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 - 2021 BBC 블루피터 북 어워드 수상작 다산어린이문학
엘 맥니콜 지음, 심연희 옮김 / 요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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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생긴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나 같은 말씨를 쓰는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걸 다 좋아해 주지 않아도 친구 할 수 있어. 나랑 생각이 똑같은 애가 아니라도 친구 할 수 있어. 하지만 언니가 선물로 준 책에 끔찍한 말을 써 놓는 사람에게 그러지 말라고 맞서 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난 친구 할 수 없어. 진심이야." - 스파크 245쪽

"다르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 다 달라요. 그리고 어떤 분들은 제가 이 일에 너무 심하게 요란을 떤다고 생각하고 계신다는 거, 저도 알아요. 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말씀 드릴게요. 자폐를 가진 여자애들은요, 아주 집요해요." 스파크 258쪽.

"여러분은 뇌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저는 그렇지 않은 자폐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요. 우리는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아요." 스파크 259쪽


"마녀사냥"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을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역사 배경,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몇몇 사실만 스크랩했습니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되어 16세기 말~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 곧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에는 희생자의 수도 적었고, 종교 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전담하였지만 세속 법정이 마녀사냥을 주관하게 되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종교 재판은 악마의 주장을 따르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는 마법사와 마녀를 처단하기 위한 지배 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17세기 말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효과 덕분에 금방 번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1582년 바이에른 어느 백작의 한 작은 영지에서 한 명의 마녀가 체포되었다. 이 마녀의 체포에 연속으로 48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하였다. 1587년 도릴 지방의 약 200여 촌락에서 1587년부터 이후 7년간 368명의 마녀가 적발되어 화형 당하였다. 1590년 남독일의 소도시 네르도링켄에서 시장의 제안에 의하여 시의회는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마녀를 철저히 일소하도록 결의하였다. 이후 3년간 32명의 마녀가 화형 또는 참수되었다.

1590년 소도시 에링켄에서 65명의 마녀가 처형되었고, 1597~1676년에 197명의 마녀가 화형 당하였다. 소소크만텔 승정령(僧正領)에서는 1639년에 2,428명, 1654년에는 102명이 처형되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스타이엘마르크 지방에서 1564~1748년에 1,849명이 소추되어 1,16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나노수 지방에서는 1629년부터 4년간 2,255명이 마녀로 소추되었고, 뷔르튄겐 지방에서는 1633년 이후 3년간 11명이 처형되었다.

튜링겐 숲에 인접한 게오르겐탈이라는 인구 4천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1652~1700년에 64회의 마녀재판이 실시되었다. 반베르크 승정령에서는 1627년 이후 4년간 화형 당한 마녀가 285명이었고, 그 이후 30년에 걸쳐 이 재판소에 계류된 마녀재판은 900건을 넘었다. 이 승정령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

뷰르스부르크 승정령에서는 1623~1631년에 화형 당한 마녀가 900명에 달하였다. 1627년부터 이후 연간 29회의 재판에서 화형 당한 157명의 희생자를 보면 잡다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의회 의원, 고급 관리의 부인, 시의회 의원의 처자,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8, 9, 12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루다에 살고 있는 바루다세르 후스라는 마녀재판관은 19년간 700명의 마녀를 화형 시켰는데, 자신의 일생 동안 1천 명을 처형하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로트링겐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레미라는 사람도 재직 15년간 화형 시킨 마녀가 900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마녀사냥의 물결은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법과 마녀는 그 시대가 겪었던 종교적 번민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던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과 함께 마녀사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녀사냥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서 일부만 발췌한 내용입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길고 긴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 두었더라고요. 그 한 줄이 더 충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었습니다.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광신도적인 현상."

참고로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낯이 뜨뜻해졌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부끄러운 면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 문장에 담겨 있는 '절대화', '권력과 기득권 유지', '광신도'와 같은 단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참된 기독교가 아닐뿐더러, 예수의 뒤를 따르는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소설 스파크 서평에 마녀사냥 이야기를 이렇게나 잔뜩 쏟아놓는 것은 이 책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입니다. 저자 엘 맥니콜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아델린(아델린은 '애디'라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역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자녀나 가족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면 '마녀사냥'이란 단어가 남의 이야기로만은 들리지 않을 겁니다. 부끄럽고 어이없게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볼 때면 뭔가 다른 종류의 사람인 냥 생각하고 대합니다.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뇌가 정상(이런 단어를 쓰는 것조차 조금은 불편합니다)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따름인데, 우리는 마치 자폐 스펙트럼을 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되면 자폐 스펙트럼이 나을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우리의 무지함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주인공 애디는 남다른 청각과 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지요. 어떤 것은 너무나 자세하게 보여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글쎄요. 어떤 면에서는 초능력이 가깝지 않나 생각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시력이나 청력이 나쁜 분이라면 이 능력이 대단히 부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애디 주변에는 애디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런 편견 없이 친구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애디를 이해하고 애디가 가진 능력과 장점에 시선을 맞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중심에다 놓고 자신과 다른 애디를 나쁜 시선을 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립니다. 심지어 놀리기도 하고 괴롭히기도 합니다. 애디는 견디고 참아냅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엔 자기 목소리를 찾고, 목소리를 냅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고, 다양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서로 존중하는 삶이야말로 사람이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이라고 말입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안고 태어난 애디는 늘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받습니다.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환자 취급을 당할 때도 있었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 독특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입니다. 애디가 마녀사냥을 당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자 이유입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마녀로 몰려 온갖 비난과 수모를 겪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그들에게서 자신을 보았으니까요. 

애디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자행된 부끄러운 역사를 알리려고 합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더 이상의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많은 반대를 겪어야 했을지, 얼마나 무겁고 심각한 편견에 시달렸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디는 이 모든 편견과 난관에도 마녀사냥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건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할 수 없으니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부끄러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편견이 생기고, 한 번 들러붙은 편견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굳은살처럼 더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에게 이런 편견과 왜곡된 시선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도 적지 않을 테니까요.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라는 아포리즘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억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더 깊은 열정으로 피어올라야 할 아포리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하거나 차등한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과 독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생각, 내 뜻, 내가 가진 기준에 다른 사람을 욱여넣는 일은 독재와 독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닐지 몰라도 그 어느 폭력에도 뒤지지 않는 잔인한 폭력임에 틀림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부드럽고 넓고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호연지기랑 청소년 시절에만 외쳐야 할 단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을 키워가고 다름을 다름으로 존중할 수 있는 용기를 길러가는 일이야말로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품어야 할 높고 거룩한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방향성을 두고 살아갈 때 비로소 또 다른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차별과 차등,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성장소설 스파크를 읽으며 나의 부끄러운 모습과 우리 사는 세상의 부족한 부분을 직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이라는 특징을 가진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 살아가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이 책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다양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가 꿈꾸고 바라고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의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테니까요. 



몇 해 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청소년이 모든 용기를 다 끌어내 법정에 서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변호사가 되길 꿈꾸지만 자신은 변호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청소년. 하지만 정의와 공의를 세우기 위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모든 공포와 두려움에 맞서 법정으로 향하는 자폐 청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가슴 벅찬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파크를 읽고 난 후 영화 "증인"을 함께 보시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시선과 편견을 바로잡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증인"도 즐겁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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