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지식과 교양은 비례한다고 생각했다. 많이 배울수록 지식이 많을수록 그에 맞추어 인간도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살면서 나의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금방 깨달았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많았다. 뉴스를 장식했던 많은 사건들을 일으킨 사람들은 늘 ‘배운 자’ 들이었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 법률가, 사업가, 정치가 등 엘리트코스를 밟아온 사람들이었다. 특히 법률가의 경우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죄를 진 사람을 잡아야 할 경찰이 나 기소해야 할 검찰이나 변호사가 거꾸로 피의자가 된단 말인가?
법을 배운 자는 법의 수호자요 정의의 파수꾼인줄 알았던 나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젠 이해할 수 있다. 도덕과 양심은 지식과 별개로 존재하며, 그러한 지식은 사욕을 위한 수단에 불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문적인 법률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전문적인 의학지식으로 무장한 사람의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유교사회에서 지식은 곧 자기수양이었다. 물론,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등용되고 집안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단 말이다. 사서삼경을 읽으며 충효사상을 실천하려 했고 시를 읊으며 자연과 교감했다. 유학이란 학문의 바탕이 도덕적인 삶으로 직결되었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대의 지식은 전혀 다르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은 물질문명을 운용하기 위한 도구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응용기술인 것이다. 여기에 도덕은 필요 없다. 기계를 움직이는 지식에 무슨 도덕이 필요한가? 자본주의 경제의 한 부품으로서 충실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성찰과 수양이 필요 없는 지식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효용이 최고의 덕목일 뿐 추상적인 가치가 끼어 들 곳은 없다. 도구로서 법률지식은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거나 보내지 못하게 보호할 뿐,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면 나와 똑 같은 다른 변호사가 변호하면 된다. 돈 받고 치료하면 될 뿐, 의료사고가 나면 나와 똑 같은 다른 전문가가 변호하면 된다. 내가 내 지식에 책임질 의무도 이유도 없다. 오직 내가 제공한 지식과 제공받은 지식에 대한 손익분기점만 정확하게 계산 하면 된다.
정확히 돈으로 환산된 지식은 그 효용을 다 하면 폐기처분된다. 새로운 지식은 계속 생겨나고 습득할 지식은 산처럼 쌓이지만 단 한 줄의 도덕도, 한 줌의 양심도 섞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리 모두는 학교에서 그렇게 살라고 배웠다.
배운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자던 공자의 말을 우리는 잘 지키며 살고 있다.
공자가 혀를 찬다. “쯧쯧....제대로 배우란 말을 빼먹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