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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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우주는 어디까지 더 커질 수 있는 걸까?

그 안에 마치 먼지와 같은

지구의 의미는 무엇이며

지구 안에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자리는 무엇일까?


하버드 천재 물리학자이자 MIT 인문학자 앨런 라이트먼이 우주와 인간에 관한 사색을 글로 담아냈습니다. 작가 소개를 하면서 스며드는 이 황당함은 그 농도가 몹시 짙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천재 물리학자라는 별명과 함께 인문학자라는 명함까지 들고 있는 걸까요? 한 사람이 물리학과 인문학을 두루 섭렵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신비롭습니다. 동시에 이런 탁월한 사람의 사색을 담은 글이라면 얼마든지 곁에 두고 읽으며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따라가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종의 확신도 생깁니다.




책의 구성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흥미를 확 잡아당기는 제목이 가득하거든요.

1. 무(無)에 관하여 :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에 관하여, 원자,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2. 마음의 과학적 구조: 천억 개, 미소, 주의력의 해부학적 구조, 불멸, 내 어린 날의 유령의 집, 무질서의 놀라운 힘, 기적, 자연 속의 외로운 우리 집, 생명체는 정말 특별한가?

3. 무한에 관하여: 우주적 생물 중심주의, 무한을 아는 사람

그러게요. 빅뱅 이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지, 무(無)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철학적인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오묘한 글 솜씨에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우주가 무한히 큰,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간이죠. 그 광활함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경탄을 쏟아내기도 하죠. 반대급부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가장 작은 것의 세상은 어떨까요? 예전 어느 한 과학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려주었습니다. 너무나 이상한 것은 그 빈 공간이 모이고 모이면 지금 나의 몸을 구성합니다. 빈 공간이 합쳐서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눈으로 볼 수 있으며 감각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된다니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저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말 그대로 과학 사실에 비추어 설명합니다. 과학이 발견하고 찾아낸 근거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후 인문학적인 깊이와 소양으로 담백하게 기록했습니다. 제가 워낙 과학에 맹한 사람이다 보니 단어와 개념을 따라잡기 위해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과학의 깊이와 발전과 발견에 감탄하기도 했고,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주목받는 천재 물리학자이면서 인문학자답게 저자는 자신이 무의미한 어떤 존재이거나, 텅 빈 무엇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우주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고비 사막에서 모래 알갱이 한두 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말하면서 생명이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운 존재인지 경탄합니다. 과학이 발견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가르쳐 주면서도 인문학적 감각과 시선을 놓치지 않는 저자의 탁월한 균형감각에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워낙 삶이 바쁘고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 철학적인 질문 자체가 사치처럼 보이는 세상입니다.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우주에서부터 지구가 탄생하고, 그 지구 안에서 인류가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탄소는 우주로부터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에 아무 관심 없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질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쉽게 흘려보내버리고, 이런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조금은 무거운 조금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삶의 방향과 내용을 점검할 수 있다는 사실과 보다 충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 번쯤은 대면해 보아야 할 질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은 그 질문과 대답을 향한 여정을 안내할 좋은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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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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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쥐 vs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면? 다소 황당해 보이는 설정이지만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상은 자유니까요. 무엇보다 지금 지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치긴 어려워 보입니다. 지구에서 최후까지 생존할 생명체를 꼽으라면 바퀴와 쥐를 꼽을 수 있다는 점도 얼마든지 이 상상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이 황당해 보이는 이야기는 천재 작가이자 기막힌 관찰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이란 소설의 테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라고 하니 "상상이 현실이 된다"라는 문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그가 신뢰받는 작가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내 뉴욕으로 주 무대가 바뀝니다. 프랑스와 유럽 전역이 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소수의 사람과 고양이 개와 돼지는 배를 타고 뉴욕으로 도망치듯 출항했습니다. 미국에서 새로운 쥐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위성이 없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정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소식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고 미국으로 출항한 것입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희망은 산산이 조각나고 맙니다. 그곳은 더 강력한 쥐가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까요. 미국 쥐는 더 큰 덩치와 강력한 근육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용맹했고 헤엄을 칠 줄도 알았으며, 게다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조직폭력배처럼 말입니다.




