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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 식민사학과 동북공정을 둘러싼 주류 강단사학의 '흑막'
김상태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를 알아서 무엇에다 쓸까? 모른다고 사는데 특별히 불편할 것도 없는데.
학창시절 따분한 역사공부를 할 때면 늘 드는 의문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역사에는 민족의 자긍심을 가질 만한 부분도 별로 없었다. 맨 날 중국과 일본에 얻어터지고 백성들은 못난 왕과 약한 나라에 산 죄로 모든 고난을 골고루 체험해야 했다. 고난과 역경을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는 허울 좋은 말 몇 마디로 포장하기에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지난한 세월은 너무 가혹했다.
명분은 그럴듯했지만 결국 권좌를 보존하기 위해 수십 년간 온 나라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무신정권, 백성을 헌신짝 버리듯 하고 중국까지 도망갈 기세였던 선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명분싸움으로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을 자초하고 자신마저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인조, 대세를 읽지 못하고 사리사욕에 나라를 팔아먹은 구한말 권력자들과 줄행랑치면서 거짓으로 승전 및 독전 방송을 하고 한강다리를 폭파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대통령까지 훌륭한 지도자를 둔 우리나라의 역사는 온통 권력다툼과 그 대가인 백성의 고초로 가득 차 있었다.
삼국시대 외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도 할 필요도, 능력도 없었던 나라
수많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지배자를 자력으로 한 번도 내치지 못한 나라
그것도 나라라고, 왕이라고 제 목숨 바쳐가며 스스로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을 토사구팽 하곤 했던 나라.
갈라져서 싸우다 가까스로 통일이 되면 자기들끼리 분열하여 또 싸워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수천 번의 외침을 받고도 흰옷을 즐겨 입는 평화애호 민족성을 자의반 타의반 줄 곧 견지한 나라.
외부로의 고통을 찬란한 정신문화와 예술로 승화시킨 슬픈 나라.
이상이 내가 느낀 한민족 역사에 대한 감상이다.
이런 우리역사에 염증을 느낀 내가 최초로 접한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는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국사책 첫 장의 간단한 단군신화 몇 줄로 끝나곤 했던 이 나라가 실존했던 국가라니.
단군신화를 처음 접했을 땐 그냥 옛날이야기로 들었다. 신화는 그냥 이야기니까.
신화란 실존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의 사상을 비유로 상징화한 것이라 생각했다. 단군은 제정일치시대의 족장 같은 것이며, 고조선은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신봉하는 부족들의 연합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내 짧은 지식의 전부였다.
‘환단고기’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아득한 고조선을 훨씬 뛰어 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경이로움 자체였다. 이렇게 아득한 역사를 왜 우리는 몰랐을까? 국사책에는 왜 나오지 않았던 걸까? 내 의문의 답은 일제강점기 합병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쁨도 잠시 다시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환단고기 류의 책들이 과학적인 고증이 부족한 그야말로 이야기책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 쪽은 신화고 다른 한 쪽은 사실 같은 허구라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아무도 편들지 않고 조용히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역사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진실을 알겠는가? 답답하기는 했지만 워낙 오래전의 역사라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말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를 잊고 살다 최근 접한 이 책이 다시 나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지 않은가? 장장 오백 쪽이 넘는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뭔가 감이 왔다. 고조선의 비밀을 일부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의 지은이에 대해서도 모르고 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쓴 책에 대해 얼마나 신뢰를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한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의 신뢰에 무게를 두고자 하는 것은
첫째, 그가 인용하는 학자들의 논문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체의 일부분만을 발췌하는 것은 원래 논문의 주제를 작위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독자가 사후에라도 확인할 수 있기에(굉장히 특별한 일이지만) 신뢰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본다.
둘째, 오히려 지은이는 그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지금 세상은 정보화시대다.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 있으며 맘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과거 상아탑의 아카데미가 독점하던 지식권력이 사라진 ‘대중지성’의 시대가 아닌가.
셋째, 지은이가 누누이 강조하고 있으며 나 역시 십분 동감하고 있는 사항이다. 정치가들이 자식들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곤 했던 ‘민족주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륙을 누볐던 위대한 고구려의 기상’ ‘웅혼(雄渾)한 고조선의 역사’ 따위의 가슴 뛰게 하는 선동문구를 새삼스럽게 들먹여 어설픈 민족의식을 자극하자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알자는 것이다. 잘나든 못나든 제 아버지가 누군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모르는 자식의 정체성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런 저런 사유로 숨겨지고 왜곡되어 누더기가 돼버린 역사를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학자들은 모두 실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 스타일이 연상된다. 다소 과격하고 단정적이며 주장이 반복되고 있는 경향이 있지만 논증적이며 설득력과 호소력 또한 고루 갖추고 있어 신뢰감이 든다. 지은이의 의도는 명확하지만 상당히 공격적이다. 막말로 이 책에서 공격받은 학자들이 학문적인 반론을 제기하지 않거나 하다 못해 명예훼손이나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지은이의 말이 진실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지은이는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이병도의 일제식민사학을 뿌리로 하는 현 주류강단사학자들(서울대 노태돈 교수)의 고조선 역사 왜곡을 논증적으로 비판한다.
신채호를 비조로 하며 현 주류학파에 반대하는 일부, 아니 거의 몇에 불과한 강단사학자(단국대 윤내현 교수)와 재야사학자들의 치밀한 역사문헌에 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고조선사를 제대로 된 역사로 제시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역사를 아는 것은 다른 목적을 배제한 진실추구에 다름 아니며 절대 장엄한 역사의 민족주의 고취 같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한쪽은 축소할 대로 축소한 역사며 다른 한쪽은 터무니없이 장대한 역사다.
결국 학자의 양심을 갖춘 학자가 치밀한 문헌고증을 통한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구했으며 신뢰성을 확보할만한 검증 기간을 거친 결과를 진정한 역사로 보고 찾자는 것이다.
우리가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며 참이냐 거짓이냐의 문제다. 모든 자료는 이미 있다. 우리 일반대중이 가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따분한 역사라고 무시해버리기엔 우리의 뿌리가 너무 깊고 넓으며 버리기엔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