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나는 자식교육에 자신이 있었다.
나름 교육에 대한 책도 좀 읽어 보았고 자식은 부모 할 나름이며 내가 남들과 차별이 될 만큼의 지적교양을 가지고 있기에 콩밭에서 콩이 나오듯 그럴듯한 놈이 나오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음식점에서 뛰어 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를 까칠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시했고 노상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쥐어 패는 무식한 엄마를 경멸하곤 했다. 자식의 수준은 곧 부모의 수준이라 굳게 믿으며 말이다.
환상이었다. 이 모든 것은 내 상상에 불과했다.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듯이 아이 역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교육 지식은 별로 쓸모가 없었으며 정작 필요한 건 인내, 또 인내였다.
백번 말해도 못 알아듣는 아이들과 날마다 씨름을 해야 했고 마지막은 감정폭발과 폭력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아이들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했다.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공원 그네에 앉아 부자 간 나누는 솔직하고 진심어린 대화는 드라마에서나 존재했다.
대화를 나누고자 다가섰으나 일방적 통보로 끝났고 시작은 대화였으나 끝은 언쟁으로 마감하는 일상이었다. 그동안 책에서 주워들은 주옥같은 이야기는 아이에게 한낱 잔소리에 불과할 뿐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학창시절 신통찮았던 성적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공부만을 강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반타작도 안 되는 수학성적표를 본 순간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실망감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나보다 못한 애들도 많아. 그래도 저번보다 잘 봤잖아" 하는 녀석의 무사태평과 밑도 끝도 없는 낙관주의 앞에 말문이 막힌 나는 소리만 꽥꽥 질러댔다.
“그래 너 잘났다. 이 성적 가지고는 대학 근처에도 못가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기술이나 배워라”
“어차피 없는 돈 차라리 잘됐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취직해라. 아빠는 그 돈으로 노후대책이나 세워야겠다.”
최고의 책만을 엄선하여 아이들 방에 쏟아 부었지만 아이들은 내 의도를 철저하게 무시하며 머리 식히라고 끼워 넣은 몇 권의 만화에만 관심을 가졌다.
할 수 없이 최고의 명작 만화만 추려 내어 책장에 꽂아 두었지만 또 내 의도는 빗나가고 말았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야생마처럼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기운이 부담스러웠다. 말로는 아이들과 논다고 했지만 항상 피해 다녔다. 같이 노는 것이 아닌 마지못해 놀아주는 아빠의 게으로고 무기력한 몸짓은 금방 들통 났고 더 이상 놀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아이들의 놀이터는 온라인 게임으로 대체되었다.
자식 가지고 장담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젠 모든 걸 포기했다고 중얼거린다.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대신 니들 인생은 알아서 책임져라.”
그렇지만 나중에 이놈들이 할 말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아빠는 애들이 뭘 안다고...당연히 애들은 공부를 싫어하지. 그렇다고 니들 맘대로 해라 그러면 되겠어요? 공부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닌가요? 어떻게 이렇게 아이들을 방치할 수 있어요. 내 인생 책임져요.....”
“지랄하고 자빠졌다. 그러게 내 귀에 목이 박히도록 이야기했잖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나중에 부모 탓 하지 말라고. 니 인생이니 니 알아서 해라. 이제 나는 모르겠다.”
인생은 데쟈뷰다. 내 어릴 적 모습을 다시 본다. 내 아이들은 어릴 적 나다. 내가 심은 콩이다. 되풀이 되는 삶의 톱니바퀴는 오늘도 어김없이 돌고 돈다.
그래도 사랑한다. 축복한다. 내 아들들아!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공부를 못해도, 이세상에서 제일 말썽을 피워도,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이 되어도 사랑한다. 너희들은 내 새끼들이고 나는 너희 애비니까.
붙임 1. 큰놈의 존재론

붙임 2. 작은놈의 아빠에 대한 더부살이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