인류가 서로를 미워하고 죽이고 전쟁하는 동안 쥐들이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쥐들은 급격히 번식했을 뿐 아니라 각종 쥐약에 내성을 가졌습니다. 지성을 갖춘 지도자의 지휘와 근육질에 강력한 이빨을 가진 쥐 떼는 고양이나 개, 돼지와 사람조차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쥐가 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를 적으로 삼고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한두 마리라면 모를까 아무런 두려움 없이 끝없이 몰려드는 쥐 떼를 감당할 수 있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탱크에 잠깐 밀려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단 하루 만에 탱크의 약점을 발견하고 탱크를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그들에겐 제3의 눈(사람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인공 장치)을 가진 티무르(프랑스 쥐의 수장)과 조직폭력배 두목을 연상케 하는 알 카포네(미국 쥐 수장)이 있습니다. 이 두 수장은 용맹할 뿐 아니라 침착한데다 상당한 지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탁월한 지도력까지 갖추어서 쥐를 군대처럼 조직하고 운영합니다. 무엇보다 티무르는 인류의 정보를 다 검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인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사람과 고양이는 쥐들이 올라올 수 없는 고층 빌딩에 거주하며 어떻게 이 난관을 풀어갈지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그것도 잠시 쥐들은 고층 건물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쥐들의 무차별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렸습니다. 고양이와 사람이 몰려 있는 마지막 건물에 방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고양이와 사람은 쥐들을 제거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시도합니다. 안타깝게도 전략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지요. 불행 중 다행이라면 사나운 쥐 한 마리를 생포한 것.

주인공(주인공은 고양이입니다) 바스테트는 이 쥐에게 제3의 눈을 달아주자고 제안합니다. 그가 제3의 눈을 갖고 지구와 자연과 인류의 문화유산을 목격하면 일종의 배반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서 말입니다. 바스테트의 말대로 과학자들은 그 쥐에게 제 3의 눈을 달아주고 그에게 폴(Paul, 기독교에서 바울, 또는 바울로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예수를 박해하다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이 된 인물입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은 그야말로 배신자입니다)이란 이름을 붙여줍니다. 그가 쥐를 배신하길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요? 누가 지구를 지배하는 동물이 될까요? 쥐일까요? 아니면 고양이? 아니면 또다시 인류? 행성 두 번째 책을 빨리 펼쳐야겠습니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소설을 쥐는 바이러스 고양이와 인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는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인 다른 생명체로 대입해 보았습니다. 쥐가 창궐하고 번식하고 진화하면서 인류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멸종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이제 남은 생명체라곤 쥐와 고양이와 소수의 사람이 전부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지구의 주인이고 지배자로 행세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류세'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이고, 지금 지구의 풍경을 보아도 사람이 지구의 지배자처럼 보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좋은 지도자가 있을 때 모든 백성이 평화롭게 살았던 반면 탐욕스러운 자가 지도자의 자리에 앉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역사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와 목소리로 증언합니다. 이 상황을 지구에 대입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지도자일까요? 아니면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지도자일까요?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인류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지도자인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내성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고, 지독하고 강력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와 [부산행]과 같이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바이러스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아니면 끔찍한 치명률을 가진 감기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도 있겠지요. 제2 제3의 코로나가 덮치지 말라는 법도 업습니다. 악랄하고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 아래 신음하던 민중이 견디다 못해 일어나 세상을 뒤집은 사건의 판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모양새입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소설을 썼는지 모르지만, 지금 인류가 보이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본 후 풍자적으로 쓴 소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행성].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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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나의 마을
다시마 세이조 지음, 황진희 옮김 / 책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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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야기해 주세요!"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아들과 딸이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야기에는 몇 가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경 이야기, 두 번째는 아빠 군인시절 이야기, 세 번째는 아빠의 옛날이야기. 몇 달 동안 거의 일주일에 4-5회 이상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바닥나고 말았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한 바퀴 더 돌기 시작했고, 군 생활 이야기는 쥐어짜내기 시작했으며, 옛날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이야기로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날에 살았던 마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동차 도로가 없었고, 선착장도 지금보다 훨씬 작았고, 바다엔 모래가 더 많았던 때였습니다. 산에는 들짐승이 있었고, 소를 몰고 산으로 올랐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바다에서 놀다가 거의 죽을 뻔한 경험과 배고플 때 남의 밭에서 고구마나 감자를 서리해 구워 먹었던 일과 무와 양파까지 뽑아먹었던 기억이 돋았습니다.

이야기란 대단한 힘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나의 옛날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아들딸과 낄낄대며 웃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며, 우리도 뭔가를 시도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니 말입니다. 이야기 하나로 세월을 뛰어넘고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연결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 속 나의 마을]이란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이 들려주신 옛날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더불어 나의 어린 시절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저수지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던 일, 볏짚단에 불을 질러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동네가 발칵 뒤집어진 일, 서리하다 주인에게 잡혀 된통 혼난 일, 바다에서 잡은 고동과 해산물을 구워 먹었던 일까지... 그리고 그 안에 얽히고설킨 형들과 친구들과 동생들의 얼굴까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다시마 세이조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가 자란 시대 배경과 마을 풍경이 눈과 마음에 그려진다고 해야 할까요. 다시마 세이조가 1940년 생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옛날이야기는 꽤나 옛날이야기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발전하지 않은 촌스러움과 정겨움이 가득하고, 조금은 과격하고 세련되지 못한 이야기까지 담겨 있습니다. 발가벗고 수영한 일이나, 너무나 억울했던 학교 선생님, 그것도 교장 선생님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달리기 하나 때문에 자존심을 몽땅 걸었던 이야기,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산에 올라가 새를 잡았던 이야기도 있습니다.

