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TV 프로그램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을 말합니다. 누구라도 이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과 역사 배경,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어서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몇몇 사실만 스크랩했습니다.
마녀사냥은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되어 16세기 말~17세기가 전성기였다. 당시 유럽 사회는 악마적 마법의 존재, 곧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초기에는 희생자의 수도 적었고, 종교 재판소가 마녀사냥을 전담하였지만 세속 법정이 마녀사냥을 주관하게 되면서 광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종교 재판은 악마의 주장을 따르고 다른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는 마법사와 마녀를 처단하기 위한 지배 수단으로 바뀌게 되었다. 17세기 말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되었다. 마녀사냥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효과 덕분에 금방 번졌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시켰다.
1582년 바이에른 어느 백작의 한 작은 영지에서 한 명의 마녀가 체포되었다. 이 마녀의 체포에 연속으로 48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하였다. 1587년 도릴 지방의 약 200여 촌락에서 1587년부터 이후 7년간 368명의 마녀가 적발되어 화형 당하였다. 1590년 남독일의 소도시 네르도링켄에서 시장의 제안에 의하여 시의회는 거리를 나돌아다니는 마녀를 철저히 일소하도록 결의하였다. 이후 3년간 32명의 마녀가 화형 또는 참수되었다.
1590년 소도시 에링켄에서 65명의 마녀가 처형되었고, 1597~1676년에 197명의 마녀가 화형 당하였다. 소소크만텔 승정령(僧正領)에서는 1639년에 2,428명, 1654년에는 102명이 처형되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스타이엘마르크 지방에서 1564~1748년에 1,849명이 소추되어 1,16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나노수 지방에서는 1629년부터 4년간 2,255명이 마녀로 소추되었고, 뷔르튄겐 지방에서는 1633년 이후 3년간 11명이 처형되었다.
튜링겐 숲에 인접한 게오르겐탈이라는 인구 4천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1652~1700년에 64회의 마녀재판이 실시되었다. 반베르크 승정령에서는 1627년 이후 4년간 화형 당한 마녀가 285명이었고, 그 이후 30년에 걸쳐 이 재판소에 계류된 마녀재판은 900건을 넘었다. 이 승정령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
뷰르스부르크 승정령에서는 1623~1631년에 화형 당한 마녀가 900명에 달하였다. 1627년부터 이후 연간 29회의 재판에서 화형 당한 157명의 희생자를 보면 잡다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의회 의원, 고급 관리의 부인, 시의회 의원의 처자,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8, 9, 12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루다에 살고 있는 바루다세르 후스라는 마녀재판관은 19년간 700명의 마녀를 화형 시켰는데, 자신의 일생 동안 1천 명을 처형하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로트링겐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레미라는 사람도 재직 15년간 화형 시킨 마녀가 900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마녀사냥의 물결은 15세기 이후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던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법과 마녀는 그 시대가 겪었던 종교적 번민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던 동시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배경과 함께 마녀사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녀사냥 ]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길고 복잡한 이야기에서 일부만 발췌한 내용입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길고 긴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 두었더라고요. 그 한 줄이 더 충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인류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었습니다.
"15세기 이후 기독교를 절대화하여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상황에서 비롯된 광신도적인 현상."
참고로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낯이 뜨뜻해졌습니다. 역사 속에서 일어난 기독교의 부끄러운 면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 문장에 담겨 있는 '절대화', '권력과 기득권 유지', '광신도'와 같은 단어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참된 기독교가 아닐뿐더러, 예수의 뒤를 따르는 길도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