이지가 넘는 결코 얇은 책이 아닌데 젓가락 이야기만 있다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젓가락 안에 이야기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끌어다 모아도 100쪽 넘기기 힘들 테니까요.

이럴 수가. 저의 짐작을 비웃기라도 하듯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젓가락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이 많은 이야기가 젓가락에 숨어 있었다니, 도대체 이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찾아낸 것인지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과 지식을 향한, 우리 것을 향한 열정에 다시 한번 감탄했습니다. 무엇보다 젓가락에 담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를 정갈한 언어로 빼곡하게 담아주셔서 읽는 내내 고마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나라가 우리나라가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은 젓가락을 사용하는 대표적 나라입니다. 그 외에도 다수의 나라가 있기도 하지요. 젓가락에 우리나라 대한민국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그것이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나의 질문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나라 젓가락의 차별성을 여러 가지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심지어 젓가락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차별성이 있으며 이 "가락"이라는 한 단어로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DNA를 고집스럽게 찾아내고 들려줍니다.

길이와 모양, 게다가 늘 둘이 있어야 하나가 되는 것, 또다시 숟가락과 짝을 이루어 '수저'라는 이름으로 완성되는 이야기가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격할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젓가락은 당연히 음식문화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국물과 건더기가 어우러진 음식을 먹으니 우리의 젓가락은 쇠로 만듭니다. 다른 나라와 확연한 차별성을 가집니다. 이 지점에서 일종의 자부심을 느낀 것은 저만의 감정인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딴 나라 젓가락 다 나와봐!!!!"

각 꼭지를 "고개"로 표현한 점도 무척 좋았습니다. 책을 열면서 이어령 선생님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를 꺼내듭니다. 각 꼭지가 "고개"로 표현될 것을 넌지시 아내 대놓고 알려주는 셈이죠.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 역시 우리만의 이야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만의 젓가락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꼭지 표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과 감성과 지혜를 동시에 맛볼 수 있었던 놓칠 수 없었던 지점이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문호 헤밍웨이는 글 쓰는 이에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재미있게,

재미있는 것은 의미 있게”

이어령 선생님의 [너 누구니]를 읽으면서 이게 바로 헤밍웨이가 하려던 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치 어려울 수 있는 젓가락 이야기를 쉽게, 쉽게 풀어가면서도 너무나 재미있게, 재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소중한 이야기로 간직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을 고취시키는 의미까지. 글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조금 자세하게 다루고 싶었으나, 이어령 선생님의 글에 누를 끼칠까 봐 소감 위주로 서평을 대신했습니다. 젓가락에 담긴 우리만의 가락을 찾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 생각합니다. 젓가락질을 배우기 싫어하는 우리 자녀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왜 젓가락질을 배워야 하는지 알려주고, 젓가락에 담긴 우리만의 Meme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 멋진 책이라 생각합니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우니나라 청주에서 한중일 3국이 함께 선포한 젓가락의 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알려주어야겠습니다. 한중일 3국이 연합으로 선포했지만 이어령 선생님이 들려준 것처럼 우리나라 젓가락에는 우리만의 이야기가 소복소복 쌓여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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