나 역시 어릴 때 새총과 활과 화살을 들고 산으로 들도 다니며 토끼와 꿩을 잡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비둘기를 잡았을 때도 있었고, 집으로 가져가다가 윗동네 아저씨에게 강탈당한 기억마저 떠올랐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폭력에 가까운 린치를 당한 기억이 돋아 오르기도 했고, 수영하다 물풀에 감겨 식겁했던 저 아래 숨어 있었던 기억까지 솟아올랐습니다.




나와 다시마 세이조는 시대적으로도 상당한 시간차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일본인이며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무작정 사이가 좋을 수는 없는 관계라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그 역시 어릴 때 자기 동네에 살았던 한국 부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며 조센징이라 불렀던 이야기를 꺼내놓습니다. 그 시간과 그 이야기를 자신의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으로 회상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가 그저 막되 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에게서 인간미를 한껏 느낄 수 있고, 그의 이야기에서 일종의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접촉점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다시마 세이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과거를 떠올렸으며, 나의 고향의 옛 풍경까지 마음과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독특하고 특별한 독서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의 끝자락에서 다시마 세이조가 그가 자란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안타깝게도 마을은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입니다. 도로가 생기고, 길이 달라졌습니다. 산과 들은 깎여나가 흉물스럽게 변했습니다. 그의 추억, 그의 삶이 잘려나간 기분을 느낍니다. 오지 말 것을... 하는 안타까움마저 느낍니다. 그의 삶이 녹아 있고, 그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마을은 말 그대로 그림 속에만 존재할 따름입니다.

포클레인은 사람이 만든 가장 흉물스러운 기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하곤 합니다. 산을 파헤치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을 하곤 합니다. 포클레인으로 먹고 사시는 분에겐 죄송하지만 생각마저 안 할 수는 없으니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4대강 이야기나, 깎여나간 임야, 산과 밭을 뒤덮은 태양열 집열판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힐 때가 있습니다. 다시마 세이조의 책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풍경과 환경 문제까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뾰족한 대안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이웃과의 평화와 공존, 환경 문제까지 두루두루 생각하게 만들어 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 속 나의 마을]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오늘 밤 아들과 딸에게 나의 옛날이야기 하나 더 꺼내들어야겠습니다.




#다시마세이조글 #황진희옮김

#그림속나의마을 #추억 #그림책작가 #그림 #어린시절 #고향

#예술 #작품세계 #책담 #에세이 #그림에세이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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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NEW 브리태니커 지식 백과 세트 - 전8권 ALL NEW 브리태니커 지식 백과
브리태니커 북스 지음, 크리스토퍼 로이드 엮음, 한국백과사전연구소 옮김 / 한솔수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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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에도 고유명사가 있을까?

백과사전에 고유명사가 있다는 말은 아직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 종류 백과사전이 있어서 특정 백과사전에 특별한 권위와 의미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고 떠올려 볼수록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그중에서도 최고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유명할 뿐 아니라 익숙하기도 하고, 널리 읽혔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브리태니커 지식백과가 그림책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말할 것 없고 어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으로 말이에요. 총 여덟 권이며 주제는 이렇습니다.

* 변화 발전의 시대 근대와 현대,

* 오래전의 사람들, 고대와 중세,

* 우리가 함께하는 오늘과 내일,

* 세상을 새롭게 바꾼 인간,

* 신비롭고 다양한 생물,

* 이상하고 신기한 물질,

* 푸른빛 행성, 지구,

* 세상의 시작과 끝, 우주




저는 여기서 두 권 변화와 발전의 시대 근대와 현대, 이상하고 신기한 물질이란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일단 책이 깔끔하고 예쁘게 나와서 받아보았을 때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관심을 보여서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실물 사진 한 번 보시죠.





 



책을 펼치면 괜히 브리태니커 지식백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책이 두껍지 않지만 뭐하나 빼놓은 것이 없다고 느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핵심만 딱 간추려서 글과 그림으로 담아 놓아서 읽는 내내 지식과 정보를 쏙쏙 빨아들이는 기분이었습니다. 나의 마음에 쏙 들었던 파트는 [사실은] 이란 코너였습니다. 역사 속 사실일 뿐 아니라 일종의 야사와 같은 부분을 골라 정리해 둔 부분. 뭐랄까 역사 속 인물과 지식과 사실을 나만 몰래 엿보게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책을 다 읽어갈 즘에 또다시 발견하는 한 가지 꿀팁과 흥미를 잡아끄는 대목도 있습니다. 바로 [전문가에게 물어봐!]라는 코너와 [퀴즈] 코너, [낱말 풀이]와 [찾아보기] 코너입니다.







