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이래(KBS2 주말드라마)


농업사회에 절대적인 가치였으나 근대화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해체의 길을 걷게 된 가부장제는 핵가족과 여성평등을 낳은 뒤 역사 저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농사를 짓고 제사를 주관하며 집안의 어른으로서 가족에게 권위를 인정받았다. 천기에 좌우되는 농사에 있어서 지식은 곧 경험이고 경험은 살아온 세월과 비례하는 것이니 연장자라는 것만으로 어른의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농업사회에서 축적한 경험은 쓸모가 없어지고 공장에서 회사에서 받는 몇 푼의 임금이 곧 아버지의 몸값이요 가치로 자리매김했다. 먹고 살기위해 굽실거린 아버지는 경험보다 중요한 건 지식이라는 걸 깨닫고 자식에게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을 강요한다. 아버지의 경험을 무용지물로 만든 지식을 터득한 자식에게 아버지는 출세를 위한 발판이요 소모품으로 보였다.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한 아버지에게 돌아온 건 불안한 노후와 자식에게 좌우되는 여생이다. 그나마 경제력마저 없다면 부모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중죄인으로서 자식에게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여생을 국가의 자비에 의탁할 비참한 운명에 처한다.

 

지금 더 이상 아버지의 권위 운운 하는 언사는 시대착오적이며 벗어버려야 할 구태에 불과한 것. 가부장이라는 권위가 사라진 자리를 어정쩡하게 채운 부정(父情)은 아직도 유효한 어머니의 사랑(母情)과 애매한 자리다툼을 벌이지만 워낙 일천한 역사라 아직 자리매김을 못하고 있다.


이제 아버지가 앉아 있던 사랑방의 흔적은 영화나 드라마 소설속에만 존재한다. 뻔한 스토리와 주제지만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아직도 우리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의 약발은 남아 있는지 자꾸 드라마 방영시간을 체크한다.


차순봉의 부정이 자식들과 부딪치다가 소통되는 과정은 뻔한 결말이겠지. 그래도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가부장제의 몰락과는 별도로 흔적이나마 내 자식들에게 전해진다면 다행이려니 생각을 해 본다.


잠자고 있는 아들놈 얼굴을 한 번 본다. 니가 아버지가 되는 날 이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아들 이름을 한 번 불러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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