 



한 권을 읽고 나면 괜히 배가 부릅니다. 머릿속이 채워진 기분도 한껏 느끼는 것은 덤이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읽으니 더 기분 좋았습니다. 상식과 지식으로 내면을 채워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는 것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ALL NEW 브리태니커 지식백과 전체 8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정마다 한질씩 구비해 두고 궁금할 때마다 자녀들과 함께 펼쳐가며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꽤나 근사한 시간을 만들어 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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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출간 15주년 기념 백일홍 에디션)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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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일평생 농부로 살아오신 부모님을 보면서 농부의 삶이 무엇인지 목격했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농부가 사용하는 농기구 역시 익숙한 물건이며 이름입니다. 집 뒤양간에는 농기구가 늘 제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곡괭이, 낫, 쇠스랑, 삽, 갈쿠리(쇠갈퀴), 그리고 호미. 모두가 나에겐 익숙한 이름, 농기구입니다. 손에 익을 때까지 사용해 보기도 했고, 농기구로 장난치다가 다치기도 했던 조금은 살벌한 추억도 있습니다.

익숙함. 무언가에 익숙하다는 것은 반가운 마음을 주기도 하며, 추억을 되살리기도 합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가볍게 흘려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만에 마음을 두드리는 익숙함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도 합니다. 고 박완서 작가님의 책 [호미]를 만났을 때 저의 마음이 딱 그랬습니다. 반갑고, 미소를 지었고,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해졌습니다.




일전 고 이어령 선생님의 책 [너 누구니]를 읽을 때 느꼈던 감정을 박완서 작가님의 [호미]를 읽으면서 다시금 느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탁월한 지성과 깊은 관찰로 젓가락에 관한 사유를 글로 담아냈습니다. 책을 읽기 전 설마 책 한 권이 모두 젓가락 이야기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나의 이 생각을 가볍게 날려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젓가락을 이렇게 오래, 자세히, 깊이 들여다보았는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글의 모양과 느낌, 결은 사뭇 다르지만 박완서 작가님의 [호미]를 읽으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물론 이 책에서 호미는 이어령 선생님의 젓가락과는 달리 한 꼭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박완서 작가님 역시 호미를 오래, 자세히, 그리고 깊이 들여다보았고 그 생각을 단아한 글로 담아냈습니다. 호미뿐 아니라 마당에서 피는 꽃 하나하나를 그렇게나 오래, 자세히, 깊이 들여다보고 그 감정을 곱게 담아낸 것은 일상을 오래, 자세히, 깊이 들여다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쉽게 놓치거나 간과하기 쉬운 자연의 변화와 일상의 소소한 일을 이렇게나 오래, 자세히,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만의 문체와 언어로 정갈하고 깊게 담아내는 이 두 거장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고 나면 언제나 일상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일렁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 하나씩 둘씩 생기는 흰머리와 주름을 더 깊이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훌쩍 자라는 모습을 아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일상의 시간, 함께 자전거를 타고, 걷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 함께 저녁 식사를 먹으며 식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습니다.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상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이며 우리가 살아내야 할 삶이겠지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과 목격하는 자연의 변화와 경험하는 소소하고 작은 일을 톺아보면서 그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의미를 찾아내면서 우리 삶은 부요해지고 아름다워지며 의미와 재미로 차오르는 법이겠지요.




언제나 그랬듯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자라납니다.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계절을 알리는 풀과 꽃과 나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생깁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명을 주신 하나님,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여기저기에 은혜의 흔적을 남기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마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기 때문이겠지요.

책을 읽으며 여기저기 밑줄을 그었습니다. 따라 써보고 싶은 문장도 자주 만났습니다. 그중에 내 마음에 콕 박힌 문장을 소개하며 고마운 책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글 쓰는 일이란 몸의 진액을 짜는 일이니까."

박완서, 호미, 59

박완서 작가님도 글 쓰는 일을 어렵게 느끼셨다는 점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글쓰기의 대가도 글쓰기 위해 진액을 쏟아낸다고 하니 일종의 고마운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당연한 일이라는 위로까지 얻었습니다.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

박완서, 호미, 110

예수께서는 무엇이든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상력이 차고 넘치는 분이 예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완서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 우리 살아가는 세상이 이렇게나 배려가 없고, 무례하고, 사납고, 거만한 이유가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상상력 결핍의 시대입니다. 엉뚱한 것이나 상상하고 있는 우리네 민낯을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지요. 우리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맛 나는 곳으로 바꾸어가려면 상상력을 회복하는 일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문장이기도 하지요.

거룩한 상상력을 기르기 위해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 앞에서 그분의 말씀으로 내면과 마음을 채우며 상상력을 길러야겠습니다. 발 딛고 살아가는 한 모퉁이라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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